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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874화 (631/2,000)
  • 874화. 제뢰술(祭雷術)

    *

    사흘 후, 한립은 목선전에서 요왕들을 다시 만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원요와 연려는 오지 않았다. 지혈 노괴는 여전히 전혀 구분할 수 없는 모습으로 동시에 나타났다.

    “한 수사가 벌써 벽사신뢰의 제뢰술(祭雷術)까지 익혔단 말입니까? 목 선자가 허언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백발 미부인은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그녀는 지금 홀로 대전 한쪽에 앉아 있었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장난칠 리가 있나요. 솔직히 말해 한 수사가 벽사신뢰의 제뢰술까지 익혀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알고 보니 한 수사는 금뢰죽으로 만든 보물을 본명 법보로 삼고 있더군요. 그렇다면 벽사신뢰를 빠르게 장악하는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지요.”

    검은 기운 속 목청이 웃음을 흘렸다.

    “금뢰죽으로 본명 법보를? 한 수사, 자네 담도 크구만. 설마 벽사신뢰 같은 신뢰들에 쉽게 반서(反噬)를 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른단 말인가? 오늘날까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신기한 일이군.”

    백발 미부인이 고개를 돌려 한립을 쳐다보았다.

    “신뢰에 반서를 당한다고요? 저는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들어봅니다. 그 이유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한립은 당황스러웠다.

    “아니, 목 선자. 아직 이런 이야기도 해주지 않은 것입니까?”

    “오래 전 확인을 마쳤습니다. 한 수사에게 운이 따르는지 벽사신뢰가 극도로 안정되어 있더군요. 발작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그런 일을 언급할 까닭도 없었지요.”

    “흥, 그건 목 선자의 생각이고 우리는 확인을 하지 못한 사실입니다.”

    백발 미부인이 코웃음을 쳤다. 이에 목청이 피식 웃으며 무어라 말하려는데 육족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만 됐습니다. 목 선자께서 우리를 청한 것은 이야기나 나누자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한 수사가 정말 제뢰술까지 익혔는지 직접 확인하겠습니다.”

    육족의 말에 목청과 백발 미부인은 찔끔해 입을 다물었다. 이에 두 명의 핏빛 장포인 중 하나가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한 수사, 그간 익힌 벽사신뢰를 우리 앞에서 펼쳐 보시게.”

    그의 말에 한립이 살짝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선배님들의 분부라면 당연히 따라야지요. 그런데 제뢰술 위력이 상당해 이곳에서 펼친다면…….”

    한립은 말을 맺지 못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 수사의 말이 맞네요. 목선전에 금제가 펼쳐져 있다고 하나 벽사신뢰의 진정한 위력을 버티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밖으로 나가시지요.”

    목청이 고개를 끄덕이고 먼저 문밖으로 걸어갔다. 다른 요왕들도 시선을 교환하고는 분분히 그 뒤를 따랐다. 한립도 마찬가지였다.

    문밖을 지키던 지연 요물 병사들이 갑자기 우르르 몰려나온 요왕들을 보고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잠시 후 목선전 앞 공터에 모인 이들은 전부 한립을 쳐다보았다. 이렇게 많은 고계 존재들의 주시에 한립은 쓴웃음이 절로 났지만 태연한 얼굴로 푸른빛을 일으켜 허공에 떠올랐다.

    스무여 장 높이에서 멈춘 그가 수결을 맺었다.

    쿠콰쾅!

    천둥소리가 크게 일고 무수히 많은 가느다란 금색 뇌전이 몸에서 튀어나가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뇌전들은 점점 굵어졌고 주위로 퍼져나갔다.

    모두의 놀란 눈빛 속에 거대한 원형 뇌전 그물이 펼쳐졌다. 동시에 한립은 법결로 두 손에서 괴이한 주술 문자들을 뿜어냈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굵은 뇌전에 주술 문자가 스며든 순간, 뇌전 그물이 거품처럼 터져 직경 몇 장의 금빛 광채로 퍼졌다. 그 광채의 중심에 선 한립은 신형이 흐릿해졌고 주술을 읊느라 여념이 없었다.

    우웅!

    금빛 광채가 요동쳤고 금색 주술 문자가 떠올라 공명했다. 그 떨림이 계속 커져 점점 귀청을 때렸다.

    쿠콰쾅!

    돌연 한 줄기 천둥소리가 하늘을 울렸다. 금빛이 눈부시게 빛나고 모든 것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한립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며 한 손으로 수결을 맺고 다른 손으로는 둥근 공을 들고 있었다.

    둥근 구슬은 보잘것없어 보였고 표면에 나타난 주술 문자만이 눈에 띄었다. 빛이 암담한 것으로 보아 영기라고는 없는 평범한 구슬 같았다.

    금색 구슬을 본 요왕들이 눈을 빛냈다.

    이때 한립이 아주 진지한 얼굴로 손바닥 위의 금색 구슬을 다섯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펑!

    금색 구슬이 금빛으로 변해 고공으로 솟아올랐다. 그와 동시에 한립의 다른 손에서 ‘치칙’ 하는 소리가 울리고 금빛 뇌전 속에서 주술 문자가 나타나 역시 하늘 높이 솟아 사라졌다.

    콰르르릉!

    갑자기 광풍이 불고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금색 태양 같은 것이 새까만 구름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나타나 엄청난 기세를 내뿜었다.

    금색 태양 표면에 무수히 많은 뇌전이 번뜩여 천둥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를 지켜보던 미부인과 지혈 등의 안색이 달라졌다.

    “그만! 제뢰술을 멈추게. 이만하면 되었으니 벽사신뢰의 위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네.”

    갑자기 육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한립은 움찔하고는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대꾸했다.

    “선배님께서 멈추라 하시니 따라야겠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제가 제뢰술을 그 정도까지 숙련하지 못해 지금은 멈출 방법이 없습니다.”

    한립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금색 태양이 연달아 엄청난 천둥소리를 냈다.

    쿠콰콰쾅, 콰쾅!

    콰르르릉, 쾅!

    물 항아리 굵기의 금색 빛기둥이 휙 하고 지나가 공터에 떨어져 내렸다.

    그러자 모두가 경악할 일이 일어났다. 그곳에는 강철처럼 단단한 청석 바닥에 금제까지 펼쳐져 있었는데 순식간에 뚫려 직경이 몇 장에 달하는 거무튀튀한 거대 동굴이 생기고 만 것이다.

    금색 빛기둥은 잠시 동안 유지되다가 하늘 위의 금빛 태양이 사라질 때 함께 흩어져버렸다.

    한립이 약간 창백한 얼굴로 날개를 펄럭이며 하강했다.

    한립이 내려서자 먹구름이 걷혀 다시 원래의 푸른 하늘이 드러나 있었다.

    지혈 중 한 명과 백발 미부인이 동시에 신형을 날려 거대한 동굴 옆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동굴 속에서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고 놀랍게도 그 깊이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과연 제뢰술을 장악했군요. 벽사신뢰의 무서움은 과장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라 해도 불시에 이런 공격을 당하면 온전하지 못하겠어요.”

    백발 미부인이 묘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지혈도 흔들리는 눈빛으로 무언가 생각하고 있었다.

    육족은 한눈에 한립의 제뢰술의 대단함을 알아보았고 목청은 이미 여러 번 보아 다른 이들이 놀라는 것을 구경하는 재미가 썩 괜찮았다.

    “모두 이제 만족하십니까?”

    목청이 가볍게 미소 지었다.

    “차차 익숙해질 필요는 있겠으나 위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명하금제를 깰 만합니다. 한 수사, 조금 전 자네를 살피니 벽사신뢰가 굉장히 안정적이더군. 처음 금뢰죽 법보를 제련할 때 혹여 법력이 동급 수사들의 몇 배는 되지 않았던가?”

    육족이 고개를 끄덕이고 문득 한립에게 물었다.

    “맞습니다. 저는 오래 전 이상한 공법을 얻어 수련 속도는 느리지만 수행은 동급 수사들보다 심후했습니다. 제가 벽사신뢰의 반서를 당하지 않은 것이 이 때문입니까?”

    “그게 전부라고는 할 순 없지만 중요한 원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지. 법력은 모든 신통의 기초이니 말이야. 또한 한 수사가 이전에는 벽사신뢰의 진정한 위력을 몰라 사용하지 않은 것이 반서의 위험을 낮추었을 것이네.”

    육족이 차분히 설명해 주었다.

    “그렇다면 이후 제가 제뢰술을 펼치면 반서를 당할 가능성도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한립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건 알 수 없네. 지금까지 무사했다면 법력이 심후한 것 외에도 특수한 영약을 섭취했거나 기이한 보물이나 공법을 지니고 있어 줄곧 벽사신뢰의 폭주를 막아준 것이겠지. 적어도 조금 전 제뢰술을 펼칠 때는 전혀 이상이 없었네. 앞으로의 일을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 자네의 수행이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군.”

    육족의 목소리는 고저 없이 평탄했다. 상대의 말을 전부 믿을 수는 없었지만 난감한 일이었다.

    ‘지금은 상관없겠지만 앞으로 수행이 높아지면 벽사신뢰를 억누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아닌가!’

    백발 미부인이 육족의 말을 듣고 있다가 목청에게 냉랭히 물었다.

    “목 선자, 우리를 이곳에 불러들인 것은 겨우 한 수사의 제뢰술을 보이기 위함은 아니겠지요! 할 말이 있으면 바로 하세요.”

    “예, 확실히 드릴 말씀이 있어 여러분을 청한 것입니다. 육족 형께서도 한 수사가 충분히 벽사신뢰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셨으니, 제가 볼 때 남 수사 밑에서 더 이상 수련할 이유가 없어진 것 같아서요. 몇 년간 그를 목정동에 남겨두고 술법이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목청은 숨김없이 자신의 의도를 밝혔다.

    “한 수사가 이미 제뢰술을 익혔다 해도 목 선자와 내가 아는 구뢰술은 차이가 있습니다. 내 밑에서 2년간 수련한다고 무슨 문제라도 생긴답니까? 미리 약조한 일인데 이제와 말을 바꾼다면 기분이 좋지 않지요.”

    백발 미부인이 얼굴을 굳히고 음산히 중얼거렸다.

    “하하,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한 수사가 벽사신뢰로 명하 금제를 깨주는 것입니다. 이미 그 능력을 갖추었는데 더 수련시킬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또한 이전에 약조할 때와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으니 당연히 다시 상의를 해봐야지요.”

    목청이 전혀 개의치 않고 미소를 지었다.

    “육족 형, 지혈 수사,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모두 목 선자의 말에 동의하는 것입니까?”

    백발 미부인이 더는 목청을 상대하지 않고 나머지 둘을 향해 물었다.

    “허허, 노부는 벽사신뢰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이 일에 나설 자격이 없는 것 같습니다. 두 분이 알아서 결정하시지요.”

    지혈 중 한 명이 웃음을 흘리며 목청과 미부인의 다툼에 끼어들지 않으려 했다. 그 말에 백발 미부인은 이상하다는 눈빛을 보냈지만 곧 시선을 돌려 육족을 쳐다보았다.

    검은 삿갓을 쓴 육족은 곰곰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두 분의 말이 모두 일리가 있습니다. 이미 벽사신뢰를 부릴 줄 알게 된 한 수사가 다시 남 수사 밑에서 2년이나 수련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지요. 하지만 미리 약조한 것을 지키지 않는 것도 남 수사 입장에서는 불쾌할 것입니다. 이렇게 합시다. 내가 보기에도 2년은 길고 1년이면 될 것 같습니다. 남은 시간은 한 수사가 따로 머물며 수련하게 두기로 하고요.”

    육족은 뜻밖의 타협안을 내놓았다. 그 말을 듣고 백발 미부인은 미간을 좁혔고 목청은 침묵했다.

    “두 분 다 이 제안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것이란 것을 압니다. 하지만 지금은 명하의 땅에 들어갈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서로 다른 마음을 품고 행동하다 대사를 그르칠 것입니까? 아무리 셈을 해봐야 대사가 실패하면 모두 수포로 돌아갈 것입니다. 만년에 단 한 번뿐인 기회를 놓칠 작정은 아니겠지요?”

    육족은 두 여인이 말이 없자 목소리가 서늘해졌다. 그 말에 이번에는 두 여인이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백발 미부인이 뜻밖에도 목청에게 전음을 보냈는데 전음을 들은 목청의 표정이 확 달라지며 한참 후 입을 열었다.

    “지금 한 말이 정말입니까. 정말 그런 물건을 내게 줄 수 있다고요?”

    “목 선자도 알다시피 나는 귀도(鬼道)를 걷는 몸입니다. 아무리 신묘한 것이라도 내게 쓸모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백발 미부인은 흔들림 없이 답했다.

    “그럼 남 수사의 말씀에 따라 이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목청이 미부인이 말한 물건이 상당히 중요한지 제안을 수락했다.

    “좋습니다. 이번에는 목 선자가 말을 바꾸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군요.”

    백발 미부인도 빙긋 웃고는 음산한 바람과 함께 회색 빛덩이가 되어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그것을 본 지혈은 어리둥절해 했지만 육족은 미부인이 가버릴 것을 알았다는 듯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제가 이미 남 수사와 상의를 마쳤습니다. 한 수사는 남은 시간 동안 홀로 머물며 구뢰술에 익숙해지도록 수련에 매진하면 됩니다. 괜찮으십니까?”

    목청이 미소를 머금었다.

    “허허, 노부야 그저 두 분의 결정에 따를 것입니다.”

    “대사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나도 반대할 생각이 없습니다.”

    지혈과 육족이 무표정하게 답했다. 이에 목청은 기뻐했고 한립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목청과 백발 부인은 분명 그에 관한 무슨 약조를 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니 울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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