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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855화 (612/2,000)
  • 855화. 신비 산맥

    *

    “저희 보고 이것을 들고 다니라고요?”

    뇌란은 미간을 좁히고 하얀 옥패를 들었다. 옆의 백벽도 같은 물건을 들고는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옥패는 은색 주술 문자가 어른거리는 것이 딱 봐도 귀해보였다.

    그것은 조금 전 한립이 품에서 꺼내 몸에 지니고 있으라고 내준 것이었다.

    “약간의 보호 작용 외에도 기운을 숨겨주고 서로의 위치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네. 예기치 못한 사고로 흩어져도 옥패가 있으면 서로를 찾을 수 있겠지.”

    그것은 무극패(無極牌)라는 물건으로 그가 천연성에서 고가에 매입한 보물들이었다. 사막을 떠나 작은 산위에 도착한 그가 신중을 기하는 마음으로 그것들을 지니고 있자고 제안했다.

    “저는 아직 다른 사람의 법기를 지닌 적이 없어서요. 한 형의 호의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뇌란이 어두운 얼굴로 단칼에 거절했고, 백벽도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에 한립도 굳이 강요하지 않고 옥패를 거둬 품에 다시 넣었다.

    “두 수사 모두 원하지 않는다니 되었네. 하지만 1층에서 이미 중계 요물을 만났으니 더욱 주의를 해야 하네. 마침 내게 은닉술을 펼치면서 빠르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보물이 있네.”

    “비행보물이라면 도움이 되겠습니다.”

    이번에는 뇌란도 미소 지으며 답했고, 백벽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한립이 저물탁을 문지르자 앞쪽은 좁고 뒤쪽은 넓은 황토색 비차(飛車)가 나타났다.

    7, 8장 크기라 세 사람이 타고도 남았다. 이것도 천연성 출발 전에 구입해둔 몇몇 비차들 중 하나였다.

    상황에 맞게 사용하기 위해 미리 구비해 둔 것이다.

    한립이 먼저 신형이 흐릿해지며 비차 안에 올라타자 나머지 두 사람도 뒤이어 올라탔다. 이후 그는 비차를 내리치며 현묘한 법결을 주입했다.

    우웅.

    그러자 우윳빛 보호막이 마차 전체를 둘렀다. 빛이 보호막을 타고 흐르다 점점 투명해져 마지막에는 그림자로 변했다.

    “한 형, 이런 보물이 있었으면 처음부터 사용했어도 되었을 텐데요.”

    인족의 비차는 비령족의 비행 보물들과는 다른 점이 많았고 한참 구경하던 백벽이 미소 지으며 물었다.

    “비차는 성능은 나쁘지 않으나 결점이 있네.”

    “어떤 결점이요?”

    뇌란이 궁금한지 끼어들었다.

    “은닉 금제를 발동하려면 고계 나무 속성 영석이 필요하고 유지하는 동안 드는 수량도 만만치 않지. 또한 속도와 은닉 면에서는 성능이 괜찮지만 방어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쉽게 훼손된다네. 그러니 길을 재촉해야하는 상황이 아니면 꼭 사용할 필요는 없는 물건이지.”

    그의 말이 끝나자 백벽과 뇌란은 빙긋 웃고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비차는 마치 유령처럼 극히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갔다.

    안에 탄 세 사람은 몰랐지만 그들과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녹색 안개가 움찔하며 멈추었다. 그리고 무언가 낮게 으르렁 거리며 속도를 높여 유성우처럼 쏘아져 나갔다.

    그때 지연 1층의 마지막 관문인 대협곡을 앞두고 일고여덟 명의 비령인들이 조심스럽게 날아가고 있었다. 무리의 우두머리는 짙은 피부의 축음자였고 나머지는 적융족 성자들이었다.

    대협곡을 따라 앞으로 갈수록 점점지하 깊숙이 들어갔다. 앞은 깜깜해 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기에 황천으로 향하는 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적융족 성자들은 두 눈에서 붉은 빛을 번득이며 어둠 속에서도 차분해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방에서 괴이한 울음소리가 들리고 거무튀튀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끽! 끽!

    그것은 뜻밖에도 자홍색 눈을 가진 기이한 박쥐 떼로 이상한 소리를 내며 적융족 일행을 덮쳤다. 맨 앞에서 날던 축음자가 그것을 보고 무표정하게 등 뒤의 날개를 털었다.

    그러자 수많은 깃털이 날아가 불화살로 변해 박쥐 떼를 관통했다.

    퍼펑!

    폭음과 함께 박쥐들은 단 한 마리도 예외도 없이 불덩이가 되어 추락했다. 적융족들은 속도를 늦추지 않고 그대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대로 대협곡을 따라 하루만 가면 안정적으로 지연 2층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  *  *

    주홍색 땅 위를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검은 그림자가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 끝이 번득이고 열댓 개의 빛덩이들이 날아들었다. 얼굴에 검은 문신이 있는 이들은 바로 비령족 제1의 지파로 불리는 칠월족성자들이 었다.

    무리의 가장 앞에는 오청이라는 여자아이가 날고 있었다. 그녀가 저 멀리 달아나는 검은 그림자를 보고 냉소했다.

    “오 사저, 금아수(金牙獸)가 달아난 방향이 저희가 가야 할 2층 입구와 거리가 있습니다. 더 이상 쫓지 않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 뒤를 쫓던 칠월족 성자 중 체격이 좋은 사내가 참다못해 입을 열었다.

    “뭐가 급한 것인가! 지연 1층에서 무리 생활을 하는 중계 요물 금아수를 만났는데 당연히 잡아야지. 설마 조금 늦게 간다고 우리가 시련에 실패하겠는가?”

    오청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아니라 명염과를 다른 지파가 먼저 찾아낼까 그러합니다.”

    체격 좋은 거한이 화들짝 놀라 변명했다.

    “정말 늦으면 다른 지파의 손에서 빼앗으면 그만 아닌가. 정 안 되면 지연 4층에 내려가 명염과를 대량으로 찾으면 되는 것이고. 시간을 들여 한 층 더 내려가면 그만인 것을!”

    오청이 서늘하게 웃자 거한은 그저 입을 벌리고 아무 말도 못했다. 이렇게 칠월족 일행은 검은 그림자를 쫓아 느긋하게 움직였다.

    * * *

    돌무지 위에서 남색 날개가 있고 피부에 비늘이 덮인 비령족 3명이 사슴 머리에 사람 몸을 한 흑암요물과 싸우고 있었다.

    요물은 전신에서 검은 기운을 내뿜으며 홀로 비령족 성자들을 상대하고 있었는데 전혀 밀리지 않고 갈수록 난폭해졌다. 포위를 하고 공격하는 비령족 성자들이 오히려 앓는 소리를 할 정도였다.

    ‘여긴 지연 1층일 뿐인데 3층에나 출현하는 녹면요(鹿面妖)가 어찌 여기에 있단 말인가!’

    요물이 그들의 피와 살을 노리고 있으니 그들이 원치 않아도 최선을 다해 싸울 수밖에 없었다. 이들 말고 1층에 있는 비령족 성자들도 대부분 예기치 못한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반대로 몇몇은 아주 순조롭게 2층 입구를 찾거나 아니면 적융족처럼 이미 2층 입구에 들어서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 한립은 천붕족과 적대적인 지파 성자들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가장 구석진 입구를 찾아가는 중이었다.

    비차의 은닉 금제가 쓸 만했던지 반나절 동안 마주친 요물의 수가 매우 적었다. 그들은 밀림 두 개와 구릉지대를 지나 드디어 지연 1층의 심처에 이를 수 있었다.

    이대로라면 하루 뒤에는 2층 입구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뇌란과 백벽은 기뻐했다. 하지만 수만 리를 가서 눈앞에 검은 지하 산맥이 펼쳐지자 비차가 멈추었다.

    “지도에 따르면 이곳은 평원이어야 할 텐데요. 어떻게 산맥이 있는 걸까요?'

    놀란 백벽이 길을 막고 있는 거대한 산을 보며 중얼거렸다. 뇌란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산맥을 바라보았다.

    산맥의 봉우리는 대부분 높고 커서 꼭대기가 지하세계 윗부분에 닿아있었다. 아무도 이 산맥이 얼마나 넓은지 그 뒤로 어떤 괴상한 것이 기다리고 있을지 몰랐다.

    한립이 갑자기 몸이 흐릿해져 비차에서 내렸고 지면에 내려 무언가를 생각했다. 그의 행동에 뇌란과 백벽은 의아했으나 곧 따라서 비차에서 내려 다가갔다.

    “주변 흔적으로 보아 이 산맥은 근백 년 사이에 나타난 것이고, 아마 누군가 법력의 힘으로 이동시킨 것 같군.”

    길게 한숨을 쉬며 한립이 천천히 말했다.

    “산을 옮겼다고요?”

    뇌란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고 백벽도 난색을 표했다.

    “산봉우리 하나가 아니라 이 산맥 전체를 말이네! 허나 그리 겁먹을 것은 없네. 지하 깊은 곳에 머무는 요왕이라도 아무 도움 없이 이런 신통을 부리기는 힘들 테니, 보물이나 진법의 힘을 빌려 행한 일이야. 그것도 아니라면 지연 아래에 진령급 요물이라도 있는 것이겠지.”

    “그렇군요.”

    백벽도 잠시 생각해보고는 일리가 있다고 여겼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해도 이상해요. 조금 전에는 사막이더니 이번에는 산맥이 불쑥 나타났잖아요. 지연 요물들이 이렇게 했다면 목적이 있지 않을까요?”

    “요물의 난이 발발하려는 조짐일수도 있고 다른 원인이 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우리가 상관할 일도 아니고 시련이 취소될 것도 아니라면 어서 3층으로 가서 명염과를 갖고 돌아가는 것이 급선무 아니겠는가.”

    뇌란의 근심스런 말에도 한립은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한 형 말씀대로입니다. 하지만 저 산맥을 지나려면 산봉우리 사이의 협소한 길로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양쪽으로 돌아가자니…….”

    백벽이 말을 맺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건 안돼요.”

    뇌란이 단호히 거부하고 이유를 덧붙였다.

    “지도 표식에 따르면 이 산맥의 한쪽은 지연풍(地淵風) 지대예요. 그곳의 바람은 이전과는 차원이 다르다고요. 굉장히 맹렬하고 극한의 한 기를 머금고 있어서 얼음덩어리가 될 거예요. 그래서 그곳은 1층에서도 유명한 금지구역이죠. 게다가 다른 쪽도 만만치 않아요.

    지연 1층에서 가장 건드려서는 안되는 흑연비의(黑淵飛蟻) 소굴이라 수만 마리의 날개 달린 개미 요충들이 산다고 해요. 저희 수행으로 무턱대고 들어가면 죽을 가능성이 5할은 될 거라고요.”

    “그렇다는 말은 반드시 이곳을 지나가야 한다는 것인가.”

    거무튀튀한 산맥을 바라보며 한립이 중얼거렸다.

    “음, 만일 이 지역을 크게 돌아간다면 다른 노선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적어도 7, 8일의 시간을 더 허비하겠죠. 명염과를 찾는 데도 불리해질 게 분명해요.”

    뇌란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러나 한립은 먼 산을 응시하며 침묵했고 백벽과 뇌란 역시 입을 다물어 모든 결정을 한립에게 넘겼다.

    “이 산맥은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하군! 만일 이곳을 통과하려면 어떤 위험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지. 위험을 뚫고 산맥을 지나도 법력 손실로 앞으로의 시련에 지장이 있을 수 있으니 조금 늦더라도 안전하게 2층으로 가는 게 좋겠네.

    또 며칠 일정이 늦어지면 오히려 우리를 노리는 다른 지파들이 우리의 노선을 파악하기 어려울 테지.

    그리고 이렇게 많은 성자들 중 소수만이 2층의 명염과를 찾을 수 있을 것이네. 우리는 어차피 바로 3층으로 가 명염과를 찾으려고 했으니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안전한 길을 택하지.”

    드디어 입을 연 그는 말을 마치자 마자 몸을 날려 비차 안으로 돌아갔다. 뇌란과 백벽이 그것을 보고 전음을 나누었고 함께 비차에 올랐다.

    “한 형, 조금 더 상의해 보시지요.

    이 산맥이 그렇게 위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백벽은 두 발이 비차에 닿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그도 한립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는 여겼지만 이곳에서 시간을 끄는 것이 싫었다.

    “더 이야기할 것 없네. 난 이 산맥으로는 들어가지 않을 것이니까.”

    한립은 백벽의 다음 말을 막고는 발끝으로 비차를 내리쳤다.

    슉!

    비차는 영기의 빛을 머금고 방향을 틀어 유성우처럼 쏘아져 나갔다. 그의 단호한 행동에 백벽은 탄식했고 뇌란은 입을 다물었다. 한립은 두성자의 탐탁지 않은 눈길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 그 누구보다 마음이 요동치는 것은 한립이었다.

    한립의 의식 일부는 영수탁 속의 제혼과 연결되어 있었는데 영수의 불안한 정서가 그대로 그에게 전해져 그의 가슴도 두근거렸다.

    산맥에 가까워지는 순간 체내의 명혼주가 발열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놀란 그가 바로 영수탁 속의 제혼을 확인하니 영수가 좌불안석하며 낮게 으르렁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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