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8화. 옥황정(玉皇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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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는 굉장히 민첩해서 발톱을 휘젓고 부리로 쪼아댈 때마다 휙휙 파공음이 들렸다. 그러나 머리에 뿔이 달리고 날개가 넷이나 되는 괴조는 다채로운 기운에 숨어 상대의 어떤 공격도 허용하지 않았다.

이에 두루미가 분노해 수십 장 거리에서 날개를 펄럭였다. 그러자 수십 개의 기다란 깃털이 날카로운 칼날로 변해 앞 다퉈 다채로운 기운 속으로 날아들었다.

칼날의 공격에 다채로운 공격이 흩어질 것처럼 진동했다.

끼학!

두루미가 기뻐하며 다시 깃털을 공격하려는데 괴조가 날카로운 괴성을 지르며 입에서 노란 바람을 분출했다. 이에 날아들던 칼날들이 휘청거리다 허공에서 빙빙 돌며 통제를 잃고 말았다.

두루미가 깜짝 놀라 똑같이 입을 벌려 우윳빛 빛기둥을 방출했다. 괴조가 보라색 눈을 번뜩였고 검은 뿔에서 붉은 빛과 함께 붉은 빛기둥을 날렸다.

쿠콰쾅!

굉음을 내며 두 빛기둥이 중간에서 부딪쳐 사라졌다.

“순 형, 다른 신통이 있다면 어서 보이시지요. 아니라면 제가 공격하겠습니다.”

“흥, 각취족(角鷲族) 신통이라 해 봐야 뻔하지 뭐가 더 있단 말입니까.”

괴조의 말에 두루미가 냉랭히 쏘아 붙였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제가 새로 익힌 신통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괴조가 거침없이 말하며 네 날개를 동시에 펄럭였고 빛 속에서 커다랗고 고풍스런 종을 만들어냈다.

“저건!”

그것을 본 구경꾼들중 상당수가 놀라 뒤로 물러났고, 몇몇 수행이 높은 이들만이 자리를 지켰다.

댕-

노란 종이 낮은 종소리를 방출하자 그 소리를 들은 이들은 머리가 멍해졌고 행동에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바로 앞에서 공격당한 두루미는 입 한 번 달싹이지 못하고 그대로 허공에서 떨어져 내렸다.

동시에 두루미 몸에서 하얀빛이 반짝이고 서른 살 가량의 하얀 장포를 입은 비령족 사내로 변했다. 군중 속에서 누군가 급히 날아올라 사내를 받아들고 땅에 착지했다.

그리고 노란 종이 어른거리다 미색 장포를 입은 청년으로 변해 포권을 취했다.

“인정하시지요.”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행의 품에서 벗어난 두루미 사내가 난색을 표하며 하늘 위의 미색 장포 청년을 올려다보았다.

두루미 사내와 그의 일행은 얼굴은 인족과 흡사했지만 귀가 뾰족하고 두개골 위로 둥글게 붉은 혹이 나있었다.

그리고 괴조였던 미색 장포 사내는 이마에 작은 검은 뿔이 솟아 있었고 입술 밖으로 몇 촌 가량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있었다.

또한 그들을 둘러싼 백여 명의 비령족 인물들도 대부분 인족과는 어딘가 달랐다.

“각취족의 천종항마(天鐘降魔) 신통의 위력이 대단합니다. 많은 가르침 받았습니다.”

패배한 사내가 달갑지 않은지 예의를 차리고는 씩씩대며 군중 속으로 돌아갔다.

“또 다른 분 있으십니까?”

미색 장포 청년이 당당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비령족 무리가 웅성거렸으나 아무도 나서지는 않았다. 청년이 그것을 보고 냉소를 머금었다. 그런데 갑자기 멀리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세요. 가장 서쪽에 있는 오광족, 천붕족 그리고 적융족 성자들이 오고 있습니다.”

그 말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더욱 커지며 일제히 몸을 돌려 먼 하늘을 살폈다. 허공의 미색 장포 사내가 ‘천붕족’이라는 말에 표정이 미세하게 변했고 조용히 땅으로 내려섰다.

산봉우리 밖에서 다양한 모습을 가진 거대 새들 수십 마리와 새빨간 날개를 가진 전갈 한 마리가 나란히 다가오고 있었다.

거대 새 중 몇 마리는 온몸이 새하얀 색이었는데 바로 천붕족 성성에서 출발한 무리였다. 천붕족 일행은 세 명의 성자 외에도 대장로 금열, 석 장로도 함께였다.

그들은 지금 다른 족인들과 함께였는데 하나는 보라색 머리에 붉은 피부를 지닌 적융족이었고, 나머지는 작은 날개에 화려한 복색을 입은 오광족이었다.

그들은 겨우 다섯 명인 천붕족과는 달리 인원수가 많았다.

“금 장로님, 옥황정(玉皇頂)의 장로들께서 우리가 도착한 것을 아셨나 봅니다. 환영하는 영염(靈焰)을 방출하셨어요.”

화려한 복장을 한 젊은 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앞을 보니 거대한 산봉우리 상공에 오색찬란한 화염이 치솟아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처음 보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다. 시간이 빨리 흐르기는 합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또 3백년이 흐르다니요! 축 형께서는 다시 이곳에 온 감상이 어떠십니까?”

금열이 고개를 돌려 또 다른 붉은 피부 노인에게 물었다.

“감상이랄 것이 있나요! 수련하여 진령급이 되거나 선계로 오르지 못 하면 적게는 수천 년, 많게는 수만 년 내로 다들 먼지로 돌아갈 몸 아닙니까. 각 종족의 흥망성쇠도 이와 같고요. 혹시 제가 며칠 전 말씀 드린 것은 고려해 보셨습니까?”

노인이 무표정하게 반문했다.

“저희 천붕족이 이전에 비해 약소해진 것은 사실이나 상고 시대부터 지금까지 가장 오래 유지 되어왔고 또 유구한 역사를 지닌 지파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어찌 제 대에서 전승을 포기하고 다른 지파에 들어가겠습니까. 축 형께서 해주신 말씀은 감사하지만 거절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금열은 눈을 번뜩이며 담담히 답을 주었다.

“그렇습니까? 제 기억대로라면 상고 시대 때 석 장로께서 속했던 오령족(烏翎族)도 귀 족이 가장 융성했을 때 집어삼킨 것 아니었습니까? 이제 천붕족이 쇠하였으니 다른 강력한 종족으로 들어가고, 그 자리는 다른 종족에게 내주는 것이 도리가 아닌가 합니다.”

축 노인이 냉랭히 미소 지었다.

“오령족의 일과 저희를 비교하실 수는 없지요. 당시 오령족은 성주를 잃고 강적을 앞에 두고 있었던 터라 먼저 우리 천붕족으로 들어올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본 족이 강요한 일이 아니란 뜻입니다.”

금열이 차분히 맞받아쳤다.

“흥, 그렇게 오래 된 일인데 이제 와 누가 알겠습니까. 아무튼 본 족의 호의를 거절했으니 이번 지연 시련에서 누가 통과하는 지 유심히 지켜보겠습니다. 아무도 통과하지 못 한다면 연합 장로회에서 강제로 제명당한다 해도 원망하지 마시고요. 그리고 우리 적융족 말고도 천붕족에 눈독 들이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기억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축 노인이 간사한 웃음을 흘렸다.

“축 형, 적융족은 이미 비령족 72 개 지파 중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입니다. 굳이 천붕족을 압박해 합병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건 구월족(九越族)을 압도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는 뜻인지요?”

미부인이 곱게 웃었다.

“추 부인, 그런 말씀 함부로 하지 마십시오. 본 장로는 구월족을 상대로 그런 불경스런 이야기를 한 일이 없어요.”

축 노인이 미부인의 말을 듣고 안색이 변해 서둘러 부인했다. 이에 미부인이 무어라 말하려는데 거대한 산봉우리에서 풍악이 울리고 대량의 영기의 기운이 밀려들었다.

이야기를 나누던 이들은 즉시 입을 다물고 둔광을 멈추었다. 그러자 별안간 영기의 기운 속에서 다양한 복색을 한 인물들이 나타났다.

“장로님들을 뵙습니다.”

금월과 축 노인 그리고 추 부인이 마중 나온 10명의 인물들을 보고, 타고 온 영수에서 내려 예를 올렸다.

“그리 정중히 인사할 것 없습니다. 여러분도 언제고 연합 장로회의 일원이 될 텐데요. 다른 장로들은 전부 옥황정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지팡이를 든 노부인이 빙그레 웃으며 그들을 맞이했다.

“저희 세 종족이 가장 늦은 것입니까?”

금열이 예의 바르게 물었다.

“가장 마지막은 아닙니다. 북단에 위치한 귀면족(鬼面族)과 독구족(毒鳩族)은 급히 해야 할 일이 있어 지연이 열리는 때에 맞추어 도착한답니다.”

“그랬군요.”

뒤에 서서 10명의 인물들을 훑어 본 한립은 가슴이 철렁했다.

대부분이 합체 이상의 수행이었고 심지어 앞에 나서서 이야기를 하는 노부인은 그가 경지를 파악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아 금열과 마찬가지로 합체 중기 이상의 존재로 추측되었던 것이다.

‘이들이 말로만 듣던 연합장로회 장로들이구나.’

본래 각 종족의 장로 출신이었던 이들이 수명이 얼마 남지 않으면 연합장로회로 들어간다고 한다. 그 후 각 종족에서 맡던 일체의 지위와 신분을 버리고 비령족 전체를 위해 일을 하는 것이다.

축 노인과 추 부인은 몇 마디 한담을 나누고는 그들의 안내를 받으며 거대한 산봉우리로 향했다.

잠시 후, 거대한 산봉우리 가까이 도착한 한립은 전방의 거대한 건물들과 고공의 크고 작은 검은 점들을 볼 수 있었다. 자세히 보니 수백 마리의 다양한 조류들이 날고 있는 것이었다.

펑-!

몇 리를 앞두고 둔중한 소리가 울리자 산봉우리 건물 중 하나에서 일곱 빛깔 무지개가 날아들어 그들 앞에 도착했다. 그것은 아름다운 색깔의 거대한 아치형 다리였다.

연합장로회 장로들이 먼저 다리에 오르자 노부인이 고개를 돌려 웃으며 손짓했다.

“우리도 내려간다.”

금열이 분부하고 먼저 거대 새에서 내려 아치형 다리로 올라섰다. 추 부인과 축 노인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아치형 다리에 올라서자 부드럽고 탄성이 느껴지는 감촉에 한립은 무척 신기했다. 마치 두꺼운 방석 위에 서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리 아래에는 스무 명의 비령족들이 새로 도착한 이들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 뒤로 하얀 기운이 피어올랐고 연녹색의 커다란 전각이 어렴풋이 보였다.

다리 건너편에는 두 사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 명은 새하얀 머리에 코가 큰 중년인이었고, 다른 한 명은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고 목에 검은 문신이 있는 노인이었다.

“성자들을 이끌고 멀리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성자들은 일단 편전으로 가 휴식을 취하고 장로분들은 저희 늙은이들과 함께 전각 안으로 드시지요. 다른 장로분들도 안에 계십니다.”

문신이 있는 노인이 일행들을 보고 인자하게 말했다.

“명 장로님의 말씀이신데 당연히 따라야지요!”

적융족 축 노인이 만면에 웃음을 띠고 다른 이들보다 먼저 답했다. 추 부인 역시 이에 동의했다. 그들은 각자 성자들에게 당부하고 하얀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성자 분들께서는 저를 따라 오시지요. 거처를 안배해 드리겠습니다.”

언제부터 그곳에 서 있었는지, 아담하고 여린 체구의 하얀 장삼 소녀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부탁하겠습니다, 수사.”

적융족 성자 중 한 명이 예의바르게 답했다. 적융족은 놀랍게도 7명의 성자를 파견했다. 그다음이 오광족으로 총 5명이었고, 천붕족은 한립을 포함해 3명이 다였다.

천붕족은 성자들을 전부 시련에 참가시켰지만 다른 종족들은 분명 만일을 대비해 일부를 숨겨두고 있을 것이다. 또한 나머지 두 종족의 성자들은 대부분 화신 중기 이상이라 백벽이나 뇌란과는 확실히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러니 다른 종족들이 천붕족을 노리는 것은 당연했고, 천붕족 역시 온갖 조건을 수락하며 한립을 끌어들인 것이다.

영계에서도 약육강식의 법칙은 종족을 막론하고 통하는 논리였다.

한립은 백벽과 뇌란을 데리고 오광족 성자들과 나란히 적융족 일행의 뒤를 따랐다. 앞쪽과 뒤쪽 사람들은 무의식중에 거리를 두고 움직이고 있었다.

한립이 적융족의 성자들 중 가장 주의를 기울인 것은 매서운 인상의 사내였다. 다른 적융족 성자들도 그와 엇비슷한 수행을 지니고 있었지만 유일하게 그에게만 일종의 위기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한립은 눈을 가늘게 뜨고 상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한 형께서 축음자에게 관심이 있나 봅니다.”

오광족의 젊은 여인이 돌연 싱긋 웃으며 말을 붙여왔다. 한립이 비록 가짜 성자이기는 하나 가장 수행이 높은 고계 비령장이었기 때문에 성자들은 그를 천붕족 성자들의 우두머리로 보고 있었다.

게다가 한립의 낯선 얼굴을 보고 천붕족에서 비밀리에 키워낸 ‘비장의 한 수’라고 생각했기에 더욱 관심을 기울였다.

오는 동안에는 장로들이 있어 함부로 이야기를 건네지 못했지만 이제 그들만 따로 움직이고 있으니 오광족 여인이 먼저 행동에 나선 것이다.

물론 천붕족과 오광족이 줄곧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적융족 성자들은 궁금해 하면서도 먼저 다가오지는 않았다.

“아닙니다. 축 형의 몸에서 느껴지는 살기(煞氣)가 깊어 그간 수많은 전투에 참가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한 형께서 줄곧 해외에만 있다가 오셨다는 말이 정말이군요. 축음자는 저희 연배 중에서도 아주 유명하답니다. 홀로 지연을 7번이나 들어가 수많은 요물들을 죽였거든요. 칠월족(七越族) 오청, 남롱족(南隴族) 비야와 함께 이름을 날리고 있는 인물입니다. 들리는 말로는 중계 영사(靈師)와 맞먹는 실력을 지녔다고 하더군요.”

“그렇군요.”

오광족 여인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 한립은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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