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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876화 (633/2,000)

876화. 계략 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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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께서 따로 생각이 있으시다니 금령도 안심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명하의 땅에 가시면 영목 본체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늙은 원숭이가 머뭇거리다 줄곧 걱정하던 바를 물었다.

“그건 결정을 내렸네. 이미 본체 영목을 지니고 갈 준비를 하고 있지.”

“주인님, 그건 안 될 말씀이십니다. 명하의 땅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데요. 만일 그곳에 갇히거나 사고를 당하시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본체가 바깥에 있으면 기껏해야 몇 년이면 다시 형체를 응결해 부활할 수 있지만 함께 명하의 땅에 갇히면 그대로 끝입니다. 또한 영목 본체는 저물탁에서 오래 살지 못하고 명하의 땅은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은 곳이 아닌지요.”

금령이 근심어린 얼굴로 만류했다.

“안심하게. 이번 일을 위해 특별히 저물주(儲物珠)를 제련해두었네. 그 안에서라면 몇 년 정도는 살 수 있겠지. 도저히 본체를 남겨 두고 떠날 수 없어서 그러는 것일세. 비록 자네의 신통이 우리의 신통과 엇비슷하다지만 누군가 작정하고 암습하면 내 본체를 지키기 어려울 것이네.”

목청은 고개를 저으며 거대한 검은 나무 앞으로 걸어가 손바닥을 얹었다.

“주인님께서 결정을 내리셨다면, 저도 주인님을 따라 명하의 땅으로 가겠습니다.”

“하하, 금 노인이 그리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안배할 예정이었네. 그간 도움이 될 만한 수하들을 몇 명 거두긴 했지만 내가 진정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자네뿐이니까! 나를 따라 명하의 땅에 들어가면 다른 것은 신경 쓰지 말고 한 가 녀석을 지켜봐주게. 위험한 일이 생기면 그 자를 구해주고.”

“2년 전 주인님께서 데려오신 그자 말씀이십니까?”

금령의 눈에 한기가 번뜩였다.

“그러네! 그자는 명하 금제를 깨는 데 쓸모가 있을 뿐 아니라 본체의 원기를 회복하는데 꼭 필요한 자일세.”

목청은 신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명하의 땅에 가기 전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네. 다른 이들도 명하금제를 깨는데 그자가 필요해 건드리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명하의 땅에 들어서면 신경 좀 써주게.”

“안심하십시오. 주인님.”

“금 노인이 그렇게 말해주니 정말 마음이 놓이는군. 그럼 그동안 이곳을 조금만 더 관리해주게. 출발하기 전에 다시 부르지.”

목청이 길게 한숨을 쉬고 생각에 잠겼다.

*     *     *

혈염궁 아래 거대 결계 속.

두 지혈이 나란히 서서 자혈괴뢰를 지켜보았다. 그때 꼭두각시의 눈이 번쩍 뜨이며 기이한 핏빛을 머금고 두 핏빛 장포인을 주시했다.

잠시 후 꼭두각시의 입에서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다면 목청과 귀파가 손을 잡았다는 말이로구나. 아마 그 녀석을 이용해 마분(魔墳)의 보물을 얻으려는 속셈이겠지!

흥, 본좌가 진작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미리 한 가 녀석의 도움을 받아 벽사전갑(闢邪戰甲)을 제련해 둔 것이다. 그 녀석이 영시들을 지니고 있기만 하다면 때가 되어 누구의 통제를 받을지는 뻔한 일 아니겠는가.

육족과 귀파, 목청이 아무리 교활하다고 해도 본좌가 진작 쌍살마체(雙煞魔體)를 버리고 주 원신을 꼭두각시에 융합했을 줄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명하의 땅에서 그것을 얻어 꼭두각시를 한 단계 진화시킬 수만 있다면 본좌가 대도에 이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터! 하하, 마분의 보물을 서로 나누게 두지는 않을 것이다.”

낯선 사내의 목소리가 자홍색 꼭두각시의 몸에서 흘러나와 주변 결계를 쩌렁쩌렁 울렸다.

*     *     *

검은 광풍이 부는 지연 협곡 안.

백발 미부인이 허공에 떠서 한 손에 무언가를 만지작거리며 아래쪽을 보고 있었다. 거무튀튀한 광풍 속에 괴상한 갑옷을 입은 인영들이 모호한 얼굴로 서 있었다.

백발 미부인은 그것들을 살펴보다 아까부터 만지작거리고 있던 비취색 구슬로 시선을 옮겼다. 푸른 구슬은 어떤 보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정순한 나무 속성 영기를 뿜어냈다.

미부인은 무언가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에 부딪힌 듯 어두운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     *     *

지연 1층 신비 산맥 중심.

백장 높이의 제단 위에 회백색 거대 눈알이 여전히 수많은 회색 실을 분사해 주변 음기를 흡수하고 있었다. 검은 삿갓을 쓴 육족은 뒷짐을 지고 서서 아득한 허공을 올려다보며 공중에 떠있었다.

검은 소매 사이로 드러난 두 손에는 불규칙한 회백색 균열이 가 있었다.

*     *     *

어둑한 황야 위, 푸른 빛줄기가 천천히 날아가고 있었다. 둔광 속 푸른 장포 청년은 목청을 떠난 한립이었다. 네 요왕들이 표식을 심어 숨어버리고 싶어도 그들을 속일 수 없었지만 그래도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을 생각이었다.

요왕들이 내준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오색공작의 진혈을 연화시켜 진령 변신술을 익히기에는 충분했다.

원래 진령의 피를 융합하는 것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특수한 혈맥을 타고났거나 특수한 비술을 익힌 자만이 가능했다.

하지만 경칩결은 단 하나의 법결을 이용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당초 이 법결을 만들어낸 천붕족 대장로는 천하의 기재였다.

한립이 재주가 뛰어나긴 하지만 합체기 수사들과는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러니 명하의 땅에서 최소한 목숨을 부지할 수단은 지니고 있어야 했다.

물론 명하의 땅으로 출발하기 전에 조용히 표식을 지울 수 있다면 바로 달아날 작정이다. 목청의 말에 의하면 명하의 땅은 합체급 요왕이 죽을 정도로 위험한 곳이니 말이다.

한립은 보름 남짓을 날아 작은 산맥 앞에서 멈추었다. 그곳은 목청의 거처와 엄청 떨어진 곳으로 산맥의 영기가 제법 농밀했고 급이 높은 요물들이 살지 않았다.

한립은 산을 한 바퀴 돌아보고는 높은 봉우리 중턱에 자리를 잡아 간단히 동부를 만들었다. 그리고 동부로 들어가 금제를 설치해 하얀 안개로 거대한 산 전체를 가렸다.

한립은 곧바로 밀실로 들어가 석문을 닫았다.

시간이 흘러 그가 머무는 산맥에도 어느새 사계절이 지나갔다. 요왕들은 마치 그를 잊은 듯 명하의 땅으로 들어갈 준비에 정신이 없었다.

*     *     *

2년 후 어느 날.

한립은 밀실 안에서 평범해 보이는 나무 방망이 하나를 들어 올렸다. 기다란 타원형인 방망이는 신비로운 비취색 무늬가 있었고 한쪽은 뭉툭했고 다른 쪽은 마치 칼로 베어낸 것처럼 평평했다.

그 방망이는 바로 현천과실이었다. 지금까지도 정확한 용도는 모르지만 그간 신비한 병의 액체를 계속 주입했고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를 일으키려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단지 숨겨져 있던 우윳빛 점이 처음에 비해 몇 배로 불어나 굉장히 밝게 빛날 뿐이었다. 한립은 한숨을 내쉬며 나무 몽둥이를 저물탁 속에 넣어두고 생각에 잠겼다.

2년 동안 그는 경칩결을 이용해 오색공작의 진령의 피를 체내에 주입해 변신술을 익히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갑자기 수행이 대폭 늘어나는 뜻밖의 수확을 얻었다.

아직 진룡과 천붕의 변화구결을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당장이라도 두 진령의 피를 몸에 녹여 수행이 어디까지 늘어나는지 확인했을 것이다.

그간 진섬액도 복용하기 시작했는데 영액의 효과는 뛰어났지만 2년이란 시간은 무척 짧아 수행이 눈에 띄게 늘어나지는 않았다. 또 그동안 네 요왕의 표식을 없앨 방도를 찾았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명하의 땅으로 들어가는 일은 피할 수가 없겠군.’

한립은 명하의 땅을 떠올리곤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러나 그때 그가 밀실 문밖을 쳐다보며 이상하다는 얼굴을 했다.

한립은 갑자기 손을 뻗어 허공을 쥐었다. 그러자 석실 문에 걸어둔 금제에 파문이 일고 거무튀튀한 물체가 그의 손바닥으로 빨려 들어왔다.

그것은 한 척 크기의 목갑이었는데 불에 탄 것처럼 그을려 있었고 굉장히 투박하고 볼품이 없었다. 그런데 그것을 보자마자 그는 표정이 달라지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의식으로 목갑을 훑은 한립이 손끝으로 그것을 만져보고 침음했다.

쉭!

한참 후, 목갑의 뚜껑을 열자 안에서 검은 구슬이 날아올랐다. 구슬은 그의 얼굴 앞을 빙글 돌아 검은 안개로 흩어졌고 한쪽 손바닥이 간지러운 느낌을 받았다.

‘역시.’

손바닥을 들어 올리자 괴이하게도 작은 글자 몇 개가 적혀 있었다. 쌀알만큼 작고 희미한 글자들이었다. 그가 내용을 확인하고 손을 털자 푸른빛이 반짝이며 글자들이 사라져버렸다.

다시 잠시 고민하던 한립이 푸른 빛줄기로 변해 밀실을 빠져나왔고 그대로 동부를 나섰다.

*     *     *

일각 후 산맥 가장자리의 골짜기 상공.

푸른 빛줄기가 하늘을 나는 용처럼 날아들었다. 그리고 푸른빛이 가시고 한립이 골짜기 위에서 모습을 드러내 아래로 내려갔다.

그가 내려선 곳은 골짜기 끝에 바위들이 쌓인 돌무지 바로 앞이었다.

“두 수사께서는 이제 모습을 드러내시지요.”

한립은 두 발이 땅에 닿자마자 바위들 중 하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하하! 연 사저, 내가 말했잖아. 이런 은신술로는 한 형을 속일 수 없다니까.”

“한 수사의 신통은 나도 알고 있지만 그래도 확인해 본 것이야.”

두 여인의 웃음소리가 그가 바라보던 바위에서 들려왔고 회색 광채 속에서 젊고 아름다운 두 여인이 연달아 나타났다.

새하얀 피부에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여인과 아담한 체구에 귀여운 인상을 지닌 여인이 그를 보며 활짝 웃었다. 그 여인들은 바로 원요와 연려였다.

한립이 동굴에서 받은 검은 목갑은 양혼목으로 제련한 기물이었다. 그는 한 눈에 물건의 내력을 알아보았지만 두 여인이 무슨 수로 목갑을 그의 밀실로 보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과연 두 분이셨군요. 원 소저, 그 동안 무탈하게 잘 지내셨습니까?”

“한 형, 설마 지금 저희를 놀리는 것은 아니지요. 저희가 어딜 보아 무탈해 보인답니까?”

원요가 웃음을 거두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그렇군요. 제 인사가 부적절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볼 때 두 분은 아직 온전히 귀물이 된 것은 아닌 것 같은데요. 무슨 사정이 있었던 것입니까?”

한립은 두 여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음기를 느끼며 미간을 좁혔다.

“한 형의 말씀대로입니다. 당시 사매는 저를 구하려다 난성해에서 귀무에 빨려 들어갔고, 그곳에서 음양의 기운을 빌려 음양륜회결(陰陽輪回決)을 익혀냈습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저희들은 이런 반인반귀의 모습이 되고 말았지요. 제가 육신이 없었던 탓에 원 사매가 이렇게 된 것입니다.”

연려가 죄책감이 느껴지는 기색으로 설명했다.

“사저, 무슨 그런 말이 다 있어. 애초에 사저가 나를 구해주지 않았다면 난 진작 죽었을 거야. 게다가 사저가 이 꼴이 된 데에는 내 책임도 크다고.”

“음양륜회결?”

“네, 음양륜회결이오! 한 형께서도 이 법결에 대해 아십니까?”

고개를 돌린 연려가 눈을 반짝였다.

“흠,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두 분은 벌써 윤회의 기회를 잃었겠군요!”

“그때 저와 사저가 함께 이 공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진작 인계에서 혼백이 흩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니 음양륜회결을 익힌 것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그보다 한 형이 영계로 비승한 것이 더욱 놀라운 일이지요!”

원요가 한립을 보며 가볍게 미소 지었다.

“인계의 영기가 너무 희박해 저 역시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두 분은 어찌 이곳에 있는 것입니까? 인족의 영역도 아닌 곳에…….”

“그건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2백 년 전, 저희는 음양륜회결을 함께 대성해 화신기 경지에 이르렀는데 그 순간 갑자기 거대한 음풍(陰風)이 불어와 정신을 잃고 말았지요. 그런데 저희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지연 안이었습니다. 이후 우연히 귀물의 몸을 지닌 귀파를 만나 그 문하로 들어가게 되었고요. 저희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이곳이 놀랍게도 영계라는 것을 알았지만 한 번도 지상으로 올라 갈 기회는 없었습니다.”

연려의 눈빛이 순간 처량해졌다. 그러나 듣고 있던 한립은 할 말을 잃었다.

인계에서는 화신기 수사들이 영계로 넘어오기 위해 막대한 노력을 하지만 그럼에도 숙원을 이루는 이는 손에 꼽혔다.

그런데 원요와 연려는 공법을 대성하자마자 얼떨결에 영계로 올라온 것이다.

‘세상에 불가사의한 일이 허다하다지만 이런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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