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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830화 (587/2,000)

830화. 천붕족(天鵬族)과 공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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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의 소식을 전달받은 한립은 잠시 후 다시 두 번째 원영을 꼭두각시 속으로 돌려보냈다.

“겨우 중계 요물들이 다시 쳐들어 왔단 말이지? 보아하니 도움을 줄 이를 찾았나 보구나.”

한립은 성큼성큼 대청으로 향했다.

그곳엔 거대한 진법과 제단처럼 생긴 높은 단이 있었는데 진법의 눈에 팔각형의 진법 법기가 놓여 있었다. 한립은 즉시 몇 개의 법결을 진법으로 날려 보냈다.

우웅.

진법이 낮게 울며 하얀빛을 번뜩이자 팔각 진법 원반에 은색 빛의 장막이 펼쳐졌다. 한립은 동부를 만든 다음 대량의 만롱주를 주변 수백 리에 묻어 두었었다.

지금 그의 눈앞에 펼쳐진 빛의 장막에는 검은 점들이 이십여 리 밖 어딘가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수결을 맺은 그가 푸른 빛줄기로 변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곳에는 머리 셋 달린 푸른 무늬 구렁이와 소머리에 사자 몸을 한 비취색 작은 짐승 그리고 모호한 회색 그림자가 숙덕이고 있었다.

한립이 괴이하게 그들 위에 나타나 자 세 요물도 재빨리 요풍(妖風) 두 덩이와 회색 빛덩이로 변해 쏜살같이 흩어졌다. 코웃음을 친 한립이 소매 속에서 붉은 실 세 개를 뿜었다.

그러자 바로 붉은 빛이 요풍과 회색 빛덩이 뒤에 나타나 요물들을 꽁꽁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한립이 다시 가볍게 손짓하자 붉은 줄에 묶인 요물들이 강제로 끌려왔다.

소머리를 한 작은 짐승과 구렁이 등은 겁에 질렸지만 회색 빛덩이 속 요물은 입을 열고 무어라 떠들기 시작했다. 한립은 전혀 알아듣지 못했지만 말투로 보아 협박하고 있는 듯 했다.

조금 어두워진 얼굴로 한립은 회색 빛덩이가 있는 허공을 쥐었다. 그러자 아름다운 오색 기운이 뻗어나갔고, 요물의 보호막이 오색 기운에 닿자마자 눈 녹듯 녹아 사라졌다.

안에 들어 있던 요물이 휙 하고 빨려들어 한립의 손에 머리가 잡혔다. 그것은 반 척 크기로 팔과 다리에 금색 비늘이 있는 어류 요수였는데 머리 쪽에 인족 사내와 비슷한 얼굴이 달려있어 보고 있으면 소름이 돋았다.

물론 한립은 그간 수많은 요물을 보았었기에 겨우 6급 어요(魚妖)에게 긴장하지는 않았다.

크학!

요수의 머리와 닿은 손바닥에서 금빛 기운이 방출되자 요수는 참혹한 비명을 지르며 발작하다 축 늘어졌다. 추혼술을 써서 요수의 원신에서 원하는 바를 알아낼 작정이었다.

푸른 구렁이와 소머리 짐승은 그것을 보고 놀라 까무러치려 했다.

한립의 수행에 겨우 6급 요수에게 추혼술을 쓰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고 일다경이 지나기도 전에 원하던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천붕족(天鵬族), 공물 그리고 보광 존자!’

낯선 단어들을 떠올린 그가 금빛을 거두고 손가락에 힘을 풀었다. 그러자 그것을 묶고 있던 붉은 실이 굵은 불 밧줄로 변해 순식간에 물고기 요수를 재로 만들었다.

불 밧줄은 다시 붉은 실로 변해 한립의 소매 속으로 돌아갔다. 그가 고개를 돌려 무표정하게 다른 두 요물을 쳐다보았다.

“담도 크구나. 겨우 목령화(木鈴花)를 얻기 위해 내 동부를 치려하다니.”

잠시 지긋이 바라보던 한립이 입을 열었는데 뜻밖에도 이족 언어였다. 추혼술을 통해 그들이 쓰는 이족 언어를 파악했고 자신의 동부를 치려 한 이유 또한 알아냈다.

“목령화가 없으면 흑은산맥(黑隱山脈)에서 수련하고 있는 저희들은 공물을 마련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 천붕족이 저희의 혼백을 뽑고 가죽을 벗겨 영성을 다시 흩어버릴 겁니다. 수사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장 지능이 높아 보이는 소머리 짐승이 먼저 나서서 입을 열었다.

“목령화라면 이런 영초를 말하는 것이더냐?”

한립이 손바닥을 뒤집어 보라색 작은 꽃을 꺼내 들었다. 보라색 꽃은 작은 방울처럼 생겼는데 향이 진하게 풍겼다.

“맞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넓은 흑은산맥에서 하필 수사가 머물고 있는 산에서만 자라나는 영초입니다.”

소머리 짐승이 목령화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쓴웃음을 지었다.

“함유한 영기가 많지도 않은데 너희의 천년 공물 중 가장 우선시되는 물품이라니 이상하구나. 아마 이것이 없다면 확실히 천붕족들에게 큰 벌을 받긴 하겠지. 쯧쯧, 허나 겨우 화형기 해룡수(海龍獸)의 도움을 받아 내 동부를 공격하다니! 게다가 금수정충(金髓晶蟲) 열 쌍을 보수로 약조한 것으로 보아 목령화가 급하기는 했구나. 그런데 금수정충은 반정반충(半晶半蟲)에 가까운 기물이고, 보통은 땅속 깊이 희귀한 광석 속에 숨어있는데 어찌 찾은 것이냐? 잡으려 들면 곧바로 수정돌로 변해 버리는데 어찌 살아 있는 금수정충을 잡은 건지…….”

턱을 쓰다듬던 한립이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천붕족들이 이곳을 발견했을 때 흑은산맥에는 저희보다 높은 수행을 지닌 존재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천붕족 대장로가 그들을 전부 도륙했고 저희만 이곳에 남아 살 수 있게 허락해 주었지요. 저희가 특수한 자질을 지녀 그들이 필요한 공물을 찾아 바칠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소머리 작은 짐승이 냉소하듯 설명했다.

“그러니까 너희에게 금수정충을 생포할 방법이 있다는 것이구나.”

한립은 겉으로는 태연했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예, 저희 호수(皓獸) 일족은 수행을 어느 정도 쌓으면 천부적으로 광물 속에 있는 이 수정 벌레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그것들이 수정으로 변해버리지 않게 막을 방법도 지니고 있고요.”

“좋다. 그렇다면 너희가 내 거처를 공격한 일도 넘어가주고, 목령화를 내줄 수도 있다.”

한립이 돌연 싱긋 웃으며 안색이 한결 너그러워졌다.

“정말입니까?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원하는 것은 간단하다. 목령화는 원하는 만큼 줄 터이니 그 대가로 목령화 열 송이와 금수정충 한 쌍을 교환하는 것이다. 또한 나는 너희의 공물 중 금모산호사(金母珊瑚沙)에도 관심이 있다. 이 모래 한 냥(兩) 당 목령화 한 송이를 바꾸어 주마.”

“금수정충도 공물에 속해 저희도 얼마 없습니다. 게다가 그 열 쌍은 보광존자에게 이미 드리기로 약조되어 있고요.”

눈을 데굴데굴 굴리던 소머리 작은 짐승이 이렇게 말했다.

“보광존자? 겨우 화형기 바다 요수가 아니더냐. 나 역시 금수정충을 원하니 그쪽은 알아서 처리해주겠다. 준비할 시간을 줄 테니 며칠 후 내 거처로 찾아와 목령화와 교환해 가거라. 만일 오지 않는다면……. 하 하!”

한립이 음산하게 웃으며 소매를 털어 한 줄기 바람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소머리 짐승과 머리 셋 달린 구렁이가 화들짝 놀랐을 때는 이미 그들을 묶고 있던 붉은 실도 사라진 후였다.

한참 후 구렁이가 열심히 주변을 기웃거리더니 중간 머리를 기울여 작은 짐승에게 속닥였다.

“그자는 간 것입니까?”

소머리 짐승이 주저하다 입을 벌려 푸른 기운의 녹색 구슬을 뱉었다. 구슬이 빙글빙글 돌아 푸른 보호막을 만들어 두 요물을 감쌌다.

“이제 됐습니다. 내단으로 방음막을 만들었으니 상대가 의식으로 우리의 대화를 엿들으려 하면 감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구렁이가 한시름 놓았다는 기색으로 물었다.

“정말 목령화를 거래할 생각입니까?”

“공물을 바치는 일은 우리 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다른 이들과도 상의를 해봐야겠지요. 하지만 이번 공물 수량을 채우려면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작은 짐승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금수정충과 금모산호사도 더없이 희귀한 것들입니다. 그것들로 교환하면 수량을 맞추기 어려울 텐데요.”

“지금은 그런 것을 걱정할 때가 아닙니다. 금수정충과 금모산호사가 아무리 찾기 어려워도 시간만 있으면 언젠가는 충분히 모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목령화는 천붕족들이 원하는 수령이 워낙 많고, 다른 곳에서는 이미 멸종되어 구할 수도 없습니다.”

“이럴 바에야 천붕족들이 공물을 회수하러 올 때 이 일을 고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들이 알아서 저 이상한 자를 처리해주겠지요.”

“터무니없는 생각입니다. 지난번 일을 벌써 잊었단 말입니까? 천붕족들이 저 자를 죽인다고 해도 산에 남은 목령화를 죄다 가져갈 겁니다. 목령화가 흑은산맥에서 멸종되어 간다는 이야기를 하면 그들이 우리를 살려둘 것 같습니까? 이번 공물에서 목령화 수량만 충분해도 다른 공물들이 약간씩 부족한 것은 잘 얘기하면 괜찮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목령화 수량이 부족하면 다른 것들을 아무리 많이 바쳐도 소용없습니다. 목령화가 천붕족들에게 그만큼 중요한 것이니까요. 천붕족이 저 흑명무(黑冥霧)를 꺼리지만 않았다면 진작 이곳에 천붕족들을 파견해 머물게 했을 겁니다.”

소머리 짐승이 냉랭히 반박했다.

“어찌 이번에는 넘어간다고 쳐도 다음은 공물을 마련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때가 되면 결과는 또 마찬 가지겠지요. 달아나려 해도 우리는 천붕족이 심어 놓은 노흔(奴痕)이 있어 이 구역을 만 리 이상 벗어나면 폭발하여 죽게 될 것입니다.”

“그건 다 아는 사실이지요! 그러나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흑명무 내부의 대인이 약조한 바가 있으니까요. 백 년 간만 더 몰래 영석을 가져다주면 신통을 대성해 노흔을 제거해 주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그때가 되면 달아나면 그만입니다.”

구렁이의 불안한 눈빛에 소머리 짐승이 신중한 얼굴로 그를 설득했다.

“그분을 믿어도 될까요? 물론 아주 오래전부터 흑은산맥에 머무는 선배이기는 하지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흑명무로 들어간 이후, 상고 거귀(巨鬼)의 정핵(晶核)을 삼켜 지금은 거의 반귀반요의 몸입니다. 만일 다른 변수가 생기면…….”

“화 형, 대인께서 약조를 지키지 않을까 염려하시는 겁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선배님도 호수 일족 출신으로 천붕족에 큰 원한을 지니고 계시니까요. 어찌 보아도 우리에게 해를 끼칠 이유가 없는 분입니다. 게다가 이미 몰래 수백 년간 영석을 바쳐 수련을 도와줬는데 성공을 코앞에 두고 그만하자는 것입니까?”

“휴, 제가 쓸데없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흑명무에는 대체 무엇이 있기에 천붕족들이 그렇게 겁내는 것일까요? 대인께서는 알아내셨답니까?”

“아니요. 하지만 분명 무언가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대인께서도 흑명무의 변두리에 머물고 계시고 중심부로는 가지 않으니까요. 듣기로는 흑명무는 천붕족들이 세력을 얻어 비령족(飛靈族) 전체를 통솔하다시피 했을 때부터 있었다고 합니다.”

소머리 작은 짐승이 쓴웃음을 지었다.

“하긴 흑명무 속에 무엇이 존재하든 우리에게 도움이 될 존재는 아닐 겁니다. 우리의 수행에 저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가는 당장 피와 살을 빨리고 백골이 되고 말 테니까요.”

구렁이가 두려운 듯 고개를 흔들었다. 이어 그들은 몇 마디 더 나누다 요풍으로 변해 날아갔다. 두 요물이 멀리 날아가자 인근에서 공간 파동이 일며 푸른 인영이 나타났다.

그는 바로 한참 전에 떠났던 한립이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멀어지는 요물들을 보고 피식 웃으며 그들이 있던 자리를 쥐었다.

웽!

그러자 금빛이 반짝이며 손톱만한 금빛 벌레가 날아올랐다. 원래 크기보다 훨씬 줄어든 서금충이었다. 딱정벌레가 날갯짓을 하며 그의 손바닥에 앉았다.

그가 손끝으로 서금충을 가리키자 의식 한 줄기가 돌아와 두 요물 간의 대화를 알려주었다.

“흑명무, 반귀반요, 노흔? 흥미롭구나. 천붕족들도 이곳에 오래 머물기를 꺼린다니 흑명무 안의 존재가 합체급만 아니면 한동안은 큰 걱정이 없겠어. 그런데 겨우 저계 요수들이 금수정충과 같은 연체(煉體) 성약을 잡는 재주가 있다니! 천연성 합체기 장로들도 구하기 쉽지 않은 물건인데…….

이제 금수정충과 몇 가지 재료만 있으면 불종의 금강법신(金剛法身)처럼 범성진마법상(梵聖眞魔法相)을 실체화시킬 수 있겠지. 또 금모산호사를 정련해 넣으면 육체를 더욱 단단하게 할 수 있을 것이야!”

한립이 중얼거리며 밝게 웃었다. 한참 후, 그가 미소를 거두고 뭔가 생각났는지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자 등 뒤에서 커다란 붕새와 오색 빛깔의 허상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수정 날개가 나타났다.

그가 가볍게 날개를 펄럭이자 눈부신 빛이 방출되면서 한줄기 반짝이는 실로 변해 순식간에 튀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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