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3화. 금조령화(金鳥靈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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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지혈이 손을 거두었다.
“얼마 전에 그들이 머물던 곳입니다. 혈교가 바로 출발한다면 찾는 것은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들이 영장급이라는 말이 사실이 라면 얼마 걸리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만일 그게 아니라면…….”
목청의 목소리가 서늘해졌다.
“당연히 사실이 아니라면 목 선자와 노부의 거래는 무효입니다.”
지혈이 낮게 웃으며 그녀의 경고를 받아들였다.
“확실히 말해 주시니 마음이 편하네요. 그럼 그렇게 알아둘게요. 혈교를 즉시 2층으로 전송할 테니 사흘 후, 소식을 전하죠.”
목청의 말을 끝으로 구슬의 핏빛이 가시고 연락이 끊어졌다. 지혈은 상대의 무례한 태도에도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고계 영사인 혈교가 나섰으니 이제 걱정할 필요 없겠군. 그래도 실패한다면 비령족 늙은이들이 직접 나섰다는 소리니 조심해야겠어. 대사를 그르칠 수 없으니.”
말을 마친 지혈은 다시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 * *
지연 3층, 목조 대전에서 검은 인영이 커다란 금색 꽃 위에 턱을 괴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검은 인영들 열대여섯 명이 엎드려 있었다.
한참 후, 검은 인영이 한 손을 들어 녹색빛을 허공으로 날렸다. 그러자 대전 밖에서 천둥소리가 들리고 핏빛과 함께 자욱한 안개가 안으로 스며들었다.
핏빛 안개가 사라지자 교룡의 머리에 인간의 몸을 한 요물이 나타나 검은 인영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주인님 부르셨습니까?”
“혈교, 잠시 혈식을 수집하는 일을 놔두고 2층에 다녀와야겠다.”
검은 그림자의 냉랭한 목소리는 바로 지혈이 구슬을 통해 연락을 취했던 ‘목청’이었다.
“무엇이든 분부만 내려주십시오!”
“2층에 영장급 비령인들 몇 명이 있다. 내 그곳으로 보내줄 테니 그들을 죽여 정혼을 모아다 지혈 노괴에게 갖다 주거라. 이게 그들의 최근 위치와 용모파기이다. 만일 이 비령인들이 무언가 수상하거나 상대하기 까다롭다면 즉시 내게 알려야 한다. 빨리 처리하고 돌아오너라!”
목청이 손을 뻗어 검은 죽통을 던져주었다.
‘존명!”
혈교가 공손히 죽통을 받아들고는 신형이 흐릿해지며 대전 밖으로 소리 없이 사라졌다.
“흠, 이제 각층의 혈식 포획 진도를 확인해야겠지. 다음 제례가 얼마 남지 않았다. 흑작, 네 차례다.”
목청이 잠시 대전 문을 바라보다 시선을 거두고 서늘하게 말했다.
“4층의 사시비사(四翅飛蛇)와 채운갈(彩雲蝎) 같은 혈식 무리는 거의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 삼목창서(三目蒼鼠)들 몇 무리가 흑아산(黑鴉山)으로 숨어들어 포획이 쉽지 않…….”
키가 큰 그림자가 일어나 차근차근 그간의 진척에 관해 설명했다.
* * *
지연 2층, 하얀 날개를 단 비령족 성자 네 명이 검은 독 전갈들과 싸우고 있었다. 전갈들은 날개는 없었지만 비행 신통을 지녀 민첩한 데다 입에서 산성 물질을 뿜었고 꼬리의 독침은 매우 독했다.
이에 네 명의 비령인들은 골머리를 썩으며 검은 전갈 무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콰쾅!
반 시진 후 비령족 성자 중 한 명이 독하게 마음을 먹고 대량의 법력이 필요한 신통을 부려 남색 불구슬을 날렸다. 그러자 그들을 포위하던 전갈 중 한 마리가 재로 변했고 이에 나머지 전갈들도 드디어 물러났다.
비령인들은 그제야 길게 한숨을 내쉬며 안심했다. 그러나 그들이 입을 열기도 전에 하늘 끝에서 핏빛 안개가 꾸물꾸물 몰려들었다.
잠시 후, 핏빛 안개는 소리도 없이 빠르게 움직여 몇 번 번득인 끝에 네 명의 비령족 성자들을 감쌌다.
비령족 성자들이 깜짝 놀라 즉시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
그러나 핏빛 안개 속에서 어이없다는 둣 코웃음 소리가 들려왔고 광기 어린 눈동자가 번득이며 비령인들을 훑었다.
"그자들이 아니구나! 나를 여기서 만나다니 운도 없는 것들.”
비령족 성자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 탁한 목소리였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핏빛 안개 속에서 천둥소리가 들리고 주변 하늘에서 핏빛구름이 괴이하게 몰려들었다.
“큰일입니다, 천강혈뢰(天罡血雷)예요! 달아나요!”
“이런!”
성자 한 명이 그것을 알아보고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며 소리쳤다. 그는 가장 먼저 노란빛을 발하며 어딘가로 튀어 나가려 했고, 나머지 성자들도 천강혈뢰라는 소리에 혼비백산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달아났다.
쿠르릉 콰쾅!
하지만 천둥소리가 울리고 핏빛 번개가 구름에서 튀어나와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다음 순간 핏빛 뇌전이 성자들의 머리 위로 내리꽂혔다.
잠시 후 비명이 들리고 뇌전 속에서 둔광 네 개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러자 핏빛 안개 속에서 누군가 미친 듯이 웃어대더니 핏빛을 크게 발하며 다시 어딘가로 종적을 감추었다.
* * *
수만 리 밖, 한립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지금 갑자기 나타나 그들을 포위한 비령인 7명을 훑고 있었다.
“명염과는 찾지 않고 우리 앞을 막고 어쩌자는 것입니까?”
"우리 천붕족은 귀 종족과 아무런 원한 관계가 없는 것으로 압니다.”
한립의 말에 백벽이 옆에서 어두운 얼굴로 거들었다.
“하하, 천붕족과 우리 흑령족(黑靈族)은 확실히 아무런 은원도 없지요. 하지만 출발 전 적융족 등 몇몇 강력한 지파들이 다른 지파의 성자들에게 포상을 약속했습니다. 당신들을 마주치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이렇게 만나지 않았습니까?”
체구가 좋은 흑령인이 팔짱을 끼고 한립을 향해 오만하게 말했고 그들을 포위하고 있는 다른 흑령인들도 자신만만한 태도였다.
흑령족은 72개 지파 중 상급은 아니더라도 중급은 되는 지파였기에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천붕족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포상?”
포상이라는 말에 한립은 미간을 찌푸렸다.
“해야 할 말은 다 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 편히 이승을 뜨시지요!”
우두머리로 보이는 흑령인은 더 이상 시간을 끌고 싶지 않은지 즉시 살기를 비추며 말했다. 이에 다른 흑령인들도 입을 벌려 각각 검은 깃털을 내뿜었다.
처음에는 아주 작았던 깃털이 점점불어나 새까만 빛과 주술 문자로 번들거렸다. 그들이 깃털을 들고 한립 일행을 향해 손을 뻗자 검은 화염이 뿜어져 나와 사방에서 밀려들었다.
쿵!
검은 화염은 뜻밖에도 거대한 우리를 만들어 네 사람을 가두었다. 뇌란이 불길을 보고 은색 뇌전을 일으켜 몸을 보호하더니 목에 걸린 호리병에 보라색 뇌전을 모아 엄청난 기세를 불러 일으켰다.
일을 마친 그녀가 서둘러 한립에게 전음을 보냈다.
“한 형, 흑령족의 금조령화(金鳥靈火)입니다. 수행을 빨아들이는 무서운 능력을 지녔으니 절대 몸에 닿게 해서는 안 됩니다.”
동시에 백벽과 진효도 놀란 얼굴을 하고 다급히 술법을 펼쳤다. 한 명은 몸에서 금빛을 번쩍였고 다른 한명은 어두운 녹색 옥패를 꺼내 화염의 기습을 대비했다.
‘금조령화라 흥미롭군!’
한립은 피식 웃으며 즉시 오색 화염을 불러 일으켰다.
콰르릉! 콰콰쾅!
검은 불길의 위력도 상당했지만 오색 화염과 부딪히자 기름에 물을 부은 것처럼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다.
그것을 본 흑령인들이 흠칫 놀랐다.
우두머리 흑령인이 동공을 수축하고 크게 외쳤다.
“화염에 모두 힘을 싣는다. 수적으로 우리가 유리하니 저 자가 잠시 금조령화의 막는다고 해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의 말에 흑령족 성자들은 깃털에 더욱 많은 법력을 불어 넣었고 등뒤로 커다랗고 새까만 새의 허상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하며 불안정하게 깜빡였다. 흑령족 진령법상이 등장하자 검은 깃털의 위력이 급증하며 화염도 더욱 짙어졌다.
심지어 검은 화염이 지나간 자리에는 공간이 윙윙거리고 약간의 왜곡현상까지 일어났다. 분명 화염의 위력이 극에 달했다는 표시였다.
이에 뇌란과 진효, 백벽은 급히 여러 가지 보물과 신통을 불러냈지만 오래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한립은 별것 아니라는 듯 오색화염을 키워 검은 화염을 막아냈다.
그리고 은색 화염을 불러내자 곧바로 은색 불새로 변해 검은 화염을 향해 뛰어들었다. 이에 검은 불길과 은색 불길이 어우러지며 불타올랐다.
아무런 충돌음도 들리지 않았지만 불새는 자석처럼 주변의 검은 화염을 흡수했다. 서령천화는 본래 강대한 위력의 불길이 다양하게 섞여 형성되었고 약간의 영성을 지녀 다른 화염을 흡수하는데 능했다.
금조령화는 금조 진령이 부리는 공간을 융화시키고 대지를 불사르는 금조신염은 아니었지만 금조의 깃털의 힘을 빌렸기 때문에 그 위력의 일부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니 서령천화가 가장 집어삼키기 좋아하는 화염이라 볼 수 있었다.
서령불새는 한립이 풀어놓자마자 거침없이 금조령화를 집어삼켰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활활 타오르던 검은 불길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 모습에 흑령인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고 뇌란, 백벽 그리고 진효는 크게 기뻐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천붕족은 절대 이런 신통을 지닐 수 없을 텐데요.”
우두머리 흑령인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그 질문에 답할 이유가 있을까요.”
한립이 중얼거리며 날개를 펄럭이더니 청백 뇌전 속에서 사라졌다.
흑령족 우두머리가 그것을 보고 소매를 털어 한 손으로 수결을 맺었다.
그러자 검은 실로 만들어진 그물은 한립에게 날아가지 않고 검은 모래로 변해 보호막을 만들었고 동시에 검은 뇌전 구슬 3개가 나타나 그의 주위를 회전했다.
꽈광!
그러나 천둥소리가 들리고 한립이 검은 모래 바로 앞에 나타났다.
쿵! 쿵! 쿵!
검은 뇌전 구슬 3개가 쏘아져 나가 정확하게 한립을 맞추었다. 그러나 한립의 몸에는 검은 전갑이 둘러져 있었기 때문에 절반만 뚫었을 뿐 그의 몸에는 닿지 못했다.
한립은 몸을 금빛으로 물들여 금색비늘로 뒤덮고는 전광석화처럼 흑령인 우두머리의 등 쪽을 파고들었다.
비범해 보이던 모래가 그의 금빛 손가락에 허물어져 공간을 터주었다.
이후 금색 손이 그의 등을 뚫고 들어가 가슴 앞으로 튀어나왔는데 괴이하게도 피가 한 방울도 묻어나지 않았다.
"흐아악!”
흑령인 우두머리는 그제야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괴성을 지르며 가슴 앞으로 튀어나온 손을 힘껏 잡아챘다. 그러나 한립의 손등에서 수 척의 비검이 나타나 그의 두 손뿐만 아니라 몸 전체를 절반으로 갈라버렸다.
그의 몸에서 수정 알갱이 같은 물건과 녹색 불길이 나타났지만 역시 금색 검빛에 힘없이 잘려나갔다. 혼백조차 화를 피하지 못한 것이다.
그 모습에 흑령인들이 대경실색해 무리 중 네 명은 거대한 검은 새로 변신해 한립을 향해 달려들었고, 나머지 두 명은 수중의 깃털을 회수해 두 줄기 검은 빛덩이로 변해 달아났다.
그들의 공격에 한립의 입 꼬리가 올라가더니 곧 천둥소리가 울리며 뇌전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이에 거대 새들은 놀라 멈칫했고, 그 틈에 푸른빛의 인영이 그 새들 밑에서 소리 없이 나타났다. 그리고 거대 새들이 무언가 행동을 하기도 전에 푸른 그림자가 거대 새 한 마리를 향해 한 손을 저었다.
서걱.
눈을 찌를 둣한 금빛이 번쩍하고 사라지자 거대 새 하나가 서늘한 한기를 느끼며 몸이 두 동강이 나 추락했다. 다른 새가 이를 알아차리기도 전에 아래쪽 그림자는 또 괴이하게 사라져 금색 검빛을 휘둘렀다.
거대 검은 새는 또다시 힘없이 잘려나갔고 단단한 깃털들도 금색 검빛을 막지 못했다. 이렇게 몇 번을 이동한 끝에 한립이 다시 허공에서 몸을 드러냈다.
허공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찰나의 순간 흑령인 네 명을 처리한 한립은 수십 장 밖으로 달아나고 있는 이들을 향해 무표정하게 날개를 펄럭였다. 그러자 청백색 빛줄기가 하늘을 가르더니 날카로운 폭음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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