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8화. 벼락으로 적을 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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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뇌란과 백벽이 법력을 완전히 회복하고도 마찬가지였지만 한립은 빈번히 명청령안을 사용하며 주위를 살폈다. 그런데 그날 오후, 그들이 어떤 큰 산을 지날 때 문제가 발생했다.
하늘에서 영기의 빛이 번득이고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비취색 빛덩이가 날아온 것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비취색 빛 뒤로 노란 빛덩이 세 개가 나타나 그 뒤를 쫓았다.
한립 일행은 곧 그곳을 주시했다.
멀리서 비취색 베틀 북 형태의 보물이 번득거리며 수십 장을 건너뛰어 달아나고 있었고, 그 뒤를 쫓는 노란 빛덩이들은 금빛 주술 문자를 반짝이는 비령족이었다.
“황풍족(黃風族)입니다. 적융족과 마찬가지로 저희 천붕족을 호시탐탐 노린지 오래인 종족이지요!”
백벽이 노란 빛덩이 속 비령인들을 확인하고 안색이 어두워졌다. 뇌란도 놀란 눈빛이었다.
“황풍족?”
한립이 세 비령족 성자들을 훑어보았다. 노란 날개에 얼굴에도 약간의 털이 있고 등 뒤로 털이 복슬복슬하고 꼬리가 달린 요괴 같은 종족이었다.
비취색 베틀 북 속 인물이 한립 일행을 발견하고는 빠르게 다가와 멈추었다. 빛이 가시고 나타난 이는 하얀 날개에 연녹색 작은 뿔이 난 여인이었다.
“천붕족 성자들이시죠? 저는 야녹족(夜綠族) 진효라 합니다. 저희 두종족은 서로 돕기로 맹약을 맺었지요. 제발 도와주십시오.”
여인이 허둥지둥 부탁했다. 한립 일행이 대답하기도 전에 황풍족 인물들이 인근으로 쫓아왔고 천붕족 성자들을 보고 안색이 달라져 멈추었다.
“이 일은 본 족와 야녹족 간의 일입니다. 천붕족은 끼어들지 않는 것이 좋을 겁니다.”
그중 한 명이 위협적인 어조로 소리쳤다. 야녹족 여인이 그 말을 듣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세 사람을 향해 애원하는 눈빛을 보냈다.
“본 족과 야녹족은 서로 우호 협약을 맺은 사이이니 구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황풍족도 적융족과 맞먹어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되고요. 눈앞의 저 세 명은 이번 시련에 참가한 황풍족 성자 중 일부에 불과합니다.”
뇌란은 한립이 비령족 사이의 관계를 잘 모른다는 것을 알고 조용히 설명해 주었다.
“그렇구만.”
한립은 대수롭지 않다는 눈빛으로 야녹족 여인과 황풍족 성자들을 번갈아 보았다. 황풍족은 세 명 중 두명이 중계 영장이고 나머지는 고계 영장이어서 거만한 눈빛으로 그들을 보고 있었다.
한립이 무어라 말하려는데 하늘 저 끝에서 영기의 빛이 반짝이고 열댓장 크기의 대형 나무새가 날아왔다.
그런데 그들의 정체를 확인하기도 전에 황풍족 성자들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빠르게 시선을 교환한 그들은 동시에 몸을 날려 한립 일행과 야녹족 여인을 중간에 두고 흩어져 그들을 포위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놀란 백벽이 소리쳤다.
“하하, 무슨 뜻이냐고요? 원래는 당신들은 놔주려고 했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는 말이지요.”
황풍족 거한 한 명이 광소했다.
무언가 눈치첸 한립이 남색빛을 일렁이며 나무새를 바라보자 멀리 보이는 검은 인영들은 전부 황풍족 성자들이었다. 두 명이 중계 영장 나머지는 고계 영장이었다.
한립 일행을 쫓아 보내고 야녹족 여인만 죽이려던 황풍인들이 지원을 나온 동족 수사들을 보고 거리낌 없이 한립 일행도 죽이기로 마음을 바꾼 것이다.
생각을 마친 한립이 담담히 입을 열었다.
“그럼 당신들을 먼저 죽여야겠습니다.”
꽈광!
천둥소리가 울리고 청백색 뇌전 속에서 한립이 사라졌다.
“조심!”
황풍족 고계 영장이 한립을 주시하다 그가 사라지자 소리쳤다. 다음 순간 그의 머리 위에 공간 파동이 일고 한립이 나타나 검은 손으로 허공을 때렸다.
새까만 초소형 산이 회색 빛 속에서 나타나 순식간에 몇 배로 커졌고 열댓 장 크기의 산으로 변해 추락했다. 한립이 그들 머리 위에 나타난 것에 놀라던 황풍족은 교활하게 웃고는 검은 산을 향해 입을 벌렸다.
푸슉!
노란 기운이 뿜어져 나가 검은 산을 휘감았고 동시에 손에서 하얀 빛을 뿜어 은백색 둥근 원반 형태의 보물을 발동하려 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 허공에 있던 한립이 코웃음을 쳤다.
“……!”
그 소리가 크지 않았지만 아래쪽 황풍족은 귀청이 떨어질 것 같았고 뇌리를 찌르는 고통에 표정이 일그러지며 비틀거렸다. 손에 들고 있던 보물도 떨어트릴 뻔했다.
그 틈에 검은 그림자가 가볍게 노란 기운을 치워버리고 황풍족을 내리눌렀다. 황풍족 성자는 제대로 실력 발휘도 못하고 거대한 산에 짓눌려 떨어져 내렸다.
한립이 두 손으로 수결을 맺자 원자신산은 계속 몸집이 불어나 천여장 크기의 거대한 산봉우리로 변했다. 이 황풍족은 한립과 마찬가지로 화신 후기의 수행을 지녔지만 육체는 평범한 인족보다 조금 더 강할 뿐이었다.
꽝!
굉음이 울리고 땅에 산봉우리가 떨어지자 황풍족은 처참하게 으깨졌다. 원신 역시 원자신광에 휘말려 흩어진지 오래였다. 찰나의 순간 황풍족 수사를 죽인 모습을 보고 황풍족 성자들은 물론이고 백벽과 뇌란 그리고 야녹족 여인마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달아납시다.”
누군가가 소리치자 나머지 황풍족 성자들이 노란 괴조로 변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에 눈썹을 끌어올린 한립이 소매를 펄럭였다. 그러자 푸른 뇌전이 번득이며 왜곡된 순간 노란 괴조 중 한 마리를 따라잡았다.
놀란 괴조가 피하려 했지만 푸른 뇌전 속에 한 척 크기의 푸른 가위가 나타났다.
콰르릉 쿠쾅!
천둥소리가 울리고 가위는 열 장 가량의 푸른 뇌전 교룡으로 변해 괴조를 물어뜯었다. 노란 괴조가 즉시두 동강이나 추락했다.
나머지 괴조가 그것을 보고 혼비백산해 죽어라 날아가 거대 나무새를 향해 질주했다. 그러나 그의 뒤편에서 사내의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이제 와서 어딜 가려고 그러십니까? 이미 늦었다는 생각은 안 드십니까.”
한립은 언제 풍뢰시를 이용해 쫓아왔는지 거대 손을 뻗어 황풍족이 변신한 괴조의 목을 틀어쥐었다.
괴조가 기민하게 반응해 날개에서 대량의 깃털을 뿜어 바람의 칼날로 그를 공격했고, 목 주위 깃털을 칼날처럼 세워 한립의 손바닥을 노렸다.
채채채채챙!
검은 기운이 반짝이고 한립의 전신에 독특한 갑옷이 생겨나 바람의 칼날들을 전부 튕겨냈다. 동시에 목에 세운 깃털도 강철을 만난 것처럼 한립의 손에 상처 하나 입히지 못했다.
뽀각!
화륵.
괴조의 목이 가볍게 부러졌고 한립의 손끝에서 오색 화염이 뿜어져 나와 괴조를 재로 만들어버렸다.
“…….”
한립은 그 자리에 멈춰 가까워진 거대 나무새를 보며 음산한 눈빛을 보냈다. 멀리서 다가오던 황풍족들은 한립이 순식간에 동족 세 명을 죽이는 것을 보고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처음에 황풍족 한 명을 기습해 죽일 때는 분노해 더욱 속도를 높였지만 나머지 둘마저 살해당하자 황풍족 성자들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거기에 한립의 시선이 그들을 향하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어서 방향을 돌려요. 저 자는 우리가 상대할 자가 아니에요!”
수행이 낮은 여인이 서둘러 외쳤다. 이에 다른 두 사내도 고개를 끄덕이고 세 명이 힘을 합쳐 나무새의 방향을 튼 다음 전속력으로 달아났다.
한립은 슬쩍 눈살을 찌푸렸지만 추적하지 않고 날개를 펄럭여 어딘가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황풍족의 은색 원반 보물이 둥실 떠 있었다. 한립은 소매를 털어 그것을 회수하고 다시 뇌란 등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뇌란, 백벽 및 야녹족 여인은 어안이 벙벙해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황풍족 성자들이 여섯이나 되고 다들 수행이 높았기에 큰 화를 입을 거라고 예상했었다. 그런데 한립이 나서자마자 그중 셋을 죽이고 나머지를 쫓아내자 기함하고 말았다.
한립도 영장급 존재가 분명한데 이런 실력을 지녔다니 너무 불가사의했다!
“가세. 이곳에 오래 남아 좋을 것 없으니.”
한립은 그들의 멍한 표정을 살피고 담담히 말했다.
“예! 한 형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백벽이 퍼뜩 상념에서 벗어나 대답했다.
백벽은 이제 한립의 말이라면 절대 거스를 생각이 없었고 뇌란과 야녹족 진효도 두려운 기색이 스쳤다.
“진 수사, 제가 기억하기로 야녹족에 다른 수사들도 있었던 것 같은데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본 족에서는 총 세 명의 성자를 파견했습니다. 그런데 2층에서 다른 성자들의 공격을 받아 두 명이 죽었죠. 저는 몰래 3층으로 숨어들어 명염과를 찾아볼 생각이었는데 도중에 황풍족들을 만나 이곳까지 쫓겨 오게 되었지요.”
뇌란의 물음에 진효가 씁쓸한 얼굴로 대답했다.
“오, 그렇게 많은 황풍족 성자들이 수사 한 명을 추격했다고요?”
뇌란이 눈을 빛내며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
“……아마 제가 본 족에서 받아온 보물들을 지니고 있어서겠죠.”
진효가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랬군요.”
뇌란은 눈썹을 끌어올리고 더는 캐묻지 않았다.
“황풍족 인물들이 끈질기게 쫓은 것으로 보아 혹시 야녹족 3대 보물이라도 지니고 있는 것입니까?”
“예, 사실 혼원호(混元壺)를 들고 나왔습니다.”
백벽의 물음에 이번에는 진효의 안색이 조금 변했지만 결국에는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고백했다.
“혼원호라면 혼원의 힘을 조종해 적을 공격할 수 있다는 보물이잖아요?”
“바로 그 보물이 맞습니다. 그게 없었다면 겨우 중계 영장인 제가 며칠간 황풍인들의 추격을 따돌릴 수는 없었을 거예요. 혼원호를 부리려면 구하기 어려운 혼원정석(混元晶石) 여러 알이 필요한데 이미 다 써버렸습니다.”
그녀의 말에 백벽과 뇌란이 서로 시선을 마주치다 한립을 힐끔 보았다. 그러나 그는 아무 소리도 못 들은 것처럼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의 행동에 뇌란과 백벽도 더는 이 일을 언급하지 않았고 진효와 지연 3층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에 진효는 내심 한숨을 돌렸다.
야녹족과 천붕족이 맹약을 맺은 것은 사실이지만 큰 구속력은 없었다.
저들이 욕심을 부려 보물을 빼앗으려 한다면 한립의 신통에 그녀는 저항할 겨를도 없이 당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한립의 도움을 받으면 안전하게 시련을 마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그녀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뇌란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 최선을 다해 상대의 심중을 헤아리다 보니 그들은 어느새 친자매처럼 친해졌다.
그것을 본 백벽이 미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이틀 후, 그들 일행은 중저계 요물 무리를 수차례 물리치고 산맥을 빠져나와 괴이하게 눈으로 뒤덮인 세상과 마주했다.
일행의 둔광이 느려지고 자세히 전방을 살폈다.
새까만 빙하가 끝없이 이어지고 서늘한 바람이 불고 검은 눈발이 몰아쳤다. 그 속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소리들은 빙하 전체를 떠도는 귀신들의 목소리 같았다.
검은 눈과 얼음이 이어지고 빛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꼭 지옥으로 향하는 문 같았다.
“이곳은 2층에서 유명한 빙살지(氷煞地)겠군. 이곳에는 많은 중, 저계 빙살 요물들이 살고 있고 심지어 어떤 이들은 우연히 빙살요왕을 마주치기도 한다더군.”
“한 형 말씀대로 이곳이 빙살지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지능이 발달하지 않은 중, 저계 요물들이고 빙살 요왕을 보았다는 것도 아주 오래전에 떠돌던 소문에 불과하죠.”
한립의 중얼거림에 진효가 바로 설명했다.
“보기에는 흉흉해 보여도 저희 수행 정도면 어렵지 않게 통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원래라면 그랬겠지만 이번에는 지연 요물들의 난이 언제 폭발할지 모르니 조심하는 게 좋겠네. 그럼 가지!”
한립은 당부를 잊지 않고 날개를 펄럭여 속도를 높였다. 그가 검은 눈보라 속으로 뛰어들자 나머지 셋도 시선을 교환하고 따라갔다. 점점 멀어지던 그들의 둔광은 검은 눈보라가 몰아친 후 완전히 종적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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