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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836화 (593/2,000)
  • 836화. 천붕성지(天鵬聖地)

    *

    산맥으로 진입한지 사흘 째 되는 날 그들은 천붕족 순찰 무리와 마주쳤는데 약 서른 명의 순찰대가 다가 왔다. 각각 하얀 갑옷을 입고 손에 은빛 찬란한 창을 들었는데 대부분 축기기에서 결단기를 맴돌았다.

    순찰을 도는 임무를 맡기에는 나름 정예였다. 그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중년인이 풍소 일행을 보고 반갑게 예를 취했다.

    “풍 영장(靈將)과 백 영장 대인들을 뵙습니다. 장로님들께서 명을 내리시길 세 분 대인께서는 돌아오는 대로 만붕각(萬鵬閣)으로 오시랍니다. 아, 그런데 이 분께서는…….”

    급히 명을 전하던 천붕족이 한립을 보고 의아해했다.

    “이 분은 같은 족인(族人)일세! 줄곧 멀리서 수련을 하시다 처음 족 내로 돌아오신 분이지. 죄송합니다, 한 형. 저희는 일단 장로님들을 뵈어야 하니 일단 성산(聖山)의 귀빈관(貴賓館)에서 잠시 쉬고 계시지요. 한 형의 실력이라면 분명 장로님들도 직접 만나 뵙고자 하실 것입니다.”

    풍소가 천붕족 장로가 찾는다는 소리에 안색이 달라지며 한립에게 양해를 구했다.

    “괜찮습니다. 처음으로 본 족에 왔으니 구경 좀 해보고 싶군요. 저는 개의치 마시고 볼일을 보십시오.”

    “본족의 성지는 웅장하기 그지없으니 익숙해지시려면 시일이 걸릴 것 입니다. 이것은 제 영패인데 몇몇 금지들을 제외하면 막는 사람이 없을 거예요. 너희 중 한 명이 직접 한 형을 귀빈관으로 모셔다 드리거라!”

    풍소가 잠시 생각하다 품에서 목패 하나를 꺼내 한립에게 던져주고는 몸을 돌려 중년인 천붕족에게 분부했다.

    “존명!”

    풍소의 말에 결단기 순찰 대장이 더없이 공손하게 고개를 조아렸다.

    “풍 형, 배려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직접 안내하지 못해 송구할 따름이지요. 일을 마치는 대로 모시겠습니다.”

    한립이 미소를 머금고 인사하자 풍소가 미안한 낯으로 말했다. 백 씨 남매도 한립을 향해 포권을 하고 즉시 은색 거대 새로 변해 쏘아져 나갔다.

    “화우! 대인을 모시고 귀빈관으로 가거라. 실수 없이 정성을 다해 모셔야 한다.”

    풍소 일행이 멀어지자 중년 천붕족이 등 뒤의 수하들 중 가장 어려 보이는 사내를 지목해 명을 내리곤, 한립을 향해 예를 표하고 계속 순찰을 돌았다.

    한립은 사내의 안내를 받아 산맥 깊은 곳을 향해 날아갔다. 이 어린 천붕족은 한립에게 굉장히 공손했고 그가 먼저 무언가를 묻기 전에는 함부로 입을 놀리지 않았다.

    그러나 겨우 축기기 수사에게 알아 낼 수 있는 정보는 거의 없어서 한립도 몇 마디 묻고는 입을 다물었다. 사내를 따라 몇 시진을 날아가자 갑자기 열댓 개의 야트막한 산들이 나타나 길을 막았다.

    산들은 낮았지만 검은 구름이 깔리고 뇌전이 번뜩여 쉽게 지나갈 수 없을 듯했다. 이에 한립이 눈을 빛냈다. 그러자 산과 먹구름 모두 금제의 조화로 만들어진 환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누군가 강력한 금제를 걸어 놓은 것이다.

    과연 화우는 한립 보다 앞서 나가 산들 중 한곳에 이르러 날개를 펄럭였다. 그리고 그의 몸에서 우윳빛 깃털 하나가 날아가 허공을 뚫었다.

    펑!

    둔탁한 소리가 들리고 작은 산이 그림자처럼 왜곡되며 흐려졌다. 그러다 나중에는 완전히 사라져 숨겨진 하얀 통로를 드러냈다. 청년이 거침없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눈썹을 끌어올린 한립도 푸른 빛줄기로 변해 그 뒤를 쫓았다. 수백여 장은 되는 통로를 지나자 눈앞이 밝아지며 한 눈에 담기도 어려운 거대한 성과 해자(垓字)가 나타났다.

    산에 기대어 건축된 성이라 사방이 만 장 높이의 푸른 거산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성벽은 새하얀 벽돌로 쌓아 그리 높지 않았다.

    특이한 것은 성벽이 없었고 성벽 위에 몇 개의 거대한 기둥이 솟아 오색찬란한 빛을 발하며 두꺼운 장막이 펼쳐져 있다는 것이었다.

    많은 천붕족들이 거대한 기둥 사이로 성벽을 드나들었다.

    “대인, 안으로 드시지요.”

    천붕족 청년 화우가 한립을 보고 공손히 말했다. 한립이 고개를 끄덕이고 날개를 펼쳐 가까운 거대 기둥으로 다가갔다.

    가는 도중 화우가 설명했다.

    “천주(天柱)에서 너무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셔야 합니다. 기둥 주위 오십 장 내로만 금제의 영향을 받지 않고 성성(聖城) 안으로 진입할 수 있어서요. 본 성의 천붕금제는 72개의 종족 중에서도 유명하답니다. 이 금제만 있으면 몇 배 이상의 적도 상대할 수 있고, 상고시대에는 그 덕에 몇 차례 멸족의 화를 피했다고 전해지지요.”

    화우의 말에서 충만한 자부심이 전해졌다.

    한립은 어떤 금제인지 한 눈에 알아차리지 못했으나 영기의 장막에서 발산되는 어마어마한 영기의 압력이 드디어 이해가 되었다. 그가 명청령안의 신통을 발휘하자 고공에서 희미하게 푸른색과 은색 빛의 실이 나풀거리는 것이 보였다.

    극히 가늘어 보이는 실들이었지만 느껴지는 영기의 압력 대부분이 그 실들에서 발산되고 있었다. 한립은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며 화우를 따라 천주라 불리는 기둥을 지나쳤다.

    잠시 후 그들은 거성 안에 들어와 있었다. 거리에는 건물들이 많았는데 인족의 성과 조금 차이가 있었다. 건물들이 전부 동그랗고 갈수록 좁아지는 원추형이었다.

    높이는 제각각이라 백여 장부터 몇 장 되지 않은 건물까지 다양했지만 전부 반원형 문과 창이 있었다. 가장 이상한 것은 건물 중 절반이 거대한 성 한쪽의 산 절벽에 몰려 있었고 마치 벌집처럼 동굴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대인, 귀빈관은 성 중심부에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 머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상관없네. 그리하지.”

    “예!”

    화우가 한립을 데리고 하강해 천천히 나아갔다. 그 덕에 한립은 성 안의 다양한 풍경을 볼 수 있었고 저공비행을 하는 많은 남녀들과 스쳐 지나갔다.

    반 시진 후 그들은 3층으로 이뤄진 원형 건물 앞에 멈추었다. 그들이 착지하자 안에서 새하얀 날개가 달린 소녀가 나와 예를 올렸다.

    “화우 오라버니셨군요! 대인께서 귀빈관에 머무는 것입니까?”

    “백취, 이분은 한 대인님이셔. 풍소 영장 대인의 귀빈이시니 잘 대접해 드려야 한다.”

    화우가 소녀를 알아보고 신중히 말했다.

    “풍소 영장님의 손님이요? 소녀, 반드시 잘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풍소’라는 이름이 나오자 예쁘장한 소녀가 깜짝 놀라 더욱 공손해졌다. 소녀를 살핀 한립은 소녀가 연기기 수행을 지닌 것을 알아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소녀는 고개를 숙이고 그 뒤를 따랐지만 화우는 감히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대기했다. 잠시 후 건물 안에서 한립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구나. 이곳에 머물 테니 돌아가도 좋네.”

    그 말에 청년이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한립은 건물 3층의 창문가에서 눈을 가늘게 뜨고 청년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의 몇 장 뒤에 백취란 소녀가 손을 모으고 서 있었다.

    “성성에 본 족인들이 대략 몇이나 머물고 있지?”

    한립의 갑작스런 물음에 소녀가 멍하니 있다가 서둘러 대답했다.

    “본 성이 워낙 커서 정확히 확인된 바는 없으나 약 3, 4천만 명은 거주할 것입니다.”

    “3, 4천만? 인구가 그렇게 적단 말인가?”

    “대인, 오해십니다. 성성에 들어올 수 있는 이들은 오직 수련을 통해 인간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는 본 족인들 뿐입니다. 수행이 낮아 변신을 못하는 이들은 본 성에 들어올 자격이 없지요. 본 족이 비령족 중 약소한 일족이나 그래도 10억 명 정도의 인구수는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랬구나.”

    “대인께서는 본 성을 처음 찾아주신 것입니까?”

    힐끔 한립을 본 소녀가 머뭇거리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나처럼 처음으로 이곳을 찾는 귀빈들이 꽤 있느냐?”

    “아, 귀빈관에 머무는 분들은 꽤 많습니다. 대부분 처음으로 이곳에 들어온 외부의 본 족이거나 아니면 임시로 본 성에 파견된 다른 종족의 인물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할 것 없다. 나는 줄곧 바다 멀리에서 홀로 수련하다 처음으로 들어온 것이니. 그런데 인근에서 본 성의 지도를 구할 곳이 있더냐? 있다면 하나 구하고 싶으니 장소를 알려 주거라.”

    “대인께서는 외부에서 지도를 구입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귀빈관에 귀빈들을 위해 준비해 놓은 특수 지도가 있는데 외부에서 구하시는 것보다 훨씬 상세합니다. 바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오, 그렇다면 더 좋겠지. 가져 오거라.”

    소녀의 말에 한립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대인!”

    소녀는 제비처럼 재빠르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여전히 창가에 기대 바깥 풍경을 지켜보던 한립은 자신의 계획을 검토했다.

    이번에 천붕족에 잠입한 것은 비령족이 보유한 각종 진귀한 재료를 구하기 위함이었다.

    비령족들끼리 싸우는 것을 보니 그들은 법보에 별로 의지하지 않았다. 비령족 자체가 연기술에 능하지 못 한 것인지 아니면 고계 존재들은 평범한 기물의 보조가 아예 필요하지 않은 것인지도 몰랐다.

    유일하게 사용한 곤마망이나 화룡주 같은 이보도 전부 보조성 보물에 불과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소녀가 다시 3층으로 올라와 비취색 죽통을 바쳤다.

    겨우 엄지손가락 굵기에 수 촌 크기의 죽통에서 광채가 좔좔 흘렀다.

    휙!

    조금 놀랐지만 한립은 태연한 얼굴로 그것을 불러들였고, 이후 손을 내저어 소녀를 물러나게 했다. 백취는 얌전히 예를 올리고 층계를 내려갔다.

    한립은 작은 죽통을 매만지며 호기심을 드러냈다. 의식을 불어넣자 아주 선명한 거대한 지도가 보였다. 일반적으로 인족이 사용하는 옥간과 비슷한 물건이었다.

    특수한 제련을 거쳐 옥간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내게 만든 것이다.

    ‘비령족의 연기술이 결코 부족하지 않구나. 고유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그는 지도에 몰입해 있다가 한식경이 지나 죽통에서 의식을 회수하고 침음했다.

    예상보다 성의 면적이 조금 작기는 했지만 인족의 성과 비교해서 그렇지 사실은 엄청난 규모였다. 아마 끝에서 끝까지 날아가는 데만 보름은 걸릴 것이다. 한립은 성의 건물들 보다 성 내에 위치한 교역 대전에 관심이 컸다.

    소위 교역 대전이라는 곳은 지도상에서 성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거대한 산에 표시되어 있었다. 산중턱에 위치한 장소는 인요족의 시장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그밖에 유일하게 호기심이 간 곳은 전령전(傳靈殿)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천붕족 족인들을 위해 제공하는 중, 고계 전용 수련 장소였다.

    물론 지도에 표시된 몇몇 금지들도 눈여겨보았지만 직접 찾아가 볼 마음은 없었다.

    한립은 지도의 내용을 되새긴 후 날개를 펼쳐 소리 없이 창문을 빠져 나갔다. 교역대전이 있는 방향이었다. 현재 천붕족의 상황으로 보아 어서 빨리 좋은 재료를 쓸어 담아 떠나는 것이 상책이었다.

    ‘괜히 성가신 일에 휘말리기 전에 떠나자.’

    그는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속도를 늦춘 후 다른 천붕족들과 비슷한 속도로 날아갔다.

    교역대전은 꽤 가장자리에 위치해서 반각을 날아가서야 겨우 도착할 수 있었는데 머지않은 곳에 기이하게 큰 탑 형태의 건물이 눈에 들어 왔다. 그곳은 원추형이 아니라 팔각형에 특수한 문양과 부호가 각인되어 있었다.

    주술 문자들 사이로 은은하게 풍기는 검은 기운은 놀랍게도 조금 익숙했는데 탑 꼭대기에 박힌 기괴한 수정에서 일곱 가지 색의 빛이 뿜어져 나와 탑을 감쌌다.

    검은 기운은 일곱 빛깔 기운에 둘러싸여 탑을 벗어나지 못했다. 한립은 놀란 기색으로 턱을 매만졌다. 기억대로라면 저곳도 지도에 표시된 금지 중 한 곳이었고 봉령탑(封靈塔)이라 적혀 있을 뿐 다른 설명은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천붕족들이 그 근처를 얼씬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분명 녹록한 곳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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