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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829화 (586/2,000)
  • 829화. 수련

    *

    한립은 섬의 외곽을 따라 검은 안개를 피해 섬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한 달을 날아가도 끝이 없었고 섬은 여전히 검은 안개 천지였다.

    보아하니 그는 거대한 반도(半島)에 있는 듯했다. 그러나 이곳이 반도이든 아니든 그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검은 안개가 기괴한 것을 제외하면 육지는 산맥의 영기가 농염해 수련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그런데 이렇게 거대한 섬에 강력한 요물이 살고 있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8급이나 되는 갑오징어 요물이 그를 보자마자 겁에 질려 줄행랑을 친 것도 묘한 일이었다.

    한립은 잠시 고민해 보았지만 이렇다 할 답을 찾지 못했고 만일을 대비해 섬 인근에 혹은 다른 섬에 그에게 위협이 될 만한 존재가 있는지 찾아보기로 했다.

    한 달 동안, 한립은 안개로 뒤덮이지 않은 곳을 중심으로 꼼꼼히 살폈다. 그러나 별 볼일 없는 섬 몇 개를 제외하면 아무 것도 없었다.

    주변 해역에서 해수 몇 마리를 찾기는 했지만 전부 이전에 보았던 갑오징어 요물과 비슷했고 영성이 발달하지 않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이에야 한립은 안심을 했고, 섬으로 돌아가 수련하며 세월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는 영기가 농염한 거산을 선택해 동부를 만들고 금제를 펼쳤다.

    동부는 산맥의 가장자리에 위치해 검은 안개와 멀리 떨어져 있어 무슨 변고가 생겨도 대처할 시간은 충분했다. 한립은 지니고 있는 영초들을 약초밭에 옮겨 심으며 바삐 움직였다.

    그가 저물탁을 스치자 푸른 기운이 흘러나와 큰 것 2개, 작은 것 7개인 벽안진섬의 사체 아홉 구가 바닥에 놓였다. 밀실은 벽안진섬의 사체만으로도 꽉 들어찼다.

    모든 사체에는 다양한 색의 부적이 붙어 있어 부패하거나 진섬의 피가 효력을 잃는 것을 막아주었다.

    한립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저물탁을 건드려 새하얀 옥병을 꺼냈다. 그가 한 손으로 벽안진섬의 사체 하나를 가리키자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핑!

    한립은 손가락을 튕겨 어린 벽안진섬의 몸에 손가락만 한 구멍을 뚫었다. 잠시 후, 그 안에서 진득한 액체가 빛을 반짝이며 흘러내렸다. 뜻밖에도 벽안진섬의 피는 영기의 빛을 발산하는 은백색이었다.

    옥병이 빛을 번뜩이며 괴이하게 벽안진섬 아래에 나타났다. 그러자 은백색 피가 한줄기 은색 실처럼 변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후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은백색 액체가 흘러나올수록 어린 벽안진섬의 육체가 말라비틀어지며 수축했고 이전에 비해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한립은 눈썹을 꿈틀하며 입을 벌려 은색 불덩이를 분출했다.

    화륵!

    어린 벽안진섬 한 마리가 재가 되어 사라졌다. 그런데 은색 화염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허공에 은빛이 찬란한 쌀알만 한 액체들이 나타났다.

    놀랍게도 한립이 서령천화의 극한의 양기와 극한의 음기를 지닌 힘을 이용해 벽안진섬의 몸에 남은 잔혈을 분리한 것이다. 소매를 털자 푸른 기운이 날아갔다.

    푸른 기운에 휩싸인 은색 액체들은 주먹만 하게 뭉쳐졌다가 옥병 속으로 들어갔다. 벽안진섬의 피는 증식할 수 없었기에 단 한 방울이라도 아껴야 했다.

    이런 식으로 그는 모든 벽안진섬의 사체를 처리했고 소문이 자자한 벽안진섬의 피를 몇 병이나 모을 수 있었다.

    이제 필요한 재료를 갖췄으니 진섬액을 제련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하지만 그보다는 먼저 화신 중기의 최고봉 수준으로 수행을 끌어올리고 경지를 넘어서야 했다.

    생각해 보면 법체쌍수(法體雙修)의 길을 선택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

    강력한 육체와 대량의 단약의 보조로 다른 수사들이라면 수백 년은 필요할 수련 시간을 수십 년으로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립은 거대 원숭이 꼭두각시 몇 마리를 풀어 놓고 두 번째 원영을 방출해 약초 재배와 거처 관리를 맡긴 후 밀실로 돌아가 수련을 시작했다.

    그는 금교왕의 저물대에서 얻은 쉬골결 등 신묘한 법결의 보조와 충분한 단약, 용린과 등의 영과를 쉼 없이 복용해 법력이 나날이 늘어가고 육체는 더없이 단단해졌다.

    수련하는 동안 그는 범성진마공(梵聖眞魔功) 외에도 두 손으로 원자신산과 오자동심마를 제련했고 백맥련보결(百脈煉寶決)에 따라 72개의 청죽봉운검들을 몸 곳곳의 중요 골격 속으로 융합시켰다.

    만일 제련하는데 성공한다면 범성진마공의 위력과 더불어 그의 기본 방어능력이 연허기 수사의 일격도 맨 몸으로 막아낼 수 있을 정도로 불가사의한 경지에 이를 것이다.

    물론 온몸의 급소들을 제련하려면 훨씬 복잡하고 오래 걸릴 것이다.

    이렇게 한립이 수련하고 있는 밀실은 석문이 닫힌 후 열릴 줄 몰랐고 몇 년 마다 한 번씩 두 번째 원영이 허상처럼 벽을 통과해 영초와 영과를 전달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흘러 어느덧 60년이 지나갔다.

    어느 날, 한립이 위치한 산과 십여 리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검은색과 노란색의 요기를 지닌 존재들이 나타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한립이 거처 바깥에 펼쳐 놓은 은닉용 환술진을 알고 있는지 계속 그쪽을 힐끔거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곳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다가가지는 못하고 이야기만 나누다 흩어졌다.

    사흘 후, 한립의 거처 인근에 몇 마리의 요물들이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기운을 숨기지도 않고 드러내 놓고 요풍(妖風)을 일으켰고 땅에는 수 천 마리의 맹수와 곤충들이 집결했다.

    놀랍게도 대놓고 한립의 동부를 공격하려는 것 같았다. 허공에 뜬 몇몇 요물들의 모습은 제각각이었다.

    푸른색 무늬 구렁이는 머리가 셋이나 달려 있었는데 매우 교활해 보였다. 6, 7장 크기에 달하는 거대한 멧돼지는 한 쌍의 뻐드렁니에서 은빛이 반짝이는 것이 은으로 주조해서 박은 것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 두 마리 요물은 이 전에 한립이 짐승들의 싸움에서 보았던 우두머리와 닮아 있었다. 금색 털의 원숭이가 새까만 거대 작살을 들고 있었고, 소머리의 짐승은 크기는 작았지만 온몸에 비취색 기운이 흘러내렸다.

    그들 중 소머리 괴물이 가장 수행이 높아 7급을 대성한 요수와 비슷했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한립의 거처를 공격하려는 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짐승과 곤충 떼가 허공의 몇몇 괴물들의 명을 받아 바깥 환영진으로 달려들자 즉시 한립이 설치해 놓은 방어 진법이 촉발되었다. 그러나 화신기 수사가 펼쳐 놓은 금제를 겨우 중계 요수들이 뚫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푸른 안개 속에서 광풍이 일고 돌덩이와 바위가 마구 날아다녀 맹수들 중 일부가 피범벅이 되어 나가떨어졌다. 짐승들은 당황해서 즉시 달아나려 했다.

    그때 허공의 소머리 요물이 길게 포효했고 그 소리를 들은 짐승들은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움직이지 못했다. 다른 괴물들도 이를 갈거나 이상한 소리를 내 짐승들을 위협했다.

    어쩔 수 없이 짐승들은 푸른 안개 속으로 계속 달려들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돌덩이들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푸른 바람의 칼날들이 날아들었다.

    수천 마리의 짐승들이 울부짖으며 산산조각 났고 광풍이 멎었을 때는 살아있는 짐승이 수백 마리도 되지 않았다. 이에 짐승들은 혼비백산해 달아났고 허공에 떠있는 요물들은 눈을 부릅뜨고 시선을 교환했다.

    그리고 소머리 요물이 입을 열었는데 뜻밖에도 여인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인요 양족의 언어는 아니었다. 그렇게 나머지 세 요물들도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제 달아나는 짐승들은 신경 쓰지 않고 각자 요풍을 휘날리며 한립의 거처로 쏘아져 나갔다. 잠시 후, 거대한 돌풍과 함께 요물들은 한립의 동부로 떨어져 내렸다.

    그들은 육체의 힘으로 한립이 설치한 진법을 깰 작정이었다.

    파사삭!

    그러나 검은 돌풍은 오색 광채와 접촉한 순간 난잡하게 흔들리며 가루가 되어 부서졌다. 검은 돌풍이 갈라지며 네 마리 요물들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튀어 올랐다.

    고공에서 다시 모인 이들은 놀란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다. 오색 광채와 직접 접촉한 것도 아닌데 다가오는 기운에 등줄기가 서늘해졌던 것이다.

    그들은 낮게 수군거리더니 네 개의 요기로 뭉쳐 그곳을 떠났다. 이후로 한립의 동부 근처로는 어떤 요물들도 다가오지 않았고 심지어 방원 백 리 내로는 어떤 짐승도 살지 않게 되었다.

    시종일관 한립의 동부에서는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또 다시 30년이 흘러갔다.

    쿠릉!

    돌연 밀실에서 긴 울음소리가 들려오며 대문이 쪼개졌다. 그러자 밀실에서 휘황찬란한 금빛이 새어나왔다.

    그 안에는 한립이 가만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는데 등 뒤로 세 개의 머리와 여섯 개의 팔을 가진 금빛 허상이 떠올라 있었다.

    허상은 금빛이 어른 거려 얼굴이 모호했지만 이전보다 확실히 선명해 보였고 그와 마찬 가지로 가부좌를 틀고 여섯 개의 손으로 수결을 맺고 있었다.

    한립과 금빛 불상의 허상이 동시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쿠르릉!

    주변 광채에 금색 파문이 연달아 일어나고 밀실의 벽이 거세게 흔들렸다. 한립이 고통스런 얼굴로 땀을 흘리자 등 뒤의 금빛 불상도 더욱 흐릿하게 흔들렸다.

    쨍그랑.

    금빛 광채가 거울이 깨지는 것처럼 균열이 갔고 금빛 불상도 순식간에 산산이 부서져 흩어졌다. 이제 한립의 얼굴에는 고통스런 기색이 사라졌고 밀실은 다시 고요해졌다.

    “벌써 세 번째 실패로군! 계속 수련만 해서는 단시간 내로 고비를 넘기기는 어렵겠어.”

    한립은 중얼거리며 손바닥을 뒤집어 검은 봉황이 새겨진 병을 꺼냈다. 바로 흑염단이었다. 흑염단은 화신 후기에 고비를 넘는 가장 좋은 영약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약효가 너무 강해 수련이 부족하거나 몸이 허약한 수사가 복용하면 단약에 함유된 화염의 기운에 타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립은 서령천화를 지니고 있는데다 법체쌍수를 수련했기에 걱정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화신 후기에서 연허기로 넘어갈 때 흑염단 한 알이 부족해진다.

    흑염단 같은 영약은 구하고 싶어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차피 화신 중기의 고비를 넘는 것은 시간 문제였지만 많은 수사들이 평생 화신기에 머무는 것으로 보아 후기의 고비가 훨씬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한립은 곰곰이 생각하다 그때를 위해 보조 영약은 아껴두기로 했다. 그는 약병을 다시 저물탁에 넣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밀실 밖에서 거대 원숭이 꼭두각시 한 마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꼭두각시는 한립이 밀실에서 빠져 나오자 성큼성큼 다가와 연노란 색의 방망이 같은 물체를 바쳤다.

    어두운 녹색의 문양이 있는 방망이는 현천과실(玄天果實)이었다. 그것을 본 한립의 표정이 신중해졌다. 그는 곧바로 명청령안을 발휘해 살펴보기 시작했다.

    방망이 속의 콩알만 하던 빛덩이가 지금은 엄지손톱 만하게 커져 있었다. 그러나 한립의 마음은 답답하기만 했다.

    천연성에 있을 때 상고 경전 판매점을 돌며 현천과실에 대한 것을 찾아볼 만큼 찾아보았지만 아무런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인계에서 현천선등(玄天仙藤)에 대해 듣지 못 했다면 현천과실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현천과실이 함유한 일계에 관여하는 법칙(法則)의 힘은 여전했고 역천의 보물임에 틀림없었다.

    그간 신비한 녹색 액체를 주기적으로 주었음에도 하얀 빛덩이가 약간 커진 것을 제외하면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지금은 이렇게 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현천과실을 조심스럽게 챙긴 그는 이번에는 약재밭을 둘러보았다. 약재밭에 있는 지룡과 등은 이미 꼭두각시들이 채취해 또 다른 저물대에 보관해 두고 있었다.

    한립은 기뻐하며 그것들을 자신의 저물탁으로 옮겼다. 이어 그가 꼭두각시에게 손짓하자 두 번째 원영이 그 안에서 나와 그의 몸속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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