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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888화 (645/2,000)
  • 888화. 오룡찰

    *

    한립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도 짐승의 흉흉한 기세를 느낄 수 있었다.

    ‘제길!’

    명뢰수의 빠른 둔술에 한립은 재빨리 새하얀 날개를 오색 기운으로 물들여 허공에서 사라졌다. 그가 다시 번득이며 나타났을 때는 매우 먼 곳으로 이동한 후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명뢰수도 이에 뒤지 않고 한립과 엎치락뒤치락하며 하늘 저편으로 사라졌다.

    한립이 사라지자 초록빛이 번득이며 육족과 미부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두릅시다. 한 가 녀석이 오래 버티지 못할 테니 그 전에 금제를 파훼해야합니다.”

    육족이 서둘러 분부했다.

    요왕들의 손에 다시 핏빛 단검이 들렸고 핏빛 빛기둥들이 검은 빛의 장막으로 몰아쳤다. 이번에는 빛기둥이 핏빛 뱀으로 변해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을 세워 달려들었다.

    콰앙!

    처음 명뢰수를 유인할 때보다 훨씬 강력한 위력이었다. 이어 거대한 벌레 그림자가 육족의 머리 위로 떠올라 입을 벌리고 검은 빛기둥을 발사했다.

    육족의 공격에 지혈들은 자혈괴뢰의 몸집을 키웠고 목청도 땅 속 깊이 뿌리박았던 하반신을 다시 원형으로 되돌렸다.

    요왕들은 힘을 모아 핏빛 빛기둥을 뿜어냈다.

    파칙.

    요왕들이 뿜어낸 핏빛 빛기둥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거대한 칼날로 변해 검은 빛의 장막을 내리쳤다.

    핏빛과 검은빛이 폭우처럼 쏟아지자 빛의 장막이 깜빡거렸다. 잠시 후 수천 장으로 커진 자혈괴뢰가 두 손으로 보라색 도끼를 들어 올려 검빛의 장막을 갈랐다.

    쿠르릉!

    도끼에서 뻗어나간 수많은 도끼날들이 검은빛의 장막을 연달아 강타했다. 금제는 강력했지만 합체급 수사들이 힘을 합쳐 공격하자 얼마 버티지 못하고 열댓 장 크기의 구멍이 뚫렸다.

    구멍은 다시 검은빛을 내며 줄어들었지만 요왕들에겐 그 정도 시간이면 충분했다.

    “됐습니다. 제가 비술로 입구를 고정시키지요!”

    육족이 반색하며 한 손을 뻗어 8개의 남색 빛덩이를 분출했다. 그러자 8개의 남색 기둥 모양 법기가 순식간에 커져 입구로 들어갔다.

    육족이 광소하며 검은 빛줄기로 쏘아져 나갔는데 남색빛이 반짝이며 찢겨진 입구가 반듯한 사각형 통로로 변했다. 마치 원래부터 존재하던 통로처럼 보였다.

    “흐하하하! 먼저 들어갑니다.”

    지혈들도 시선을 마주치고는 자혈괴뢰를 신속하게 줄여 통로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무슨 생각인지 지혈 중 하나를 남겨두었다. 그것을 본 백발 미부인이 멈칫했다.

    한쪽에선 목청이 사방에 뿌려 놓은 빛줄기를 거둬들이고는 미부인에게 다가갔다.

    “남 수사, 제자들도 같이 데리고 들어가는 겁니까? 명뢰수를 유인해 냈다 해도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데 저런 낮은 수행으로 들어갔다가는 분명 화를 당할 것입니다. 금령! 자네는 바깥을 지키고 있게.”

    목청이 금령에게 명을 내린 후 금색 꽃을 타고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금령은 살짝 허리를 굽혀 예를 취하고는 제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백발 미부인이 미간을 좁히고 멍하니 선 원요와 연려를 쳐다보았다.

    “흥, 바깥에 두는 것이 더 마음이 놓이지 않는구나! 너희도 나를 따라 들어간다.”

    그녀가 한 손으로 수결을 맺어 회색 음풍으로 두 여인을 휘감고는 같이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잠시 입구를 지키자꾸나. 순조롭게 일이 풀린다면 곧 명하신유를 취해 돌아오겠지.”

    지혈이 금령을 향해 말했다.

    “저도 그러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곳의 수비는 전부 선배님의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하하, 내가 지혈 본 존이 아니라 화신이 아닐까 의심하는 것은 아니더냐?”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주인님께서 지혈 선배님이 혼백을 나누는 강력한 신통을 익히셨다고 하셨습니다. 두 분이 모두 지혈 선배님의 본체이며 동시에 화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목 선자께서 노부의 일에 대해 퍽 자세히 알고 있구만.”

    금령은 지혈의 말에 멈칫하다가 대충 웃어넘기고 도처를 주시했다. 이곳에는 그들 외에도 세 명의 고계 요물이 함께했다. 이미 인간의 형상을 갖춘 고계 요물들은 그들과 떨어져 얌전히 대기하고 있었다.

    지혈이 고계 요물들에게 무언가 말하려다 갑자기 한 손으로 허공을 쥐었다. 그러자 거대한 핏빛 손이 비린내를 풍기며 나타나 허공을 할퀴었다.

    쿵!

    은빛이 반짝이고 뜻밖에도 핏빛 거대 손이 두 동강이 났다. 곧 은빛 아래에서 핏빛 갑옷을 입은 꼭두각시가 무표정한 얼굴로 모습을 드러냈다.

    “부유족?”

    금령이 깜짝 놀라 소리를 높였다.

    “조심하게! 보통의 혈갑괴뢰가 아니라 부유족 고계가 깃든 꼭두각시니까 말이야.”

    한쪽에서 지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은빛을 주시했다. 아무리 살펴봐도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지혈이 경계심을 높이며 꼼짝하지 않았고, 금령도 신중한 얼굴로 눈에서 금빛을 번득였다. 그런데 지혈에게도 보이지 않던 은빛이 금령의 영목(靈目)에는 또렷하게 보였다.

    그 속에는 은색 교룡 같은 것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저건…….”

    금령은 보물의 정체를 알아내진 못했지만 도검류의 보물일 거라 추측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핏빛 거대 손의 일격에 잘려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부유족 패잔병 아닙니까? 우리의 이목을 피해 달아났으면 숨어서 목숨을 부지할 생각이나 하시지 어리석게 또 나서십니까. 죽고 싶어 안달이 난 분 같군요.”

    지혈이 냉소하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숨어서 목숨이나 부지하라? 우리가 꼭두각시에 깃들어 싸우지 않았다면 그렇게 질 일도 없었을 것이오. 여기 남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전부 연못으로 들어갔나 봅니다. 독 안에 든 쥐나 다름없으니 전부 때려잡을 일만 남았군요.”

    “겨우 당신 혼자 말입니까?”

    “오룡찰과 함께라면 어떻소!”

    혈갑괴뢰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 손으로 허공을 가리켰다. 그러자 용울음 소리가 들리고 거울처럼 매끈한 은색 작두가 떨어져 혈갑괴뢰의 손에 들어왔다.

    “오룡찰!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데…….”

    지혈이 은색 작두를 보며 의아한 얼굴을 했다.

    “그게 중요하오? 당신들이 오늘 오룡찰에 당해 죽는다는 것이 중요하지.”

    말을 마친 혈갑괴뢰는 곧바로 은색 작두를 들어 올려 상대편 허공을 가리켰다. 금령과 지혈은 그것이 어떤 보물인지는 몰랐지만 일단 좌우로 뛰어올라 피했다.

    그러나 세 개로 나눠진 작두의 허상은 지금까지 겨우 살아남은 고계 요물 세 마리를 노렸다.

    “아…….”

    너무 빠른 속도라 고계 요물들은 피할 겨를이 없었다. 빛이 지나고 바닥에 쓰러진 요물들은 전부 두 동강이 났다. 이어 다시 빛이 반짝이고 세 개의 작두 허상이 사라졌다.

    이에 금령과 지혈은 깜짝 놀랐다. 금령은 빙글 돌아 달아나려 했고 지혈은 소매를 털어 핏빛 기운을 불러냈다.

    그것을 본 혈갑괴뢰는 조소했고 다시 수중의 은색 작두를 반짝이자 이번엔 네 개의 작두 허상이 동시에 금령과 지혈의 머리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대경실색한 금령이 어깨를 털었다. 그러자 금색 원숭이가 메고 있던 단검 두 자루가 빛줄기로 변해 작두 허상을 향해 날아갔다.

    서걱!

    단검 두 자루가 네 조각이 되어 떨어져 내렸다.

    ‘이런!’

    그 순간 은색 허상 하나가 번득하고 떨어졌고 불길한 느낌에 금령이 재빨리 신형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결국 작두 허상은 허공을 잘랐고 금령은 열댓 장 밖에서 금빛을 반짝이며 나타났다.

    그러나 그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또 다른 작두 허상이 정면에서 날아들었다. 다음 순간 커다란 원숭이의 머리가 잘려나갔다. 머리를 잃은 금령의 시체가 휘청거리다 결국엔 바닥에 엎어졌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혈갑괴뢰가 이번에는 작두를 벌려 그 안에서 녹색 불덩이를 쏘아 보냈다. 불덩이는 녹색 불길에 감싸여 있는 초소형 금색 원숭이에게로 날아갔다.

    “흥!”

    혈갑괴뢰가 손을 털자 작두 표면에서 은빛이 번득이고 금령의 참혹한 비명이 들려왔다. 녹색 불길이 사라졌을 때 혈갑괴뢰의 눈길은 이미 다른 곳으로 향해 있었다.

    지혈은 핏빛 안개를 방출해 자신을 빈틈없이 방어하고 있었다. 두 작두 허상이 계속해서 지혈을 갈랐지만 여전히 괴이한 움직임으로 공격을 피했다.

    혈갑괴뢰의 눈이 녹색으로 번득였고 돌연 손에 든 작두를 앞으로 내던졌다. 작두에서 은빛이 크게 번져 허공에 무수히 많은 작두 허상들이 나타났다.

    ‘헛!’

    이에 평정을 유지하던 지혈도 기겁하고 말았다. 더 고민할 것도 없이 핏빛 기운을 뭉쳐 머지않은 곳의 남색 통로로 날아갔다. 작두를 지닌 상대를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해서였다.

    하지만 지혈은 오룡찰이 이제야 본 위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꽈광!

    혈갑괴뢰가 두 손으로 법결을 맺자 허공의 은색 작두 허상들이 싹 사라졌고 천둥소리와 함께 은색 작두가 각양각색의 다섯 마리 교룡으로 변했다.

    교룡들은 허공을 한 바퀴 돈 다음 놀랍게도 다섯 개의 거대한 칼날로 변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다음 순간 남색 통로 위쪽에 칼날 다섯 개가 나타나 무언가를 베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지혈을 감싼 핏빛 구름이 있었다.

    거대한 칼날이 날아들자 지혈은 전신에서 핏빛을 내뿜었다. 하지만 칼날 다섯 개가 바깥으로 회전해 그 자리에서 사라지더니 핏빛 구름의 옆쪽으로 동시에 들이닥쳤다.

    다섯 개의 은색 강물이 휘몰아치는 듯했다. 서늘한 은빛에 핏빛 구름은 속수무책으로 밀려났고 전혀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다.

    겁에 질린 지혈이 펼치려던 비술을 포기하고 소매를 떨치는 동시에 입을 벌렸다. 그러자 푸른 방패와 붉은 천 그리고 둥근 사발이 동시에 튀어나왔다. 세 가지 보물은 빛을 크게 내뿜었고 기세가 남다른 것이 보통 보물 같지 않았다.

    곧 지혈의 주변에 푸른색, 붉은색 그리고 하얀색 보호막이 펼쳐졌다. 그러나 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피를 몇 모금 뱉어내 녹색 부적을 적셨다.

    펑!

    핏덩이가 폭발해 보라색 안개가 그를 감싸 안아 보라색 갑옷이 그의 몸에 생겨났다. 굉장히 정교하고 표면에 뇌전이 흐르는 갑옷이었다.

    그때 은빛이 모든 핏빛 안개를 헤치고 다가왔다.

    촤악!

    세 겹의 보호막을 단번에 베어낸 은빛이 날카롭게 지혈을 갈랐다.

    크릉!

    보라색 갑옷이 기운을 발산해 잠시 은빛을 멈추었지만 그것은 아주 잠깐이었다. 다섯 은빛이 갑옷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고 용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걱!

    지혈의 허리춤에서 보라색 갑옷이 베어져 나갔다. 절망한 기색으로 그가 백여 개의 부적과 열댓 개의 다양한 보물들을 연달아 터트렸다.

    그러나 은색빛에 모든 부적과 보물들이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참혹한 비명을 끝으로 지혈은 다섯 은빛에 휩싸여 사라졌다. 원신이 달아날 틈도 없었다.

    “오룡찰을 겨우 일개 보물로 막으려들다니 한심하구나!”

    그가 허공을 쥐자 멀리 떠 있던 다섯 개의 거대 칼날이 교룡의 허상으로 변해 되돌아왔다. 다섯 교룡이 혈갑괴뢰 머리 위에서 하나로 합쳐져 은색 작두로 변해 떨어졌다.

    그가 피식 웃으며 작두를 받으려 할 때 혈갑괴뢰가 갑자기 어지러운 듯 휘청거렸다. 다행히 곧 중심을 잡았지만 난색을 표하고 말았다. 그는 깊게 호흡을 하며 작두를 거두었다.

    우웅!

    작두가 밝게 빛나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위력이 대단한 만큼 의식 소모가 막대하구나 ! 속전속결해야겠어.”

    그때 멀리서 음산한 바람이 불어오더니 검은 구름이 하늘 끝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별안간 혈갑괴뢰 위 하늘이 검은 구름으로 뒤덮였다.

    고계 귀물 몇 명이 음풍에 쌓여 내려와 혈갑괴뢰 앞에서 공손히 예를 취한 것이다.

    “시킨 일은 잘하였느냐?”

    “안심하십시오. 대인께서 안으로 들어가시면 진법으로 입구를 막겠습니다. 그러면 침입자들이 요행히 대인을 피하더라도 이곳에서 한동안 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너희 중 절반은 나를 따라 안으로 진입하고 나머지는 남아 진법을 설치한다. 저들이 명뢰수 한 마리를 따돌리기는 했지만 명하신유를 지키는 명뢰수가 암수 한 쌍일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겠지!”

    혈갑괴뢰가 머리 위 먹구름을 보며 미소 지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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