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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853화 (610/2,000)

853화. 음주봉(陰蛛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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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한립을 비롯한 천붕족 성자들은 땅에서 십여 장 떨어져 저공비행을 하고 있었다. 위쪽의 회색 안개는 그들 머리 위에서 겨우 이십여 장 떨어져 끝없이 이어졌기에 보는 이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더욱 이상한 것은 협소한 공간에 쉼 없이 음산한 바람이 불어온다는 것이었다. 물론 화신급인 한립 일행은 보호막으로 바람을 막아냈다.

그들보다 이전에 출발한 성자들이 꽤 많았는데 대부분이 다른 길을 택했고, 어떤 이들은 일부러 멀리 돌아가는 길을 택하기도 했다. 지연에 들어가기도 전에 다른 지파의 성자들을 마주쳐 충돌이 일어날 것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한립도 비슷했다. 그는 백여 리를 날아가고 백벽과 뇌란을 데리고 원래의 노선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이 길을 돌아가고 일부러 속도를 늦추었는데도 1시진 후에는 목표 지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자 눈앞의 풍경이 달라졌다.

낮게 드리웠던 안개는 높이 솟아오르고 음산한 바람이 맹렬해져 그 색도 흑회색에 가까웠다. 바람이 몸에 닿으면 순간적으로 얇은 검은 서리가 맺힐 정도였다.

그러나 검은 바람도 한립 일행에겐 위협이 되지 않았기에 각각 보호 영기를 끌어올려 조금 더 두껍게 만들었다.

한식경 후, 검은 괴풍(怪風)을 벗어난 그들은 눈앞이 밝아지며 놀라운 곳에 이르렀다. 얼마나 넓은지 파악할 수 없는 공간에 검은 괴풍이 불었고 하늘 위에는 여전히 회색 안개가 드리워져 있었다.

다른 점은 안개가 천여 장 높이에서 격렬하게 꿈틀거려 다른 곳의 안개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립 등의 시선을 끈 것은 다른 곳에 있었다.

검은 대지가 어느새 사라지고 깊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심연(深淵)이 나타났는데 수시로 기이한 검은 바람을 내뿜고 있었다. 거대한 구덩이는 흑색 안개로 뒤덮여 있어 규모를 헤아릴 수 없었다.

그들은 지금 심연의 가장자리에 떠서 아주 작은 생물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곳이 지연의 문인가 보군. 조심해서 내려가지. 지연에 들어서자마자 요물들을 마주칠 가능성은 적으나 주의를 기울여서 나쁠 것은 없으니까 말이야.”

한립은 오래 고민하지 않고 날개를 펄럭여 심연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가 안개 속으로 사라지자 백벽과 뇌란도 굳은 얼굴로 바로 지연 속으로 향했다.

한립은 몸에서 푸른빛을 반짝이며 사방에 일고여덟 개의 월광석을 띄워 주변을 밝혔다.

‘흠.’

주위에서 요동치는 안개를 보고 있자니 그는 탄식이 저절로 났다.

지연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명청령안을 사용하지 않아도 대충 주변이 보였는데 수천 장을 내려가니 안개가 짙어져 주위가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 지연에 들어섰지만 한립의 예상대로 요물을 마주치지는 않았다. 얼마나 오래 내려갔을까. 안개가 점차 옅어지고 검은 바람도 소리 없이 잦아들었다.

한립 일행은 드디어 지연 1층에 다다랐다는 것을 알아챘다. 일다경 후 눈을 뜬 한립은 달라진 풍경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었다.

어두운 누런색의 대지에 알 수 없는 거대 수목들이 울창하게 숲을 이뤘고, 괴이한 형태의 회색 조류가 그 주변을 낮게 날며 배회하고 있었다.

“이곳이 지연이군요.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는 않는데요?”

안개에서 벗어나 땅을 확인한 백벽이 중얼거렸다.

“지연 1층은 이곳에서 위험성이 가장 약한 곳입니다. 저계 요물을 포함해 수많은 짐승들이 살아가고 있죠! 다만 이런 짐승들은 전부 성질이 괴팍하고 육식을 즐기는 맹수라 강력함이 중계 요물 못지않다고 하네요.”

뇌란이 알고 있는 바를 설명해주었다. 그러나 한립은 무표정한 얼굴로 주변 천 리를 의식으로 훑으며 강력한 존재나 다른 지파 성자들을 경계했다.

‘보아하니 이곳은 아직 안전한 것 같구나.’

“기억대로라면 오랫동안 허공에 남아 있으면 성가신 일이 생길 테니 내려가세.”

한립이 분부를 내리고 먼저 아래쪽으로 향했다. 뇌란, 백벽이 자연히 그 말을 따랐다.

키학!

회색 괴조(怪鳥)들이 그들을 발견하고 주저 없이 돌진해왔다. 괴조들은 부리가 두껍고 긴데 그 안에 날카로운 송곳니가 가득했고 몸은 기이한 회색 피부로 뒤덮여 있었다.

또한 머리에는 굽은 뿔도 하나 달려있었다.

그가 코웃음을 치며 손가락을 튕겼다.

푸푹푹!

금색 검기들이 번득이며 날아가 괴조들을 꿰뚫었고 피가 비처럼 내리며 괴조들이 추락했다.

괴조 사체들이 수풀 속으로 떨어진 순간,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것들이 들리고 아래쪽이 소란스러워졌다.

짐승들이 서로 싸우는 것 같았다.

한립은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잠시 바라보다 지면에서 백여 장을 남기고 선회해 방향을 정했다.

“본 족에서 시련에 참가했던 성자의 설명에 따르면 1층에서 2층으로 향하는 입구는 안전한 곳이 열덧 곳에 불과하다고 들었네. 1층에서 명염과를 얻을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 어서 2층으로 가세. 우리가 갈 곳은 그중 가장 외진 곳 중 하나로 시간은 걸리겠지만 다른 지파의 매복은 피할 수 있을 테지.”

차분한 한립의 설명에 백벽은 약간 불만스러운 듯 미간을 좁혔지만 입밖으로 내지 않았고 뇌란은 아무 상관 없다는 얼굴이었다.

천붕족이 그로 하여금 두 성자를 시련에 성공하도록 돕는 것이었으니 당연히 그가 이번 원정에 우두머리이자 결정권자였다.

게다가 두 성자의 수행이 한립의 수행에 훨씬 못 미치니 불만이 있어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2층 입구 쪽으로 저공비행을 했다.

듣기로 지연의 세계는 각 층이 이전 층보다 광활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1층 면적도 좁은 것이 아니라서 2층 입구에 도착할 때까지 4, 5일은 걸릴 것으로 짐작되었다.

첫째 날은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빽빽한 밀림 지대를 비행하며 눈치없는 조류형 짐승 몇 마리를 마주친 것 말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날아가던 세 사람은 갑자기 머리 위가 어두워지고 주위가 잿빛으로 변하는 것을 느꼈다.

놀란 한립이 재빨리 고개를 들었다. 한립은 이상한 빛을 내뿜던 안개가 사라지고 만 장 높이의 거무튀튀한 석벽이 나타나 종유석처럼 생긴 석순(石筍)이 드리운 것을 발견했다.

멀리서 보니 이끼류와 덩굴 식물들이 석순을 감고 자라나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들은 이제 겨우 지연의 경계지역을 벗어나 정식으로 1층 지하세계에 들어선 것이다.

지면의 수목들은 오랜 세월 어둠속에서 자라서인지 스스로 빛을 발했고 이름 모를 광물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깜깜한 지하세계에서도 어렴풋이 사물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곳은 가면 갈수록 음산하고 어슴푸레해졌다. 거기에 검은 안개와 서늘한 바람이 밀려들어 모골이 송연해졌다.

그런데 그들이 어둠 속으로 진입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의식이 제한되었다. 이제 의식으로 살필 수 있는 범위가 고작 수십 장 밖에 되지 않았다.

대연결을 수행해 동급 수사들보다 훨씬 의식이 강한 그도 그러했으니 백벽과 뇌란은 의식을 몇 장 밖으로 내보내는 것도 어려울 것이었다. 이에 한립이 의식으로 뒤쪽을 훑자 두명의 성자가 난색을 표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도 당황하는 이는 없었다. 의식이 제한된다는 것은 천붕족 성성을 떠나기 전에 이미 들은 바 있었다. 그들뿐 아니라 지연에 서식하는 흑암요물들도 이런 제약을 받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몇 시진을 날아가던 그가 갑자기 미간을 좁히고 한 손을 들어 전방의 월광석들을 가리켰다.

퍼퍼펑!

월광석들이 폭발해 사라지자 한립 역시 푸른 기운을 거두었다. 그러자 주변이 모호해지고 연달아 검은 바람이 불어와 가슴이 서늘해졌다.

백벽과 뇌란도 무의식중에 그를 따라 둔광을 멈추었지만 무슨 일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뇌란이 이상하다는 얼굴로 말을 하려는데, 주변에서 미약하게 응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소리가 점점 커지며 사방팔방에서 무수히 많은 녹색 빛이 빠르게 밀려들었다.

‘음주봉 (陰蛛蜂).’

흠칫 놀란 뇌란이 무언가의 이름을 언급했다. 그 말을 들은 백벽의 표정도 달라졌다.

“아마 저계 벌 요충들이 맞을 것이네. 지연의 저계 요물들 중 상대하기 성가신 종류지. 이동하는 발광물체를 공격하니까.”

한립이 차분히 답했지만 뇌란과 백벽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녹색 빛덩이 안에는 짙푸른 녹색에 거미의 머리와 벌침이 달린 괴이한 모양의 벌이었다. 빼곡하게 달려드는 모양새로 보아 못해도 만 마리는 되는것 같았다.

백벽과 뇌란은 표정이 진지해졌다.

겨우 벌 요수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많은 수의 음주봉을 전부 몰살하면서 허비할 법력에 대한 걱정이었다.

아직 1층이고 지연에 진입한지 겨우 이틀째인데 벌써 법력을 낭비하면 앞으로 큰일이었다. 그들은 어쩔 수 없다는 심정으로 흉흉한 기세의 벌들을 상대할 준비를 했다.

한 명은 날개를 펼쳐 가느다란 은색 뇌전 천여 개를 번득였고, 다른 한 명은 수결을 맺고 전신에 금빛을 반짝였다. 그러나 한립이 힐끗 그들을 보더니 곧바로 입을 벌려 은색 화염 구슬을 분출했다.

펑!

불구슬이 은색 불새로 변해 두 날개를 펼치더니 허공에서 스스로 폭발했다. 그러더니 백여 개의 은색 불꽃이 도처로 튕겨나갔다.

잠시 후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은색 불꽃이 어른거리며 근처의 녹색 빛덩이를 재로 만들어 버렸다.

은색 불꽃 백여 개가 요동치는 통에 주위에서 날아들던 녹색 빛덩이들은 한립 일행에게 조금도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다.

이 모습에 백벽과 뇌란은 깜짝 놀랐다. 음주봉이 지연 요물 중 상대하기 까다로운 것은 쉽게 죽일 수 없어서였다. 흑암예기가 오랜 세월 응결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평범한 공격으로는 죽이기 어려웠다.

일격에 몸을 바스러트리지 못하면 흑암의 기운을 흡수해 바로 회복했다. 물론 흑암으로 가득 찬 지연에 서만 통하는 능력이었다. 사실 지연 요물들은 지연 속에서나 능력을 발휘하지 밖으로 나오면 허약해지는 것들이 많았다.

그렇기에 지연 입구를 비령족들이 봉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연 요물들에게 이런 약점이 없었다면 겨우 한 종족의 힘으로 지연 입구를 지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서령천화는 전혀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지만 음주봉에 닿을 때마다 그것을 재로 만들었고, 벌들이 품고 있는 흑암의 기운까지 깡그리 흡수했다. 그러니 음주봉들이 다시 회복할 가능성은 없었다.

또한 서령천화는 본래 약간의 영성을 지녀 한립이 의식으로 부리지 않아도 알아서 음주봉들을 멸하고 다녔다. 이렇게 한립이 뒷짐을 쥐고 잠시 구경하는 동안 만 마리가 넘던 음주봉들은 서령천화에 의해 전부 사라졌다.

이후 그는 대충 손짓해 은색 불꽃을 하나로 모았고 다시 주먹만 한 불새로 변해 한립의 몸속으로 종적을 감추었다.

“가세!”

한립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먼저 튀어나갔다.

뇌란과 백벽은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묵묵히 같은 방향으로 향했다.

그들은 하루 밤낮을 날아간 끝에 겨우 밀림 지대를 벗어났다. 그런데 이번에는 은회색의 기괴한 사막이 펼쳐졌다.

아무리 먼 곳을 바라보아도 모래알이 서늘하게 반짝이는 것밖에 보이지 않아 황량한 분위기를 풍겼다.

“기억이 잘못된 건가? 지도상에는 분명 지하를 흐르는 거대한 강이 있었는데. 어찌된 일이지?”

한립이 이상하다는 얼굴로 멈추어 진법 원반을 확인했다.

“한 형 말씀이 맞습니다. 지도상에는 분명 강이 흐르던 곳이었습니다.”

백벽과 뇌란도 지도를 확인해 보고 의문을 드러냈다.

“그 사이 강이 말라붙었거나 물길이 지하 2층으로 유실된 걸까요?”

“그건 아닌 것 같네. 물이 말라붙었다고 바로 사막이 나타나는 것도 우스운 일 아닌가.”

뇌란이 눈을 번득이며 말하자 한립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한 형 생각에는 어떻게 된 것 같습니까?”

턱을 쓰다듬던 백벽이 웃으며 물었다.

“나도 모르겠네. 그러나 어차피 이곳에 지형을 연구하러 온 것이 아니니 길이나 서두르지. 하지만 사막에 진입하면 더욱 조심해야 하네.”

“맞는 말씀이십니다.”

백벽이 빙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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