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869화 (626/2,000)
  • 869화. 사룡족(邪龍族)

    *

    한립과 혈교 등이 듣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고 목청과 다른 요왕들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음갑현귀나 꼭두각시를 대량으로 제련하는 것이 큰 전쟁을 대비해 병사를 양성하는 것 같았다.

    그 중 한립의 관심을 끈 것은 그들이 수시로 언급하는 '명하(冥河)의 땅’이었다. 처음 이 이름을 들었을 때 어쩔 수 없이 ‘음명의 땅’을 떠올렸다.

    그러나 요왕들은 그곳을 언급만 할 뿐 어떤 곳인지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는 뒤로 물러나 몰래 요왕들을 관찰하고 있었는데 사대 요왕 중 가장 알 수 없는 인물은 육족과 지혈 노괴였다.

    육족은 몸에서 발산하는 한랭한 기운이 무척 기괴해 생명력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죽어 있는 물체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지혈 뇌괴라 불리는 두 사내는 말투며 기운에 아무런 차이가 없어 둘로 나누어져 있지만 꼭 한 사람 같았다.

    그러나 목청과 백발 미부인은 대충내력을 알 것 같았다.

    목청의 몸에 드리운 검은 기운은 명청령안을 이용해도 속을 들여다볼 수 없었지만 검은빛 속에 은은하게 녹색 기운이 어려 있는 것은 확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녀에게서 감지되는 정순하기 그지없는 나무 속성 영력으로 보아 보기 드문 목령(木靈)의 요물일 것이다.

    ‘본체가 어떤 종류의 나무인지는 모르겠지만.’

    백발 미부인은 음산한 기운이 아주 짙어 그가 지금까지 본 음기 중에서도 손에 꼽혔다. 거기다 다른 요왕들의 말을 더해 추론해 보면 미부인이 귀요(鬼妖)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귀물이 육체를 응결해 살아 있는 사람과 똑같아 보이니 그 신통이 얼마나 뛰어날지 보지 않아도 눈에 선했다.

    그때 한립은 원요가 지닌 음기가 상당하며 정상적인 몸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미부인처럼 완전히 귀물은 아닌 듯했다.

    ‘그녀는 또 다른 기연을 얻은 모양이로구나!’

    연려도 원요와 똑같았고, 두 여인이 발산하는 기운은 화신 초기 수준이었다. 낮은 수행으로 백발 미부인을 가까이에서 모신다는 것은 총애가 깊다기보다는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요왕들의 논의는 그다지 길어지지 않았다. 가끔 언쟁이 일었지만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방향으로 빠르게 결론이 났다.

    한식경이 지나 요왕들이 논의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청은 금색 꽃잎에서 내려와 직접 요왕들을 배웅했다. 두 지혈이 대전 문을 향해 나서다가 고개를 틀어 괴이한 목소리를 냈다.

    “내가 보낸 혈괴뢰 두 마리는 전부 네가 멸한 것이더냐?”

    한립은 잠시 머뭇거리다 허리를 숙이고 사실대로 대답했다,

    “예, 맞습니다. 선배님의 수하인지 모르고 한 일이니 너그럽게 이해해주십시오.”

    “허허, 겨우 혈괴뢰 두 마리가 무엇이라고. 허나 이 일은 이대로 끝낼 수 없으니 나를 대신에 사소한 일을 하나 해줘야겠다.”

    그의 귓가에 지혈 노괴의 전음이 들려왔다. 한립은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지만 지혈들은 벌써 그를 지나가고 있었다.

    한립은 그의 전음을 듣고 무척 성가신 일이 생길 거라 생각했다.

    뒤이어 백발 미부인과 원요, 연려가 가장 마지막으로 나가며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미부인은 그를 향해 미소 지을 뿐 말을 걸지 않았고 원요도 그를 못 본 것처럼 무표정했다. 연려만이 눈을 깜빡이며 잠시 한립을 들여다보았다.

    “한 형제 축하합니다. 대인분들께서 기대가 크신 듯합니다.”

    목청 등이 대전을 빠져나가자 혈교가 그를 향해 미소 지었다.

    “축하할 일인가요? 저는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혈 선배님께서는 뇌전을 부리는 공법이 어떤 것인지 아십니까? 정말 벽사신뢰의 위력을 대폭 증가시킬 수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쓴웃음을 머금은 한립이 반신반의하며 물었다.

    “하하, 제가 조금 알고 있습니다. 벽사신뢰는 상고 시대 때 영계에서 지목신뢰로 이름을 날렸지요. 오행신뢰 중 하나로 전문적으로 마기와 사악한 기운에 대항하는 데 쓰였습니다. 위력으로 보아도 제 천강혈뢰 이상이고요.

    그저 이런 신뢰들을 사용하는 데는 특수한 방법이 있어서 그것을 익히지 못하면 본래의 위력에 1, 2할밖에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상고 시대 때 영계의 일부는 이미 몇몇 거대 종족들이 연합하여 통치를 하였는데 그 중 사룡족(邪龍族)이 이 신뢰와 상극이라 각 종족의 천뢰죽이란 천뢰죽은 전부 찾아 없애버렸지요. 그 후로 벽사신뢰는 영계에서 맥이 끊겼고 그것을 다루는 방법도 점차 사라져갔지요.”

    “사룡족이요?”

    한립은 영계에 그런 종족이 있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다.

    “허허, 한 수사께서 들어보지 못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당시 강력한 몇몇 종족들이 영계의 다른 종족들을 워낙 업신여겨 종국에는 다른 종족들이 연합해 그들을 멸살시켰거든요.

    그 종족들의 세력이 워낙 강해 그 일로 영계 연합 세력의 7, 8할이 죽어나갔다고 합니다. 지금 큰 규모의 종족들은 전부 그 전쟁 이후에 득세한 세력이지요. 지금에 와서는 사룡족이라는 이름마저 아는 이가 드뭅니다.”

    혈교가 아무렇지 않게 상고 시대 비사를 들려주었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일이 어찌 인족과 비령족 경전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인가?’

    그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제가 말하는 상고 시대는 영계 초창기에 각 종족들이 막 출현했을 때를 말합니다. 비령족이야 그때는 존재하지도 않았으니 이 사실이 기록되어 있을 리 없지요.”

    “그런 것이었군요!”

    비령족도 출현하지 않았을 때라면 인족은 당연히 그 후에나 세력을 갖추었을 테니 기록되어 있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이렇게 한립과 혈교가 문답을 주고 받고 있을 때 목청이 돌아왔다. 그들은 즉시 대화를 멈추고 요왕에게 다가가 예를 취했다.

    목청이 고개를 끄덕이고 금색 꽃위로 올라가 턱을 괴고 입을 다물었다. 마치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는 듯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한 수사, 잘 듣게! 어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자네는 반드시 2년내로 내게서 벽사신뢰를 부리는 방법을 익혀야 하네. 그래야 자네를 도와 남 귀파 밑에서 보낼 2년을 거절할 수 있지.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는가?”

    “목청 선배님의 명이시니 최선을 다해 따르겠습니다.”

    “흥,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야. 아니라면 자네가 그 할망구에게 곱게 가도록 두지 않을 것이니.”

    목청의 목소리가 서늘해졌다. 그 말에 한립도 안색이 달라져 할 말을 잃었다.

    “사흘 후, 내 목정동(木精洞)으로 거처를 옮기게. 2년간 친히 뇌전을 다루는 법을 가르칠 것일세. 혈교, 그동안 혈식에 관한 일은 네게 맡기겠다.”

    목청이 고개를 돌려 혈교를 향해 명했다.

    “예, 주인님!”

    이번에는 혈교도 조금 의외였는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즉시 명을 받들었다. 이에 한립도 조금 멈칫했다.

    “피곤하니 다들 물러가게.”

    목청이 말을 마치자 한립과 혈교가 예를 취하고 대전 밖으로 걸어 나왔다. 할 말을 마친 목청이 손을 저었다.

    “이런, 한 형의 운이 대단하십니다. 놀랍게도 주인님께서 직접 벽사신뢰를 지도해 주신다니 천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기연이 아닙니까!”

    대전을 나오자마자 혈교가 한립을 향해 묘한 눈빛을 보냈다.

    “그런가요? 제가 2년간 뇌전을 다루는 술법을 완전히 익힐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한립은 고개를 저으며 걱정스러워했다.

    “하하, 주인님께서 저렇게 말씀하셨으니 그만한 자신이 있으실 겁니다. 괜한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저는 중요하게 처리할 일이 있어 먼저 가보겠습니다.”

    혈교가 웃으며 핏빛으로 변해 날아올랐다. 한립은 제자리에 서서 멀어지는 핏빛을 응시하다 몸을 돌려 거처로 돌아갔다.

    그는 거처로 들어가 다시 금제를 펼치고 침상에 가부좌를 틀었다. 손바닥에는 뜻밖에도 쌀알 크기의 작은 글자가 적혀 있었다. 자세히 살피니 검게 쓰인 ‘원(元)’이라는 글자였다.

    그것을 본 한립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원요의 신분을 반신반의하고 있었는데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이 주술 문자는 원요가 그를 스쳐 지나갈 때 소리 없이 남겨 놓은 것이었다.

    다행히 영기의 파동이 전혀 일지 않아 요왕들의 눈을 속일 수 있었다.

    겨우 화신의 수행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에 항시 태평한 표정을 유지하던 한립이 난색을 표했다.

    그는 다시 손가락을 뻗어 원이라는 글자를 가볍게 건드려 보았다. 그러자 손끝에서 초록빛이 나와 글자를 지웠다. 한립은 다시 소매 속으로 두 손을 감추고 복잡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꽈광!

    잠시 후, 그가 다시 손바닥을 펼치자 낮게 천둥소리가 울렸다. 금색뇌전 구슬이 떠올라 주먹만 한 크기에서 미세하게 작아졌다 커졌다 하며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표면의 금빛 뇌전 실타래는 더더욱 요란하게 번쩍였다.

    한립은 뇌전 구슬을 들고 무표정하게 응시했다.

    아주 오래전 우연히 금뢰죽을 키워냈고 그것으로 72개의 청죽봉운검을 제련해 벽사신뢰로 수많은 적들을 죽였다. 그런데 벽사신뢰에 그것을 부리는 특수한 방법이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만일 지연 요물들의 말대로 벽사신뢰가 영계 오행신뢰 중 하나이고 이전에는 지목신뢰라고 불렸다면 그 본래의 위력은 지금의 10배는 될 것이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지만 그런 위력이라면 순식간에 그의 가장 강력한 비장의 한 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명하의 땅이나 요왕들이 양성하는 귀물과 꼭두각시 병사들을 생각하면 이런 일에 휘말리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다행히 그들은 적어도 6, 7년간은 준비해야 했다. 그동안 심사숙고해서 어떻게든 이 위기를 벗어날 방책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다시 원요를 만난 것은 그저 인연이 깊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당시 그녀가 자신의 금단을 훼손해가며 사저인 연려의 혼백을 지킨 것은 탄복할 일이었지만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흐르도록 정과 의리에 연연할 줄은 알지 못했다.

    어쨌든 사람의 마음이란 쉽사리 변하니 말이다. 원요의 태도로 보아 그와 서로 아는 사이라는 것을 밝히기 꺼려하는 것 같았다. 그로서도 안심이 되는 사실이었다.

    그가 비령족이 아니라는 사실은 엄청난 비밀은 아니었지만 굳이 지연 요왕들에게 그의 정체를 알리고 싶지는 않았다.

    기억을 떠올리니, 처음 그녀와 마주쳤던 일들이 생각났다. 허천전 밀실 안 샘물에서 몸을 씻고 있던 그녀의 알몸이 떠올라 마음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하지만 바로 남궁완의 얼굴이 마음 깊은 곳에서 떠올라 모든 잡념이 사라졌다.

    ‘오랜 세월이 흘렀구나.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렸다면 그녀도 인계에서 화신기에 올랐을 것인데…….’

    남궁완의 고운 목소리와 얼굴이 또렷이 기억나며 천남에서 함께 부부로 지내며 보냈던 나날들이 스쳐지 나갔다. 한립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점점 기억 속으로 잠겼다.

    …….

    오랜 시간이 지나 남궁완의 목소리가 점점 흐려지자 또 다른 화사한 미녀의 얼굴이 생각났고, 그는 한동안 그녀와의 기억을 회상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길게 탄식을 한 한립은 쓴웃음을 지었다.

    어차피 당분간 지연에서 벗어날 수 없을 테니 원요와는 언젠가 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

    한립은 천천히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금 앞으로의 일을 계획했다.

    * * *

    사흘 후.

    작은 산에 오른 그는 바위들이 전부 청록색 보석처럼 보이는 기이한 절벽을 보며 눈을 빛냈다.

    “이곳은 내가 폐관수련을 할 때 쓰는 목정동이다. 나무 속성 영기가 농염하기로는 영계에서도 이만한 곳을 찾기란 쉽지 않지. 관련 공법을 수련하는 이가 이 동굴에서 수련하면 몇 배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사흘 후에 목청이 나타나 그를 데리고 거대한 산을 넘어 짙은 안개 속에 위치한 곳으로 데려왔다.

    이곳은 그녀가 머무는 거처와는 상당히 떨어져 있어 이곳에 수련 장소가 있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할 것이다.

    문제는 눈앞의 청록색 절벽은 거울처럼 반질반질해서 도저히 동굴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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