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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889화 (646/2,000)

889화. 명뢰수와의 전투

*

“명뢰수는 귀 족의 장로님들께서 남겨 놓은 것이지만 인령패(引令牌) 없이 들어가면 저희도 공격당하는 것은 아닌지요?”

지능이 높아 보이는 귀물 하나가 머뭇거리다 물었다.

“외부인들이 먼저 들어갔으니 명뢰수가 공격하더라도 그들을 먼저 노릴 것이다. 그때 몰래 뒤를 쫓아 손을 쓰면 된다. 오룡찰만으로 그들 전부를 처리할 수는 없지만 명뢰수가 도우면 문제없을 것이다. 바깥에서 공격해도 외부인들을 패배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겠지만 몰살시키려면 반드시 저 안에 가둬야 한다.”

혈갑괴뢰의 말에 귀물들은 더 이상 의문을 품지 않았다.

“미끼를 쫓아간 명뢰수도 주의해야한다. 사람을 보내 놓았느냐? 만일 미끼를 너무 빨리 잡아먹어 버리거나 다른 변수가 생겨 명뢰수가 되돌아오면 만리부로 우리에게 알리도록 말이다.”

혈갑괴뢰가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

“예, 대인! 이미 은닉술과 둔술에 가장 뛰어난 백귀가 멀리서 쫓고 있습니다. 절대 일을 그르치지 않을 것입니다.”

“백귀! 가장 강한 외부인을 상대하고도 팔 하나만 잘린 자 말이더냐?”

“그렇습니다. 바로 그녀입니다.”

“응, 그녀라면 문제없이 해내겠구나. 우리도 이제 출발해야한다. 외부인들이 이미 신성한 연못의 지하 궁전까지 이르렀을 것이야.”

혈갑괴뢰가 고개를 끄덕이고 분부를 내렸다. 이에 귀물들은 혈갑괴를 따라 남색 통로 속으로 들어갔다.

키하하학!

밖에 남은 귀물들이 동시에 고개를 쳐들고 포효했다. 그러자 먹구름 속에서 새까만 뼈다귀들이 분분히 내려와 흐느끼는 소리가 하늘을 뒤덮었다.

*     *     *

꽈광! 꽈과광!

한립이 한 손을 뻗자 금색 뇌전이 연달아 뒤쪽으로 튀어나갔다. 목표는 그를 추격하고 있는 명뢰수였다. 은색 뇌전이 반짝이는 명뢰수는 쉼 없이 그를 쫓고 있었다.

금색 뇌전이 들이닥치자 명뢰수는 놀라기보다는 오히려 흥분한 기색으로 은색 기운을 내뿜었다. 그러자 벽사신뢰들은 은색 기운에 휩싸여 명뢰수의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쿠르릉!

짐승의 뱃속에서 낮게 천둥소리가 울렸다. 그 틈에 한립은 두 날개를 펄럭여 수백 장 밖에서 나타나 명뢰수와의 거리를 벌렸다.

그러나 명뢰수는 그다지 조급해하지 않았다. 낮게 그르렁거리며 다리의 은색 뇌전을 번득여 그를 따라잡으려 했다.

이제 한립은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명뢰수가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알았다. 명뢰수는 둔술이 매우 빨라 그가 전력을 다해도 일다경이면 거리를 좁혀왔고 사정없이 그를 공격했다.

한립의 풍뢰시가 짧은 시간 동안 바람과 뇌전 속성의 둔술을 하나로 합쳐 펼칠 수 없었다면 명뢰수의 공격에 당해도 벌써 당했을 것이다.

이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명뢰수가 발톱에서 푸른빛을 연달아 방출해 맞을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심지어 얼마 전에는 푸른빛에 스쳐 쓴맛을 보기도 했다.

백발 미부인이 내준 건곤번이 신묘해서 거대한 환영을 만들어내 공격의 위력을 대부분 흡수해줘서 다행이었지만 살기(煞氣)로 응결한 살갑과 뇌포가 약간 갈라졌고 원기도 조금 상하고 말았다.

그 후 한립은 명뢰수가 약간이라도 거리를 좁혀오면 계속해서 벽사신뢰를 방출해 상대의 속도를 늦추었다.

반 시진 후 한립은 명뢰수와 함께 회색 산맥을 벗어나 점점 더 멀리 날아갔다. 동급 수사보다 법력이 심후하고 둔술에 정통한데다 대량의 벽사신뢰를 가진 덕분이었다.

다른 화신급이나 연허 초기였다면 벌써 따라 잡혀 한 입에 명뢰수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 육족 등 요왕들이 미끼인 한립의 생사를 비관적으로 본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앞서 한립은 명하금제를 파훼하려 적잖은 벽사신뢰를 사용했기에 요왕들은 그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한립은 지금이라면 육족 등이 그에게 신경 쓰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달아나려면 지금이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명뢰수를 어쩔 수 없겠지만, 그는 열댓 개의 뇌주와 새로 제련한 두 종류의 부적 그리고 필살기인 서금충 성체가 있었다.

생사가 걸린 순간이 아니면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한립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수천 마리의 서금충을 부릴 방도는 없었지만 몇 마리만 방출해 명뢰수를 성가시게 하는 것은 해볼 만했다. 그는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몸에 지닌 영수환에 의식을 불어넣었다.

벽사신뢰를 방출해 명뢰수가 주춤한 틈에 한립의 소매 속에서 무언가가 날아올랐다. 바로 서금충 성체 세 마리였다.

명뢰수는 기분 좋게 금색 뇌전을 삼키다가 금색 딱정벌레가 날아오자 의아해하다가 대수롭지 않게 은색 기운을 방출했다. 은색 기운은 세 줄기로 갈라져 각각 금색 딱정벌레를 향해 튀어나갔다.

꽈광! 꽈과광!

천둥소리가 울리고 금색 벌레들은 뇌전 속에 잠식되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명뢰수의 눈동자에 놀란 기색이 스쳤다.

웽!

뇌전의 빛이 가시자 영충 세 마리가 재가 되어 사라지는 대신 몸을 몇 배로 키워 달려들었다. 영충이 흉악한 모습으로 달려들자 명뢰수는 은색 뇌전을 휘감아 앞발로 허공을 내리쳤다.

동시에 발톱 모양 푸른빛 세 개가 동시에 뿜어져 나가 금색 딱정벌레를 갈랐다.

츠측!

푸른빛이 폭발하고 금색 딱정벌레들이 푸른빛으로 뒤덮이자 영기의 압력을 지닌 바람이 몰아치며 주변 천기원기가 함몰되듯 빨려 들어갔다.

이번 공격에 자신이 있던 명뢰수는 결과도 확인하지 않고 전신의 은색 뇌전을 북돋아 한립을 향해 튀어나가려 했다.

하지만 웽웽거리는 소리가 푸른빛 속에서 들려와 짐승의 발목을 잡았다. 금색 딱정벌레 세 마리가 어느 새 명뢰수 앞까지 쇄도했다. 온몸이 금빛으로 반짝이는 것을 보니 부상을 전혀 입지 않은 듯했다.

이번에는 명뢰수도 정말 놀랐는지 눈빛이 사나워졌다. 명뢰수는 입을 벌려 은색 기운으로 금색 딱정벌레를 휘감아 집어삼켰다. 그러자 네 다리에서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은색뇌전으로 변한 명뢰수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 틈에 한립은 천여 장 밖으로 달아나 수정 실로 변해 자취를 감추고 짐승을 주시했다.

그러나 명뢰수는 한립이 풀어 놓은 금색 딱정벌레 때문에 단단히 열이 받았는지 눈빛이 더욱 포악해졌고 전신에서 은빛 뇌전을 요란하게 번득였다. 이번에는 한립을 반드시 죽일 심산인 것 같았다.

한립이 다시 벽사신뢰로 공격하자 신형이 흐릿해지며 금색 뇌전을 그대로 통과해 한립에게 달려들었다. 이에 가슴이 서늘해진 한립은 허공을 넘나들며 귀신처럼 사라졌다 멀리서 나타나나곤 했다.

그러나 명뢰수는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왔다. 자세히 보니 명뢰수의 등 뒤로 한 쌍의 날개가 있었다.

쿠르릉 콰쾅!

두 날개를 털자 명뢰수가 천둥소리 속에서 모호하게 변했다. 그러더니 잠시 후 열댓 장 부근에 나타났다가 거품처럼 터져 사라졌다.

‘영둔술(影遁術)!’

이상한 느낌에 한립이 고개를 틀었다가 안색이 창백해졌다. 명뢰수가 이렇게까지 괴이한 둔술을 부릴 줄은 예상 못했기 때문이다.

영둔술은 가장 빠른 둔술은 아니었지만 굉장히 희귀하고 신비로운 둔술이라는 점은 확실했다.

그러나 지금은 놀랄 때가 아니었다. 명뢰수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그를 향해 뇌전으로 응결된 깃털을 쏘아 보내고는 천둥 속에서 사라졌다.

이에 한립이 움찔하며 무언가 하려는 찰나 머리 위에서 천둥소리가 들리고 거대한 그물이 그를 덮쳐왔다.

다행히 한립은 본능적으로 몸을 틀어 그물을 피했고 곧 뇌포가 날아올라 허공의 은색 뇌전을 막아섰다.

한립은 푸른빛을 번득이며 재빨리 은색 뇌전 그물의 포위를 벗어나려했으나 그것을 본 명뢰수가 비웃으며 신형이 다시 흐릿해지더니 한립 앞에 나타나 앞발을 휘둘렀다.

명뢰수의 일격에 광풍이 몰아치고 모든 것이 사라진 듯 주위가 새까맣게 변했다. 이에 한립은 입을 벌려 작은 금색 검을 뱉었는데 명뢰수는 검을 보면서도 비웃는 기색이 가득했다.

탱!

금색 검과 짐승의 앞발이 부딪쳤지만 소리 없이 튕겨나갔다. 뿐만 아니라 발톱을 번개처럼 움직여 작은 검을 잡아채고는 금색 검을 쥐어짰다.

타고난 괴력에 육신이 이미 최상급 보물처럼 단단해진 명뢰수는 작은 검을 부숴버릴 수 있을 거라 믿어 전혀 의심치 않았다.

채채챙!

그러나 금빛 검은 부들부들 떨며 암담해지기는 했지만 가루가 되어 부서지진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단단하기로는 영계에서도 손꼽히는 청죽봉운검을 얕본 것이다.

검으로 명뢰수를 상처 입힐 수는 없겠지만 명뢰수도 단시간 내로 검을 어쩌지는 못할 것이다.

파앗.

앞발에 한립이 깔리려던 순간 그의 얼굴에 금빛 기운이 감돌았다. 그가 낮게 일갈하자 그의 몸에서 금빛이 방출되었고 비늘 갑옷이 온 몸에 덮이면서 등 뒤로 삼두육비(三頭六臂)의 금색 인영이 나타났다.

여섯 개의 팔이 천천히 펼쳐지고 주변의 괴이한 파동이 잔잔한 물결처럼 가라앉았다. 그 순간 한립이 날개를 펄럭여 미세한 바람 속으로 사라졌다.

명뢰수가 낮게 으르렁거리더니 갑자기 앞발을 서른 장 밖 허공을 향해 휘둘렀다.

쿠쿵!

굉음이 터지고 무형의 힘에 공기가 요동치더니 한립이 비틀거리며 허공에서 튀어나왔다. 명뢰수가 손쉽게 그의 순간이동을 깨버린 것이다.

한립은 지체 없이 몸을 날리며 소매를 털어 열댓 개의 푸른 구슬을 비처럼 쏟아 부었다. 그것은 그가 정성을 다해 제련한 뇌주들이었다.

명뢰수가 그것을 보고 우습다는 눈빛을 보내고 신형이 모호해지며 영둔술을 펼치려 했다.

“……~!”

바로 그때 한립이 표정이 달라지며 한 손으로 수결을 맺었다. 그러자 명뢰수가 칼날로 베어내는 극통을 느끼며 신형을 드러냈다. 영둔술을 펼치려다 실패한 것이다.

명뢰수가 주춤한 순간 열댓 개의 푸른 구슬들이 날아들었다. 명뢰수는 배가 너무 아파 구슬 몇 개 따위는 신경 쓸 틈이 없었다. 그저 전신에 은색 뇌전을 두르고 서둘러 몸 안을 살펴보았다.

명뢰수가 방심하는 것을 본 한립이 눈을 반짝이고 의식을 움직였다.

꽈과광!

열댓 개의 뇌주가 동시에 푸른빛을 번득이며 터져나갔다. 푸른 뇌전 덩어리가 떠올라 몸집을 키웠다 줄였다 하며 커져 열댓 줄기의 강력한 뇌전 기운이 폭발했다.

엄청난 천둥소리와 뇌전의 힘에 짐승이 놀라 포효했다.

아무리 뇌전을 삼키는데 능하다지만 합체급 수사들의 일격에 맞먹는 힘이 밀려들자 쉽게 흡수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한립이 의식으로 명뢰수 뱃속의 서금충들을 움직여 몸 안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으니 지닌 신통을 제대로 발휘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뇌운(雷雲)이 하늘을 뒤덮었고 굵은 푸른 천뢰들이 구름 속에서 번득였다. 요란한 천둥소리에 귀가 먹먹해질 정도였다.

한립은 양 소매를 털어 부적을 내뿜었다. 빙글 돌며 허공에 떠오른 부적들은 전부 은색 주술 문자가 어른거렸고 총 108장이나 됐다.

그가 두 손으로 수결을 맺어 허공의 뇌운을 가리켰다. 동시에 부적들이 백여 개의 은빛으로 변해 그의 앞으로 튀어나갔다. 다음 순간 거대한 뇌운 위쪽에 은빛이 반짝이고 108개의 부적이 등장했다.

한립은 빙그르르 돌며 괴이한 부적에 법결을 날려 보냈다.

퍼펑!

부적들이 터져 거대한 빛의 진법을 만들어냈다. 그러자 빛의 진법 가운데에 궁전이 나타났다. 전체가 은으로 반짝이는 궁전에는 천상의 소리가 들려와 듣는 이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하지만 자세히 귀를 기울이면 천상의 음악은 존재하지 않는 듯 사라졌다. 빛의 진법이 완성되자 한립이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술법을 펼쳐 하강했다.

크하하하학!

바로 그때 뇌운 속에서 엄청난 포효소리가 들려왔다.

콰콰쾅 콰르릉!

경천동지할 천둥소리가 들리고 푸른 뇌운이 극심하게 흔들리다 몇 줄기의 뇌전들이 뇌운을 뚫고 나왔다.

뇌전들이 어찌나 굵은지 마치 용처럼 뇌운을 휘감았다. 잠시 후 뇌운도 사라지고 굵은 뇌전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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