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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879화 (636/2,000)

879화. 명하금제와 팔문인뢰진(八門引雷陣)

*

눈앞의 광경에 한립의 눈이 기이하게 반짝였다. 수백 장 밖에 희끄무레한 수면이 길을 막고 있었는데 얼마나 깊고 길게 이어져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수면 위로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쳤다. 그러나 수면에는 아무런 파문도 일지 않았다. 육족이 말없이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이 명하!”

길게 한숨을 내쉰 한립이 중얼거렸다.

“그렇다네. 이곳을 통과해야만 명하의 땅으로 들어갈 수 있지. 곧 한 수사의 벽사신뢰가 필요하게 될 거란 말일세.”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목청의 말에 한립이 공손히 말했다. 이에 목청이 고개를 끄덕이고 무어라 말하려는데 육족이 갑자기 손을 뻗어 허공을 쥐었다. 그러자 거대 검은 손이 허공에 나타나 아래쪽을 거세게 휘어잡았다.

촤르르륵!

그러나 거대 손이 해수면에서 서너 장에 이르렀을 무렵 무수히 많은 은색빛이 물에서 튀어나왔다. 이에 거대 손이 숭숭 구멍이 뚫려 사라졌다.

“저게 무엇입니까?”

“명하에 사는 괴어(怪魚)라네. 몸이 바늘처럼 가늘어 수면에 다가오는 생명체를 사정없이 공격하지. 그러나 저런 것은 명하에서는 위험한 축에도 끼지 못하네. 영정 수행을 지닌 자가 보호막으로 막으면 그만이니까. 그러나 유일하게 성가신 점은 괴어들이 무리 생활을 하며 공격을 멈추지 않아 전부 죽이지 않고는 나갈 수 없다는 것이네.”

목청이 고개를 돌려 설명해 주었다. 그때 뒤쪽 통로에서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한립이 돌아보자 자혈괴뢰를 밟고 선 핏빛 장포인 두 명과 백발 미부인 그리고 8개의 검은 그림자와 원요, 연려가 연달아 날아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요물 대군과 꼭두각시 그리고 음갑귀병들이 따랐다. 별안간 대군이 출구 대부분을 차지하고 빽빽하게 모여들었다.

“육족 형, 어떻게 되었습니까? 명하 금제는 이전과 같습니까?”

핏빛 장포인 중 한 명이 날아들며 큰소리로 물었다.

“우리가 들어갔을 때와 똑같습니다.”

육족이 수면에서 시선을 거두고 차분히 답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이전과 똑같은 일을 겪어야겠군요.”

핏빛 장포인의 목소리가 어두워졌다.

“그렇겠지요! 하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준비해왔으니 지난번처럼 사상자가 나오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백발 미부인 역시 날아오며 자신 있게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힘을 합쳐 금제를 깬 다음 강을 가르는 것입니다. 다른 위험들은 아직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그럼 시작합시다. 한 수사, 벽사신뢰를 방출해 명수(冥水)의 마기를 흩어주게. 마기만 흩어놓으면 명수를 가르는 것은 우리에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니.”

육족의 시선이 한립에게 닿았다.

“선배님들 안심하십시오. 제뢰술을 능숙하게 부리게 되었으니 선배님들의 대사를 그르치지 않겠습니다.”

“하하, 자네의 말을 믿겠네!”

한립이 허리를 굽히며 말하자 핏빛 장포인 중 하나가 너털웃음을 지었고 백발 미부인 등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4대 요왕의 부름에 고계 요물들이 벌떼처럼 날아들어 각각 기괴한 물건을 꺼내 진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또 8개의 검은 그림자와 꼭두각시들도 백발 미부인과 지혈 등과 함께 무언가를 준비했다.

한립은 허공에 떠서 소매를 털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8개의 푸른 깃발이 튀어나갔고 뜻밖에도 푸른 뇌전이 번뜩이며 진법이 완성되었다. 한립을 중심으로 하는 진법이었다.

“한 수사, 이게 뭐하는 것입니까?”

다시 한립 곁으로 돌아온 금령이 흠칫 놀라 따졌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제가 직접 연구해낸 보조 진법인데 제가 제뢰술을 펼칠 때 술법을 안정적으로 지탱해 주고 약간의 위력을 상승시켜 주는 효과를 지니고 있지요.”

한립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으나 제뢰술을 펼치면 벽사신뢰의 반서를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후 고심 끝에 해결책을 찾은 것이다.

뇌문(雷文)을 응결해 형성한 진법 깃발은 각각이 뇌전의 힘을 흡수하는데 특효였고 그것으로 스스로 개발한 팔문인뢰진(八門引雷陣)을 만들어 효과를 끌어올렸다.

벽사신뢰가 통제를 잃으면 이 진법을 이용해 벽사신뢰의 힘을 끌어들여 그의 몸에 가해질 손상을 피해갈 수 있었다. 물론 이 방법이 통할지,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제뢰술을 펼치기 전 진법을 설치하는 것만으로도 퍽 안심이 됐다. 방금 상대에게 말한 제뢰술의 위력을 높여준다는 말은 그저 되는대로 한 말이었다.

그러나 한립의 설명을 들은 금령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 말도 못했다. 목청과 다른 요왕들도 얼핏 진법을 보았지만 무언가를 알아차리지는 않은 것 같았다.

곧 다른 요물들도 훈련받은 대로 움직였고 일다경이 지나 수십 장 크기의 대형 진법이 허공에 떠올랐다.

거대 진법은 수십 개의 법기로 구성되었는데 대부분이 검은 원반이었고 일부는 자, 고리, 수정 같은 이상한 물건들도 있었다. 그러나 각각이 내뿜는 굉장한 기운은 점점 진법과 일체가 되어갔다.

그때 진법의 중심에 육족과 목청이 나란히 떠 있었다. 한쪽에서는 8개의 검은 그림자가 각각 두 손을 앞 그림자의 어깨에 올리고 한 줄로 섰고 백발 미부인이 검은 그림자들 앞에 자리했다.

또 자혈괴뢰는 몸집을 다시 100배로 키웠고 열댓 마리 금속성 꼭두각시들은 전부 합체해 수십 장 크기의 강철 꼭두각시로 변해 거대한 칼날을 들고 있었다.

“한 수사, 제뢰술은 준비되었는가? 우리가 신호를 주는 대로 벽사신뢰를 방출하게!”

육족이 의복을 휘날리며 거대 진법 중심에 서서 명을 내렸다.

꽈과광!

고개를 끄덕인 한립이 수결을 맺자 전신에 금빛 뇌전이 떠올라 천둥소리를 내며 금빛 광채로 변했다. 금색 주술 문자가 곳곳에 휘날리고 금빛 광채가 구슬로 변해 천천히 그의 한 손으로 떨어졌다.

이때 한립은 더는 술법을 지속하지 않고 금빛 구슬을 들고 냉랭히 상황을 주시했다. 이에 육족과 목청 등도 금제를 파훼하기 위해 움직였다.

파앗.

그들이 주술을 읊자 수십 명의 고계 요물들의 법기에서 요란한 빛이 튀어나와 거대 진법이 순식간에 거대한 검은 동굴로 변했다.

천지영기가 몰려들어 육족과 목청의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별안간 둘은 아름다운 영기의 빛에 휩싸여 천지신명처럼 반짝였다.

그 모습에 백발 미부인이 검은 그림자들 앞에서 두 손을 합장하며 새까만 검은 종을 꺼내 들었다. 아주 낡아 보이는 종은 약간 부서져 온전치 못했다.

두 핏빛 장포인들은 각각 자혈괴뢰의 어깨 위에서 튀어나가 새로 합체한 거대 금색 꼭두각시 머리 위로 올라갔다.

크아악.

자혈괴뢰가 낮게 고함을 지르고 두 손을 스쳐 열장 크기의 자홍색 도끼를 꺼내들었다. 도끼의 표면에 핏빛이 요란하게 반짝이자 꼭두각시가 그것을 높이 들어 전방의 수면을 조준했다.

금속성 꼭두각시도 핏빛 장포인들의 명령에 재빨리 거대한 검은 칼날을 들어 올렸다.

콰앙!

육족이 드디어 한 손으로 전방을 후려치자 검은 빛기둥이 손바닥에서 뻗어 나갔다. 빛기둥은 공간통로에서 내뿜었던 것의 몇 배 크기로 빛기둥이 지나는 공간이 왜곡되어 주름이 층층이 겹쳐졌다.

빛기둥은 눈 깜짝할 사이에 수면으로 빠져들었다. 그러자 마치 흐르지 않은 물처럼 물결조차 없던 명하에 변화가 생겼다.

쿠르릉.

작은 파문이 빛기둥을 중심으로 일어 나중에는 소용돌이치더니 점점 굉음을 내기 시작했다. 이에 목청도 움직였다.

발밑의 금색 꽃이 빙글빙글 돌아 주변 광채를 흡수해 몸집이 있는 대로 불어나 수면으로 날아들었다.

콰릉.

굉음을 내며 금빛이 떨어지자 드디어 소용돌이치던 수면이 둘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우윳빛 동굴이 빛기둥을 중심으로 점차 커졌지만 물의 장벽은 언제라도 부서질 듯 위태위태했다.

쿵! 쿠쿵!

자홍색 도끼의 핏빛과 검은 칼날이 거의 동시에 떨어져 내렸다.

그들의 끝없는 공격에 경천동지할 굉음이 울리며 명하가 갈라져 높이 수십 장, 폭 열댓 장의 물의 협곡을 형성했다.

하지만 그때 주변 물의 장막에서 괴상한 소리가 들리고 검은 기운이 물속에서 빠져나와 거대한 물의 협곡을 둘러쌌다.

곧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졌다. 요왕들이 연합해 방출한 공격들이 검은 기운에 닿자마자 암담해지며 줄어든 것이다.

“한 수사, 어서 나서지 않고 뭐하고 있는 것인가!”

갑자기 육족의 목소리가 냉랭히 울려 퍼졌다.

거대한 진법 속에서 천지원기를 흡수해 검은 빛기둥을 유지하던 육족은 물론 금빛 꽃잎을 날려 보내던 목청도 표정이 좋지 못했다. 두 신통 모두 막대한 법력을 허비해야 해서 오래 버티지 못할 듯 보였다.

이에 한립이 심호흡을 하며 금색 구슬을 튕겼다.

휙!

금빛 구슬이 빛줄기로 변해 튀어 나가자 커다란 금빛 주술 문자도 쏘아져나갔다.

쿠르릉 콰쾅!

엄청난 굉음이 울리고 고공에 광풍이 몰아치고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먹구름 속에서 금빛 태양의 거대한 기운이 치솟았다. 먹구름에 가려진 금빛 태양은 뇌전을 번뜩였고 천둥소리가 끝없이 울려 퍼졌다.

신중한 얼굴로 한립이 주술을 외며 손가락을 뻗어 전방의 수면을 가리켰다. 이에 금색 주술 문자가 번뜩이며 금색 빛기둥이 태양에서 뻗어져 나오더니 사정없이 명하를 공격했다.

퍼펑!

금색 빛기둥이 수면에 닿자마자 금색 뇌전으로 변해 주위로 퍼져나갔다. 놀라운 현상이 일어났다. 뇌전의 빛이 드리우는 곳마다 명하에 떠오른 검은 실들이 재로 변해 사라진 것이다.

그것을 본 육족 등은 크게 기뻐했고 더욱 신통에 법력을 쏟아부었다.

키아악!

잠시 후 가만히 있던 백발 미부인도 돌연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이에 그녀 뒤에 있던 검은 그림자들이 갑옷에서 검은 빛을 뿜어 체내의 음기를 백발 미부인의 몸으로 불어넣었다.

음갑귀왕들은 전부 연허 중, 후기였으니 그 음기가 얼마나 엄청날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거대한 귀물의 그림자가 백발 미부인의 머리 위로 떠올랐다.

그녀의 검은 종이 검은 빛을 발산하며 떠올라 몇 장 크기의 거대 종으로 변했다. 백발 미부인은 종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대앵!

검은 빛의 파동이 하늘을 뒤덮을 기세로 명하의 계곡으로 쇄도했다. 그러자 괴이한 일이 일어났다. 검은 빛의 파동이 협곡에 이른 순간 검은 빛의 장막으로 변해 명하 물길 속에 진짜 검은 통로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럴 수가.’

그것을 지켜보던 한립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명하에서 계속 나오는 검은 실을 막기 위해 끊임없이 금색 태양을 촉발해 금빛 빛기둥을 유지해야 했다.

그와 동시에 육족과 목청이 진법을 이용해 검은 협곡을 끝없이 파고들었다.

다행히 제뢰술의 위력이 굉장해서 금색 빛기둥이 닿는 곳은 뇌전이 퍼져나가 극히 먼 곳의 검은 실까지 없앨 수 있었다. 물론 협곡이 깊어질수록 한립도 더욱 의식을 집중해 금색 빛기둥이 더욱 깊게 내리쬘 수 있도록 노력해야 했다.

그나마 정확하게 어딘가를 조준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어렵지는 않았다.

*     *     *

일각 후, 협곡 끝부분에서 둔중한 굉음이 들려왔다. 목청이 그 소리를 듣고 희색을 드러냈다.

“드디어 뚫렸구나!”

여인이 손짓하자 금색 꽃잎이 수레바퀴처럼 빙글빙글 회전해 그녀의 발밑으로 돌아왔다. 백발 미부인과 다른 요왕들도 만족스런 얼굴로 분분히 신통을 거둬들이고 있었다.

“통로가 몇 시진은 버틸 것이니 명하를 통과하기에는 충분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명하 속 귀물들의 공격이 남아있지요. 저들을 먼저 들여보냅시다. 어디까지 살아남을지는 각자의 운에 맡겨야겠지요!”

목청과 다른 이들은 그 말을 듣고 희색을 거두었다. 제뢰술을 흩어버리던 한립도 그 말에 멈칫했다.

곧 육족의 눈이 초록빛으로 반짝이며 저계 요물들을 향해 말했다. 그러자 모든 꼭두각시들과 귀물 병사들이 통로의 양 끝에 줄지어 섰고 저계 요물들과 고계 요물들 모두 중앙으로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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