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5화. 인뢰주(引雷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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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성비(黑星匕).”
다섯 개의 비수를 본 거한과 청년의 표정이 급변했고, 한립은 궁금한 마음에 미간을 좁혔다.
주인장이 손을 뻗었다.
쉬쉬쉭!
검은 빛이 번뜩이고 비수들이 각각 뇌수의 사지와 심장이 있는 곳으로 쏘아져 나갔다. 이에 검은 사슬에 묶인 뇌수가 경천동지할 괴성을 지르며 발작했지만 비수들은 거침없이 그 안으로 찔러 들어갔다.
피 대신 영기의 빛이 흘러나오고 뇌수의 두 눈이 흐릿해진 순간 전신의 네 가지 뇌전이 사라졌다. 그것을 본 주인장이 하얀빛을 분출했다.
주먹만 한 마름모꼴의 하얀 수정돌에서 엄청난 영기의 압력이 전해졌다. 이에 한립이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떴다.
인족 고계 수사와 달리 비령족 고계 존재들은 금단이나 원영 같은 것이 없었다. 그 대신 ‘정핵’이라 불리는 물건을 수련으로 만들어 냈는데 그 성질이나 중요함은 근본적으로 인족의 금단, 원영과 비슷했다.
푹.
주인장의 피가 정핵에 흡수되었고, 하얀 수정돌이 허공을 갈라 뇌수 머리 위로 이동했다.
“지금!”
동시에 주인장이 일갈했다. 그의 명령에 청년, 거한 그리고 한립이 즉시 술법을 펼쳤다.
한립은 양 손 사이에서 금색 뇌전이 나타났고, 거한은 입에서 하얀 뇌전의 빛이 용솟음쳤다. 그리고 온화한 청년은 등 뒤 날개를 펄럭여 은색 뇌전을 불러일으켰다.
쿠르릉, 콰콰쾅! 콰쾅!
동시에 세 종류의 뇌전이 뇌수의 몸을 격타했다.
그런데 괴이한 일이 일어났다. 그들이 쏘아 보낸 뇌전이 뇌수의 몸에 닿으면 곧바로 검은 비수에 흡수되어 들어간 것이다.
다섯 개의 비수가 그윽한 빛을 겹겹이 발산해 검은 뇌전으로 만든 다음 뇌수의 몸으로 주입했다.
거한과 청년이 그것을 보고 조금 움찔했지만 뇌전을 멈추지는 않았다.
다섯 비수들이 내뿜는 검은 빛은 점점 진해져갔고 비수 끝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한립이 그것을 보고 힐끗 주인장을 살폈다. 그는 가부좌를 틀고 옆에 앉아 눈을 감은 채 기괴한 법결을 펼치고 있었다. 주인장의 몸에서 하얀 기운이 크게 번진 것으로 보아 혼신의 힘을 다해 법력을 끌어 쓰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특별히 이상한 점이 없자 한립은 시선을 거두고 다시 벽사신뢰를 부리는 데 집중했다.
뇌수의 몸이 이상한 건지 아니면 ‘흑성비’라는 비수가 기이한 것인지, 한식경 동안 막대한 양의 뇌전을 주입받고도 비수나 뇌수 모두 큰 변화가 없었다.
다만 가부좌를 튼 주인장의 안색은 점점 창백해져갔고 굵은 땀방울이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힘줄이 솟은 모습은 누가 보아도 전력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주변 영기의 빛이 3할 정도 어두워졌을 때 그의 미간 사이에 언제부터인가 수정돌의 하얀 그림자가 나타나 깜빡였다.
“뇌전을 더 주입해야합니다.”
잠시 후 완전히 핏기가 사라진 얼굴로 주인장이 목이 잠겨 소리쳤다. 그 말에 한립 등은 얼굴을 찌푸렸다. 이미 뇌전의 힘을 절반은 쏟아 부었고 이렇게 가다가는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확신에 찬 주인장의 말에 그들은 오래 머뭇거리지 않고 더욱 많은 양의 뇌전을 뿜어냈다.
콰르르릉! 콰콰쾅! 꽈과광!
동시에 벼락 소리가 더욱 커지고 세 가지 색의 뇌전이 내뿜는 빛에 뇌수가 매몰되어 보이지 않았다.
세 수사가 뇌전의 힘을 극성으로 끌어올리자 뇌수 몸에 꽂힌 오색 비수가 드디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비수 전체가 피를 머금은 것처럼 붉어졌고 핏물이 뚝뚝 흐를 듯 농도가 짙었다.
그때 주인장의 미간 사이에 나타난 정핵 환영도 같이 붉어지며 점점 팽창했다. 이에 주인장이 눈을 번쩍 뜨고 또 다른 무언가를 입에서 뿜어냈다. 바로 비취색 목패였다.
복잡한 주술 문자가 층층이 덮인 목패는 신비로웠다. 목패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뇌수 머리 위로 순간 이동을 했다.
푸확!
그 안에서 가느다란 녹색 실 다발이 나와 뇌수의 머릿속으로 스며들었다. 정신을 잃고 있던 뇌수가 경련을 일으켰고 목패는 웅웅 울어댔다.
그러자 녹색 뇌수 환영이 수많은 녹색 실타래에 감긴 채 뇌수의 머리 위로 끌어당겨지고 있었다. 이에 주인장이 희색을 드러내고 열 손가락을 미세하게 움직이며 알 수 없는 주술을 외웠다.
우웅!
목패의 떨림이 강해질수록 녹색 실도 뇌수의 혼백을 강하게 끌어냈다. 그런데 그때 무기력하던 뇌수의 눈에서 금빛이 번뜩이며 천둥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몸에 박힌 검은 비수가 조금 밀려나더니 뇌수 표면에 다시 네 가지 색의 뇌전이 튀었다. 놀란 주인장이 무슨 수를 쓰기 전에 거의 끌려 나왔던 뇌수 혼백이 다시 뇌수의 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동시에 뇌수가 노호성을 터트렸고 미친 듯이 몸을 비틀어댔다.
“뇌전의 힘을 더 높일 수 있겠습니까?”
화가 난 주인장이 서둘러 한립 등을 향해 물었다.
“못합니다. 이미 한계예요!”
청년은 정말 약간 파리해져 있었다.
“저도 이미 대량의 뇌전의 힘을 주입하는 중입니다.”
거한과 한립의 기색은 그보다 한결 나았지만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어쩔 수 없이 위험을 감수해야겠군요. 내 술법을 펼쳐 오색 뇌전을 부릴 테니, 세 분은 계속 지금 상태를 유지해 주십시오. 이번에야말로 성공해야 합니다.”
주인장은 조금 실망한 기색으로 이를 악물었다.
그 말에 다른 이들의 표정이 달라졌지만 반대하지 않았다. 주인장이 몸부림치는 뇌수를 두고 등 뒤의 날개를 펄럭여 천천히 고공으로 올라갔다.
백여 장 떨어진 곳에서 멈춘 주인장이 굳은 얼굴로 피를 한 움큼 더 토해냈다. 그리고 피를 향해 열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여 커다란 핏빛 부적을 만들어내 오색 뇌전을 향해 날려 보냈다.
빛이 번뜩하는 순간 이미 핏빛 부적은 오색 뇌전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곧 천둥소리가 커지며 먹구름이 오색 뇌전 속에서 사라졌다.
이제 거대한 오색 뇌전만이 고공에 남아 흉포한 기세를 드러냈다. 주인장이 뇌전의 위력에 이를 악물고 다시 피를 토해내 핏빛 부적을 날려 보냈다.
이에 안 그래도 새하얀 그의 얼굴은 이제 완전히 핏기가 사라져 있었다. 그러나 헛고생은 아니었는지 오색 뇌전의 천둥소리가 작아졌을 뿐 아니라 뇌전의 빛도 온화해졌다.
뇌전 사이로 가느다란 핏빛 실들이 보일 듯 말 듯 어른거려 괴이하기 그지없었다. 주인장이 반색하며 주술을 읊었고 두 날개를 펄럭였다.
푸푹!
수많은 핏빛 실이 날개에서 뻗어나가 오색 뇌전 속의 핏빛 실과 연결되었다. 수결을 맺은 그는 눈부신 하얀빛 속에서 연달아 법결을 날렸다.
그러자 오색 뇌전이 수축하며 직경 한 장 크기의 거대한 뇌전 구슬로 변하더니 그 주변을 핏빛 실이 그물처럼 감싸고돌았다. 야윈 사내가 그것을 보고 미소 지었다.
그가 손을 뻗어 가리키자 오색 뇌전 구슬이 놀랍게도 얌전하게 아래로 하강했다. 밑에서 이를 지켜보던 이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주인장은 그들이 질문할 시간을 주지도 않고 신형을 번뜩이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다음 순간 지면 위에서 파문이 일었고 주인장의 신형이 괴이하게 뇌수 옆에서 나타났다. 재빨리 두 손을 뻗은 그가 두 줄기의 굵은 빛기둥을 뇌전 구슬을 향해 쏘아 보냈다.
우웅!
뇌전 구슬이 몸을 부들부들 떨며 허공에 멈추었다. 이제 한립과 다른 이들도 오색 뇌전 구슬이 함유한 어마어마한 힘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뇌전 구슬이 주인장의 술법으로 고공에서 멈추었기에 망정이지 계속 내려왔다면 거래고 뭐고 당장 달아났을 것이다.
주인장은 그들은 신경 쓰지 않고 오색 뇌전 구슬을 조종하는 데만 심혈을 기울였다. 뇌전 구슬이 회전하기 시작했고 표면의 붉은 실들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
꽈과광!
미세한 오색 뇌전이 그 사이로 빠져나와 아래쪽 뇌수를 향해 떨어졌다.
오색 뇌전 구슬이 나타난 순간 뇌수도 위기를 느꼈는지 검은 사슬에 묶여서도 몸을 일으키려 더욱 사정없이 몸부림쳤다. 그러나 한 걸음을 떼기도 전에 오색 뇌전이 뇌수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콰직!
뇌수는 찍소리도 못하고 다시 엎어졌다. 이에 주인장은 희색이 만연해 연달아 오색 뇌전 구슬을 조종해 벼락을 내리쳤고 뇌수 머리 위의 비취 색 목패도 다시 녹색 실 다발을 분출했다.
이번에는 오색 뇌전과 세 수사들의 뇌전의 힘의 보조로 뇌수 혼백이 천천히 끌려 나와 목패 쪽으로 떠올랐다.
뇌수의 혼백이 죽을힘을 다해 몸부림쳤지만, 뇌전의 힘이 검은 비수에 의해 봉쇄되었고 거기다 본신이 오색 뇌전과 세 수사들에게 공격당하고 있어 달아날 방법이 없었다.
결국 뇌수 혼백은 비명을 지르며 녹색 실에 감겨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에 주인장은 서둘러 손가락을 튕겨 법결들을 쏘아 보냈다. 그러자 목패에 다채로운 법결이 날아들어 혼백을 철저히 봉인했다.
주인장이 기쁜 얼굴로 손을 뻗어 녹색 옥패를 거두어들였다.
“흐하하하! 드디어 성공입니다.”
“어찌 된 것인지요? 이것으로 된 것입니까?”
그가 웃음을 터트리자 청년이 공법을 거두고 뇌수와 목패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한립과 거한도 묻고 싶던 바였다.
“허허, 혼백을 빼냈으니 뇌수를 길들이는 것은 이제 식은 죽 먹기입니다. 나머지는 노부가 알아서 할 테니 세 분은 걱정할 것 없습니다.”
주인장이 옥함에 혼백을 담아 회수하고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한립 등 셋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하고 입을 다물고 경계심을 높였다.
“걱정 마시라니까 그러십니다. 이렇게 큰일에 도움을 주었는데 당연히 약조한 보수를 드려야지요. 자, 잘 받으십시오.”
주인장이 소매를 털어 하얀 기운을 흘려보내자 앞서 보았던 목함 세 개가 각각 한립과 청년 그리고 거한에게 날아왔다.
청년과 흑갑 거한은 여전히 의심이 가시지 않았지만 오매불망하던 보물이 나타나자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손을 뻗었다. 그러나 한립은 남색빛을 번뜩이고 몸을 틀었다.
잠시 후 그의 몸에서 금은색 장포가 날아올라 목함을 감싸 안았고 그는 두 발을 땅에 내딛었다.
‘…….’
그것을 본 온화한 얼굴의 청년이 흠칫 놀라 막 집어 든 목함을 던지려 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하얀빛이 어른거리고 목함이 사라진 자리에 엄지손가락 크기의 구슬이 있었던 것이다.
“인뢰주(引雷珠)!”
경악한 청년이 손끝으로 구슬을 튕겨 날려 버리려 했다.
꽈광!
그러나 천둥소리가 울리고 구슬이 폭발해 눈부신 하얀빛을 뿜어냈고 허공에 남아 있던 오색 뇌전 구슬이 하얀빛에 이끌리듯 세 줄기 뇌전을 내리쳤다.
너무 빠른 속도라 그것을 알아챘을 때는 이미 뇌전이 떨어진 다음이었다.
콰쾅! 쿠쾅! 쾅!
세 번의 굉음이 울렸다. 청년과 거한은 순식간에 오색 뇌전과 하얀빛 속에 휘감겼다. 빛이 가시고 나자 온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며 두 사내가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태로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한립은 인뢰주가 터진 순간 하얀빛이 금은색 장포로 흡수되었기 때문에 오색 뇌전이 방향을 잃고 한 장 밖의 지면을 강타했다. 오색 뇌전이 떨어진 자리에 거대한 구멍이 뚫린 것이다.
다행히 구멍의 가장자리 밖에 서있던 한립은 신형이 약간 흔들렸지만 무표정한 얼굴로 주인장에게 눈을 떼지 않았다.
“헛!”
실실 웃고 있던 주인장의 얼굴에 웃음기가 가셨다가 곧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한립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날개를 펄럭여 청백색 뇌전 속으로 사라졌다.
쉑!
이와 동시에 녹색 거대 손 두 개가 그가 있던 자리를 할퀴고 지나갔다. 검은 사슬에 묶여 엎어져 있던 뇌수가 언제 일어섰는지 돌연 한립의 등 뒤를 노리고 기습을 가한 것이다.
뇌수는 두 눈이 새까맣고 영성이 넘쳐 보였다. 주인장은 뇌수의 기습이 실패로 돌아가자 의외라는 얼굴을 했다. 곧 그가 소리 없이 옆으로 쏘아져 나갔다.
이때 주인의 머리 위로 천둥소리가 울리고 청백색 뇌전 속에서 한립이 나타나 주변 구리 기둥을 향해 소매를 털었다.
눈부신 빛이 번뜩이고 기둥들이 산산조각 나 금제가 한립의 손에 망가져 버렸다. 이에 주인장이 신형을 멈추고 얼굴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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