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840화 (597/2,000)
  • 840화. 세 가지 선택

    *

    “선택지가 세 가지나 된다니 청라과를 얻기가 쉽지는 않겠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많은 선택지를 주실 리 없을 테니까요.”

    “알면 되었다. 첫째, 만일 네가 유명련(幽冥蓮) 혹은 흑암혈정(黑暗血晶)을 내놓을 수 있다면 두말없이 청라과를 내주마.”

    “두 가지 모두, 전부 소문으로만 떠돌고 정말 세상에 있는 물건일지 아닐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허허, 소문이라.”

    한립의 말에 야원 중년인이 비웃는 기색을 드러냈지만 곧 다음 조건을 이야기했다.

    “첫 번째 조건은 불가능할 것 같으니 다음으로 넘어가지. 두 번째는 네가 반드시 찾을 수 있는 물건이다. 만일 수중에 극품영석 5, 600개가 있다면 사정을 보아 청라과를 거래해 줄 수도 있다.”

    “극품영석 5, 600개는 너무 하신 듯합니다. 그렇게 많은 극품영석은 족 내의 장로 분들도 내놓기 어려울 텐데요. 이것도 어렵겠습니다.”

    한립의 얼굴이 약간 어두워졌다. 만일 상대가 극품영석 100개라고 했다면 이를 악물고 지니고 있는 영초들로 바꿔왔을 것이다. 하지만 5, 600개라니 고민할 것도 없이 포기였다.

    “흥, 물건은 노부의 것이다. 얼마를 부르든 내 마음대로란 소리지.”

    주인은 전혀 개의치 않았고 한립은 할 말을 잃었다.

    “두 가지 모두 못하겠다니 이제 마지막 한 가지만 남았다. 아마 이것도 안 될 텐데 듣고 싶으냐?”

    “괜찮으시다면 듣고 싶습니다.”

    한립의 말에 주인이 흥미롭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마지막 조건은 누구나 선택할 자격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일단 물어나 보자. 뇌전의 힘에 정통하더냐?”

    “뇌전이요?”

    의외의 질문에 한립의 동공이 수축했다.

    “그래, 나는 벼락 속성 신통은 아예 지니고 있지 않다. 뇌전의 힘에 정통하지 않다면 세 번째 조건은 들을 필요도 없는 것이야.”

    “뇌전의 힘이라면 약간은 다룰 줄 압니다.”

    한립은 이상하고 느끼면서도 잠시 고민하다 솔직히 답했다.

    “그렇단 말이지. 입만 나불대서는 믿을 수 없으니 노부 앞에서 펼쳐 보거라. 어디 세 번째 조건을 들을 자격이 있는지 봐야겠다.”

    “알겠습니다.”

    단번에 그의 제안을 수락한 한립이 등 뒤의 날개를 가볍게 털었다.

    쿠르릉! 콰쾅!

    뇌성이 울리고 무수히 많은 은색 뇌전들이 날개 위로 나타나 응결했다. 별안간 한립의 도처에 은색 뇌전 구슬 열댓 개가 떠올랐다.

    전부 주먹만 한 크기에 뇌전이 튀는 소리가 쉼 없이 들려왔고, 품고 있는 힘도 강대했다. 노인이 눈을 크게 뜨고 조금 반기는 기색을 드러냈다.

    “나쁘지 않구나. 정말 뇌전 신통을 제법 다룰 줄 알아! 그럼 마지막 조건을 알려주마. 사실 아주 간단한 것이다. 그저 나를 도와 벼락 속성 영수를 한 마리 굴복시켜주면 청라과는 네 것이야.”

    “영수를요?”

    한립이 예상치 못한 일에 눈을 반짝였다.

    “너무 간단하다고 생각하느냐? 솔직히 말하면 영수가 조금 특수해서 이미 산채로 포획했음에도 여태까지 굴복시키지 못하고 있다.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구했지만 한 명도 진정으로 영수를 굴복시키지 못했지! 오히려 대단한 실력자들도 영수에게 부상을 당하곤 했다. 안 좋은 이야기부터 먼저 하자면 네가 중상을 입거나 죽어나가도 노부는 신경 쓰지 않을 것이야.”

    야윈 중년인이 의미심장하게 경고했다.

    “벼락 속성 뇌수……. 선배님 어떤 영수인지 자세히 들을 수 있겠습니까?”

    한립의 미간이 좁아졌다.

    “어떤 종류인지는 말해 줄 수 없다. 결정을 내리면 직접 데려가 보여주마. 아마 한눈에 알아볼 것이야.”

    중년인의 눈이 교활하게 번뜩였다.

    ‘교활한 늙은이.’

    그가 정확히 영수의 종류를 말해주지 않자 한립은 속으로 욕을 해댔다. 그러면서도 머리를 굴리며 이런 저런 사정들을 따져보지 않을 수 없었다.

    연허 후기의 존재가 줄곧 굴복시키지 못하는 영수라면 확실히 이상했다. 하지만 상대가 뇌전의 힘에 정통한 이를 지목해 도움을 구한다니 마구잡이로 다른 이들을 상하게 하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한립이 다시 입을 열었다.

    “굴복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당연히 노부를 도와 영수가 얌전히 주인을 인식하는 의식을 받아들이게 해야겠지.”

    “그런 정도라면 제가 선배님을 도와 한 번 시도해보고 싶습니다.”

    “좋다. 주인을 각인시키는 의식을 위해 노부도 따로 준비할 것이 있으니 나흘 후에 다시 찾아 오거라.”

    주인장은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나흘 후에 다시 오겠습니다.”

    한립이 사라진 대문을 보며 들뜬 기색의 야윈 중년인이 수염을 쓸어 내렸다.

    한립은 급히 교역대전을 떠나지 않고 다시 교역 정보가 담긴 돌기둥 앞으로 돌아갔다. 하늘이 어둑해지고 교역대전이 문을 닫을 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빠져나왔다.

    이번에 수확이 아주 풍성했다.

    청라과의 행적을 찾은 것 외에도 인족끼리는 아예 거래가 없는 희귀하기 짝이 없는 재료 몇 가지를 발견하는데 성공했다. 그중에는 연기를 위한 재료도 있었고 영초와 영화도 있었다.

    게다가 마침 금수정충과 배합해 범성진마법상을 실체화하는데 필요한 또 다른 주요 영약도 있었다. 한립은 더없이 기뻤다.

    이제 또 다른 두 가지 영약만 찾으면 법상을 실체화할 재료가 모두 모이는 것이다. 한립은 이런 생각을 하며 푸른 빛덩이로 변해 날아올랐다.

    내일이 바로 천붕족 대장로와 약속한 날이었지만 둔광 속의 한립은 미소를 지을 뿐 조금도 걱정을 하지 않았다.

    *     *     *

    “우리 천붕 일족에 들어오겠는가?”

    소녀가 반짝이는 눈으로 한립을 바라보았다.

    “제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곳을 떠나기 어렵겠지요.”

    작게 탄식한 한립이 솔직히 말했다.

    그는 지금 이전에 금열과 만났던 누각에서 노인과 미부인과 함께 앉아 있었다. 두 명 모두 천붕족 합체기 장로로 한립을 훑으며 풍뢰시를 살피는 눈빛이 아주 뜨거웠다.

    “현명한 선택일세. 본 족 성자들이 시련을 통과하게만 도와주면 꼭 큰 보상을 내리겠네.”

    말투는 기뻐하는 듯했지만 금열의 얼굴은 태연했다. 그가 수락할 걸 알고 있었다는 표정이었다.

    “시련이 선배님께서 말씀하신 대로라면 도움을 드리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허나 저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을 당하고 싶지는 않군요. 그래서 귀 족이 꼭 들어주셨으면 하는 조건이 두 가지 있습니다. 저도 후환이 두렵지 않아야 본연의 실력을 발휘해 성자 분들을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조건? 일단 들어 보겠으니 말해보게.”

    서 노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제게 곤붕사리(鲲鵬舍利) 한 알을 주십시오. 또한 ‘천붕의 서약’ 부권(副捲)에 이름을 남길 권리도 필요 합니다.”

    한립이 가볍게 미소 지었다.

    “곤붕사리와 천붕의 서약 부권!”

    그 말에 서 노인과 미부인의 표정이 달라졌고 금열의 태연한 얼굴에도 금이 갔다.

    “안 되네! 곤붕사리는 본 족 전체에 겨우 십여 개 뿐이야. 각각이 본 족 역대 대장로님께서 좌화(坐化) 후에 남긴 성물이지. 천붕의 서약 또한 아무리 부권이라 해도 총 세 개뿐이라 더는 이름을 남길 자리가 많지 않고 말이야.”

    “두 가지 모두 본 족에서 대대로 전수되는 보물인데 어찌 허락할 수 있겠는가. 수사가 다른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 좋겠군.”

    서 노인이 얼굴을 굳히며 단박에 거절하자 미부인도 한숨을 쉬며 그를 설득했다. 그러나 소녀는 말이 없었고 무언가 생각에 잠긴 것 같았다.

    “제가 곤붕사리를 요구하는 것은 개인적인 이득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곤붕사리를 복용해야 곤붕의 힘을 장악해 천붕의 몸으로 변신할 수 있지요. 그래야 본 족 성자로 완벽하게 위장해 남들에게 들킬 일이 없을 것 아닙니까. 곤붕사리와 제가 연화한 곤붕의 깃털 그리고 곧 융합할 곤붕진혈을 더 하면 당연히 곤붕의 서약 부권에 이름을 올릴 자격이 갖추어질 테고요. 이렇게 해주셔야만 제가 일을 완수한 후에도 귀 종족이 제게 위해를 끼치지 않을 거라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립은 자신의 의도를 차분히 설명했다.

    “그런 것은 어찌 안 것이냐? 설마 누군가 얘기해준 것이더냐?”

    서 노인이 얼굴이 파랗게 질려 물었다.

    “청 내의 천지각(天知閣)에서 하루 동안 머물렀으니 아마 경전을 통해 알아낸 것들이겠지요.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습니다. 인족은 일단 수행을 어느 정도 대성하면 엄청난 학습 능력을 지닌다는 것을요.”

    한립 대신 금열이 담담히 입을 열었다.

    “그렇다 해도, 이 두 조건은 절대 수락하셔서는 안 됩니다.”

    “왜 안 된다는 것입니까? 귀 족은 이번 시련에서 새로운 성주를 배출하지 못하면 비령족 지파에서 쫓겨나고 다른 세력에 흡수되고 말 텐데요. 그것에 비하면 제 부탁은 사소한 것인데 들어주시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입니까? 세 분이 처음부터 일이 끝나면 저를 처리할 생각이 아니었다면 말입니다.”

    한립의 말에 서 노인과 미부인이 난색을 표했다.

    “좋다. 허락하지.”

    잠시 침묵하던 금열이 돌연 이렇게 말했다.

    “어찌 그런…….”

    “대장로님,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노인과 미부인이 놀라 만류하려 들었다.

    “더 이야기할 것 없습니다. 한 수사 말대로 본 족의 흥망이 달린 일에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요. 이 일은 이렇게 결정을 짓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금열이 손을 휘저으며 냉랭히 말했다. 그러자 곁의 두 사람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수사가 제시한 두 가지 조건은 본 장로가 허락하겠네. 하지만 최선을 다해 두 성자들을 보조할 것을 약속하는 뜻으로 혈서(血誓)에 서약해야 할 것이야. 만일 본 족이 이번 시련 후 성주를 배출하지 못한다면 약간의 수명을 대가로 지불하고서라도 천붕의 서약을 폐하고 자네를 죽일 것이네.”

    소녀의 눈빛이 칼날처럼 매서워졌다. 한립은 속으로 뜨끔했지만 겉으로는 오히려 미소를 머금었다.

    “염려 놓으시지요, 선배님. 만일 제가 최선을 다하고도 실패한다면 대장로님의 처분에 따를 것입니다.”

    “도리를 모르는 자는 아니구나. 이만 돌아가 쉬게. 내일 준비를 마치는 대로 사람을 보내 부를 것일세. 자네를 위해 개령의식(開靈儀式)을 진행해 본 족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지!”

    소녀의 말에 한립은 그저 천붕족 장로들에게 포권을 하고 물러났다. 그가 사라지자 서 노인이 한숨을 쉬며 진지한 얼굴로 금열을 보았다.

    “대장로님, 저는 아무리 그래도 반대입니다. 곤붕사리는 그렇다 쳐도 천붕의 서약 부권에 이름을 남기다뇨! 일단 그렇게 되면 서약 상의 몇 가지 중죄를 범할 경우를 제외하고 우리 일족은 누구라도 그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습니다. 외부인에게 그런 일을 허락한다면 앞으로 큰 화가 될 것입니다.”

    “나라고 왜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서 장로께서 잊고 계시는 것이 있습니다. 천붕의 서약에 제약을 받는 것은 본 족의 인물뿐이지요. 3천 년 전 배신자의 일을 잊으신 것입니까?”

    “그 말씀은…….”

    소녀가 묘한 표정을 드러내자 미부인이 바로 무언가를 떠올렸다.

    “며칠 전 공물을 호송하고 돌아온 비령장 몇 명을 통해 저 인족에 대해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저 자는 겉보기에는 중계 비령장 급으로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최소 초계 영장(靈將)급 신통을 부린다고 하더군요! 저 자가 돕는다면 성자들이 시련을 통과할 가능성이 높아질 겁니다. 그 것을 위해 이 정도도 감수하지 못하겠습니까? 게다가 일이 끝나고 저 자가 얌전히 본 성에 머문다면 굳이 마지막 수단을 쓸 이유도 없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본 족의 적수들이 이번 시련에 무슨 수작을 부려놓지 않았나 하는 것입니다.”

    금열이 가볍게 머리를 넘겼다.

    “역시 현명하십니다.”

    이제 서 노인과 미부인도 크게 안심한 듯했다.

    한편, 거처로 돌아온 한립은 몇몇 방문객들을 마주했다. 그들은 바로 그와 같이 성으로 돌아온 풍소와 백뢰, 백응 오누이였다.

    그들은 한립을 보자마자 아주 살갑게 대하며 그곳에서 반나절을 떠들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립은 그들을 배웅하고 나서야 웃음을 거두고 방 안에서 침음했다.

    곧 그의 방문이 굳게 잠겼다.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