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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892화 (649/2,000)
  • 892화. 매미 잡는 사마귀, 사마귀를 노리는 참새

    *

    한립은 드디어 대전 끝에 이르러 원요와 연려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는 길게 한숨을 쉬며 빠르게 원요의 몸을 훑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새하얀 얼굴에 핏빛 실이 보일 듯 말 듯 했다. 머리카락보다 얇은 핏빛 실은 근거리에서 명청령안의 신통을 빌려서야 겨우 보였다.

    한립이 미간을 좁혔다.

    ‘지혈 노괴의 혈부(血符) 금제에 걸려 있는 것 같은데, 굉장히 강력한 사술이야.’

    사술이라면 벽사신뢰 혹은 서령천화가 효과를 보일 것이다. 다만 서령불새를 입구에 매복시켜 놓아 이번에 금제를 푸는 데는 벽사신뢰밖에 사용할 수 없었다.

    이제 적당한 기회를 기다리는 일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가 금제를 풀려는 순간 지혈 노괴가 알아챌 것이기 때문이다.

    한립은 멀리 녹색 기운 속 존재를 바라보았다. 녹색 기운은 분명 바깥의 귀물들과 관련이 있을 것이고 언제까지 지켜보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에 한립은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그가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육족 요왕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강력한 요왕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데 경거망동할 수는 없었다.

    물론 그는 괴이한 연못에 있을 가능성이 가장 컸다. 하지만 연못에 떠오른 하얀 안개가 의식을 제한해 아무리 훑어보아도 그곳에 누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그저 하얀 안개가 함유한 영기의 정순함이 평생 느껴본 영기 중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높아 이런 곳에서 수련하면 시간을 몇 배나 단축시킬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이 연못이 명하 신유일거라 추측한 이유였다.

    한립은 목청과 다른 요왕들이 연못물을 취해 달아나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다. 명뢰수들이 강력해도 틈을 노려 명하신유를 취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특히 세 요왕은 연못 바로 위 상공에 떠있지 않은가! 아니면 연못에 강력한 금제가 걸려있거나 명하 신유를 취하기 위해 특별한 방법이 필요한 것이 틀림없었다.

    ‘육족이 보이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일 터.’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지금 당장 움직이는 것은 여러모로 무리였다. 한립은 원요와 연려 옆에 서서 싸움의 승패와 녹색 기운의 행보를 주시했다.

    오랫동안 체내의 표식을 가려둘 수는 없었지만 싸움이 격렬하고 명뢰수들이 조급해하고 있으니 곧 어떻게든 결론이 날 것이다.

    쿠르릉!

    연못 위 안개가 부글부글거리고 정순한 영기가 흘러나오며 주변 땅이 흔들렸다.

    그것을 보고 화가 난 명뢰수들은 동시에 포효하더니 뇌전을 거둬들이고 앞발을 들어 사람처럼 두 다리로 우뚝 섰다. 그러자 한 줄기 칠흑 같은 괴풍이 도처에서 몰아쳐 두 짐승을 휘감았다.

    이에 백발 미부인과 목청 등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명뢰수가 무언가 강력한 신통을 펼치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미부인이 낮게 괴성을 지르자 하얀 머리카락이 갑자기 더없이 길게 자라나 휘몰아쳤다.

    무수히 많은 하얀빛들이 튀어나가 검은 바람을 공격했다. 하얀빛은 바늘처럼 귀를 찌를 듯한 파공음을 냈고 그 위력도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목청이 한 손으로 수결을 맺어 몸의 기운을 북돋자, 사발 크기의 꽃 그림자가 그녀의 주위를 맴돌며 오색찬란한 기운으로 튀어 나갔다. 순간 허공은 하얀빛과 음산한 기운으로 뒤덮였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검은 바람 속 두 짐승이 하얀 빛과 음산한 기운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채채채챙!

    이어 금속성의 마찰음이 들리고 모든 공격이 튕겨나가 버렸다. 그리고 바로 그때 검은 바람 속에서 키가 열 장에 달하는 흉악한 얼굴을 지닌 인간형 요물 두 마리가 나타났다.

    머리에 뿔이 달리고 피부가 은색 비늘로 뒤덮인 이들은 명뢰수가 인간으로 변신한 것이었다.

    이에 목청이 흠칫 놀라 두 손으로 빠르게 법결을 맺고 입을 벌려 각각 무언가를 분출했다. 검은빛이 반짝이고 나타난 것은 작은 깃발이었고, 또 하나는 하얀 기운을 흩날리는 정교하게 생긴 진법 원반이었다.

    “어서 막아야 합니다. 저것들이 부유족이 펼쳐 놓은 금제를 발동하려 하고 있어요!”

    지혈이 소리치며 소매를 펄럭여 몇 촌 크기의 단검 한 쌍을 날렸다. 그러자 인간형 명뢰수가 미리 대비하고 있었는지 머리에서 뿔을 떼어내 단검을 막아섰다.

    쿠앙! 쾅!

    굉음이 울리고 뇌전의 힘에 단검 두 자루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뿔은 그들의 몸 중에서 가장 단단한 부위였고 오랜 세월 제련해 웬만한 도검류 보물보다 더 단단했다.

    단검이 사라지자 두 뿔은 빛을 번득이며 그 자리에서 종적을 감추었다.

    콰릉!

    다음 순간 두 개의 뇌전 빛이 허공에서 나타나 지혈 앞에서 뇌격을 발사했다. 놀란 지혈은 너무 빠른 뿔의 공격에 피할 생각도 못하고 몸에서 혈괴뢰를 뿜어내고 핏빛 보호막으로 몸을 보호했다.

    두 혈괴뢰들은 실력이 상당했지만 두 뿔이 하나로 합쳐져 뇌전 송곳처럼 찔러 들어오니 힘없이 뚫리고 말았다. 꼭두각시들을 처리한 뇌전 송곳이 이번엔 지혈의 핏빛 보호막에서 잠시 멈칫하다 소리 없이 보호막을 뚫고 들어갔다.

    꽈과광!

    경천동지할 굉음이 울리고 지혈의 가슴에 사발만한 구멍이 뚫렸다. 지혈은 두 팔을 돌려 열댓 장의 핏빛 부적들을 몸에 붙였다. 그러자 구멍이 뚫렸던 가슴에서 살점과 피가 꿈틀대며 상처를 메워버렸다.

    그것을 본 미부인과 목청이 약간 긴장을 풀었다.

    지혈이 죽어버리면 그들의 힘만으로는 명뢰수 두 마리를 오래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때 뇌전 송곳이 지혈 뒤에서 방향을 틀어 다시 되돌아왔다.

    지혈의 머리를 노린 것이다. 목청과 미부인이 도움을 주기 전에 허공에 검은 그림자가 번득이더니 거대 손으로 은색 뇌전 송곳을 붙들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거대 손에서 폭음이 들려왔다.

    뇌전 송곳이 무수히 많은 뇌전을 방출하고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온 것이다. 이어 몇 번 번득인 후에 두 인간형 명뢰수에게 돌아간 뇌전 송곳은 둘로 갈라져 다시 뿔로 되돌아갔다.

    뇌전 송곳이 그들을 공격하는 동안 두 명뢰수는 작은 깃발과 진법 원반을 꺼내 입에서 피를 뿜어냈다. 깃발과 진법 원반이 빛을 머금고 명뢰수의 피를 모조리 빨아들였고 진법 깃발은 먹구름으로 변해 높이 치솟아 궁전 지붕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진법 원반은 아래쪽으로 서서히 하강해 땅으로 스며들었다. 그 모습에 목청과 미부인이 놀라 안색이 급변했다.

    궁전 지붕에서 영기의 빛이 크게 번지고 갑자기 검은 문양들이 떠올랐다. 검은 모양은 지렁이처럼 꿈틀꿈틀 대며 거대한 진법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진법의 중심이 새까맣게 변해 갑자기 미친 듯이 바람이 불어오면서 다른 공간으로 통하는 길이 뚫렸다. 그리고 동시에 바닥에서 하얀빛이 번지며 주술 문자들이 떠올랐다.

    그 순간 요동치던 녹색 연못이 안개 위로 대형 금색 빛의 진을 만들어냈다.

    안개 위로 떠오른 금색 빛의 진은 너무 눈부셔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금색 빛의 진이 나타나고 연못 주변의 땅은 고요해졌다.

    목청과 미부인이 그것을 보고 분노했다.

    그들은 육족이 영원히 갇혀 있을 거라 여기지는 않았지만 일단 금제가 발동되었으니 명하신유를 얻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하지만 문제는 머리 위의 검은빛의 진이 점점 커지며 서서히 하강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연못 상공에서 물러서든지 아니면 금제와 정면충돌을 해야 했다.

    “목 수사. 우리가 연합해 저것을 먼저 없앱시다. 지혈 형, 꼭두각시와 함께 우리를 엄호해 주세요.”

    목청이 머뭇거리자 귓가에 백발 미부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녀는 생각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미부인의 말을 들은 지혈이 미간을 좁히고 뇌전 송곳을 잡았던 자혈괴뢰의 손아귀를 내려다보았다. 놀랍게도 다섯 손가락이 약간 새까맣게 변하고 희미하게 타는 냄새를 풍겼다.

    한숨을 내쉰 그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발로 자혈괴뢰를 내리친 지혈이 소매를 뒤져 금색 목갑을 꺼냈다.

    그가 주술을 외고 목갑을 가리키자 그 안에서 일곱 가지 둔광이 뿜어져 나왔다. 빛이 가시고 일곱 마리의 꼭두각시들이 나타났다.

    꼭두각시들은 날짐승, 들짐승의 모습을 한 것부터 반인반요와 곤충의 형태를 한 것까지 다양했다. 그 중 곤충 형태를 갖춘 두 마리는 거대한 지렁이와 거대 개미였다.

    7마리 모두 금속 재료로 제련되어있었고 지혈 노괴의 피땀이 들어간 꼭두각시 정예들이었다. 미부인이 그것을 보고 낮게 웃더니 빙글 돌아 몸에서 여덟 개의 검은 기운을 방출했다.

    바로 원기를 회복하기 위해 회수했던 음갑귀왕들이었다.

    귀왕들은 즉시 미부인을 둘러싸고 허공에 가부좌를 틀어 몸에서 검은 기운을 방출해 구름을 형성했다.

    그리고 목청은 피부를 초록색으로 물들여 초록 실들을 마구 뿜어냈다. 기이한 화초들이 주위에서 나타나 그녀를 둘러쌌다.

    명뢰수는 그들이 무엇을 하든 신경 쓰지 않고 전신의 영력을 진법 속으로 불어넣고 있었다. 금제의 위력에 크게 자신 있는 눈치였다.

    쌍방이 생사를 걸고 격돌하려하자 구석에 숨어 있던 한립의 표정이 달라졌다. 소매 안에서 열댓 개의 푸른 구슬들이 손바닥으로 굴러 내려왔다.

    눈을 가늘게 뜬 그는 더욱 신중한 얼굴로 먼 곳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녹색 기운으로 가려진 구슬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립이 명청령안으로 살펴보자 수정 구슬이 하얀빛을 반짝이며 초록 빛 속으로 사라졌다. 명청령안으로도 따라잡을 수 없는 빠른 움직임이었다.

    흠칫 놀란 그가 서둘러 의식을 개방해 주변 몇 장을 살폈다. 들키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습격하게 둘 수도 없었다.

    한립이 살짝 고개를 틀어 원요와 연려를 보고 다시 시선을 전장으로 옮겼다. 그간의 경험상 그녀들을 구해 달아날 수 있는 기회는 딱 한 번 뿐이었다.

    이번에 실패한다면 이곳이 그의 무덤이 될 것이며 천 년의 수련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다. 생사의 기로에서 한립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때 멀리서 목청과 미부인이 허공의 검은 진법을 향해 공격을 개시했다. 지혈이 풀어놓은 금속 괴뢰 7마리가 앞을 막아 호위했고, 자혈괴뢰는 지혈에게 붙어 있었다.

    미부인이 방출한 검은 구름 속에서 귀곡성이 울려 퍼지며 백골 손톱이 튀어나와 불쑥 허공으로 뻗어 나갔다. 손끝에서 회색빛 구슬을 방출한 것이다.

    이에 목청은 주위의 기이한 화초들이 허공을 돌더니 그녀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영기의 빛이 반짝인 목청이 천천히 입을 벌려 초록색 빛기둥을 뿜었다. 초록빛이 뚝뚝 떨어지는 빛기둥은 아름답고 신비로웠다.

    두 여인의 공격이 바람처럼 검은 빛의 진법을 강타했다. 회색 빛구슬과 초록색 빛기둥은 모두 진법의 중심을 노리고 있었다. 인간형 명뢰수가 그것을 보고 서둘러 검은 진법을 움직였다.

    콰르릉!

    굉음이 터져 나오고 빛의 진법 중심에서 검은 바람이 불어왔다. 날카로운 바람 속에 무수히 많은 검은 알갱이가 섞여 있었는데 빛기둥과 접촉해 폭음을 냈다.

    잠시 후 회색과 녹색 기운은 검은 빛의 진법이 추락하는 것을 막으며 교전상태에 이르렀다. 그러나 검은 바람은 진법 가운데에서 끊임없이 불어나왔고 검은 모래 알갱이들이 점점 쌓여 녹색과 회색 기운을 밀어냈다.

    목청이 그것을 보고 눈빛이 서늘해졌다. 그녀가 주술을 외우자 손에 들고 있던 작은 나뭇가지가 허공으로 떠올라 작은 나무로 변해 화려하게 이파리와 줄기를 뻗어냈다.

    나무 주변에 기운이 몰려들어 무수히 많은 줄기들이 빼곡하게 위쪽으로 뻗어 올라갔다. 굉장한 기세였다.

    “목 수사, 대단한 신통입니다.”

    검은 구름 속 미부인이 감탄했다.

    “남 수사께서도 무언가 좀 하시지요. 다른 신통들이 더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목청이 고개를 돌려 냉랭히 응수했다.

    “하하하!”

    키에에엑!

    검은 구름 속에서 미부인의 웃음소리가 들리자 여덟 귀왕이 같이 포효했다. 그리고 대량의 음기가 검은 구름 중심으로 결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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