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4화. 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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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소 형, 모르는 척할 것 없습니다. 당연히 목령화를 말하는 것이지요.”
“목령화처럼 진귀한 것을 우리가 지니고 다니겠습니까? 천명, 정신 차리시지요.”
“뭐, 그리 잡아떼도 소용없습니다. 직접 뒤져보면 될 일이니까요. 아아! 말씀드린다는 것을 깜빡 잊었군요. 천붕족 최후의 곤붕진혈(鲲鵬眞血)을 지닌 성주(聖主)께서 4개월 전, 지연(地淵)에서 뛰쳐나온 쟁녕수(猙寧獸) 세 마리에게 포위를 당해 사망하였습니다. 이제 천붕 일족이 비령족 명단에서 제해지는 것은 시간문제겠지요.”
천명이 광소하며 비웃어댔다. 그 말에 천붕족들은 깜짝 놀라 시선이 흔들렸다.
“헛소리! 곤붕성주께서 어떤 분이신데……. 어찌 쟁녕수 세 마리에게서 도망치지도 못하셨단 말인가.”
젊은 천붕족 사내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 중얼거렸다.
“하하하, 물론 쟁녕수 세 마리로 곤붕성주를 막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미 중상을 입고 두 날개가 상해있던 상태라면 어떻습니까?”
“그 소리를 지금 우리보고 믿으라고 하시는 겁니까? 아무리 우리를 회유해도 지닌 물건은 넘기지 않을 것입니다.”
풍소가 평정을 되찾고 냉랭히 받아쳤다. 다른 젊은 남녀도 몸에서 뇌전을 번뜩이며 협조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적융족 대머리 거한이 그것을 보고 코웃음을 쳤다. 그들은 지금 천붕족들의 세 배에 가까운 전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흉흉한 눈빛으로 천명이 한 손을 흔들자 나머지 적융족들이 동시에 짧은 남색 죽통을 꺼내 들었다.
푸푹!
파공음이 들리고 남색 빛구슬들이 날아들었다.
“이런 곤마망(困魔網)입니다. 달아나야 해요!”
젊은 천붕족 사내가 그것을 보고 즉시 날개를 펄럭여 은색 뇌전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러자 나머지 천붕족들도 안색이 달라지며 그 뒤를 바짝 쫓았다.
그러나 이미 늦은 후였다.
주위에서 남색 빛구슬이 폭발해 거대 그물로 변하더니 엄청난 크기로 불어났다. 또한 눈앞에서 모든 그물들이 하나로 융합해 주변 수 백리 공간을 완전히 봉쇄해 버렸다.
거대한 그물 속에서 세 뇌전은 완전히 갇혀 버렸다. 뇌전이 사라지고 나타난 천붕족들은 안색이 창백했다.
“저계의 곤마망이지만 당신들을 잠시 붙들어 두기에는 충분할 것입니다. 풍소, 우리의 공격을 막고 그물을 뚫고 달아날 수 있다고 여기지는 않겠지요? 얌전히 투항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거절한다면 무슨 꼴을 당하더라도 나를 원망하지는 마십시오.”
천명이 히죽거리며 말했다.
“힘을 합쳐 빠르게 곤마망을 뚫고 달아난다.”
풍소는 천명을 무시하고 무표정하게 다른 둘에게 말했다. 이어 두 손을 교차하자 굵은 뇌전이 쏘아져 나갔다. 젊은 천붕족 남녀도 곧바로 입을 벌려 굵은 뇌전을 분출해 공격에 합류했다.
쿠르릉 콰쾅!
굉음이 울리고 남색 뇌전이 푸른 곤마망 그물을 쳤다. 그것을 본 천명이 일갈했다.
“공격! 한 명도 달아나게 두어서는 안 됩니다.”
대머리 거한이 공중에서 한 바퀴 돌더니 붉은 거대 새로 변해 곤붕족들을 향해 날아갔다. 이에 다른 적융족들도 변신 술법을 펼쳐 불새로 변한 다음 포위를 유지하며 공격했다.
그러나 천붕족들도 지지 않고 은색 뇌전을 쏘아댔다.
일순간 허공은 화염과 뇌격으로 가득 차 뜨거운 열기가 차올랐다. 그러나 머리 둘 달린 거대 조류만이 홀연히 허공에 떠서 공격에 가세하지 않았다.
‘휴우.’
그때 한립이 한숨을 쉬며 어찌해야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 역시 곤마망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립은 울적했다. 그가 기운을 숨기고 있지 않았다면 곤마망이 펼쳐진 순간 금제 범위를 벗어났을 것이다. 그런데 하필 기운을 숨기고 있었고 그물을 벗어나려 신통을 썼다면 정체가 탄로났을 것이다.
어찌할지 고민하다 그만 금제 속에 갇히고 만 것이다. 한립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적융족은 비령족 72개의 종족 중 하나로 천붕족들이 목령화를 지니고 이곳을 지나갈 것을 미리 알고 매복 해 있었다. 그리고 적융족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천붕족 주요 인사가 이미 죽어서 천붕족의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
그렇다면 그의 원래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천붕족을 포기하고 다른 비령족들의 근거지에 잠입해야 할 수도 있었다.
‘그건 어려울 것 같은데…….’
겉보기에는 날개가 달린 것을 제외하면 천붕족들과 인족은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적융족들의 흉악한 얼굴을 보니 다른 종족에 잠입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한립은 이런 생각을 하며 머지않은 곳에서 천붕족과 적융족들의 전투를 주시했다.
굉음이 울려 퍼지고 무수히 많은 은색 뇌전과 불바다 속에서 이종족의 포효소리가 들려왔다. 은색 거대 새는 뇌전의 화신이 되어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으로 용맹하게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많은 불새들의 협공에 자연히 밀릴 수밖에 없었다. 불새들은 전신이 불처럼 활활 타올라 은색 뇌전에 당해도 마치 불사신처럼 순식간에 상처를 회복했다.
그러나 반대로 은색 거대 새는 화염에 휩싸이며 뇌전을 번뜩이며 막아냈지만 발산하는 은빛 기운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들이 싸우는 상공에 언제부터인가 붉은 구슬이 떠올라 새빨간 붉은 빛을 발산하며 아래쪽 수십여 장을 밝혔다.
“풍소, 우리가 동급이지만 난 화룡주(火龍珠)를 지니고 있습니다. 상대가 될 것 같습니까?”
전투를 벌이다 불새 중 하나가 괴상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나 그 말에 천붕족이 코웃음을 치며 돌연 은색 거대 새의 발톱을 휘둘러 다섯 개의 하얀 빛줄기를 뿜었다. 극히 빠른 속도로 붉은 구슬을 갈라 버릴 기세였다.
쿵!
굉음이 들렸지만 화룡주는 붉은빛을 뿜으며 가볍게 다섯 빛줄기를 막아냈다.
“하하, 풍소 형! 그리 요행을 바래서야. 화룡주는 종족 장로님이 금제를 걸어주셔서 겨우 고계 비령사(飛靈師)가 어찌 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란 말이요!”
거대 불새가 광소했고 날개를 펄럭여 대량의 화염을 몰아 보냈다.
은색 거대 새들은 화룡주의 범위를 벗어나려고 이리저리 도망쳤지만 붉은빛이 거머리처럼 그들을 따라다녔다. 이에 그들의 부상은 늘어만 갔고 온몸의 은색 뇌전도 점차 약해졌다.
그러나 우위를 점한 불새들의 공격은 더욱더 끈질기게 이어졌다. 은색 거대 새들이 화염의 바다 속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것을 본 천명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휘익!
그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자 거대한 쌍수 괴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대 새는 날개를 펼치며 음산하게 울부짖었고 곧 붉은 기운으로 변해 불바다 속의 은색 새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은색 거대 새 한 마리가 그것을 보고 소리쳤다.
“어서 뇌둔술을 써서 피해야 합니다. 적후수(赤吼獸)와 직접적으로 충돌해선 안 돼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은색 거대 새들은 은색 뇌전으로 변해 불바다를 빠져나왔다. 그들은 불바다를 막 벗어난 순간 종적을 감추었다. 붉은 기운이 사라지고 다시 나타난 괴조는 연신 두 머리를 좌우로 움직이며 그들을 찾았다.
허공의 화룡주도 빙글빙글 돌며 제 자리를 지키는 것이 은색 거대 새들을 놓친 듯했다. 불새들이 그것을 보고 멈칫했고 가장 큰 불새가 두 날개를 접고 다시 화염 속에서 인간 형태로 돌아왔다.
천명이라는 대머리 거한이었다. 그는 은색 뇌전이 사라진 방향을 보며 냉소했다.
“뇌전의 힘으로 숨는다고 못 찾을 것 같습니까? 이번에 화룡주를 빌려 오면서 통령봉(通靈蜂)들도 데리고 왔습니다. 이미 천붕 일족의 정핵(晶核)을 식별하게 해놓았으니 뇌둔술을 아무리 극성으로 펼쳐도 그것에게는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말을 마친 천명이 입을 벌려 붉은 호리병을 분출했다. 호리병이 회전하며 기울어지자 그 안에서 노란 말벌들이 몇 마리 날아올랐는데 은은한 영기의 빛을 발산하는 영충이었다.
휘이익.
거한은 기이한 소리를 내며 은색 거대 새가 사라진 방향을 가리켰다. 그러자 말벌들이 웽! 하고 어딘가로 날아갔다. 교활하게 미소 지은 거한이 한 손을 저었고 다른 적융족들이 통령봉들을 따라 추적에 들어갔다.
그리고 머리 둘 달린 괴조도 천천히 그들을 뒤따랐다.
“흠?”
그런데 잠시 후 천명이 굳은 얼굴로 멈칫했다. 말벌들이 전부 한 곳에 모여 어딘가를 에워싸고 쉼 없이 날갯짓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찌 천붕족을 한 명밖에 찾지 못 한 거지?’
천명은 무슨 일인지 아리송했지만 과감하게 결단을 내렸다.
“공격!”
그 말이 끝나자마자 말벌들이 둘러싸인 공간에서 어떤 사내의 짧은 탄식이 들려왔다. 그가 회색 기운을 크게 일으켜 통령봉들을 휘감자 곧 말벌들이 소리 없이 실종되었다.
놀란 불새들이 입에서 굵은 불기둥을 뿜어냈다. 그러나 이번에도 회색 기운이 번뜩이자 불기둥들이 전부 녹아내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이에 화들짝 놀란 불새들은 흉흉한 기세로 날아들던 것을 멈추고 의심스런 눈길로 회색 기운 속 낯선 사내의 인영을 바라보았다.
푸른 장포를 입은 평범한 용모의 청년은 은색 날개를 지닌 비령족 같았으나 달아난 천붕족 셋 중 그 누구도 아니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천명이 사납게 일갈하며 몸에서 놀라운 기세를 뿜어냈다.
“누군지 보면 모릅니까?”
푸른 장포 청년이 씩 웃으며 답했다. 갑자기 은신을 들켜버린 한립이었다.
태연한 얼굴과 달리 속으로는 불만이 가득했다. 이족들끼리의 싸움에 왜 자신이 말려들어야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천붕족도 아닌데 저놈의 멍청한 말벌들은 어째서 내 머리 위를 맴돈단 말인가!’
한립은 십중팔구 풍뢰시를 새로 제련하며 쓴 곤붕의 깃털과 연관있을 거라 짐작했다. 그는 모습을 드러내며 풍뢰시의 색깔과 모양을 천붕족들의 것과 유사하게 만들었다.
“천붕족?”
천명은 한립의 얼굴과 등 뒤의 은빛 날개를 보고 얼굴을 찡그렸다. 자신의 수가 통하자 한립이 웃음을 머금었다.
“어째서 이곳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우리를 만난 것이 운이 없다 여기시오. 죽입시다.”
천명이 냉정하게 명을 내렸다. 동시에 주위의 불새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발톱을 휘둘렀고 열댓 개의 날카로운 빛과 화염들이 그를 향해 몰아쳤다.
그때 화룡주도 번뜩이며 한립 머리 위로 이동했다. 그러자 자연히 붉은 기운이 그를 향해 드리웠다. 그것을 보고 한립은 미간을 좁히며 검은색 손바닥을 휘둘렀다.
그리고 몸 앞의 회색 기운을 맹렬히 키워 불새들의 발톱에서 뿜어져 나온 빛과 화염을 일시에 응결한 다음 산산이 흩어버렸다. 동시에 그는 등 뒤의 날개를 펄럭여 금색 뇌전 속으로 사라졌다.
다음 순간 붉은 구슬 옆에서 나타난 한립이 번개처럼 빠른 손으로 그것을 움켜쥐었다.
펑!
화룡주가 폭음을 내며 붉은 보호막을 만들고 허공에 몇 장 크기의 붉은 구렁이 환영을 불러내 한립의 손을 물어뜯으려 했다.
쩡!
그러나 금색 비늘이 덮여 있는 한립의 팔은 불구렁이의 날카로운 이빨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한립이 구슬을 쥔 손가락에 힘을 가하자 그의 등 뒤로 금빛 그림자가 어른거리더니 무언가 깨져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화룡주의 붉은 보호막이 엄청난 힘에 터져나가며 산산조각 나기 시작한 것이다. 나머지 손마저 가져가 열 손가락으로 힘을 주자 구슬은 붉은 가루로 변해 흩어졌다.
아래쪽에서 이를 지켜보던 적융족들이 눈을 부릅떴다.
“감히 우리 적융족의 보물을 훼손해!”
천명이 대노해 소리쳤다.
그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다시 거대한 불새로 변해 달려들었고, 머리 둘 달린 괴조 역시 붉은 기운으로 변해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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