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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893화 (650/2,000)
  • 893화. 혼전(混戰)

    *

    잠시 후 검은 구름이 사라지고 거대한 신영이 나타났다. 높이 7, 8장의 고풍스러운 검은 갑옷을 걸친 신영이 한 손에 쇠망치를 들고 있었다.

    검은 갑옷에는 날카로운 검은 바늘들이 솟아 있었고 현묘한 은색 문양이 가득했다.

    쇠망치는 더욱 특이해서 표면에 8개의 해골머리들이 음산하게 박혀 꿈틀거렸다. 해골들은 가끔 괴성을 지르거나 기괴하게 움직여 보는 이들의 소름을 돋게 만들었다.

    거인은 미부인이 신체를 거대화한 것이었고 망치는 여덟 귀왕이 합쳐져 만들어낸 무기였다. 목청이 그 것을 보고 표정이 변했다. 그녀가 무어라 묻기 전에 미부인이 먼저 쇠망치를 던지고 수결을 맺었다.

    그러자 거대한 쇠망치의 여덟 해골들이 날카롭게 소리를 지르고 입에서 여덟 줄기의 녹색 화염을 뿜어냈다.

    이제 음화(陰火), 녹색 그림자, 회색과 푸른 실이 하늘을 뒤덮어 검은빛의 진법을 봉쇄했다. 그것을 본 명뢰수들은 서두르지 않고 몸집을 몇 배로 키워 네 개의 팔을 하늘 위로 뻗었다.

    콰쾅- 콰콰쾅!

    천둥소리가 연달아 들리고 팔뚝을 타고 굵은 뇌전이 튀어나가 검은빛의 진법으로 흡수되었다. 검은빛의 진법은 요란한 빛을 뿜어내며 더욱 기세가 높아졌다.

    놀랍게도 검은빛의 진법이 다시 승기를 잡고 두 여인의 공격을 압도했다.

    미부인과 목청이 놀라 서둘러 술법을 펼쳤다. 한 명은 입에서 피를 내뿜었고, 다른 한 명은 고개를 쳐들고 처량하게 울부짖으며 전신의 법력을 허공의 보물로 쏟아부었다.

    초록 나무와 쇠망치가 분출한 녹색 그림자와 화염이 왕성하게 움직여 검은 빛의 진법을 다시 밀어 올리려 했다. 그렇지만 빛의 진법은 계속 미세하게 하강하고 있었다.

    이제 미부인과 목청의 안색이 완전히 달라졌다. 금제가 너무 강력해 그들의 힘으로는 안 될 것 같았다. 목청이 숨을 고르고 자혈괴뢰를 향해 소리쳤다.

    “지혈 수사, 어서 무엇이든 해보세요! 저게 떨어져 내렸다가는 큰일입니다.”

    자혈괴뢰 속에 들어간 지혈은 아무런 말이 없었지만 두 여인 앞을 막고 있던 일곱 금속괴뢰들이 빛줄기로 변해 고공의 명뢰수들을 향해 쇄도했다.

    검은 진법이 대단하다 해도 조종하는 두 짐승을 없애면 위력이 급감할 것이라 여긴 것이다. 일곱 괴뢰들이 명뢰수들을 없앨 수는 없겠으나 그들을 성가시게 할 수는 있었다.

    일곱 빛줄기가 달려들자 인간형 명뢰수들의 눈빛이 음산해졌다. 그들의 수결이 달라지고 명뢰수 뒤쪽으로 갑자기 열 장 크기의 거대한 동굴이 나타났다.

    콰르릉!

    두 명뢰수는 신형이 흐릿해져 동굴 양쪽으로 피했고 굉음이 울리며 동굴 안에서 검은 기운이 방출되었다.

    달려들던 일곱 금속괴뢰들이 미처 피하지 못하고 검은 기운에 말려들었다. 그러자 기함할 일이 벌어졌다. 일곱 금속괴뢰들이 검은빛 속에서 감쪽같이 없어진 것이다.

    “……!”

    목청 등이 그것을 보고 식은땀을 흘렸다.

    크학!

    두 명뢰수가 득의양양하게 울부짖고 털이 북슬북슬 난 손으로 수결을 맺자 검은 동굴이 모호하게 소실되었다.

    “으아악!”

    자혈괴뢰의 체내에서 지혈의 분노에 찬 괴성이 들려왔다. 자혈괴뢰의 어깨에서 핏빛이 반짝이고 지혈이 환영처럼 나타났다. 일곱 금속 괴뢰들을 어이없이 잃고 열을 받은 것이다.

    그는 즉시 자신의 뒤통수를 쳤고 핏빛 기운이 솟아올라 거대한 피구슬로 뭉쳐졌다. 지혈은 어깨를 털어 피구슬로 명뢰수를 공격하려 했다.

    그때 목청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거기 누구냐?! 나오지 못할까!”

    여인의 손은 말보다 빨라 소매 속에서 푸른 실들이 허공을 뚫고 무언가를 공격했다.

    “헛!”

    누군가의 놀란 목소리와 가벼운 폭음이 들리고 녹색 기운이 폭발했다. 하지만 푸른 실이 꿰뚫은 곳은 텅 비어 있었다.

    다음 순간 목청 위쪽으로 공간에 파문이 일고 수정 구슬이 나타났다. 구슬은 빙글빙글 돌며 눈부신 하얀 빛을 방출했기에 주변 모두가 순간적으로 눈을 감았다.

    그 순간 구슬이 모호해지면서 인영 하나가 튀어나왔다. 붉은색 인영은 손을 뻗어 은색 빛줄기를 목청에게 날렸다.

    붉은색 인영은 혈갑괴뢰였고, 은색 빛줄기는 바로 오룡찰이었다.

    목청은 어쩔 수 없이 눈을 감았지만 의식으로는 주변 수십여 장을 꿰뚫고 있었다. 그녀는 당황하지 않고 양손을 은색 작두를 향해 뻗었다. 그러자 은색 작두 주변으로 푸른 실들이 괴이하게 나타나 일부는 은색 작두를 감쌌고 나머지는 이리저리 교차해 푸른 손수건으로 변해 방어를 했다.

    목청이 미리 주변에 푸른 실을 숨겨 놓았기에 혈갑괴뢰가 귀신처럼 움직였는데도 알아차린 것이다.

    하지만 오룡찰의 위력은 그녀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은색 작두가 서늘한 빛을 번득이고 푸른 실이 잘려나가 후드득 떨어졌다. 그러나 작두는 멈추지 않고 푸른 손수건으로 달려들었다.

    서걱!

    푸른 손수건이 종이처럼 베어져 목청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경악한 목청은 이제야 작두가 얼마나 예리한 보물인지 깨달았다.

    달아나고 싶어도 때는 이미 늦었다. 작두는 도중에 허상으로 변해 사라졌다.

    ‘이런!’

    목청이 막 전신에 푸른 갑옷을 만들어 냈을 때 사방팔방에서 은색 칼날들이 반짝이며 날아들었다. 핏기가 가신 목청이 입술을 질끈 깨물고 소매를 털어 새까만 몽둥이 하나를 꺼내 들었다.

    순식간에 커진 몽둥이가 잔영을 남기며 주위를 도는 동안 은색 빛줄기를 돌파할 심산이었다. 이곳에 남아 있다가는 결국 죽고 말 것이다.

    퍼퍼퍼퍽!

    검은 몽둥이도 무엇으로 만들어진 보물인지 놀랍게도 처음에는 서늘한 은빛을 약간 막아냈다. 하지만 잠시 후 검은 몽둥이의 잔영이 흐릿해지며 결국 은빛에 이리저리 잘려나가고 말았다.

    경악한 목청이 두 손으로 수결을 맺어 다른 신통을 펼치려는데 주위에서 몰려든 은색빛이 방망이의 잔영을 뚫고 들이닥쳤다.

    채채챙!

    푸른 갑옷이 잘려나가고 참혹한 비명이 들려왔다. 미부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을 했다. 목청은 그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상대였다.

    그때 혈갑괴뢰가 허공의 서늘한 빛을 가리키자 빛이 가시고 다시 은색 작두가 모습을 드러냈다. 작두 아래 목청의 시체가 무수히 많은 조각으로 잘려 떨어졌다. 괴이하게도 피한 방울 살점 하나 튀지 않았다.

    하지만 혈갑괴뢰는 개의치 않았다. 목청이 영목을 본체로 한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기에 이상하게 여기지 않은 것이다.

    웃음을 흘린 그가 한 손으로 수결을 맺자 작두가 방향을 틀었다. 다음 목표는 인근의 자혈괴뢰였다.

    자혈괴뢰의 거대한 몸은 커다란 과녁 같았다. 원래는 요왕들이 명뢰수와 싸우다 힘이 다 빠지면 나설 생각이었는데 하필 육족이 연못으로 들어가 버렸기에 어쩔 수 없었다.

    이에 혈갑괴뢰도 마음이 급해졌다. 일단 그들이 연못과 영맥의 연계를 끊어 놓으면 침입자들을 전부 죽여도 본 족으로 돌아가 큰 벌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이제 어찌 되었든 상관없다. 오룡찰이 수중에 있고 명뢰수가 도우니 저들을 죽이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야!’

    혈갑괴뢰가 잠시 고민하고 있을 때 지혈은 달려드는 은색 빛줄기를 두려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지혈은 고민할 것도 없이 이미 뭉쳐 놓은 거대한 피구슬을 가리켰다.

    피구슬이 부르르 몸을 떨며 쏘아져 나갔고 그와 동시에 자혈괴뢰가 보라색 빛 속에서 수축해 보통의 크기로 줄어들었다. 자혈괴뢰의 여섯 눈이 번득이고 빛기둥이 가느다란 실처럼 수축해 피구슬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지혈은 표표히 내려와 자혈괴뢰 옆에 섰다.

    쾅!

    은색 빛줄기와 피구슬이 충돌하자 은색 빛줄기가 핏빛에 파묻혔다. 이에 지혈은 희색을 보였다. 피구슬은 평범한 정혈이 아니라 만년예기(穢氣)를 모아 제련한 것으로 보물들을 오염시키는 데는 특효였다.

    은색 보물이 아무리 대단해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을 리 없었다.

    콰쾅!

    폭음이 들리고 지혈의 얼굴이 굳어갔다. 피구슬이 은빛에 뚫려 악취와 비린내를 풍기는 안개로 흩어졌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오룡찰이 변한 은색 빛줄기는 자혈괴뢰가 내뿜은 여섯 줄기의 핏빛 빛기둥과 충돌했다. 여러 핏빛 빛기둥과 부딪친 은색 빛줄기가 드디어 원형을 드러냈다.

    지혈이 두 눈을 빛내고 다급히 한 손으로 수결을 맺었다. 그러자 핏빛 빛기둥이 하나로 응결해 핏빛 거검으로 변한 다음 작두와 교전했다.

    오룡찰은 믿기지 않을 만큼 예리했지만 핏빛 비검을 바로 두 동강 내지는 못했다.

    혈갑괴뢰가 그것을 보고 눈빛이 사나워졌다. 그가 속으로 구결을 외자 오룡찰의 은빛이 거세지더니 날카로운 기운을 방출했다.

    핏빛 검의 기운이 조각조각 부서졌다가 다시 핏빛으로 뭉치는 순간,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지혈들이 입을 벌려 정혈을 토해냈다. 그리고 그의 피가 핏빛 주술 문자로 변해 눈앞에서 괴이하게 종적을 감추었다.

    다음 순간 멀리 핏빛이 현란하게 빛나고 다시 핏빛 비검으로 응결되었다.

    우웅!

    비검은 다시 오룡찰과 겨루며 놔주지 않았다.

    미부인은 목청의 죽음에 오룡찰이 두려워졌지만 지혈의 비검이 그것을 막고 있자 크게 안심했다. 그녀는 검은빛의 진법이고 뭐고 급히 한 손을 펼쳐 검은 주머니를 던졌다.

    주머니에서 회색 음기가 마구 쏟아져 나와 백여 명의 음갑귀병들로 변했다.

    키엑!

    미부인이 날카롭게 소리치고는 혈갑괴뢰를 가리켰다. 병사들이 즉시 도검을 치켜들며 음풍으로 변해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혈갑괴뢰는 그저 조소할 뿐이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고계 귀물에게 물었다.

    “저것들은 네게 맡기겠다. 처리할 수 있겠느냐?”

    “예, 대인! 저런 저계 요물들은 제 상대가 될 수 없습니다.”

    귀물이 즉각 대답하자 혈갑괴뢰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 머리 귀물이 온몸을 유리처럼 반짝이며 오색 기운으로 변해 뛰쳐나갔다.

    잠시 후 그는 흉흉한 기세로 백여 귀병들과 맞서 싸웠다. 이제 혈갑괴뢰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오룡찰의 조종에만 온힘을 다 했다.

    우우웅!

    핏빛 검과 교전하던 은색 빛줄기가 길게 공명하며 다섯 개의 빛줄기로 갈라졌다. 그 중 하나는 여전히 핏빛 비검과 겨루고 있었고 나머지는 둘씩 갈라져 지혈과 백발 미부인을 향해 전광석화처럼 쏘아져나갔다.

    백발 미부인의 표정이 묘해졌다. 빠르게 하강하는 검은빛의 진법과 자혈괴뢰를 번갈아 쳐다보다 승산이 없다는 생각에 이쯤에서 달아나야하지 않을까 고민에 빠진 것이다.

    그런데 그때 아래쪽 진법에서 괴성이 들리고 진법 표면이 격렬하게 떨렸다.

    “육족 수사가 빠져 나오려나 봅니다.”

    미부인의 귓가에 지혈의 전음이 들렸다. 그 말에 미부인이 멈칫하며 주저하고 있을 때 빛줄기 두 개가 서늘한 빛을 내며 코앞까지 달려들었다.

    미부인은 등 뒤의 귀물 그림자를 움직여 귀물의 거대한 손으로 빛줄기를 잡아챘다. 그리고 동시에 백골로 만들어진 깃발을 흔들어 빛줄기를 향해 회색 기운을 쏘아 보냈다.

    그 순간 미부인이 힐끗 궁전 구석을 노려보았다. 그런데 궁전 구석에 명하니 서있는 원요와 연려 옆에 어느새 청년 하나가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양손을 여인들의 어깨에 올려 금색 뇌전을 불어 넣고 있었다.

    청년은 요왕들이 죽었다고 생각한 한립이었다.

    잠시 후 멍한 얼굴의 원요와 연려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며 핏빛 실이 몸 밖으로 밀려나가기 시작했다.

    “네가 감히!”

    미부인이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한립은 미부인이 소리를 지르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뇌전의 양을 더욱 늘렸다. 핏빛 실들이 전부 여인들의 몸 밖으로 밀려나와 벽사신뢰에 재가 되어 사라졌다.

    두 여인은 힘없이 쓰러졌다.

    한립은 푸른 기운을 방출해 두 여인을 휘감은 다음 푸른 빛줄기로 변해 대전 출구로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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