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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844화 (601/2,000)

844화. 오색천뢰

*

웅웅웅웅!

세 종류의 뇌전이 검은 뇌전 그물을 공격한 순간, 81개의 구리 기둥들이 동시에 공명했고 얇은 검은 뇌전들이 순식간에 몇 배로 굵어졌다.

그리고 동시에 눈을 찌를 듯한 요란한 빛이 반짝였고 검은 뇌전 그물은 백(白)색, 남(藍)색, 금(金)색의 뇌전 공격을 굳세게 막아냈다. 뇌수가 그것을 보고 더욱 분노해 괴성을 질렀지만 지능이 있는지 무턱대고 움직이지 않았다.

“안심들 하십시오. 이 박뢰초광대진(縛雷焦光大陣)은 내 막대한 공을 들여 설치한 것이라 전문적으로 뇌수의 벼락 속성 공격을 막아낼 수 있습니다. 아무리 대단한 뇌수라도 이곳에서 달아날 수는 없지요.”

주인장이 낮게 웃으며 구리 기둥 위의 호망수를 향해 손짓했다. 이에 하얀 기운이 날아가 작은 짐승을 검은 뇌전 그물 안으로 떨구어 주었다.

호망수를 본 뇌수는 주저 없이 입을 벌려 작은 짐승을 삼켰고 만족스럽게 그르렁 거리며 다시 몸이 작아졌다. 그리고 주변의 검은 기운 속으로 사라졌다.

이에 박뢰초광대진 안은 다시 처음 보았던 상태로 돌아갔다.

“대체 어떤 영수이기에 아직까지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것입니까?”

“이 영수의 내력은 특이하니 더는 묻지 마십시오. 그저 나를 도와 굴복만 시켜주면 되니까요.”

청년의 말에 주인장이 경고가 담긴 눈빛을 보냈다. 이에 청년의 안색이 미세하게 달라지며 입을 다물었다. 한립도 그것을 보았지만 다시 한 번 질문했다.

“선배님께서 이 영수는 영계에서 유일무이(唯一無二)하다고 하셨습니다. 이 영수가 본래 영계의 것이 아니라는 말씀으로 알아들으면 되겠습니까?”

주인장의 표정이 급변했지만 곧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한 형제, 그게 무슨 소린가? 영계의 것이 아니면 어찌 이곳에 있을 수 있겠는가.”

거한과 청년은 주인장이 궁색한 변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뇌수가 만일 영계의 것이 아니라면, 설마 하계 특유의 영수일까요? 아니지, 조금 전 신통으로 보아 연허급 존재와 맞먹을 텐데 하계에서 어찌 그런 영수가 탄생할 수 있겠습니까. 하계가 아니라면 상계란 이야기인데 그렇다면 전설 속의 진선계(眞仙界)?”

청년이 주인장의 변명을 무시하고 홀로 분석을 해나갔다. 금제 속 검은 안개를 바라보는 거한의 눈빛이 밝게 빛났다.

“정말 이 영수가 진선계의 것이라 보십니까?”

청년의 말에 오히려 주인장의 표정이 묘해졌다.

“저희의 추측이 틀렸단 말입니까? 아니라면 어 형께서 뇌수의 내력에 대해 들려주시지요. 영수에 대해 알아야 굴복시킬 때 참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싫으시다면 그냥 상계 영수라고 생각하고 상대해야겠지요.”

“감히 날 위협하는 것이오?”

주인장의 얼굴에 반짝이는 기운이 어른거리며 표정이 흉흉해졌다.

“저희 셋이 협공해도 어 형의 상대가 되지 못할 텐데 그럴 리가요. 하지만 저희 형님 되시는 분이 본 족의 가장 어린 장로이신데, 어 형께서도 현명한 판단을 하실 거라 믿습니다.”

청년이 상대의 표정을 보고 슬쩍 한 걸음 물러나더니 태연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온화한 청년이 실은 천붕족 장로의 아우였다니 처음 듣는 사실에 한립과 거한이 놀라 그를 살폈다.

주인장도 그 말에 꺼려하는 기색이 스치며 잠시 후 냉랭히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엄청난 비밀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괜히 이상한 상상을 하게 내버려 두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뇌수가 영계에서 하나뿐이라고 말한 이유는 뇌전의 힘을 모아 비술을 이용해 만들어낸 뇌전지령(雷電之靈)이기 때문입니다. 생의 절반을 소모하며 겨우 한 마리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으니 천하에 다른 뇌수가 있을 리 없지요.”

“뇌전지령!”

“말도 안 됩니다. 령족(靈族)이라 해도 뇌전 속에서 생령(生靈)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고 들었는데 아무리 어 형의 능력이 대단해도 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청년은 상대의 말을 믿지 않는 듯 평정을 회복하고 말했다. 그 말에 한립과 거한의 미간도 좁아졌다.

“하하! 스스로 연구해낸 것이라면 그 말도 맞겠습니다. 허나 이족 지역을 유람하다 어느 고인이 죽은 곳에서 진선계에서 유래한 영수 육성 비술을 얻었다면 어떨까요? 그곳에 뇌수를 탄생시킨 비술이 온전히 기술되어 있었습니다.”

주인장은 고민하다 사실대로 털어 놓았다.

“진선계에서 유래한 술법이라면 가능성이 없지는 않겠습니다. 조금 전의 무례는 죄송했습니다.”

청년이 생각이 많아진 얼굴로 눈을 반짝이다 갑자기 돌변해 미소를 머금고 사과했다. 거한은 턱을 쓰다듬으며 혀를 차댔다. 그러나 주인장은 청년의 사과에도 불쾌한 표정을 지우지 않고 콧방귀를 뀌었다.

한쪽에 선 한립은 흥미로운 얼굴로 금제 속의 뇌수를 응시하고 있었다.

뇌전에서 탄생한 영물이라는 말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뇌전의 힘을 다루는 실력으로 보아 어찌됐든 태생적으로 뇌전의 육체를 타고난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뇌수가 연허급 신통을 지니고 강력한 뇌전의 힘을 다룬다 해도 주인장이 이렇게 큰 비용을 감수하고 굴복시키고자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라면 거의 반평생이 걸렸을 텐데 그럴만한 가치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이 영수가 다른 강력한 신통을 지녔거나 아니면 다른 용도가 있는 거겠지!’

사실 한립 뿐 아니라 거한과 청년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저 실력자인 주인장 앞에서 모르는 척 하고 있을 뿐!

영수의 용도와 내력이 수상하다고 눈앞의 연허 후기 수사를 자극할 필요는 없었다.

“이제 이야기는 다한 것 같으니 할 일을 시작합시다. 금제를 변형해 영수를 잠시 억제할 테니 모두 들어가 뇌수의 몸에 뇌전의 힘을 주입하면 됩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내가 됐다고 할 때까지 멈추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 헛고생이니까요.”

주인장이 단호히 설명했다. 이번에는 다른 이들도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장은 소매를 털어 다시 수미동천도 화폭을 꺼냈고, 앞으로 던져 그림을 펼쳤다.

오색 영기의 빛이 크게 뿜어 나오고 그림이 모두의 눈앞에 나타났다. 주술을 읊으며 주인장이 손을 뻗어 그림 어딘가를 가리켰다.

한립의 눈동자에서 남색빛이 일렁였다. 주인장이 가리킨 곳은 바로 작은 산 위에 그들이 위치한 누각이었다.

다음 순간 수미동천도가 하얀빛을 머금었고 그림 안에서 우윳빛 안개가 차올랐다. 안개 속에서 그림 안의 누각은 1층부터 2층까지 서서히 뒤집히며 사라져갔다.

그리고 갑자기 발밑이 진동하더니 누각 전체가 부들부들 떨리며 사방에서 하얀빛이 뿜어져 나와 마치 그림처럼 주위가 뒤집어지고 허공으로 변했다.

별안간 그들과 뇌수는 쪽빛 하늘 위에 떠있었고 발아래 누각이 있던 곳은 평지로 바뀌어버렸다. 금제 속의 검은 안개가 꿈틀거리자 뇌수도 놀란 듯했다.

한립은 턱을 쓸어내렸고 청년과 거한은 놀란 눈빛으로 서로 눈을 마주 쳤다.

“흐압!”

그때 주인장의 입에서 핏빛 화살이 튀어나와 그림 속으로 스며들었다.

동시에 마른하늘에 먹구름이 몰려들고 벼락 소리와 광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꽈광! 쿠르릉 콰쾅!

은색 뇌전이 먹구름 속에서 번뜩여 요마가 강림한 듯한 스산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러자 다른 이들이 묻기 전에 주인장이 먼저 설명해 주었다.

“이전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아마 세 수사의 힘으로는 부족할 겁니다. 그래서 수미동천도가 품은 천지 원기를 천뢰의 힘으로 바꾸어 보조하려는 겁니다. 이번 일이 끝나면 그림도 거의 훼손되고 말테니 노부도 막다른 길에 몰려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일만 성사되면 약조한 물건들을 내어줄 뿐 아니라 따로 거액의 영석을 드릴 테니, 수사들도 전력을 다해 영수를 굴복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주인장이 정중하게 당부했다. 약조한 진귀한 약재에 영석까지 주겠다니 세 사람은 기분이 좋아졌고 자연히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주인장이 고개를 끄덕이고 날개를 펄럭여 하얀 기운으로 수미동천도를 휘감았다.

하얀 기운 속에서 그림이 빙글빙글 회전하며 무수히 많은 빛깔의 주술 문자를 내뿜으며 오색 빛기둥으로 변해 먹구름 속으로 치솟았다.

그러자 믿기 어려운 장면이 펼쳐졌다.

오색 빛기둥을 흡수한 먹구름이 요동치며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천둥소리가 울리고 오색 뇌전이 번뜩였는데, 그것이 마치 오색 구렁이가 검은 구름 사이를 넘나드는 광경 같았다.

“오색천뢰?”

흑갑 거한이 오색 뇌전을 보고 귀신이라도 본 듯 소스라치게 놀라 외쳤다.

“아닙니다. 비령진왕(飛靈眞王)이 겁을 겪을 때 나타나는 오색천뢰가 아니라 약간의 천지원기를 빌려 비슷하게 만들어낸 것이지요. 위력도 진짜 오색천뢰의 천분의 일 밖에 되지 않고요. 다들 안심해도 됩니다.”

불안한 기색을 드러내던 거한과 청년이 주인장의 말에 겨우 안심했다. 그러나 오색뇌전을 바라보는 한립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오색천뢰는 전설 속의 대승 수사의 존재가 도겁을 할 때 나타나는 특유의 뇌겁으로 합체 수사들의 자금뇌겁(紫金雷劫)과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천분의 1의 위력이라 해도 이 자리에서 누구라도 저 오색뇌전을 맞으면 어찌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때 주인이 허공에 뜬 81개의 기둥으로 날아들어 술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웅웅웅웅

모든 구리 기둥이 일시에 진동했고 하얀 빛덩이가 나와 각각 흉포해 보이는 용머리로 변했다. 용머리들은 크게 아가리를 벌리고 새까만 뇌전을 분출했다. 목표는 바로 금제 속의 검은 안개였다.

안개 속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은색 빛이 재빨리 튀어나와 구석으로 피했다. 그러나 검은 뇌전들은 방향을 틀어 뇌수를 공격했다.

놀란 괴수가 분노해 괴성을 질러댔지만 분주히 뇌둔술을 펼쳐 달아나는 것이 확실히 검은 뇌전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잠시 동안 금제 안에서 검은 뇌전과 은빛이 귀신처럼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며 쫓고 쫓겼다. 이에 주인이 주술을 읊기 시작했고 금제 속 뇌성은 더욱 커져갔다.

검은 뇌전의 속도가 빨라져 움직일 때마다 잔영이 남았고 결국 금제 속의 공간 전체가 검은 잔영으로 뒤덮였다. 그 모습을 보고 한립은 적잖이 놀랐다.

검은 뇌전이 어떤 신통인지 모르겠지만 만일 그가 저 금제 속에 갇혔다면 풍뢰시를 지녔다 하더라도 화를 오래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뇌수가 변한 은빛에 검은 뇌전이 꽂혔다. 비명 소리가 들리고 뇌수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허공에서 나타났다. 그러자 다른 검은 뇌전도 채찍처럼 뇌수에게 날아들었다.

콰르릉! 쿠쾅!

뇌수가 괴성을 지르며 온몸에서 적(赤), 백(白), 남(藍), 금(金)색의 뇌전을 일으켜 필사적으로 검은 뇌전의 공격을 막았다. 바깥에서 주인장이 그것을 보고 성큼 다가가 손바닥을 구리 기둥 위로 가져갔다.

찰나의 순간 하얀 영력이 손바닥을 통해 기둥 속으로 유입되었고 기둥 위 용머리가 분출하던 뇌전들이 삽시간에 굵어졌다.

검은 뇌전 공격에 뇌수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추락했고 전신의 네 가지 뇌전도 이전과 달리 암담해져 있었다. 검은 뇌전들이 빛을 발하며 검은 사슬로 변해 영수를 꽁꽁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됐으니 다들 들어가도 좋습니다.”

주인장이 소리쳤고 기둥에 댄 손을 거두고 법결을 날렸다. 그러자 구리 기둥이 부르르 떨고 검은 뇌전 그물이 갈라져 사라지고 말았다.

한립 등 세 수사는 서로 시선을 교환하고 즉시 영기의 빛에 휩싸여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각기 다른 방향에 서 있었고 뇌수에게는 더 이상 다가가지 않았다.

주인장이 그것을 보고 법결을 거둔 다음 그들 곁으로 날아들었다.

“내 바로 비술로 영수 체내의 뇌전 근원을 억제할 터이니 지시에 따라 뇌전의 힘을 주입하면 됩니다.”

주인장은 말을 마치고 곧바로 한 손을 뒤집어 새까만 비수 다섯 개를 꺼냈다. 가벼워 보이는 것이 나무로 만들어진 비수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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