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850화 (607/2,000)

850화. 탐색

*

한립의 태도에 그녀가 두 손으로 수결을 맺어 온몸에서 붉은 기운을 터트렸다. 그러자 붉은 화염 구슬들이 도처에 떠올라 빛의 장막 절반을 뒤덮었다.

이에 교기장 주변 온도가 급상승했고 수행이 낮은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열댓 걸음 물러나야 했다. 한립이 그것을 보고 눈썹을 끌어올렸지만 역시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에 뇌란은 두 날개를 털며 속으로 법결을 발동했다.

쿠르릉!

뇌성이 울리자 주변의 뇌전들이 배로 굵어져 멀리서 보면 은색 거대구렁이가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굵직한 뇌전은 바로 무수히 가는 은색 실로 변해 튀어 올랐고 은색실들이 번쩍일 때마다 불구슬이 하나씩 뚫렸다.

콰쾅! 쿠콰쾅!

별안간 끝없이 이어지는 천둥소리에 수백 개의 화염 구슬이 폭발해 불꽃이 흩날렸다. 뇌전을 실로 부리는 신통에 한립도 움찔했고 아래서 구경하던 이들도 소란스러워졌다.

그 모습에 반대편에 있던 홍사도 잠시 놀란 듯했으나 곧 소매를 털어 붉은 기운을 퍼트렸다. 춤추듯 날아간 붉은 기운 속에서 불꽃들이 안개로 퍼져 홍사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 거대한 붉은 구름이 순식간에 홍사를 감췄다. 불길이 구름 중심에서 출렁이다 열댓 장 크기의 거대 불구슬로 변했다.

불구슬이 빙글빙글 돌며 엄청난 소리와 함께 뇌란을 향해 날아들었다.

뇌란은 미미하게 안색이 달라져 한 손을 들었다. 그러자 은색 빛이 폭발하며 그녀의 팔뚝으로 수많은 은색 뇌전이 하나로 뭉쳐졌다.

그리고 잠시 후 거대 뇌전이 팔뚝을 벗어나 날아드는 거대 불구슬로 날아갔다.

굵은 은색 뇌전이 거대 불구슬로 날아들자 뜻밖에도 뇌전이 마치 흡수당하는 것처럼 불구슬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뇌란이 놀랐을 때는 이미 불구슬은 그녀의 코앞에 와있었다. 그녀는 순간 멈칫하다 신형을 뒤로 물리고 두 날개로 온몸을 감쌌다.

그와 동시에 뇌전의 빛이 나타나 은백색 붕새의 환영을 불러냈다. 전신에서 은색 뇌전이 번뜩이고 금색 호리병이 달린 기괴한 목줄을 매고 있었다. 결국 그녀는 변신술을 이용하기로 결심한 듯했다.

거대 불구슬이 붕새가 나타난 것을 보고 움직임을 멈추었다.

크릉.

둔중한 소리와 함께 불구슬의 모양이 순식간에 새빨간 불새로 변했다.

불새는 붕새보다 몇 배는 더 컸지만 붕새는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몸을 키워 불새를 따라잡고 뇌전의 빛을 휘둘러 달려들었다.

이에 홍사가 변한 불새도 용맹하게 불길을 키우고 날카로운 발톱으로 허공을 갈라 붉은 빛줄기를 뿜었다.

두 거대 새가 날개를 펼치자 빛의 장막 안이 가득 차며 둘 사이의 싸움은 더욱 격렬해졌다.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초계 영장급인 뇌란은 붕새로 변신한 후에는 근접전을 펼치면서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발톱과 온몸의 뇌전이 점차 은백색에서 보랏빛으로 변해가며 위력이 강해졌다.

한립은 명청령안으로 붕새를 보며 묘한 얼굴을 했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그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보라색 뇌전은 붕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목에 걸린 작은 금색 호리병에서 조금씩 분사되는 것이었다. 이 뇌전들이 붕새 표면의 은색 뇌전과 만나 융합되었다.

홍사는 계속해서 밀리자 속으로 분노가 차올랐다. 상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특수한 방법을 쓰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그때 귓가에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그녀는 주저하는 기색없이 즉시 날개를 펼쳐 수련해온 살초를 펼쳤다.

푸푹.

불새의 머리 위로 기이한 깃털 하나가 날아올라 또 다른 불새 한 마리로 변한 것이다. 입을 벌려 불구슬을 뱉어내며 전투에 합류했다. 이에 조금 전까지 우위를 점하던 붕새가 두 마리 불새의 연합에 분노해 울부짖었다.

화염과 뇌전이 격전을 벌이고 빛의 장막 안에 굉음이 울릴 때마다 주변공기가 희미하게 왜곡되었다. 이 때문에 은색 붕새와 두 마리 불새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구경꾼들은 은색 불새가 위기에 처해 곧 중상을 입고 추락할거라고 예상했다. 그때 묵묵히 쳐다보던 한립이 돌연 날개를 펼치고 천둥소리를 내며 청백색 뇌전 속으로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자 군중 속에 있던 검은 그림자 역시 자리에서 사라졌다.

잠시 후, 열댓 장 길이의 금빛 검이 나타나 화염과 뇌전 속에 얽혀 싸우던 이들을 향해 쇄도했다. 금빛 검은 도착하기도 전에 하얀 잔흔을 남겼기에 아래에서 구경하던 이들도 파공음을 느끼며 스산해졌다.

화염과 뇌전은 하얀 흔적과 접촉한 순간 진흙처럼 흩어졌다.

은색 붕새와 불새는 금빛이 번뜩인 순간 날카로운 무언가가 머리를 내려치는 것이 너무 빨라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

세 마리의 새는 기겁하며 싸움이고 뭐고 당장 신통을 거둬 뒤로 물러났다. 거대 검이 양측을 가르고 하얀 잔흔 일부가 남아 대량의 힘을 폭발적으로 내뿜었다.

광풍이 불고 천지원기가 하얀 잔흔속으로 결집돼 마치 공간이 잘려나간 후의 후폭풍 같았다. 이에 바깥에서 구경하던 이들이 소란스러워졌고 붕새로 변신했던 소녀도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 놀라워했다.

“저 여인은 상대가 되지 않으니 전투는 그만둬야겠습니다.”

차분한 목소리가 갑작스레 등 뒤에서 울렸다. 그 소리에 뇌란이 다급히 고개를 돌리자 그 뒤에 청삼을 입은 청년이 서 있었다.

“한 형께서 나서 주신 것이로군요!”

금색 검기의 위력에 그녀는 영사급 존재가 나선 줄 알았다. 검기가 만들어낸 하얀 흔적이 사라져 뭉쳤던 천지원기도 흩어지고 교기장이 고요해졌다.

그러나 한립은 여인의 말에 답하지 않고 반대쪽 상대를 응시했다. 이에 뇌란이 움찔해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홍사 역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고 웃는 듯 마는 듯한 애매한 얼굴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 뒤로 어느새 붉은 장삼을 입은 사나운 인상의 청년이 무표정하게 서있었다.

청년은 바로 그녀가 가장 경계하던 축음자였다. 뇌란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한 형께선 해외에서 수련하다 얼마 전에 천붕족으로 돌아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수사의 신통이 무척 궁금한데 가르침을 청해도 되겠습니까?”

축음자는 입꼬리를 꿈틀하며 물었다. 조금 전 한립의 한 수에 마음이 무거워졌던 것이다.

예상대로 상대의 신통이 대단했다.

하지만 그의 실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도발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나타나자 구경하던 이들 중 다수가 그를 알아보았다. 그의 도전적인 언사에 다들 놀라면서도 희색을 드러냈다.

강력한 신통을 지닌 동배간의 싸움을 구경하는 것은 쉽게 찾아오는 기회가 아니었다. 한 명은 위명이 높았고 다른 한쪽은 고계 영장이었으니 안목을 높일 기회였다.

축음자의 말에 미간을 좁힌 뇌란이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아차렸다. 이번 일은 그녀를 노린 것이 아니라 ‘한 사형’을 노린 것이었다. 그녀는 겨우 미끼에 불과했다.

“저는 귀하와 손속을 겨루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미소를 지은 한립이 유유히 답했다.

“하하, 이미 금제 속에 들어섰으니 마음대로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한 수를 받아 보시지요!”

청년이 손을 들어 올리자 붉은 빛이 번뜩였고 새빨간 거대 발톱이 나타나 수정처럼 반짝였다. 한립이 대답하기도 전에 청년의 거대 발톱이 허공을 할퀴었다.

휘휙!

폭발적인 파공음이 들리고 붉은 빛줄기 다섯 개가 번뜩이며 날아가 사라졌다. 한립은 당황하지 않고 똑같이 한 손을 뻗어 손가락으로 허공을 막았다. 그러자 즉시 그의 열댓 장 앞에서 파문이 일고 빛줄기 다섯 개가 나타났다.

한립은 다섯 개의 붉은 빛줄기를 보고 안색이 변했다. 본래 한 척 정도였던 붉은 빛줄기가 한 장 길이로 커져 있었고 주변 기운을 흡입해 아직도 미친 듯이 몸을 불리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빛줄기가 가까이 오기도 전에 엄청난 영기의 압력이 느껴졌다. 수행이 낮은 수사였다면 빛줄기가 떨어지기도 전에 압도당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에 한립이 새까만 다섯 손가락에서 영기의 빛을 뿜자 검은 산봉우리가 나타나 순식간에 열댓 장 크기로 커졌다. 검은 산봉우리는 앞을 막으며 그를 빈틈없이 보호했다.

퍼퍼펑!

붉은빛의 빛줄기 다섯 개가 작은 산봉우리에 부딪쳤다. 그러자 극심한 열기가 피어올라 마치 솥에 넣고 삶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검은 산봉우리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허!”

축음자가 이 모습에 조금 놀랐다.

그러나 의식으로 원자신산을 훑은 한립은 안색이 굳었다.

팟.

그의 한 손이 원자신산 쪽으로 날아들었고 동시에 작은 산봉우리가 빙글 돌아 공격당한 면이 한립 쪽으로 돌아갔다.

거무튀튀하던 산봉우리 표면에 한 촌 깊이의 베인 흔적이 남았고 약간 녹아내린 듯했다. 코웃음 소리가 들리고 그의 검은 손바닥이 번개처럼 산봉우리에 닿았다.

그러자 작은 산 표면에 검은 빛이 흐르고 발톱에 할퀴어진 부분이 처음처럼 회복되었다.

“기왕 축 형께서 그렇게 가르침을 받고 싶다면 저도 도리가 없겠습니다.”

한립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라져 작은 산봉우리 옆에서 나타났다. 곧 그의 등 뒤로 푸른 붕새의 허상이 나타났고 쿠르릉 거리는 괴성과 함께 푸른 바람기둥이 엄청난 기세로 몰아쳤다.

푸른 붕새는 축음자를 보며 두 날개를 펄럭였다. 그러자 주변 바람기둥들이 무수히 많은 바람의 칼날로 변해 쏘아져 나갔다. 빛의 장막 안이 휙휙 거리는 파공음과 파란빛들로 가득 찼다.

축음자는 한립이 처음부터 강하게 나오자 표정이 굳었다. 그러나 그도 비령족 성자들 사이에서 명성이 자자한 인물이었다. 그는 깊게 심호흡을 하며 두 날개를 몇 배로 키워 펄럭였다.

붉은 빛이 크게 번지고 불꽃이 주위로 빼곡하게 떠올랐다. 이어 축음자가 수결을 맺어 법결을 발동하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불화살이 동시에 그를 향해 쏘아져나갔다.

바람의 칼날에 결코 뒤지지 않은 공격이었다. 순식간에 하늘이 양쪽으로 나뉘어 한쪽은 푸른빛 속에 칼날들이, 다른 쪽은 붉은빛 속에 화살들이 가득했다.

쿠콰콰콰쾅!

그러나 두 사람이 접촉하는 곳에서 푸른빛과 붉은 빛이 분분히 터져나갔고 어느 쪽도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이에 한립이 법결을 바꾸자 소매속에서 천둥소리가 울리며 금빛 뇌전 두 줄기가 튀어나가 더 큰 금색뇌전 교룡으로 변했다.

뇌전 교룡은 한립의 의식에 따라 머리부터 꼬리까지 바르르 떨면서 사라져 수십 장을 넘어 축음자 코앞에서 나타났다.

꽈광!

교룡의 속도가 극히 빨라 마치 순간이동을 한 것처럼 나타나자 축음자는 화들짝 놀랐다. 그는 고민할 새도 없이 곧바로 입을 벌려 새빨간 구슬을 분출했다.

쿵!

구슬은 뇌전 교룡과 충돌해 엄청난 빛을 터트렸고 이에 주변 영기가 용솟음치며 하늘을 뚫을 듯한 불기둥을 만들어냈다. 족히 직경 2, 3장은 될 법한 불기둥은 중간에 금빛 실을 품고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 기운에 축음자도 몇 걸음 뒤로 물러나야 했다. 이에 서둘러 한립을 살핀 그는 움찔하며 안색이 급변했다.

‘이런!’

허공이 텅 비어 있었고 한립이 뇌란을 데리고 유유히 빛의 장막을 벗어나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축음자가 분노하며 한 손으로 그를 가리켰다.

피육!

붉은 실이 허공을 갈랐다. 그러나 상대의 행동을 주시하며 미리 대비하고 있던 한립 역시 당황하지 않고 손가락을 뻗었다. 붉은 실의 화령사가 곧바로 튕겨 나갔다.

두 개의 붉은 실은 중간에서 한 치의 오차 없이 격돌했다. 그 결과 한립의 붉은 실은 앞부분이 절반 정도 잘려나갔고 축음자의 붉은 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순간 한립과 뇌란은 이미 빛의 장막 밖으로 벗어나 군중속으로 들어갔다. 이에 구경하던 이들이 놀라 비켜서며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한 형, 이렇게 달아나면 명예가 실추될 텐데 두렵지도 않으십니까?”

축음자가 눈앞에서 그를 놓치고 열받아 소리쳤다.

“수사도 단시간 내로 승부를 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 것입니다. 저는 중책을 맡고 있어 더는 축 형과 겨를 수 없으니 여기까지만 하시지요.”

한립이 축음자를 돌아보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리고 날개를 펼쳐 날아올랐고, 그 뒤를 뇌란이 조용히 뒤따랐다.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