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832화 (589/2,000)
  • 832화. 금수정충(金髓晶蟲)

    *

    한립은 서금충들을 회수한 다음 소매 속에서 다른 영충 두 마리를 풀어놓았다. 그리고 똑같이 시간이 흘러 두 서금충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추락했을 때 다시 거둬들였다.

    이번에는 소매 속에서 네 마리의 서금충이 날아올랐고, 반나절 후에는 천 마리가 넘는 서금충들을 풀었다가 회수했다. 그 덕에 겨우 돌덩이를 3등분으로 쪼갤 수 있었다.

    돌덩이 세 개를 보며 한립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양손으로 수결을 맺자 등 뒤로 금빛 광채가 번뜩이며 별안간 삼두육비(三頭六臂)의 허상으로 변했다. 한립이 허리를 굽혀 두 팔로 천천히 돌덩이 하나를 들어올렸다.

    산을 하나 통째로 들어 올리는 것처럼 무거웠지만 간신히 둔광을 이용해 갖고 날아갈 만은 했다. 입꼬리를 끌어올린 그가 일단 돌덩이를 내려놓고 동부를 살폈다.

    ‘또 뭐가 있을지 모르니까.’

    그러나 몇 가지 재료들과 약간의 영석 말고는 별다른 것은 없었다. 한립은 필요한 것들을 전부 챙겨 넣고 대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주춧돌 세 덩이 중 한 개는 챙기고, 나머지 두 개는 각각 동굴 속 은밀한 곳에 숨겨 두고 환영진을 펼쳐 가려두었다.

    그는 다시 해수면 위로 올라와 풍뢰시를 펼쳐 한 줄기 반짝이는 실로 변해 하늘 저편으로 사라졌다.

    사흘 후, 다시 흑은산맥의 동부로 돌아온 그는 바로 돌덩이를 밀실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남은 이틀간 한립은 급히 동굴을 떠나지 않고 밀실 속에서 주춧돌덩이를 살펴보았다.

    주춧돌은 단단하기 그지없어 얼음 봉인, 뇌격, 마기 등을 전부 써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또한 서령천화를 제외하면 그의 원영지화도 그것을 녹일 수 없었다. 물론 서령천화도 아주 미미한 수준이었다.

    만일 이런 중량에 원자신산 같은 공격형 보물을 만들면 그 위력이 엄청날 것이다. 그리고 최상급 방어보물을 만들기에도 최적의 재료였다.

    이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는 시간을 두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주춧돌을 갉아 먹은 서금충들을 살피다가 한립은 깜짝 놀랐다.

    서금충들이 마치 다음 진화를 하려는 듯 깊은 잠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성체인 서금충이 진화를 하다니 이변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립은 기분이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이 돌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그러나 서금충이 진화한 후에 다시 생각해보기로 결정했다.

    이틀의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 그와 소머리 짐승이 약조한 이레째 되는 날이 되었다. 역시 아침 일찍부터 동부 밖에 두 요수뿐 아니라 금색 털의 거대 원숭이와 거대 멧돼지가 도착해 있었다.

    그들은 한립의 동부 밖에서 두려운 얼굴로 조용히 기다릴 뿐 전혀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 거의 정오가 되어갈 무렵 푸른 기운이 거품처럼 흩어지고 스무여 장 크기의 거대한 석문이 나타났다.

    쿠릉.

    석문이 스스로 열리며 우윳빛 광채의 통로가 드러났다.

    “들어 오거라!”

    통로 속에서 차분한 청년의 목소리가 울렸다.

    네 요물들은 흠칫 놀라면서도 감히 거부하지 못하고 통로 속으로 들어섰다. 원래 작은 소머리 짐승을 제외한 다른 요물들은 체구를 줄이고서야 겨우 석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잠시 후 한립은 대청 안 돌 의자에 앉아 네 명의 요물들을 훑어보았다. 특히 금색 털의 원숭이에게는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털썩.

    한립은 요물들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매를 털어 무언가를 바닥에 떨구었다. 커다란 남색 교룡의 머리였다. 그것을 본 작은 짐승들은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보광존자의 수급이다. 거래자가 죽었으니 그 거래는 이제 무효다. 이레가 지나 이곳에 왔으니 다들 결정은 내렸겠지?”

    거절을 용납지 않는 어투였다. 8급 요수의 기운이 묻어나는 교룡 머리를 두고 네 요물들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저희가 어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겠습니까! 선배님께서 원하시던 물건을 마련해 왔습니다.”

    소머리 짐승이 다른 짐승들과 시선을 교환하고는 미소를 머금고 답했다.

    “좋다. 너희가 원하는 목령화도 내 충분히 준비해 두었다.”

    차분히 말한 한립이 손을 뻗어 팔목의 저물탁을 만지자 하얀빛이 반짝이며 기다란 장방형의 옥갑이 그의 손에 나타났다.

    옥갑이 열리자 진한 화초 향기가 뿜어져 나오며 황금색 방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족히 백 개는 넘는 양이었다.

    “이렇게 많은 목령화라니! 전부 천 년 이상의 연분을 지닌 것들입니다.”

    꽃을 본 거대 원숭이가 놀라 외쳤다.

    “목령화를 확인했으니 이제 금수정충과 금모산호사를 확인시켜 줘야겠지?”

    “수량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겨우 백 개 아닙니까? 약속에 따르면 영충 열 쌍과 거래하면 끝입니다.”

    희색을 드러낸 소머리 짐승이 차분하게 말했다. 이에 한립이 살짝 미소 짓고는 옥갑을 허공에 띄우고 다른 손을 뒤집어 긴 장방형 옥갑을 꺼냈다.

    그 안에도 목령화가 가득했다. 요물들은 그것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제 충분하겠지. 가져온 영충과 산호사를 전부 꺼내 놓거라.”

    한립이 네 요물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유유히 명했다.

    놀란 요물들이 서로 속닥이더니, 결국 품에서 주먹 크기의 수정 광물들과 검은 호리병을 꺼냈다. 순식간에 수정 결정 15개와 검은 호리병 3개가 놓였다.

    한립이 눈을 반짝이며 허공에 손을 뻗자 수정 결정 하나가 날아들었다. 고개를 숙이고 자세히 살피자 그 안에 우윳빛 곤충 한 쌍이 응결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의식을 수정 속으로 투입해 감싸자 작은 곤충이 빛을 머금고 움찔하더니 입에서 금색 액체를 뿜어내 수정 결정으로 흡수시켰다. 수정결정이 금색 빛을 머금고 밝게 반짝였다.

    한립은 수정결정을 쥔 손에 힘을 주었지만 금빛이 번뜩일 뿐 깨지지는 않았다.

    “과연 금수정충이구나!”

    “안심하셔도 됩니다, 선배님. 저희가 아무리 담이 커도 감히 선배님을 속이겠습니까.”

    한립의 혼잣말에 소머리 짐승이 쓴 웃음을 지었다.

    “그래?”

    요수의 말에 한립은 수정 결정을 내려놓고 이번에는 호리병 중 하나를 불러들였다. 호리병을 기울이자 자금색(紫金色) 모래가 흘러내렸다. 한립은 자금색 알갱이를 살피다가 나머지 두 개의 호리병도 불러와 땅에 쏟았다.

    “맞다. 확실히 극품의 금모산호사구나. 여기에 금수정충 15쌍을 더해도 목령화 두 상자에는 못 미치겠지만……. 엇비슷하니 거래를 하마.”

    모래의 중량을 살피던 그가 담담히 말했다. 그 말에 네 요물들은 희색이 만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립이 옥갑 두 개를 던져주자 소머리 짐승과 금색 털 원숭이가 각각 하나씩 받아 조심스럽게 챙겼다. 그와 동시에 수정결정과 호리병이 한립의 소매 속으로 사라졌다.

    “이번 거래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앞으로도 금수정충과 금모산호사 혹은 다른 진귀한 물건이 있다면 이곳으로 와 교환해 가거라. 나에게 목령화 말고도 귀한 재료가 많으니 너희가 손해 볼 일은 없을 것이다. 이제 너희는 떠나도 좋다.”

    그의 강력한 기운에 요물들은 감히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공손히 인사를 올리며 물러났다.

    요풍을 휘날리며 날아가던 요물들이 천여 리를 벗어나고 나서야 한숨을 돌리고 허공에서 다시 모였다.

    “다행입니다. 한 번에 이렇게 많은 목령화를 얻다니요. 그것도 전부 천 년 이상 된 것들입니다. 이것만 갖다 바쳐도 나머지 공물은 필요 없겠습니다. 천붕족들에게 벌을 받을 일도 없고요!”

    “그러게 말입니다. 저 자가 이렇게 많은 목령화를 지니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기억대로라면 그 산에 자생하던 목령화 수량을 다 합해도 이것에 미치지 못할 텐데요. 우리가 찾아보지 못한 곳이 더 있었던 걸까요? 하는 말을 들어보니 아직도 적잖은 수량을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거대 멧돼지의 말에 거대 원숭이가 미간을 좁히며 대꾸했다.

    “아마 그렇겠지요. 다른 곳에서 목령화를 구한 것은 아닐 겁니다. 천붕족이 이 꽃을 중시하는 것으로 보아 흑은산맥에서만 나는 특산 영화(靈花)일 가능성이 큽니다.”

    머리 셋 달린 구렁이가 눈을 굴렸다.

    “됐습니다. 어찌 되었든 우리와 상관없는 일 아닙니까. 백 년만 버텨서 노흔을 지운 다음에 달아나면 그만입니다. 대인께서 요구한 고계 영석이나 열심히 모아 봅시다. 괜히 문제가 생겨 일이 틀어지면 헛고생이니 말입니다.”

    잠시 듣고만 있던 소머리 짐승이 나섰다.

    “목령화를 구했으니 이제 백 년은 끄떡없습니다. 관건은 영석이지요. 저계 영석은 우리에게도 쓸모가 없고, 중계 영석은 대인께 쓸모가 없으니 말입니다. 고계 영석도 영석 광산이 텅 비어 구하기 어려운데 이 번에는 아예 속성이 다른 네 가지 극품 영석을 구해오길 바라지 않습니까. 이런 극품 영석은 흑은산맥 주변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물건입니다. 섬 주변의 다른 수련 동도(同道)들과 교환하려해도 기껏해야 물 속성 영석을 구할 수 있겠지요.”

    “허나 대인께서 경지를 넘기 위해서는 극품 영석이 꼭 필요하다지 않습니까.”

    금색 털 원숭이의 말에 거대 멧돼지가 걱정스럽게 중얼거렸다. 네 요물들은 일순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이전에는 구하기 어려웠지만 조금 전 그 자의 신통이 대단하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다른 지역 출신 같고요. 다른 속성의 고계 영석을 지니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렁이의 세 머리가 갸웃거리다 중간 머리가 입을 열었다.

    “저도 그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의 수행에 극품 영석을 구해갈 일이 뭐가 있습니까? 괜히 거래를 하려다 상대의 의심만 살 것입니다. 일단 다른 방법을 찾아보고 정 안되면 그 자와 거래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일단 천붕족 사자가 다녀간 후에 다시 논의하지요.”

    소머리 짐승이 신중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금색 털 원숭이가 그의 말에 동의했다. 이렇게 네 요물은 이렇다 할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흩어졌다.

    그때 한립은 밀실 안에서 금수정충 하나를 들고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금수정충은 인요 양족에서 유명했지만 포획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또한 가끔 발견되어도 두 쌍이나 세 쌍 정도라 가격이 웬만한 고계 수사의 가산과 맞먹었다.

    그래서 6급 요수들이 금수정충을 바칠 수 있다고 했을 때 내심 광소한 것이다.

    금수정충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었는데 몇몇 수행을 증진시켜주는 단약의 주재료로 쓰일 뿐 아니라 연체(煉體)에도 큰 효과가 있었다.

    이 곤충들이 내뿜는 금수(金髓)라는 물질을 발라 몸을 씻어내면 동급 연체사보다 훨씬 강력한 육체를 지닐 수 있었다.

    그러나 한립은 이 두 가지 방법보다 아주 드물게 쓰이지만 세 번째 활용법에 관심이 갔다. 바로 금수정충을 제련해 범성진마공을 펼칠 때 나타나는 금색 허상인 범성진마법상 (梵聖眞魔法相)을 실체화시키는 것이다.

    당연히 불종의 금강법신(金剛法身)을 응결해 내는 강력한 신통에는 금수정충 외에도 다른 재료들이 더 필요했다. 아마 그 재료들도 무척 귀해 인연이 따라 줘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한립은 수정결정을 들고 묵묵히 앉아 있다가 돌연 네 개의 수정결정을 더 꺼냈다.

    ‘범성진마법상을 응결하는 데는 열 쌍이면 충분하다.’

    남은 다섯 쌍은 몸을 단단하게 만들어 다음 번 중기 고비에 쓸 생각이었다. 순조롭게 일이 진행된다면 오륙 년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계획을 세우며 한립은 주저 없이 수정결정 하나를 들고 손에서 푸른 영기의 빛을 뿜으며 눈을 감았다. 꼼짝하지 않던 수정결정 속의 곤충 한 쌍이 눈부신 빛을 방출해 머리부터 꼬리까지 부들부들 떨며 금색 액체를 분출했다.

    곧 두 줄기의 금색 액체가 수정결정을 통과해 한립의 손바닥으로 흘러 내렸다.

    파앗!

    푸른빛에 감싸인 금색 액체가 더욱 폭발적인 빛을 방출하자 푸른빛과 어우러진 금빛이 서서히 퍼져나가 그의 팔 하나를 완전히 감쌌다.

    빛이 가시자 한립의 팔뚝은 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에 그가 다른 손으로 금색 팔뚝을 잡고 주술을 외자 금빛 팔뚝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며 우윳빛 광채가 생겨났다. 한립은 차분히 호흡하며 체내의 영력을 기류의 순환에 불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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