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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823화 (580/2,000)

823화. 현와수(玄渦獸)

*

잠시 후 한립은 맨 앞에서 날아가는 다섯 명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았다. 그들은 마치 무언가를 발견한 듯 신형을 멈추었다. 그때 수사들의 귓가에 축 씨 청년의 전음이 울렸다.

“모두 조심하게. 전방에 요충 두 마리가 감지되었는데 화신급 기운을 지니고 있군. 인근에 다른 곤충들이 있을지 몰라 의식을 방출해 탐색하기 곤란하니 누군가 앞으로 나가 어떤 곤충인지 파악해야 할 것 같네. 물론 충동적으로 공격해서는 안 되겠지만.”

축 씨 청년의 말이 끝나자마자 누군가 앞으로 나섰다.

“제가 가보겠습니다. 다른 신통은 몰라도 둔술에는 자신이 있습니다.”

“허허, 유 수사가 나서주겠다면 믿음이 가네. 수사의 풍둔술이 얼마나 신묘한지 잘 알고 있으니까 말이야.”

축 씨 수사가 앞으로 나선 노인을 알아보고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그는 출발 전 얼음 전각 안에서 가장 먼저 질문을 했던 삿갓 쓴 노인이었다. 유 노인이 웃음을 흘리며 곧 자취를 감추었다.

나머지는 모두 그 자리에 남아 대기했는데 적잖은 이들이 앞에 어떤 요충이 도사리고 있는지 궁금해 했다.

*     *     *

한식경이 지나자 유 노인이 가벼운 바람 속에서 다시 나타났다. 유 노인은 즉시 축 씨 청년 부부를 향해 허리를 숙이며 보고했다.

“전방에 현와수(玄渦獸) 두 마리가 있더군요. 아무래도 조금 성가실 듯 합니다.”

“현와수!”

몇몇이 놀라 중얼거렸고 축 씨 청년도 슬쩍 미간을 좁혔다. 한립은 속으로 현와수에 대한 정보를 떠올렸다. 현와수는 일종의 충수(蟲獸)로 그다지 무서운 존재는 아니었다. 문제는 현와수가 길을 막고 있다는 점이었다.

별 다른 능력은 없지만 수둔술(水遁術)과 뇌둔술(雷遁術)에 능하고 담이 생쥐보다 작아 바람 소리만 들려도 바로 달아나 버린다.

그러나 난감한 것은 별명이 고명수로 적을 발견하면 온몸을 부풀려 북을 치는 것 같은 기괴한 소리를 낸다는 것이었다. 그 소리가 굉장히 커서 백 리 밖까지 울려 퍼졌다.

만일 단번에 죽이지 못하면 적이 나타났다는 것을 산 중의 모든 짐승들이 알게 될 것이다.

“확실히 성가시게 되었구만! 내 비록 연허기 수사이나 은닉술에는 자신이 없어서 말이네. 현와수는 후각에도 예민하고 의식이 강해서……. 부인이 둔술에 능하니 그중 한 마리는 맡아주겠지만 나머지는 수사들 중 하나가 나서줘야겠네.”

축 씨 청년이 한동안 고민하다 시선이 유 노인에게 닿았다.

“저도 안 될 것입니다. 풍둔술로 접근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현와수의 껍질이 두꺼워 일격필살(一撃必殺)할 방법이 없습니다. 괜히 저 때문에 대사를 그르칠까 우려됩니다.”

유 노인이 손을 내저었다. 이에 청년이 쓴웃음을 짓고 이번에는 다른 화신 후기 수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수사들은 성공할 자신이 없는지, 아니면 거사의 성패가 달린 일이라 그런지 쉽게 나서지 않았다.

축 씨 청년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몇 년간 공들여온 계획이 겨우 현와수 한 마리를 처리 못해 실패로 돌아가기라도 한다면…….

“토둔술을 사용해 그냥 피해가는 것은 불가능합니까?”

그때 수사 중 하나가 물었다.

“그럴 수 있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나. 산 어딘가에 거대한 영자석맥(靈磁石脈)이 흘러 산속으로 파고들면 온몸의 영력이 금제에 의해 강제로 빨려나간다네. 물론 토둔술만 펼치지 않으면 곤경에 처할 일은 없겠지.”

“영자석맥이 흐른단 말입니까!”

적잖은 이들이 놀라 헛바람을 들이켰다. 질문을 한 수사도 난색을 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제 아무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축 선배님, 제가 나머지 한 마리를 처리한다면 이후 진섬의 피를 조금 더 얻을 수 있는 것입니까?”

그때 수사들 틈에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을 한 사람은 대열의 가장 끝에 선 한립이었다. 곁에 서 있던 서 선자는 깜짝 놀란 얼굴을 하고 그를 쳐다보았다.

“한 수사가 할 수 있겠는가? 물론 성공만 한다면 진섬의 피를 더 나누어 줄 수 있네. 하지만 실패한다면…….”

축 씨 청년은 한립이 나선 것이 의외인지 머뭇거리며 답했다. 화신 중기에 불과한 그가 성공할 수 있을 지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하하, 안심하셔도 됩니다. 제가 실패한다면 그 책임을 지겠습니다.”

“한 수사가 자신이 있나 보군. 좋네, 현와수 한 마리는 수사에게 맡기겠네!”

축 씨 청년은 아주 잠깐 생각하더니 과감하게 허락했다. 나머지 수사들이 쑥덕거리며 의식으로 한립의 수행을 연달아 확인했다.

“그러나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유 수사가 은신술을 펼쳐 함께 가서 한 수사를 도와줄 수 있겠는가?”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유 노인도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축 씨 청년이 입술을 달싹이며 그의 부인에게 전음을 보냈고, 그녀가 수결을 맺으니 피부에서 붉은 기운들이 피어나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한립이 보라색 부적을 꺼내 몸에 붙이자 은색 주술 문자들이 흘러나오며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유 노인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풍둔술을 이용해 날아갔다.

한립과 청 여인은 노인이 인도하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잠시 후 통로가 훨씬 넓어지는가 싶더니 하얗고 통통한 애벌레 같은 곤충 두 마리가 보였다. 각자 다른 벽에 붙어 야금야금 푸른 이끼를 뜯어 먹고 있었다.

두 장 크기의 현와수는 단단한 피부에 결이 있어 거대한 번데기처럼 보였는데 한쪽 끝에 머리가 있고 6개의 붉은 눈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푸른 이끼를 뜯어 먹는 둥근 입에는 커다랗고 날카로운 이빨이 듬성듬성 나 있었다.

부적을 이용해 사라진 한립은 현와수에게 들키지 않고 그중 한 마리의 머리 위로 날아갔다. 명청령안으로 살펴보니 다른 현와수 옆으로 희미한 붉은 그림자가 소리 없이 접근하고 있었다.

청 여인의 몇 장 뒤에서 모호하게 푸른빛이 깜빡거렸다. 바람의 힘을 빌려 모습을 감추고 있는 유 노인이었다. 두 수사는 놀란 얼굴로 사방을 살피며 한립의 존재를 감지하지 못해 당황해했다.

그러나 한립은 개의치 않고 미세하게 입술을 달싹여 전음을 보내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놀란 얼굴의 유 노인이 푸른빛을 번뜩이며 한립에게 다가왔지만 열댓 장 거리를 두고 더 가까이 오지는 않았다.

청 여인은 연허기 수사답게 놀란 기색을 재빨리 지우고 충수에서 대여섯 장 근처까지 소리 없이 다가갔다. 일순 세 사람은 각자의 위치에서 움직이지 않았기에 이곳에는 현와수가 이끼를 뜯어 먹는 소리만이 작게 울려 퍼졌다.

한립의 눈빛이 서늘해지면서 현와수 방향으로 손을 펼쳤다. 그러자 회색 기운이 다섯 손가락에서 뻗어 나갔고 검은 동산이 나타나 빠르게 추락했다.

이에 아래쪽에 있던 충수가 깜짝 놀라 몸을 공처럼 말았고 전신에서 남색과 하얀색의 빛을 발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회색 기운은 순식간에 현와수를 휘감았고 충수의 몸에서 반짝이던 영기의 빛은 천적을 만난 것처럼 없어져 버렸다.

현와수가 상황이 위급함을 깨닫고 거대한 몸을 부르르 떨며 무형의 파동을 사방팔방으로 퍼트렸다. 냉소한 한립이 새까만 손가락들을 오므렸다.

솨아솨아!

동시에 회색빛이 크게 일며 파도처럼 일고여덟 번 현와수를 휩쓸었다.

회색 기운에 닿은 무형의 파동은 점차 기세를 잃어갔고 원자신광 속에서 사라졌다.

현와수가 몸을 틀어 다른 신통을 발휘하려는데 이미 머리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들이닥치고 있었다.

쿠쿵!

7, 8장 크기의 검은 동산이 현와수의 비대한 육체를 누르고 꼼짝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현와수는 피부가 두꺼워 곧바로 으깨지지 않고 몸을 꿈틀거리며 버티고 있었다.

그때 한립이 소매를 털어 은색 화염을 방출했다. 그리자 펑! 소리와 함께 비대한 충수는 그대로 화염 속에서 재가 되어 흩날려 사라졌다. 일을 마친 그가 뒤쪽을 보니 유 씨 노인이 몇 장 뒤에서 놀란 눈으로 한립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뿐히 현와수를 죽이는 그의 신통에 놀라고 만 것이다. 한립은 미소 지으며 힐끗 다른 쪽을 보았다. 역시 나머지 충수도 이미 두 동강이 나 있었다.

청 여인이 현와수의 시체 위에 떠 있었고 그녀 앞에 한 척 크기의 붉은 검이 둥실 떠 있었는데 역시 뜻밖이라는 눈길로 한립을 바라보았다.

“유 형, 두 충수들을 해결했으니 축 선배님과 다른 수사들에게 알려야겠습니다.”

한립이 청 여인에게 살짝 허리를 굽혀 인사한 후 차분히 노인을 돌아보았다.

“그래야지요! 한 형, 청 선배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유 노인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대답하더니 전음부 한 장을 꺼내 허공 속으로 날려 보냈다. 잠시 후 다른 수사들이 전부 날아왔다.

축 씨 청년은 유 노인에게 대강의 상황을 전해 듣고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다시 이동했다.

한립은 다시 일행의 맨 뒤로 가서 움직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주변 수사들의 시선이 달랐다. 소리 없이 다가가 일격에 현와수를 죽일 수 있는 자는 화신 후기 수사들 중에도 드물었던 것이다.

면사를 쓴 옥 선자와 소 여인도 참지 못하고 그를 훑었다, 한립은 모두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통로를 따라 날아가다 모퉁이를 도니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고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땅속에 너비 수십 장의 물이 흐르고 있었다.

“모두 잘 듣게. 강을 건너면 바로 벽안진섬들의 소굴일세. 이미 설명했지만 꽤 넓은 공간이라 우리가 동시에 공격하기도 나쁘지 않을 것이네. 성가신 영충수들은 수사들만 믿겠네!”

축 씨 청년이 강 건너를 응시하다 한립과 몇몇 수사들에게 눈짓했다.

“축 선배님 안심하십시오! 천도현뢰진에 한 형과 소 선자의 보조가 있으니 기괴하기로 소문난 영충수라도 문제없습니다.”

노란 장포를 입은 중년 수사가 가슴을 두드리며 외쳤다. 현청천뢰기를 교부받은 다른 수사들도 그의 말에 동의했다. 그러나 한립과 소 여인은 시선을 마주쳤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만족한 축 씨 청년이 고개를 끄덕이고 모두를 이끌고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     *     *

같은 시각, 거산 바깥에서 경계를 맡은 노인과 중년인이 하얀 구름 속에 숨어 한가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조 형, 이제 축 선배님이 벽안진섬 소굴에 당도할 때가 되지 않았겠습니까? 성체가 두 마리나 되니 인원이 조금 많기는 해도 꽤 많은 피를 할당받을 수 있겠지요. 고생해서 이곳까지 온 보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일은 바깥 경계나 맡게 되어 공을 세울 기회가 줄었다는 것입니다.”

남색 장포를 입은 중년인이 하얀 장포 노인에게 투덜거렸다.

“허허, 순 수사 그게 그리 안타깝습니까? 저 안으로 들어간 이들 중에는 공을 세우는 자도 있겠지만 변고를 당해 죽는 자도 있을 겁니다.”

“죽는다고요? 그럴 리가요. 축 선배님과 다른 수사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계획을 세웠는데요. 고작 짐승 몇 마리 잡는데 그리 위험할 까닭이 없지요.”

노인의 말에 중년인이 미간을 좁히며 불신을 드러냈다.

“순 수사는 만황세계가 처음인가 봅니다. 만황세계에는 근본적으로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이렇게 둘이 경계를 서고 있는데 갑자기 연허급 고대 짐승들이 떼로 몰려와 우리를 죽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소리지요.”

노인이 탄식하듯 설명했다.

“하하하하! 너무 과장이 심하신 것 아닙니까? 이렇게 은밀하고 외진 곳에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중년 수사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노인이 고개를 저으며 당부를 하려다 돌연 안색이 달라졌다.

푸확!

아무런 조짐도 없이 눈처럼 새하얀 빛이 중년 사내의 목을 스쳤고 그의 머리가 데구루루 굴러 떨어지며 피가 솟아올랐다.

“이런!”

조 노인은 그나마 기민하게 반응해 신형을 뒤로 빼 무사했다. 그는 곧 바로 한쪽 소매를 털어 푸른 방패 보호막을 만들었고, 입에서 은색 빛줄기를 뿜어 주위를 배회하게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헛수고였다!

노인 머리 위로 공간 파동이 일어 한 척 길이의 검푸른 거대 발톱이 나타나 보호막 채로 노인을 집어 힘을 주었다. 그러자 참혹한 비명이 터지고 노인의 몸이 핏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원영도 달아날 틈 없이 죽은 것이다.

그때 중년인의 시체가 부들부들 떨더니 녹색 빛이 튀어나왔다. 두 촌 크기의 원영은 화살 형태의 보물을 껴안고 황망한 얼굴로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원영이 순간이동을 해 나타난 순간 검은 기운이 드리웠고 중년인 순 수사의 원영은 괴이하게 소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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