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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841화 (598/2,000)

841화. 곤붕진혈 융합

*

이튿날 아침, 천붕족 소년소녀 네 명이 그를 찾아왔다. 그들은 전부 축기기 수행을 지녔는데 굉장히 어렸지만 자질이 뛰어나 보였다.

한립은 별말 없이 그들을 따라 귀빈관을 나서 성성의 어딘가로 향했다. 족히 반나절을 날아가자 성성 구석에 기괴한 건물이 보였다.

경기장으로 보이는 거대한 광장이었다. 사면에 백장 높이의 거대한 벽이 에워싸 족히 몇 리는 될 듯싶었다.

석벽 위에 수백 개의 곤붕 조각상이 서 있었고 그 위로 무슨 금제가 펼쳐져 있는지 각각 오색찬란한 영기의 빛을 발산하며 빛의 장막을 형성해 광장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또한 광장 중심에는 제단으로 보이는 높은 대가 새하얀 옥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지금 한립은 옥으로 만든 높은 대 위에 서 있었다.

그 주위를 숙연한 얼굴로 열댓 명의 천붕족들이 둘러싸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남녀 모두 하얀 장포를 입고 연허급의 수행을 지닌 존재들이었다.

금열과 서 노인 등 천붕족 장로 세 명이 한립 앞에 섰다. 그 뒤로 시녀 복장을 한 젊은 여인들이 각각 하얀 기운이 어린 은색 쟁반을 들고 있었다.

“한 수사, 물건은 준비되었네. 또한 시련 전에 수사가 충분히 곤붕사리와 곤붕진혈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우리 세 수사가 돕도록 하지. 처음에는 두 가지 물건을 연화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고, 그 후에는 천붕 일족의 변신술도 전수하지. 그러니 부디 한 수사가 우리를 실망시키는 일이 없기를 바라겠네.”

금열의 얼굴 위로 영기의 빛이 반짝였다.

“안심하십시오. 제가 약속드린 일은 최선을 다하여 완수할 것입니다.”

“좋네. 그럼 일단 곤붕진혈 융합부터 시작하지! 서 장로께서 진혈의 힘을 불러일으켜 강제로 자네의 피와 융합시켜 줄 것이네. 무척 고통스런 과정이겠으나 감내해야 할 것이야.

그 후 곤붕사리를 복용하면 내 친히 나서 연화를 도울 것이네. 특히 곤붕사리에 함유된 곤붕의 힘에 반서(反噬)당하지 않도록 주의하게. 어쨌든 자네가 정말 천붕족은 아니니 위험이 따를 것이네.”

금열이 몇 마디 당부의 말을 건네자 한립이 신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도 그의 고분고분한 태도에 만족했는지 미소를 짓고는 뒤쪽을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시녀 한 명이 조심스레 앞으로 나서 은색 쟁반을 소녀에게 바쳤다. 금열은 은색 쟁반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하얀빛이 번뜩이며 손가락 크기의 작은 병이 나타났다. 그것은 금속도 아니고 옥도 아닌 특이한 재질로 되어 있었다.

작은 병을 보는 금열의 표정이 근엄해졌고 다른 천붕족들도 즉시 허리를 숙이며 공경을 표했다.

곧 금열의 입에서 주술 소리가 들려왔고 손을 뻗으니 푸른 실이 뻗어 나가 작은 병에 닿았다. 병이 부들부들 떨리며 하늘로 올라가 한립에게 다가갔다.

한립은 즉시 옥으로 만든 제단 위에 올라가 가부좌를 틀었다.

그때 서 장로와 미부인이 돌연 손을 뻗어 각각 붉은 연꽃과 비취색 기운이 가득한 파초(芭蕉)의 이파리를 꺼냈다.

핏빛 연꽃이 빙글빙글 돌아 한 장 크기로 커지더니 농염한 향기를 분출했고 파초 이파리는 초록 기운 속에서 사람만 하게 커져 기괴한 초록 주술 문자를 드러냈다.

잠시 후 핏빛 연꽃이 그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러자 한립의 온몸이 나른해지며 놀랍게도 핏빛 연꽃에 제압당했다. 동시에 콧속으로 연꽃의 향기가 물씬 풍겨 그것에 취해갔다.

하지만 한립은 당황하지 않고 연꽃 중심에서 눈을 감은 채 안정을 취했다. 서 장로가 낮게 일갈하는 소리가 들리고 핏빛 연꽃의 꽃잎이 서서히 접혀 꽃봉오리로 변해갔다.

그것을 본 금열이 작은 병을 향해 다섯 손가락을 튕겼다.

푸푸푹!

푸른 실들이 날아가 작은 병속으로 사라졌다. 그러자 작은 병이 녹색 빛을 뿜으며 맑은 울음소리와 함께 푸른 붕새가 작은 날개를 펼치며 날아올랐다.

이에 미리 준비하고 있던 금열이 등 뒤의 금빛 날개를 펄럭였다. 그러자 날개에서 금빛 기운이 치솟아 푸른 붕새를 휘감았다. 붕새는 금빛 기운 속에서 파닥거리며 푸른 액체로 변했는데 희미하게 은색 빛이 느껴졌다.

금열이 두 손으로 수결을 맺고 푸른 액체를 가리키자 금빛 기운을 따라 푸른 액체가 꽃봉오리 쪽으로 향했다.

곧 푸른 액체가 핏빛과 금빛 속에 어우러졌고 핏빛 연꽃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때 서 장로가 번뜩이며 사라지더니 귀신처럼 연꽃 옆에 나타났다.

그리고 서 노인의 등에 달린 은색 날개가 활짝 펴지고 그 위로 은색 영기의 빛이 뿜어져 나와 핏빛 연꽃 속으로 흘러들었다. 미부인도 연꽃의 다른 쪽에 나타나 하얀 영기의 빛을 불어넣었다.

우웅.

이에 핏빛 연꽃 봉오리가 울어대며 핏빛 기운이 거세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허공에 떠있던 비취색 파초 이파리가 떨어져 핏빛 연꽃에 닿자마자 폭발해 수많은 암녹색 실을 그 안으로 밀어 넣었다.

핏빛 연꽃 표면에 암녹색 문양이 떠올랐고 다음 순간 핏빛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진동이 멈추었다. 그러나 서 노인과 미부인은 그저 눈을 감은 채 정순한 영기를 불어넣는 데만 집중하고 있었다.

곁에서 그것을 지켜보던 금열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미소 지었다.

“예상대로구나. 이 자의 체내의 기운이 곤붕진혈을 받아들이고 있어. 관건은 이족인의 몸으로 곤붕진혈의 위력을 어느 정도까지 발휘할 수 있냐는 것인데…….”

혼잣말을 하던 금열이 곁에 선 천붕족 고위층들을 보며 돌연 서늘하게 명을 내렸다.

“모두 보았겠지. 이번 일에 본 족 전체의 흥망이 달려 있다. 이 자에 관해서는 철저히 비밀로 해야 할 것이며, 앞으로 이 자의 신분은 본 족이 해외(海外)에서 비밀리에 배양한 세 번째 성자가 될 것이야. 다들 알겠느냐?”

“대장로님, 안심하십시오. 절대 누설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연허급 천붕족들이 흠칫 놀라 분분히 답했다.

“나도 모두가 본 족에 해를 끼칠 만한 일을 하지 않을 것을 안다. 두 달 후, 너희 중에서 성자들을 모시고 이번 지연 시련에 참가할 이들을 선발할 것이야.”

금열이 한결 누그러진 어투로 알렸다.

“그렇게 빨리 말입니까? 아직 1년이나 남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고위층 중 누군가 놀라 물었다.

“듣자니 적융족, 도아족(渡鴉族) 등 십여 종족들이 시련(試練)을 앞당겨 진행할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연합 장로회의 본 족 장로들이 이의를 제기했지만 대부분이 동의했다더군.”

“어째서 말입니까? 어찌 됐든 이유는 있을 것 아닙니까?”

또 다른 누군가가 분기탱천하여 물었다.

“이유야 당연히 있다. 그들은 지연(地淵)이 최근 불안정하여 시련(試鍊)을 앞당겨 진행하는 것이 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연(地淵)의 요물들은 본래 우리 비령족과는 생사를 건 대적입니다. 언제 태평했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나요. 전부 저희 같은 약소 지파들을 노리고 벌인 짓이 분명합니다.”

“그런 말이 무슨 소용이겠느냐. 기왕 연합 장로회에서 다수가 이 일에 동의했으니 우리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또한 최근 천붕족 관할 구역에 빈번히 다른 종족들이 나타나 마구잡이로 약탈을 자행하고 있다. 너희 중 일부가 즉시 출발해 그 비열한 것들을 전부 죽이거라. 다른 지파에 분명히 경고해 시련(試鍊)이 끝나기 전에 본 족을 어떻게 해보겠다는 망상을 버리게 해야 한다.”

금열의 얼굴이 더없이 서늘해졌다.

“존명!”

천붕족들은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하고는 임무를 하달 받고 분분히 그 곳을 떠났다.

별안간 옥으로 만든 제단 위는 적막해졌고, 운공(運功)하고 있는 금열과 서 노인 미부인을 제외하면 시녀 말고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금열의 시선이 핏빛 연꽃으로 향했다.

연꽃 봉오리는 합체급 존재 두 명이 계속해서 영력을 주입한 탓에 이 전보다 배는 커져 있었다. 동시에 연꽃 표면의 암녹색 문양도 반짝반짝 빛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돌연 금열이 등 뒤의 은빛 쟁반을 향해 손을 뻗었다.

파공음이 들리고 우윳빛 구슬이 떠올라 금열의 손에 잡혔다. 그녀는 구슬을 집어 들어 가까이 살폈는데 금열의 표정이 조금 묘해졌다.

“어느 대 대장로님이 좌화하신 사리더냐?”

“제 9대 대장로님의 사리입니다. 대장로님의 말씀대로 보관한 지 가장 오래된 것을 가져 왔습니다. 품고 있는 힘도 가장 유실이 많이 되었고요.”

시녀가 공손히 대답했다.

“9대? 경칩(驚蟄) 신통을 창립하셨고 최후에는 광증으로 사망하신 홍운 대장로님의 사리라고.”

“예, 홍운 대장로님의 사리입니다. 홍운 대장로님의 사인이 괴이한 데다 남겨진 사리에도 곤붕의 힘 외에 임종 전 의식의 힘 일부가 혼재되어 있다고 합니다. 사리를 흡수한 자에게 체내에 후유증이 남을까 염려되어 줄곧 밀실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대장로님께서 적당하지 않다 여기시면 제가 바로 다른 사리로 바꿔 오겠습니다.”

시녀는 금열의 반응에 조금 불안해졌는지 해명했다.

“아니다. 이것이면 되었다.”

금열이 다시 핏빛 연꽃을 힐끔 보고 평정을 되찾았다. 그때 핏빛 연꽃 꽃봉오리가 점점 꿈틀거리기 시작했고 올록볼록하게 움직여대고 있었다.

*     *     *

이틀 후, 옥으로 만든 제단 상공.

푸른 거대 새가 잔영을 남기며 하늘 곳곳에서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했고 그 표면에 금색 뇌전과 푸른 기운이 감돌았다. 갑자기 거대 새가 한 곳에 멈춰 두 발톱으로 허공을 매섭게 할퀴었다.

훼엑!

그러자 열 줄기의 하얀 빛줄기가 뻗어나가 잔흔을 남기며 사라졌다. 두 날개를 펄럭이자 이번에는 푸른 기운이 몰려들어 바람의 칼날로 변했고 주변 백여 장을 빼곡하게 메웠다.

콰릉!

굉음이 울리고 푸른 거대 새가 입을 벌려 놀랍게도 금색 뇌전 구슬들을 뱉어냈다. 뇌전 구슬들이 서로 부딪쳐 터지는 바람에 주변이 뇌전의 빛으로 가득 찼다.

다시 거대 새의 예리한 울음소리가 들렸을 때는 이미 두 날개를 펼쳐 광풍 속으로 사라진 후였다. 잠시 후 더 높은 허공에서 갑자기 바람이 몰아치고 푸른 거대 새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푸른빛에 휩싸인 몸집이 별안간 백여 장 크기로 커져있었다. 두 날개를 쭉 펴면 그림자에 제단이 가려질 정도였다. 옥으로 만든 제단 위에 서서 그것을 바라보던 세 사람은 곤붕의 커다란 몸집을 보며 표정이 굳어졌다.

“대장로님! 정말 9대 대장로님의 그 성치 않은 사리를 복용하게 하신 것이 맞습니까?”

“어찌 그러십니까? 서 장로께서는 내가 이족에게 다른 영단묘약이라도 주었을 거라 여기시는 것입니까.”

서 노인의 불안한 물음에 소녀가 얼굴을 굳히고 싸늘히 물었다.

“제가 감히 그럴 리가요! 그저, 저 자가 변신술을 익히는 속도가 너무 빠른 데다 변신을 한 후에 곤붕진신(鲲鹏眞身) 형상을 띠는 것이 이상해서 그럽니다. 저건 영사급 본족인도 불가능한 수준입니다. 정말 인족 출신이 맞는 것입니까?”

노인은 아무래도 석연치 않은 듯했다.

“직접 곤붕진혈을 융합하여 주었으면서도 저 자가 비령족인지 아닌지도 모르십니까? 물론 저렇게 강한 능력을 지니게 된 것은 나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아마 연화한 곤붕의 깃털에 정말 곤붕진성의 피가 함유되어 있어 체질이 달라진 것은 아닐까 합니다.”

금열이 침음하다 가장 합당한 이유를 찾아냈다.

“그렇게 본다면 이해를 못 할 상황은 아닙니다만…….”

미부인도 탄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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