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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883화 (640/2,000)

883화. 부유족(蜉蝣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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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요와 연려도 심장이 철렁해 몸을 떨었다. 주변에 무슨 강력한 귀물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안색이 어두워진 한립은 마음이 급해졌다.

그런데 곧 한립과 두 여인을 당황시킬 일이 일어났다. 포효소리를 들은 하얀 장포 귀녀가 귀곡성을 멈춘 것이다. 잠시 머뭇거리던 귀녀는 하얀 안개를 거두고 포효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재빨리 날아가 버렸다.

그는 포효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말없이 응시했다.

“한 형, 저희는…….”

“어서 움직입시다. 요왕들 중 하나가 근처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귀녀가 서둘러 간 이유가 있겠지요.”

한립의 말에 그들은 귀물 병사들을 이끌고 안개 바깥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더 이상 귀물들을 마주치지 않았고 안개도 확연히 옅어졌다.

한 시진 후, 눈앞이 밝아지며 드디어 귀무에서 벗어났다. 한립 일행은 기쁜 마음으로 멀리 달아나려는데 돌연 낯선 사내의 목소리가 고공에서 들려왔다.

“호오! 내가 펼쳐 놓은 금제를 빠져나오다니, 내가 당신들을 너무 얕잡아 보았군요!”

한립과 원요 그리고 연려는 그 소리를 듣고 소스라치게 놀라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런데 귀무 위 고공에서 두 무리가 대치 중이었다.

한쪽은 백발 미부인과 목청으로 뒤쪽으로 열댓 마리의 고계 요물들과 여덟 음갑귀왕을 데리고 있었고, 더 멀리에는 귀물 병사들이 음풍을 휘날리며 흉흉한 기세를 드러냈다.

그러나 그들과 대치하는 이들은 목청 쪽보다 몇 배나 더 많았다. 7, 8천 명은 되는 병사들은 전부 키가 크고 핏빛 갑옷을 입고 있었으며, 손에는 여러 가지 무기들을 들고 있었다. 딱 봐도 훈련받은 정예들이었다.

한립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핏빛 군대 속 백여 개의 푸른 전차였다. 고풍스러운 양식의 전차들은 푸른빛을 반짝였고 각각 열댓 명의 핏빛 갑옷 병사들을 태우고 있었다.

그 전차를 끄는 것은 사자의 몸에 뱀의 머리를 한 검은 괴수였는데 역시 가죽 갑옷을 입었고 굵은 네 다리에서 맹수의 발톱이 날카롭게 반짝였다.

조금 전 한립 일행을 보고 말을 한 이는 보라색 갑옷과 투구를 쓰고 등에 금색 망치를 멘 자였다.

목청과 백발 미부인도 귀무를 뚫고 나온 한립 일행을 훑었다. 미부인은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지만 목청은 웃는 듯 마는 듯한 묘한 얼굴을 했다.

‘이런…….’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미부인을 본 원요와 연려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너희 둘은 반귀의 몸을 지녔구나. 어쩐지 금제를 어떻게 빠져나왔는가 했더니!”

보라색 갑옷 무장이 두 여인을 보고 단박에 그 내력을 알아보았다.

그녀에게서 흥미를 잃은 무장의 시선이 한립에게 옮겨갔다. 그 순간 한립은 누군가 자신을 샅샅이 꿰뚫어 보는 느낌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

미간을 좁힌 한립은 대연결을 운용해 상대의 의식 대부분을 몸 밖에서 차단시켰고, 동시에 의식으로 상대를 훑었다.

그러자 보라색 갑옷 무장은 또 한 번 흥미롭다는 얼굴을 했고 한립도 표정이 달라졌다. 그의 몸은 피와 살로 이뤄지지 않았으나 귀물도 아니었다.

전차를 끄는 괴수들 외에는 다른 두 무장과 마찬가지로 혈갑(血甲) 병사들도 생기라고는 없었다.

‘꼭두각시!’

보라색 갑옷 무장의 신분을 깨달은 한립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저 꼭두각시들이 명하의 땅의 귀물들을 통제하고 있는 것 같았다.

혈갑 병사들은 그렇다 치고 세 명의 무장들은 기운이 남다른 것이 수행이 높은 존재가 깃든 것이 분명했다.

목청과 백발 미부인이 당장 꼭두각시들을 향해 공격하지 않는 것만 봐도 꼭두각시 무리의 실력이 귀물 병사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니라면 저 두 여인이 꼭두각시들을 가만히 두었을 리 없겠지.’

귀무 속에서 강력한 괴성과 폭음이 들려오는 것으로 보아 육족과 지혈 노괴는 아직 그곳에 있는 듯 했다.

“자네는 이리 오게!”

불현듯 목청이 한립을 향해 손짓했다. 그 말을 따르고 싶지 않은 이유가 백 가지도 넘었지만 한립은 묵묵히 그곳으로 날아갔다.

“선배님들을 뵙습니다.”

한립이 목청과 미부인 앞으로 가 포권을 했다.

“한 수사, 금령과 같이 있지 않은 것인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예상과 달리 목청은 그가 어떻게 귀무를 빠져나왔는지 묻기보다는 금색 원숭이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안개 속에서 귀물과 충돌하다보니 서로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행방을 모른다고?”

목청이 미간을 찌푸렸다.

“목 선배님, 저들은 누구입니까? 귀무도 저들이 펼쳐 놓은 것인지요?”

“나와 남 수사도 귀무에서 빠져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네. 금제를 깨고 귀무를 없애려는데 저들이 나타났지. 아직 정체는 모르겠지만 지난번에 들어왔을 때는 없던 자들이니 우리와 같이 외부에서 들어온 이들이 아니겠는가.”

목청도 의문이라는 얼굴이었다.

“외부인이요?”

“한 수사도 이미 상대가 꼭두각시 대군이라는 것은 알아차렸을 테지. 하지만 저 우두머리 셋은 주의해야 하네. 우리가 친히 나서도 죽일 수 있다는 확신이 없는 존재들이니까.”

한편 백발 미부인은 곁으로 돌아온 원요와 연려에게 한마디도 묻지 않고 세 무장 꼭두각시들을 향해 냉랭히 외쳤다.

“이 늙은이는 당신들의 본체가 무엇인지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만 묻지요, 금제를 치울 것입니까 말 것입니까?”

“금제를 치우라니 헛꿈 꾸지 마십시오! 외부인들이 감히 우리 부유족(蜉蝣族) 성지를 침범하고 성물을 훔치려 하다니, 지난번에 쳐들어왔던 것도 당신들 소행일게 분명 합니다. 이번에는 아예 이곳을 떠나지 못하게 해드리겠습니다.”

보라색 갑옷 무장이 음산하게 대꾸했다.

“부유족!”

백발 미부인의 표정이 급변했고 목청도 심장이 철렁한 눈치였다. 한립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부유족’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본 족을 알고 있습니까? 그럼 말이 좀 통하겠군요. 지금이라도 얌전히 투항한다면 목숨만은 살려주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본 족에서 병사들을 파견해 영계에서 존재를 지워버릴 것입니다.”

보라색 갑옷 무장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더욱 냉랭히 협박했다. 보라색 갑옷 무장의 말에 백발 미부인과 목청이 신중한 표정으로 시선을 교환했다.

이어 둘 사이에 전음이 오갔다. 미부인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고 목청도 얼굴을 찌푸린 것이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은 듯했다.

“이곳이 부유족 성지라는 말을 어떻게 믿으라는 것입니까? 언제부터 부유족이 음혼의 힘을 수행하기 시작했다고요!”

백발 미부인이 반문했다.

“그건 당신들이 알 필요 없소! 그럼 이 공간을 둘러싼 명하의 물이 저절로 생겨나기라도 했을 것 같습니까?”

보라색 갑옷 무장은 상대의 의심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미부인과 목청은 그의 반응을 보고 상대의 신분을 믿기 시작했다.

“흥, 당신들이 정말 부유족인지 아니면 부유족을 사칭하는 것인지 알게 뭡니까. 게다가 진짜 부유족이라 해도 천부(大蜉)급이 나서지 않는 이상 우리가 두려워할 것 같습니까? 겨우 꼭두각시에 깃든 몸으로 감히 우리에게 투항을 하라니요!”

침묵하던 미부인의 눈빛이 갑자기 사나워졌다. 목청은 그녀를 말리지 않았지만 역시 표정이 굳었다.

미부인의 말에 보라색 갑옷 무장은 두 눈에 붉은 빛을 번득이며 한 손으로 타고 있던 코뿔소 같은 괴수를 내리쳤다. 그러자 괴수가 머리를 쳐들고 숨을 들이켰다.

푸휙!

주변 공기가 모조리 빨려 들어갔고 코뿔소의 입에서 푸른 빛구슬이 뿜어져 나와 미부인 방향으로 날아갔다.

폭음이 푸른 빛구슬 표면에서 터져 나왔다. 미부인이 두 손으로 수결을 맺자 등 뒤로 회색빛이 반짝였다. 미부인의 등 뒤에서 거대한 귀물 그림자가 떠올라 몸집을 키우더니 입을 벌려 검은 구슬을 분출했다.

콰쾅!

두 구슬이 중간에서 만나 엄청난 굉음을 냈다. 푸른빛과 검은빛이 교전하면서 버섯 모양의 거대한 구름을 형성했다.

키하하학.

미부인이 그것을 보고 두 눈을 번득였고 스산한 포효성을 냈다. 동시에 수천의 귀물 병사들과 여덟 귀왕이 새까만 음풍으로 변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보라색 갑옷 무장은 코웃음을 치며 어깨를 털어 금색 망치를 손에 들었다.

“꼭두각시의 몸이라도 본체 실력의 절반은 낼 수 있다는 건 모르는군.”

보라색 갑옷 무장이 낮게 중얼거리고 두 손을 뻗었다. 그러자 금색 망치 두 개가 쉭! 하고 날아가 망치의 허상을 만들어내며 소리 없이 몰려드는 새까만 음풍을 내리쳤다.

새까만 음풍 속에서 포효소리가 들리며 음갑귀왕이 저공에서 나타나 병장기들을 집어 던지거나 입에서 검은 기운을 분사했다. 여덟 개의 기운이 하나로 합쳐져 검은 빛의 장막을 형성한 것이다.

“겨우 그런 잔재주로!”

보라색 갑옷 무장은 안색을 굳히며 속으로 법결을 발동했다. 검은 빛의 장막 속에서 금색 망치들이 돌연 폭발했다. 그러자 검은 빛의 장막이 갈가리 찢어지며 금빛이 떨어져 내려 음갑귀왕들을 노렸다.

바로 그때 목청이 나섰다.

그녀가 한 손을 뒤집어 허공을 쥐자 금빛 아래에서 짙은 향기가 피어오르고 무수히 많은 거대한 꽃의 허상들이 나타났다.

쿠르릉!

하늘이 울리기는 했지만 꽃의 허상들이 금빛 빛덩이를 떠받쳐 막아냈고, 음갑귀병들이 변한 새까만 음풍은 상대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에 보라색 갑옷 무장이 한 손을 흔들자 뒤쪽에 서있는 궁수 혈갑괴뢰들이 한 걸음에 나서 동시에 화살을 날렸다.

푸푸푸푸푹!

파공음이 들리고 무수히 많은 핏빛 화살들이 비처럼 새까맣게 음풍을 향해 쏟아졌다. 핏빛이 음풍을 가르며 귀물들을 쓰러트렸다.

하지만 여덟 음갑귀왕의 명을 받은 새까만 바람은 멈추지 않고 그대로 혈갑 꼭두각시 대군으로 진격했다. 그들 역시 온 신경을 백발 미녀와 목청에게만 주고 있었다. 곁에 있는 한립과 원요, 연려 모두 그들 눈에 들지 못한 듯했다.

보라색 갑옷 꼭두각시 외의 다른 두 무장 꼭두각시들은 조금 특이했다.

한 마리는 4, 5장 크기에 눈이 세 개였고 두 손으로 거대한 도끼를 들고 있었다. 뾰족뾰족 검은 가시가 달린 괴상한 푸른 갑옷은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다른 한 마리는 두 장 크기에 새빨간 갑옷을 입은 쌍두사비(雙頭四臂)의 꼭두각시였다. 각각의 팔이 도, 검, 창, 과의 무기를 들고 있었다. 그들이 탄 괴수들은 똑같이 전신이 새빨간 물소 비슷한 짐승이었다.

두 꼭두각시들은 모든 것을 보라색 갑옷 꼭두각시에게 맡긴 듯 지금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때 세눈박이 꼭두각시가 입을 열었다.

“외부인들과 무리해서 싸울 것 없습니다. 조금만 시간을 끌면 됩니다. 다른 이들에게 통보해놓았으니 귀물들을 도와 나머지 인원을 죽인 후에 우리를 도우러 올 것입니다.”

보라색 갑옷 무장과 쌍두육비 꼭두각시가 그 말을 듣고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실질적인 우두머리는 세눈박이 꼭두각시였던 것이다.

세눈박이 꼭두각시는 개의치 않고 큰 소리로 말해 목청과 미부인은 물론 한립과 원요, 연려도 똑똑히 그 말을 들었다. 목청은 표정이 묘해졌고 미부인은 입 꼬리를 틀어 올렸다.

“목 수사, 저들이 지원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도 조금 기다려주는 것이 어떻습니까?”

“제 생각도 같습니다. 남 수사의 말씀대로 하시지요!”

미부인이 고개를 돌려 미소 짓자 목청도 미소를 머금고 동의했다. 이에 백발 미부인은 두 손을 소매 속에 집어넣었고, 목청도 팔짱을 끼고 금색 꽃 위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 뒤의 고계 요물들과 한립 등도 명을 받지 못해 움직이지 않았다.

이에 무장 꼭두각시들이 그것을 보고 의아해했지만, 두 여인과 거리를 두고 근접전을 벌이지는 않았다.

때때로 몇몇 꼭두각시들이 조각나 떨어지거나 귀물 병사들이 추락하다 펑하고 터져 검은 기운으로 흩어졌다. 혈갑 꼭두각시들은 수적으로 우세했지만 협공에 능하지 못했다.

혈갑 꼭두각시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맹하게 달려들고 전갑과 전갑을 끄는 괴수들이 귀왕들을 상대하지 않았다면 더욱 상황은 어렵게 흘러갔을 것이다.

한립이 그것을 보고 생각에 잠겼다. 보통 꼭두각시들은 동작이 둔하고 반응이 기민하지 못했다. 의식이 깃들지 않은 평범한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소리였다.

이에 반해 백발 미부인이 훈련한 음갑현귀들은 각종 병장기에서 검은 음풍을 날려 꼭두각시들을 검은 얼음덩이로 만든 다음 조각을 내버렸다. 그리고 차가운 기운을 토해 내며 열댓 장 크기의 검은 갑옷 귀왕으로 변신해 흉포함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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