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6화. 매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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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여인은 한립과 무언가를 상의하다 괴이한 울음소리를 듣고 안색이 달라져 수결을 맺었다. 그러자 그들을 둘러싼 오색기운이 짙어졌고 그녀와 한립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동 속도가 이전의 2, 3배까지 높아진 것이다!
한립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무언가를 감지하고 있는 듯했다. 소 여인이 얼마나 빨리 오색 빛을 부리든 뒤쪽의 울부짖음 소리는 더욱 크고 명확해지고 있었다.
이에 한립이 담담히 입을 열었다.
“3백 리도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속도가 매우 빨라 따라잡히는 것은 순식간일 테지요. 저들과 격전할 곳은 최대한 야차왕들과 떨어진 곳이 나을 테니 저도 돕겠습니다.”
한립이 어깨를 털자 등 뒤로 날개 한 쌍이 나타났고, 그 위로 푸른 곤붕의 허상이 날아올라 오색 광채 속으로 흡수되었다.
우웅!
둔광이 크게 진동하며 속도가 배로 높아져 옅은 잔영을 남기며 하늘을 꿰뚫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형!”
“법력 소모가 큰 술법이라 오래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정말 너무 멀리 달아나면 두 야차왕들이 끼어들지도 모르고요.”
“그야 그렇겠죠. 전투를 해야 하니 법력을 너무 소모하지는 마세요.”
소 여인의 당부에 한립이 쓴웃음을 짓고는 입을 다물었다.
사실대로 말하면 창노가 제아무리 강력해도 의식 손실을 감수하고 수 백 마리의 서금충을 일시에 풀면 한 마리는 격퇴시킬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창노가 두 마리에 그 뒤로 멀리서 이곳을 주시하고 있을 야차왕들이었다.
한립이 나서자 확실히 속도가 빨라져 창노들도 단시간 내로는 거리를 좁히기 어려워졌다. 이렇게 추격전을 벌이며 수천 리를 지나쳤다.
한립은 이만하면 되었다싶었을 때 천봉의 허상을 회수했고 소 여인도 둔광을 멈추었다. 둘은 허공에 나란히 서서 눈도 깜빡이지 않고 먼 곳을 주시했다.
하늘 저 끝에서 갑자기 불빛이 치솟고 수 장 크기의 핏빛 구름 두 덩이가 질풍처럼 다가왔다.
꽈광! 꽈과광!
한립이 즉시 팔을 펼치자 금색 뇌전 두 줄기가 각각의 핏빛 구름으로 날아갔다. 핏빛 구름은 무형지체라도 되는 듯 민첩하게 번개를 흘려보내고 한립을 향해 달려들었다. 속도조차 줄일 필요가 없었다.
어두운 얼굴로 한립이 수결을 맺자 금빛 뇌전 두 줄기가 뱀처럼 방향을 틀어 핏빛 구름을 강타했다.
푸푹!
둔탁한 소음이 들리자 한립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금색 뇌전들은 바닷물에 빠진 소금 알갱이처럼 무기력하게 핏빛 구름 속으로 흡수되고 말았던 것이다.
“……!”
핏빛 구름들이 번뜩이더니 두 사람과 스무 장 떨어진 곳에서 나타났다.
기이한 것은 한립은 그저 제자리에 서 있었고 곁의 소 선자만 서늘하게 눈을 빛내며 법결을 발동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크와앙!
여인과 한립을 둘러싼 광채에서 거대한 교룡 머리 두 개가 나타나 아가리를 벌리고 핏빛 구름 절반씩을 물어뜯었다. 남아있던 핏빛 구름도 곧 흩어져 사라졌다.
그것을 본 소 여인이 기뻐하며 고개를 돌려 한립에게 무어라 말하려 했다. 하지만 남색빛이 일렁이는 눈으로 한립이 냉랭히 경고했다.
“조심! 저것들의 속도가 극히 빠르니 신법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예?”
소 여인이 움찔해 서둘러 시선을 돌리니 늑대 같기도 하고 원숭이 같기도 한 핏빛 괴물 두 마리가 허공에 떠 있었다. 핏빛 구름이 물어뜯기기 전에 창노들은 이미 무서운 속도로 미리 빠져나온 것이다.
너무 빠르고 소리 없이 움직여 소 여인은 눈치 채지 못했지만 명청령안을 발동하고 있던 한립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두 괴물은 원숭이 머리에 늑대의 몸 그리고 박쥐의 날개를 가졌고, 전신이 피처럼 붉고 촉촉했다. 날카로운 이빨 사이로 날름거리는 새빨간 혀나 교활해 보이는 붉은 눈이 지능이 상당히 높아 보였다.
‘저것이 창노로구나!’
소 여인에게 설명을 듣기는 했지만 직접 보니 모골이 송연해졌다.
“벽사신뢰가 통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사악한 기운으로 제련해 낸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극양의 기운이나 벽사(闢邪)의 신통은 큰 소용이 없겠죠.”
담담히 설명한 한립이 자신의 뒤통수를 만졌다. 회색 기운이 크게 일어 그를 감싸는 보호막을 형성했고 동시에 새까만 동산이 회색 기운 속에서 아른거려 아주 신비로웠다.
소 여인이 진중한 얼굴로 주술을 외자 허공이 떨리며 오수 교룡의 나머지 세 개의 머리와 육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몸집이 처음 보았을 때보다 몇 배는 커져 있었다.
오색규교(五色虯蛟)의 혼백이 담긴 존재라 그런지 오수 교통은 두 창노를 보고도 겁먹지 않고 으르렁거렸다.
그때 창노들 중 한 마리가 공격을 시작했다. 등 뒤의 새빨간 박쥐 날개를 펄럭이자 핏빛 실로 변한 괴물이 허공에서 사라졌다.
핏빛이 번뜩이고 한립과 소 여인의 머리 위에서 나타난 창노는 주저 없이 몸을 던졌다. 이에 오수 교룡이 거침없이 창노를 물어뜯으려 했다.
크앙!
하지만 창노는 액체처럼 흘러내려 보이지 않았고 다섯 개의 교룡 머리는 연달아 허공을 물어뜯었다.
그리고 갑자기 오수 교룡 주위로 빼곡하게 미세한 핏빛 실들이 생겨나더니 다섯 머리와 심지어 방대한 육체까지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났다.
오색규교의 정혼 일부가 담긴 괴물이 놀랍게도 일격에 당한 것이다. 허공에 핏빛이 번뜩이고 또 무수히 많은 핏빛 실들이 나타나 이번에는 소 여인을 노렸다.
이에 한립이 재빨리 회색 기운을 퍼트려 소 여인을 보호했고 검은 산이 번뜩이며 여인의 머리 위로 이동했다. 그와 동시에 한립이 있는 공간에 파문이 일며 핏빛 그림자가 희미하게 나타났다.
두 개의 날카로운 발톱이 소리 없이 날아들었고 핏빛 그림자 속에서 두 개의 눈이 교활하게 번뜩였다. 다른 창노가 한립을 노리고 있다가 습격을 가한 것이다.
그는 강대한 의식을 가졌음에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발톱이 회색 보호막에 닿는 순간 눈치를 챘다. 그러나 날카로운 발톱들은 이미 회색 보호막을 뚫고 그의 등을 노렸다.
등 뒤의 형세를 깨달은 한립이 기함하자 몸 위로 금색과 은색의 장포 두 겹이 나타났다.
꽈광!
천둥소리가 들리고 금은색 뇌전이 장포를 뒤덮자 날카로운 발톱들이 그 위를 내리쳤다.
쿠르릉 꽈과광! 꽈광쾅쾅!
굉음이 터졌다!
금은색 뇌전에 튕겨진 새빨간 팔뚝에서 푸른 연기가 피어올랐지만 두 발톱은 그대로 뇌포(雷袍)를 뚫고 한립의 등을 잡아채려 했다.
그 순간 한립의 등 뒤로 희미하게 네 개의 금색 팔뚝이 나와 바람처럼 창노의 발톱을 내리쳤다. 괴이하게도 금속성의 마찰음이 들려왔고 잠깐이지만 발톱을 막는데 성공했다.
금색 팔이 산산조각 나고 창노의 날카로운 발톱이 핏빛을 번뜩이며 나타났을 때는 한립은 이미 몸을 틀어 하얀 실로 변해 이동한 후였다. 스무 장 밖에서 모습을 드러낸 그가 냉랭히 자신을 기습한 창노를 노려보았다.
창노는 기습이 실패한 것에 놀라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눈알을 데굴데굴 굴렸다.
소 선자도 한립의 원자신산으로 빼곡히 다가오는 핏빛 실을 막고 수십 장 밖으로 이동한 상태였다.
핏빛 실들은 하나로 뭉쳐 본래의 원숭이 머리에 늑대 몸으로 돌아간 뒤 여인을 사납게 응시했다. 두 창노들은 분명한 목표가 있었고 각각 한립과 여인을 죽이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계획대로 진행합시다.”
한립이 여인을 향해 소리쳤다.
“알겠어요!”
소 여인이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손바닥을 뒤집어 진법원반을 꺼내고 하얀빛을 머금은 다른 손으로 그것을 호되게 내리쳤다.
파파파팟!
돌연 두 창노를 중심으로 주변 백여 장에 다양한 색을 띠는 36개의 깃발이 나타났다. 깃발들은 처음에는 한 촌 크기로 매우 작았지만 여인의 법결을 맞고 급속도로 커져 나중에는 열댓 장 크기로 불어났다.
깃발 표면의 주술 문자들이 넘실거리며 풍기는 영기의 압력이 엄청났다.
한립도 마찬가지로 수결을 맺고 있었다. 그러자 깃발 내부로 수정처럼 반짝이는 금실들이 보일 듯 말 듯 나타나 창노 두 마리를 거침없이 옥죄어 갔다.
한립과 여인은 뜻밖에도 대경검진과 이름 모를 진법을 미리 준비해두고 있었던 것이다. 진법의 효과는 모르겠지만 대경검진의 위력만으로도 창노 두 마리를 가둬둘 수 있었다.
창노 중 한 마리가 흠칫 놀라 눈빛이 흉악해졌고 네 다리를 움직이며 핏빛 그림자로 변해 검진을 뚫고 나가려 했다. 하지만 대경검진이 창노를 그냥 보내 줄 리 없었다. 검진의 한 쪽에서 수백 개의 금실들이 불현듯 나타나 밀려들었다.
스스스슷!
핏방울이 터지고 허공에서 어른거리다 다시 창노의 모습으로 합쳐졌다. 그리고 괴물이 다시 검진으로 돌격하기 전에 주위의 금빛 실들이 번개처럼 몰려들었다.
스스슷!
달아나려던 창노가 다시 무수히 많은 조각으로 흩어졌다.
퍼펑!
폭음이 울리고 핏빛 조각들이 스스로 폭발해 핏빛 안개의 형태로 날아갔다. 핏빛 안개는 도처에서 날아드는 금실도 무시하고 검진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것을 본 한립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청죽봉운검은 아직 전력을 발휘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법결을 발동하자 금실들이 진동했다.
금빛을 반짝이던 검사(劍絲)는 점점 투명한 색으로 변해갔고 폐부를 찌르는 한기가 용솟음쳤다. 아무리 무형지체로 변한 핏빛 안개라 해도 극한(劇寒)의 속성을 지닌 검사의 공격에 점점 살얼음이 맺히기 시작했다.
촤르륵!
결국 핏빛 안개가 완전히 수정 조각처럼 굳어 옴짝달싹 못 하게 되었다.
쿠르릉 꽈광!
검사들이 무수히 많은 세밀한 뇌전을 방출해 핏빛 얼음 덩어리를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한립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이럴 수가!’
그런데 다음 순간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부서진 핏빛 가루가 다시 액체로 녹아 검실들이 공격하기 전에 제자리로 돌아가 버렸던 것이다.
이어 대경검진 중심에서 핏빛이 뭉쳐 창노의 형태로 나타났다. 핏빛이 약간 암담해지기는 했지만 크게 기운을 상한 것 같지는 않았다.
대경검진도 괴물에게 중상을 입히지는 못한 것이다.
한립은 입을 꾹 다문 채 전신의 법력을 끌어올려 검진의 역량을 십분 발휘했다. 그러자 검사들이 한층 또 한층 불어나 수천 가닥이 중간으로 밀려들었다.
이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였다. 그 틈에 힐끗 소 선자를 보니 그녀는 언제부터인가 눈을 감고 있었다. 손을 진법 원반에 얹고 쉼 없이 중얼거리는 모습이 굉장한 신통이라도 발동하려는 듯했다.
36개의 진법 깃발에서 은색 주술 문자들이 넘실거렸다. 놀랍게도 전부 은과문이었다.
한립의 표정이 달라진 그때, 검진 속의 또 다른 창노가 움직였다.
첫 번째 창노와는 달리 이번 창노는 검진 중앙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등 뒤의 날개를 펄럭였는데 온몸에서 수십 개의 핏빛 촉수가 뻗어 나왔다.
창노는 촉수들을 채찍처럼 휘둘렀고 모호한 채찍 그림자가 폭우처럼 쏟아졌다. 멀리서 보면 새빨간 채찍들이 동그란 공을 형성한 것처럼 빼곡했다.
한립이 눈을 가늘게 뜨고 양손으로 수결을 맺었다. 금실들이 다시 극한의 냉기를 내뿜으며 핏빛 그림자들을 향해 쇄도했다.
퍼퍼퍼퍼퍽!
그러나 한립이 난색을 표했다. 하얀 한기가 어린 금실들은 붉은 촉수 그림자에 닿자마자 튕겨나갔고 촉수들은 잠시 서리가 꼈을 뿐 멀쩡하게 움직였다.
이마저도 통하지 않은 것이다. 그 때 창노의 몸에서 붉은빛이 번뜩이고 또 수십 개의 촉수들이 생겨나 미친 듯이 허우적댔다.
콰콰쾅!
안 그래도 겨우 버티고 있던 금실들은 천천히 뒤로 밀려났는데 그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었다. 이에 또 다른 창노가 자극을 받았는지 빙글 돌아 핏빛 그림자로 변해 금실의 다른 방향으로 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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