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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894화 (651/2,000)
  • 894화. 이변

    *

    백발 미부인은 은색 빛줄기 두 개를 막고 있는 데다, 머리 위의 금제를 억제하느라 도무지 추격할 여력이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푸른 빛줄기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잠깐이었지만 검은 빛기둥이 빠르게 하강했다.

    “……!”

    화들짝 놀란 미부인이 쇠망치를 북돋아 해골들이 녹색 화염을 더욱 많이 뿜어내게 만들었다. 그때 수십 장을 벗어나 대전 출구에 가까이 다가간 한립은 돌연 안색이 급변해 방향을 틀었다.

    그가 있던 자리에 회색 귀신 손톱이 떨어져 내렸던 것이다. 새까만 손톱은 녹색화염이 활활 타올랐고 움직일 때마다 주변 공기가 왜곡되었다.

    한립이 빠르게 피하지 않았다면 바로 붙들렸을 것이다. 손톱의 위력은 강했지만 조종하던 미부인이 법력을 유지하지 않아 일격은 실패로 돌아가 그대로 흩어졌다.

    한립이 기뻐하며 통로로 뛰어들려고 하는데 뒤쪽에서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려왔다.

    ‘이건 또 뭐야!’

    한립이 기겁해 옆으로 튀어나가 열댓 장 밖에 나타났다. 바로 그때 청록색 빛이 그가 있던 자리를 스쳐 사라졌다.

    한립은 곧바로 수결을 맺으며 소매를 털어 삼두육비의 허상을 불러냈다. 그러자 금색 허상이 떠올라 여섯 개의 팔이 동시에 뒤쪽을 내리쳤다. 여섯 개의 주먹에서 뿜어져 나온 그림자가 하나로 뭉쳐져 금색 돌풍으로 변해 날아갔다.

    그리고 소매 속에서 열댓 개의 푸른 구슬이 데구루루 굴러 나왔다.

    한립은 범성진마공을 극성으로 발휘해 온몸을 금색 비늘로 뒤덮었고 검은 기운을 뭉쳐 살갑을 형성했다. 그리고 검은 살갑 위로 뇌전이 번득이고 금색 장포가 걸쳐졌다.

    그제야 조금 안심한 그가 몸을 돌렸다.

    콰앙!

    그 순간 엄청난 폭음이 울리고 강한 기운이 밀려들었다. 서른 장 밖 금색 기운과 녹색 빛이 융합해 소용돌이가 치는 와중에 푸른 인영이 어렴풋이 보였다.

    한립은 명청령안을 발동해 소용돌이 속 인영의 얼굴을 확인했다.

    ‘이럴 수가!’

    호리호리한 인영이 소매를 펄럭여 소용돌이를 가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인영은 코웃음을 치며 소매 속에서 푸른 기운을 뿜어 한립이 뿜어낸 푸른 구슬들을 치우려 했다.

    그러나 푸른 기운이 뇌주와 충돌하는 순간, 구슬들이 팽창하며 커다랗게 불어나 다가오는 인영을 덮쳤다.

    콰쾅 콰콰쾅! 쿠르릉 콰쾅!

    그를 쫓아오던 인영은 깜짝 놀라 온몸을 반짝여 비취색 나무의 허상을 만들어내 뇌전의 힘을 밀어냈다. 난색을 표한 인영이 뇌전 구름 속에서 냉랭히 한립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바로 죽은 줄 알았던 목청이었다. 목청은 어떤 비술을 사용했는지 오룡찰에 당한 것처럼 가장해 숨어 있다가 한립이 나타나자 어쩔 수 없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뇌전 구름 속에서 목숨을 잃을 걱정은 없었지만 바로 빠져나오기는 힘들어 보였다. 한립은 그녀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아 즉시 대전 입구로 날아갔다.

    그 뒤로 푸른 기운 속에 정신을 잃은 원요와 연려가 그를 따라오고 있었다. 그는 푸른 기운을 불러들이고 원요와 연려를 옆구리와 어깨에 걸치고는 날개를 펄럭여 이곳을 떠나려 했다.

    그런데 그때 이변이 발생했다. 한쪽 공간에 파문이 일며 핏빛 기운이 나타나 거대 손으로 한립을 잡으려 들었다. 아무리 재빠른 한립이라도 피할 길이 없었다. 그는 안색이 창백해지며 온몸의 기운을 북돋아 방어력을 극도로 높였다.

    꽝!

    핏빛 손가락이 뇌포와 검은 갑옷을 뜯고 직접 한립의 어깨를 쥐었다. 핏빛 거대 손은 그를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제압하려는 듯했다.

    하지만 핏빛 거대 손이 금색 비늘에 닿는 순간 미끄러져 내렸다. 그리고 그 순간 한립은 괴이하게 몸을 틀어 잔영을 남기며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때 인근의 핏빛이 뭉쳐 익숙한 형상을 만들어냈다. 지혈 노괴의 혈괴뢰였다. 놀랍게도 이 혈괴뢰는 합체급 존재와 맞먹는 수행을 지니고 있었다. 이전에 그가 죽인 두 명의 혈괴뢰와는 차원이 달랐다.

    멀리서 자혈괴뢰가 핏빛 빛기둥을 뿜어 오룡찰 두 줄기를 막고는 동시에 음산한 눈빛으로 한립이 있는 쪽을 살폈다. 그것은 누군가의 조종을 받는 꼭두각시의 눈빛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립은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고 그저 눈앞의 혈괴뢰를 처리하고 달아날 생각뿐이었다. 연못의 금빛 금제가 심상치 않은 것이 육족이 언제라도 뛰쳐나올 것만 같았다.

    그때 혈괴뢰가 몸을 돌려 두 손을 펼치자 핏빛 손가락들이 기이한 빛을 머금었다. 흠칫 놀란 한립이 기합을 넣고 신형이 흐릿해져 몇 개의 허상으로 변했다.

    사방팔방으로 튀어나간 한립의 허상들은 전부 두 여인을 들쳐 메고 있어 누가 진짜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혈괴뢰가 두 눈을 핏빛으로 번득이고는 한립을 보며 음산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핏빛 안개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잠시 후 바닥에 있는 한립 옆에 혈괴뢰가 나타나 두 손을 뻗었다.

    그는 혈괴뢰가 속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도 침착하게 두 손을 움직였는데 한 손에 검은 동산이 떠올랐고 다른 손에서는 푸른 가위가 날아올랐다.

    혈괴뢰의 공격이 아무리 강력해도 원자신력을 지닌 원자산을 잡아챌 수는 없을 것이다.

    쿠르릉!

    핏빛과 검은 산이 연달아 마찰음을 냈다. 원자산은 바르르 몸을 떨었지만 결국에는 멀쩡히 핏빛 손톱들의 공격을 버텨냈다. 의외의 결과에 혈괴뢰가 눈을 빛냈다.

    크앙!

    바로 그때, 한립이 발동한 푸른 가위가 꼭두각시에게 달려들어 푸른 뇌전 교룡 두 마리로 갈라져 혈괴뢰를 물어뜯었다. 천붕족에서 내준 뇌교전(雷蛟剪)이었다.

    혈괴뢰는 무표정하게 두 팔을 뻗어 뇌전 교룡을 맨손으로 붙들었다.

    그것을 본 한립의 표정이 어두워지며 뒤로 물러나 날개를 펄럭였다. 그리고 푸른빛이 크게 번지고 원요와 연려를 든 채 수정 실로 변해 허공으로 사라졌다.

    혈괴뢰가 낮게 으르렁거리며 빛줄기로 변해 추격을 시작했다. 그런데 지면에서 금빛이 반짝이더니 두 명의 금빛 인영이 떠올랐다. 그들은 금색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었는데 한 명은 장창을 들고 다른 한 명은 양손에 쌍도를 들고 있었다.

    혈괴뢰가 잠시 멈칫하다 고개를 돌리니 한립이 이미 출구로 빠져나가 푸른 빛줄기로 변해 날아가고 있었다.

    이를 본 혈괴뢰가 한립을 향해 움직이려는데 아래에 있던 갑옷 병사들의 신형이 모호해지며 어느새 혈괴뢰 양쪽에서 나타났다.

    두 금갑(金甲) 병사는 한립이 갑원부로 소환해낸 그림자 꼭두각시들이었다.

    꼭두각시들은 한립의 일부 실력과 신통을 부릴 수 있었기에 결코 얕볼 수 없었다. 이에 혈괴뢰는 무작정 한립을 쫓아갈 수가 없었다.

    만약 혈괴뢰가 한립을 쫓기 위해 순간이동을 발동하려고 하면 꼭두각시들이 공격을 퍼붓든 술법을 펼치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혈괴뢰의 움직임을 막았을 것이다.

    혈괴뢰가 양 소매를 털어 피비린내 나는 바람을 내뿜자, 금빛 칼날과 장창이 튕겨나갔다.

    푸푹!

    이어 혈괴뢰의 입에서 빠르게 뿜어져 나간 핏빛 빛기둥이 번개처럼 두 금갑 병사들의 몸을 뚫고 지나갔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예상치 못 했던 광경에 혈괴뢰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금갑 병사들의 몸에 금빛이 반짝이더니 가슴에 뚫린 구멍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금세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중 하나가 금색 장창을 흔들자 금색 뇌전이 열댓 개의 금색 뇌전 뱀으로 변해 괴이하게 날아들었다.

    잠시 후, 이번엔 다른 꼭두각시가 쌍도를 허공에 투척했다. 쌍도가 허공을 선회하며 희미하게 해골 머리 허상을 만들어내자 해골 머리들은 입을 벌려 다섯 가지 색의 한염을 분출했다.

    “흠.”

    혈괴뢰는 순간 얼굴을 굳히고는 두 손으로 재빨리 수결을 맺어 핏빛 빛구슬을 불러냈다. 구슬들은 소리 없이 사방팔방으로 튀어나갔다.

    쿠콰쾅!

    빛구슬은 뇌전과 화염이 합쳐져 놀랍게도 사방이 핏빛 화염으로 터져나갔다. 핏빛 화염 속에서 뇌전도 한염도 분분히 사그라졌고 남은 핏빛 화염이 양쪽으로 갈라져 금갑 병사 둘을 불사르려 했다.

    꼭두각시들은 수중의 병장기를 마구 휘두르면서 회색 기운을 방출해 몸을 보호했다. 하지만 핏빛 화염은 잠시 속도가 늦추어졌을 뿐 곧 그들의 방어를 뚫고 꼭두각시의 몸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두 금갑 병사가 활활 타오르다 녹아 핏물로 사라진 것이다.

    혈괴뢰는 즉시 신형을 움직여 출구로 쇄도했다. 비록 한립이 달아났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그가 너무 멀리만 달아나지 않았다면 의식으로 한립의 위치를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땅속에서 솟아오르니 궁전 안은 텅 비어 있었다. 혈괴뢰는 사방을 살피며 냉소했다. 두 눈을 감은 그가 두 손으로 수결을 맺어 의식을 사방으로 퍼트렸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눈을 뜨고는 괴성을 지르며 핏빛으로 변해 날아갔다.

    핏빛은 몇 번 번뜩이다 남색 통로로 모습을 감추었다. 전력을 다해 날아가는 혈괴뢰의 속도는 실로 놀라웠다.

    잠시 후, 핏빛이 남색 통로 앞에 나타났다. 의식으로 감응해보니 한립은 진작 백리 밖으로 달아난 듯 했다. 그는 주저 없이 몸을 날려 남색 통로 속으로 뛰어들었다.

    크하학!

    핏빛이 번뜩이며 막 통로를 나서려는데 정면에서 괴수의 포효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갑자기 명뢰수가 은색 뇌전을 번뜩이며 순식간에 그를 덮쳐왔다.

    “말도 안 돼!”

    혈괴뢰가 기겁해 소리쳤다.

    ‘지하 궁전에 이미 명뢰수가 두 마리나 있는데 어찌 또 다른 명뢰수가 나타난단 말인가!’

    흉수를 본 혈괴뢰가 안색이 달라져 한립을 쫓을 생각도 못하고 목패(木牌)를 날렸다. 보물이 빙글 돌아 기운을 방출해 그를 보호했다.

    그리고 양손으로 수결을 맺자 꼭두각시의 몸에서 핏빛 안개가 분출되어 아예 그를 뒤덮어버렸다. 명뢰수 같은 무서운 적을 상대하려면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야 했다.

    그는 일단 명뢰수의 공격을 방어 한 다음 몸을 빼낼 생각이었다.

    우웅!

    그런데 혈괴뢰가 방어태세를 갖추느라 입구에서 우물쭈물하는 동안 주변 공기가 달라졌다.

    은색 주술문자가 괴이하게 나타나 영기의 빛을 반짝이며 터진 것이다. 은빛으로 사방이 물들고 거대한 은색 빛의 진법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한립이 미리 펼쳐 놓은 구궁천건부였다.

    무슨 비술을 사용했는지 한립은 이미 백 리 밖으로 달아났는데도 구궁천건부는 여전히 발동되었다.

    명뢰수의 표정이 묘해지더니 빛의 진법 앞에서 움직임을 멈추었다. 이에 혈괴뢰가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상공의 명뢰수를 보다가 땅으로 내려서려 했다.

    그런데 그때 밑에서 맑은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은색 불새가 괴이하게 날아올랐다. 겨우 한 척 크기의 불새는 입을 벌려 무척 익숙한 푸른 구슬 열댓 개를 날렸다.

    혈괴뢰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구슬의 위력이 어떤지 이미 두 눈으로 확인했으니 그대로 맞을 수는 없었다.

    ‘옆으로 피해서 갈 수 있을까?’

    그가 고민하는 사이 근거리에서 열댓 개의 구슬이 벌써 푸른빛을 머금었는데 폭발의 위력에 말려들 것 같았다. 이에 혈괴뢰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뒤로 물러섰다.

    혈괴뢰가 물러선 순간 그는 다시 은색 주술 문자가 반짝이는 곳으로 들어서고 말았다. 그 순간 구궁천 건부가 변한 진법이 덮쳐왔다. 은빛이 번쩍인다고 느꼈을 뿐인데 주변 풍경이 흐려지고 하얀 안개에 둘러싸이고 말았다.

    서둘러 주위를 살피니 멀리 높은 궁궐 담과 궁전 누각들이 겹겹이 둘러싸 끝없이 펼쳐졌다. 그리고 하늘 위는 은빛으로 단단히 가려져 있었다.

    혈괴뢰는 일순 멍해졌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를 가둔 금제는 보통이 아니었다. 이곳에서 단시간 내로 탈출하기는 어려울 듯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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