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5화. 검은 나무와 금빛 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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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육족과 지혈도 그곳을 떠나갔다. 한립은 목청의 명에 따라 그녀를 따라 다시 대전 안으로 돌아왔다.
“한 수사, 우리 이야기를 들으며 궁금한 점이 많았을 것이네. 지금이 그 의혹을 풀 기회인 것 같은데 딱 세 번만 그 물음에 답해주겠네. 기억하게, 딱 세 가지일세! 그리고 그 대가로 나를 위해 명하의 땅에 들어가 한 가지 일을 해줘야하네.”
금색 꽃 위의 목청이 한립을 향해 말했다.
“한 가지 일이요?”
“그렇네. 2년 동안 구뢰술을 전수해주고, 거기다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까지 해주는데 이 정도 부탁은 들어줄 수 있겠지?”
“당연한 말씀입니다. 허나 선배님…….”
한립이 예의상 미소를 짓고 무언가 말하려는데 목청이 손을 저어 그의 말을 끊었다.
“안심하게. 수사의 능력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사실 그 것도 자네의 벽사신뢰의 힘이 필요할 뿐이야.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 같은 존재들이 자네의 다른 점을 눈여겨보기라도 했겠는가?”
목청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한립은 그 말에 오히려 조금 긴장이 풀려 진지하게 답했다.
“선배님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따르겠습니다. 명하의 땅에서 제 목숨에 위협이 되지 않는 한, 선배님을 위해 한 가지 일을 해드리겠습니다.”
“하하, 틈이 없구만! 그럼 이제 묻고 싶은 것을 묻게.”
목청이 작게 웃으며 팔짱을 끼었다.
“저는 명하의 땅이 도대체 어떤 곳인지, 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한립이 단숨에 두 가지 질문을 했다.
“명하의 땅은 수백 년 전에 지연의 최하층에서 우연히 발견한 독립된 공간일세. 음기로 가득 차 있고 그 속에 각종 악귀와 귀물들이 퍼져있지. 몇몇 귀왕들은 실력이 우리 못지않고 어떤 곳은 극도로 위험해 우리도 피해가고 싶은 곳도 있네. 이렇게 말하면 알아듣기 쉽겠군. 처음 지연에는 요왕이 다섯이었네. 그중 하나는 처음 음명의 땅을 수색할 때 죽고 말았지. 당시 그곳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그렇게 험난할 줄은 상상도 못한 탓이지.”
목청은 한립의 질문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대답해주었다. 그 말을 들은 한립은 내심 놀라며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명하의 땅이라는 것은 선배님들이 붙인 이름입니까? 그렇게 부르시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하하, 그게 세 번째 질문인가?”
목청이 듣기 좋은 목소리로 미소 지었다.
“아닙니다. 제 세 번째 질문은…….”
한립이 서둘러 부인하고 다시 물어보려는데 목청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됐네, 이건 질문으로 치지 않고 설명해 주지. 그곳은 두꺼운 만 장의 기이한 강으로 둘러싸여 있네! 평범한 자들은 그 물속에 들어가는 순간 혼백이 빠져나가 육체는 음시(陰尸)가 되어 버리고 말지. 영원히 그 강물 속을 떠다니는 혼백 없는 강시가 되는 게야. 그래서 우리는 그곳을 삼도천(三途川)을 뜻하는 ‘명하(冥河)의 땅’이라 부르고 있지.”
“그랬군요!”
설명을 들으니 명하의 땅에 대한 대략적인 그림이 그려졌다.
“이제 마지막 질문만 남았네. 찬찬히 생각해 질문하게.”
“……명하의 땅에서 선배님께서 시키실 일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한립이 입을 열었다. 물론 요왕들이 명하의 땅에서 무엇을 하려는지도 궁금했지만 그 것보다는 자신과 연관된 일이 더 알고 싶었다.
이 대답을 듣지 못하면 내내 마음이 불편할 것이 분명했다.
“정말 이게 마지막 질문인가?”
목청이 의외라는 듯 다시 물었다.
“예, 선배님께서 분명히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깝게 마지막 기회를 날리다니 대답해 주지. 간단히 말해 어떤 물건을 취하러 갈 때 같이 가주기를 바라네. 그곳은 극도로 강력한 마물이 지키고 있어 나 혼자서는 조금 곤란해서 말이야. 자네의 벽사신뢰가 마물과는 상극이거든.”
“마물! 명하의 땅은 귀물들이 모여 있는 곳이 아니었는지요?”
“귀물과 혼백들이 엄청 많기는 하지만 약간의 마물도 존재한다네. 그 이유는 내게 묻지 말게. 나도 왜 그런지 전혀 모르니까.”
목청의 말에 한립은 할 말을 잃었다.
“허나 안심해도 될 것이야. 벽사신뢰의 보조를 받아 내가 직접 나서면 그런 마물들은 문제가 되지 않을 테니까. 또 한 가지, 내가 원하는 물건을 손에 넣으면 자네에게도 한 가지 보물을 내주겠네. 비령족 성자라면 원해 마지않는 것이지.”
그녀의 말에 한립의 얼굴에 의혹이 어렸다.
‘보물?’
“지연 요물들의 난이 발생했을 때 비령족 장로를 죽여 진성의 피 한 병을 얻었지. 듣기로는 본 족의 진성의 피가 아니라 해도 비령족에게 굉장히 귀중한 보물이라던데?”
목청이 거만하게 설명했다.
“어떤 진성의 피입니까?”
“오색공작(五色孔雀)의 진령의 피일세. 어떤가? 자네가 직접 사용하지 못한다고 해도 비령족으로 갖고 돌아가면 큰 보상을 받게 될 걸세.”
상당히 끌리는 제안이었다. 오색 공작의 진혈을 신물로 여기는 종족 뿐 아니라 비령족 어디에서라도 진령의 피는 진귀한 보물로 대접받았다.
진령의 피는 단약을 제련하거나 법보를 만들 때 불가사의한 신통을 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색공작은 진령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무서운 존재였다.
한립은 속으로 기쁨을 삼켰다.
경칩결의 12가지 변화 중 3가지를 익혔는데 오색공작 변신술도 포함되어 있었다. 진령의 피를 흡수하기만 하면 즉시 구결을 응용해 오색공작의 화신으로 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법결에 따르면 한 가지 변화를 익힐 때마다 위력이 3할은 늘어났다. 이론적으로는 모든 변화를 익혀 하나로 융합하면 변신 후의 위력을 4배 이상 끌어올릴 수 있었다.
물론 수행이 늘어나면 변신 후 위력도 당연히 늘어난다. 경칩결의 위력이 늘어날수록 진령의 강력한 대신통(大神通)도 늘어나니 얼마나 놀라운 공법인가.
오색공작의 ‘오색신광(五色神光)’ 신통은 영계에서 이름이 높았다. 오색신광이 지나는 곳의 오행물질은 전부 금제에 걸려 한립의 원자신광과 비슷한 효과를 내었다.
한립은 차분한 얼굴을 유지했으나 그의 놀람과 기쁨을 목청이 모를 리 없었다.
“한 수사는 오색공작의 진혈에 불만이 없는 것 같군. 그렇다면 이렇게 하는 것으로 하지. 일단 진령의 피 절반을 줄 테니 일이 성공하면 나머지 절반을 받아가게.”
말을 마친 그녀가 발아래 금색 꽃잎을 쳐서 새빨간 작은 병을 불러냈다. 병을 쥔 목청이 한립에게 그 것을 던져주었다.
한립은 작은 병을 잡아 바로 뚜껑을 열어 보았다. 그러자 안에서 맑은 울음소리가 들렸고 오색 광채가 나타났다. 당장이라도 무언가 빠져 나올 것 같았다.
곧바로 뚜껑을 닫은 그는 찰나의 순간 이미 의식으로 내용물을 확인했다. 오색공작의 진혈은 처음이었지만 엄청난 영기를 발산하는 것으로 보아 가짜는 아니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한립이 체면을 차리지 않고 핏빛 병을 거둔 다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나중에 잊지 않고 내 일을 도와주기만 하면 되네. 이제 떠나게. 3층 위로만 올라가지 말고 지연 어디서든 원하는 곳에서 수련하게. 몇 년 내로 준비가 되면 우리가 알아서 자네를 불러들일 것이야.”
목청은 고개를 끄덕이고 뜻밖에도 바로 축객령을 내렸다. 이에 한립이 다시 예를 올리고 푸른 빛줄기로 변해 목선전을 빠져나갔다.
몇 번 푸른빛이 깜빡이고 그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졌다.
한립이 사라지자 목청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셨다. 그녀가 한 손으로 수결을 맺자 금색 꽃잎 표면에 검은빛이 반짝이고 진법이 나타났다.
목청의 모습이 흐릿해지며 점점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목청이 취음원 앞에서 나타났다. 겹겹이 결계로 뒤덮인 반원형 문 앞에 검은 빛의 진법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문 안으로 들어갔다.
찰랑.
문을 막고 있던 금제가 물처럼 파문이 일었다. 그러나 검은빛이 흐르는 목청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목청의 앞에 거대한 화원이 펼쳐졌다. 그곳에는 다양한 색의 거대한 꽃들이 자라고 있었는데 큰 것은 몇 장은 되었고 작은 것도 한 척은 되었다.
솔솔 부는 바람에 꽃잎들이 나풀거리자 각각이 엄청난 영기를 뿜어냈다. 목청은 거대한 꽃들 사이로 난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걸어갔다.
수많은 꽃을 지나자 꽃무더기가 나타났고 그곳을 지나자 푸른 풀밭이 펼쳐졌다. 풀밭 한가운데에 새까만 거대 소나무 한 그루가 우뚝 솟아 있었다.
높이가 5, 60장인 거대 소나무의 모습은 무척 특이했다.
나무 중간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있는 것처럼 절반은 녹음이 푸르렀고 나머지 절반은 말라비틀어져 이파리가 하나도 없었다.
검은 소나무를 보고 눈을 빛내던 목청이 열댓 장 밖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자 거대 소나무의 이파리가 영기의 빛을 반짝이며 목청을 향해 날아왔다.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목청의 검은 기운이 나무에서 뻗어 나온 기운에 벗겨지자 매혹적인 여인의 모습으로 변했다. 목청은 경국지색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미간 사이의 짙은 살기가 보는 이의 가슴을 떨리게 했다.
“금 노인, 있는가?”
냉랭한 목소리가 울리고 허공에서 금빛 그림자가 나타나 그녀 앞에 내려섰다.
“주인님을 뵙습니다. 금령은 줄곧 이곳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금빛 그림자는 놀랍게도 커다란 금빛 원숭이였다. 등 뒤로 단검 두 자루를 교차해 메고 반 척 길이의 하얀 수염을 기른 원숭이의 검은 눈이 반짝였다.
“금 노인, 일어나시게! 그동안 누가 이곳을 몰래 살피지는 않았겠지?”
목청은 뜻밖에도 금빛 원숭이를 아주 정중하게 대했다. 그녀는 손을 뻗어 원숭이를 일으킨 다음 온화한 목소리로 물었다.
“예, 제가 2년간 주인님의 본체에서 한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고 지키고 있었지만 아무런 이상도 없었습니다.”
“그간 수고 많았네. 자네도 알다시피 내 신통은 다른 이들에 비해 약하진 않지만 목령의 혼백이 변한 몸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어쩔 수 없이 금 노인이 나를 위해 수고해주게.”
목청이 작게 탄식했다.
“주인님,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예전의 저는 평범한 원숭이에 불과했습니다. 주인님께서 돌봐주시지 않았다면 지금의 금령은 없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일전에 제가 유인책에 당해 하마터면 주인님의 본체를 그자가 갖고 달아나게 할 뻔 했지요. 주인님께서 미리 예상하고 본체의 원기 절반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금령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 때문에 주인님의 영목 본체가 아직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어느 세월에 원래의 기력을 찾으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늙은 원숭이가 송구스럽다는 얼굴로 말했다.
“지난 번 일은 금 노인만 탓할 수 없네. 육족 등이 전부 함께 있어 위협이 될 만한 존재가 남아 있지 않다고 여겨 나 스스로도 방심했네. 그러나 이렇게 은밀한 곳을 찾아내고 자네까지 유인했다는 것은 목정동이 아주 익숙한 자의 소행이겠지.
그자가 누구인지는 짐작 가는 바가 있네. 다만 그자도 다른 이의 사주를 받은 것이고 괜히 자극하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모르는 척 하고 있는 것뿐이네. 명하의 땅에서 원하는 것을 얻고 나면 그놈의 사지를 갈가리 찢어 본체를 상한 원수를 갚고 말 것이야.”
목청의 표정이 음산해졌고 두 눈에는 살기가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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