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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822화 (579/2,000)

822화. 단학향(檀鶴香)과 흑혈의(黑血蟻)

*

스물 대여섯으로 보이는 젊은 여인이 한립을 향해 온화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상당히 맑고 깨끗한 인상의 여인이었다.

‘저 수사가 소 선자인가? 어떤 신통을 지니고 있기에 전문적으로 영충수를 상대하기 위해 불러온 것일까.’

남은 시간은 나머지 수사들이 궁금한 점을 질문하며 지나갔다. 축 수사는 연허기 수행을 지녔음에도 일일이 그들의 의문을 해결해 주어 전각에 모인 수사들의 분위기가 좋아졌다.

그러나 한립은 청년 옆에서 시종일관 입을 다물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이 마음에 걸렸다.

‘이상하지 않은가!’

당시 그의 거처에 부부가 찾아왔을 때도 축 수사만 말을 하고 여인은 입을 열지 않았다.

더는 질문이 나오지 않자 축 씨 청년이 인원을 배분하기 시작했다.

영충수를 상대하기 위해 청한 한립과 소 여인 외에도 모인 이들 중에는 희귀한 천둥 속성 공법을 지닌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자연히 현청천뢰기를 받았고 나중에 천도환뢰진을 펼치게 될 것이다.

한립을 포함한 모든 이들은 비승 수사 혹은 비승 수사의 직계 자손으로 본토 수사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조직을 마친 축 씨 청년은 더는 지체하지 않고 명을 내려 수사들과 같이 서쪽으로 날아갔다.

삼일 밤낮을 날아 도착한 곳은 거대한 호수였다. 호수에는 짙은 안개가 끼어 있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는데 수사들 대부분이 그것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보통 만황세계에서 이렇게 괴이해 보이는 곳은 들어가지 않는 게 상책이었다. 짙은 안개와 호수 속에는 어떤 강력한 고대 짐승이 살고 있을 지도 모르고, 그들의 근거지에서 습격당하거나 포위당하면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였다.

누군가 명을 내리지 않았는데도 수사들의 둔광이 느려지며 안개 앞에서 멈추었다.

“모두 조심하게. 안개 속에 이름 모를 괴조가 살고 있지만 수행이 높지 않으니 그것들이 분출하는 산액만 조심하면 괜찮을 게야. 또 물안개는 우리 부부에게 맡기면 되네.”

앞에서 날아가던 축 씨 청년이 큰 소리로 말했다. 그는 수사들의 놀란 눈빛을 받으며 입을 벌려 하안 옥병을 뿜어냈다. 옥병은 빙글빙글 돌아 하얀 안개로 향했다.

축 씨 청년이 수결을 맺고 주술을 외자 옥병이 영기의 빛을 발산했다.

병 안에서 푸른 돌풍이 흘러나왔다. 처음에는 희미하게 푸른빛을 띠던 돌풍이 몇 장을 날아오르더니 맹렬하게 회전하며 소용돌이 쳤다.

그러자 호수 위의 물안개가 소용돌이에 휘말려 물러나기 시작했다. 이어 맑은 통로가 뚫리고 물안개 속의 상황이 눈앞에 펼쳐졌다.

“가세!”

축 씨 청년은 명을 내리고 반려와 같이 먼저 통로로 들어갔다. 옥병은 그의 머리 위에서 아직도 광풍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에 수사들은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그 뒤를 따랐다.

축 씨 청년의 말대로 십여 리를 날아 들어가자 주위에서 하얀 조류들이 짙푸른 발톱을 드리우고 날아들었다.

슈슈슉.

조류들은 수사들을 보자마자 입을 벌려 새까만 물 화살을 쏘아댔다. 이에 수사들은 법보 등을 꺼내 재빨리 공격을 막았지만 물 화살에 당한 법보들은 옅은 흠집이 생겨났다.

한 수사가 법보를 살펴보다 다급하게 소리쳤다.

“어서 죽여야 합니다. 저것들이 뿜어내는 액체가 보물을 부식시킵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수사들이 각자의 신통을 드러내며 각양각색의 빛줄기를 쏘아 보냈다. 수사들의 공격에 괴조들은 핏덩이가 되어 떨어져 내렸고 순식간에 허공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짹짹! 째째째짹!

약간이나마 걱정하던 수사들이 마음을 놓으려던 찰나 다시 물안개 속에서 괴조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하얀 조류들이 떼를 지어 몰려와 검은 물 화살을 쏘아댔다.

슈슝, 슈슈숙.

퍼드덕, 투둑, 투두둑. 툭!

놀란 수사들이 서둘러 법보 등을 부려 조류들을 죽였다. 그런데 마지막 괴조가 핏덩이가 된 순간, 물안개 속에서 또 다른 괴조의 그림자가 빼곡하게 몰려들었다.

퍼드덕.

수사들의 안색이 굳어갔다. 미간을 좁힌 한립은 의식으로 물안개 속을 훑어보았다. 그 안에는 괴조의 수가 헤아릴 수 없었는데 수만 마리는 가뿐히 넘었다.

갖은 난관을 겪어본 그도 움찔할 정도의 수였다.

“모두 두려워할 것 없네! 괴조들은 우리를 시험하고 있는 것이야. 일단 열댓 번 정도 공격을 무력화시키면 알아서 물러설 것일세.”

전방에서 또 다시 축 씨 청년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 말을 들은 수사들은 다양한 보물을 꺼내 물안개 밖으로 나온 하얀 괴조들을 한 마리도 남김없이 죽였다.

연달아 열서너 번 정도 공격이 반복되자 돌연 물안개 속에서 길고긴 괴조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하얀 조류들이 바람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그제야 안심한 수사들이 서둘러 앞으로 날아갔다.

*     *     *

반나절 후, 주변을 가득 채운 물안개가 사라지고 눈앞에 커다란 호수가 펼쳐졌다. 호수 중앙에는 만 장은 될 법한 거대한 산이 솟아 있었는데 어두운 흑색의 바위로 가득했고 이끼류의 식물들이 빼곡하게 자라 기이한 빛을 냈다.

“바로 여길세! 하하, 옥 선자와 수사들 덕에 이곳을 찾아냈군.”

둔광을 멈춘 축 씨 청년이 거대한 산을 앞두고 웃음을 터트렸다.

“저희도 변이 짐승을 쫓다 우연히 이곳에 들어왔던 것입니다. 어찌 보면 저희가 운이 좋았던 것이지요.”

면사로 얼굴을 가린 옥 선자가 미소 지었다.

“확실히 운수대통인 셈이네! 이렇게 비밀스러운 곳을 찾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니 말이야. 그 덕에 아직까지 벽안진섬이 남아 있는 것이겠지. 이런 곳이 아니었다면 진작 다른 이들이 먼저 찾아냈을 것이네.”

축 씨 청년이 즐거운 기색으로 큰 소리로 웃어댔다. 다른 수사들도 미소를 머금고 그의 말에 동의했다.

“벽안진섬의 소굴은 산 아래에 형성된 지하 동굴에 있을 것이네. 일단 계획대로 먼저 흑혈의를 불러내 먼저 죽이세. 허나 모두 조심해야 할 것이야. 흑혈의들은 8급 요수의 실력을 지녔지만 태생적으로 수사들의 각종 보호막과 방어 법기를 뚫는데 능하고, 체내의 검은 피에는 기이한 독이 흐르니까 말이야. 연허급 수사도 일단 물리면 즉시 해독용 단약을 복용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지. 설명은 여기까지고, 다들 준비하고 있게! 내 단학향을 피우겠네.”

축 씨 청년이 몇 마디 당부하고는 손바닥을 뒤집어 작은 향로를 꺼냈다. 그 안에 반 척 길이의 짙푸른 단향목이 들어 있었다.

향로가 허공에 떠올라 회전하기 시작했다. 청년이 손을 뻗자 붉은 빛이 날아가 향로에 불을 피웠고 푸른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신중한 얼굴로 향로를 지켜보던 한립의 눈에 의아한 기색이 스쳤다.

‘저게 단학향이라고? 보기에도 평범한 단향목 같고 향기도 별다른 것이 없는데……. 정말 흑혈의를 유인할 수 있을까?’

수사들은 따로 지시를 받지 않고도 모두가 사방으로 흩어져 은신술을 펼쳤다. 한립도 푸른 빛줄기로 변해 고공으로 올라간 다음 백여 장 높이에서 술법을 펼치려 했다.

그런데 옆으로 하얀 빛줄기가 날아들어 호리호리한 윤곽을 드러냈다. 그가 멈칫하며 쳐다보니 바로 소 선자였다. 그녀도 한립이 이곳으로 온 것이 의외인 눈치였지만 미소를 머금었다.

“한 형, 제게 백장미광번(百障迷光幡)이 있는데 몸을 숨기는데 이만한 것이 없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저와 함께 은신하시지요.”

“하하, 그렇다면 소 선자께서 수고해 주십시오.”

한립도 반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는요!”

소 선자가 미소를 머금고 한 손을 들어 새하얀 깃발을 쏘아 보냈다. 깃발은 허공을 빙글 돌아 머리 위에 떠올랐고 그녀가 법결을 불어넣자 하얀 기운을 방출해 두 사람을 감쌌다.

하얀빛이 사라지자 한립과 소 씨 여인의 모습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한립은 제 자리에 서서 남색빛이 일렁이는 눈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보려 했지만 전혀 볼 수가 없었다.

놀란 그가 상대를 칭찬했다.

“수사의 보물이 정말 신묘합니다. 평범한 은신용 보물과는 수준이 다르군요.”

“과찬이십니다. 백장미광번이 은신에 강하다지만 누군가 일부러 의식으로 탐색하면 당해낼 수 없지요. 기껏해야 의식이 별로 강하지 않은 영충들을 상대할 때나 유용하답니다.”

소 여인이 담담히 미소 지었다. 그 말에 한립이 의식을 퍼트려 여인을 탐색했는데 그녀 말대로 상대의 신형을 감지할 수 있었다.

안심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웠다. 명청령안으로 꿰뚫어 볼 수 없는 보물이 의식에도 걸리지 않는다면 굉장히 유용했을 것이다. 이렇게 두 사람은 신형을 숨기고 기운까지 거둬들였다.

일순간 일대에는 허공에 떠 있는 작은 향로 밖에는 남아 있지 않았다.

단학향의 효과는 얼마 기다리지 않아 나타났다. 일다경이 지날 무렵 거대한 산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울리고 산 중턱 동굴에서 날개가 달린 거대 개미 떼가 몰려나왔다.

각각이 한 척 길이에 어금니가 바깥으로 뻗쳐 멀리서 보면 조류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위윙윙윙!

동굴을 빠져 나온 흑혈의들은 수사들이 매복해 있는 한 가운데로 향로를 향해 빠른 속도로 몰려들었다.

“쳐라!”

향로 인근 공간에 파문이 일고 은발 청년과 여인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동시에 사방팔방에서 다양한 영기의 빛이 번뜩이며 수십 개의 보물들이 일시에 공격을 가했다.

빛줄기와 다양한 기운들이 흉흉한 기세로 개미 떼를 향해 몰려들었고, 그중에는 불덩이나 뇌전 같은 광범위한 공격용 술법도 섞여 있었다. 다들 일격에 흑혈의들을 처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듯했다.

쿠콰쾅! 콰쾅!

굉음이 울리고 오색찬란한 다채로운 빛의 폭발이 이어졌다. 한기와 열기가 교차하고 폭풍처럼 영기의 압력이 휘몰아치는 통에 백여 장 바깥의 수사들까지 뒷걸음질 쳤다.

광풍이 가시자 흑혈의 떼가 있던 자리는 텅텅 비어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것을 확인한 축 씨 청년과 청 씨 여인은 만족스런 얼굴을 했고 다른 수사들도 기뻐했다.

그들의 수행에 겨우 흑혈의 무리를 해치운 것이 자랑은 아니었지만 계획의 첫걸음을 순조롭게 떼었다는 데서 오는 만족감이었다.

축 씨 청년이 손짓하자 짙푸른 단향목에 붙은 불길이 소리 없이 꺼지고 향로가 노란 빛덩이로 변해 그의 수중으로 돌아갔다.

파앗.

손바닥을 뒤집자 향로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은빛 찬란한 작은 깃발 한 벌이 나타났다. 각각이 수 촌 길이에 보라색 주술문자와 번개 문양이 새겨진 깃발들은 보는 이에게 묘한 느낌을 주었다.

“흑혈의를 처리했으니 이제 벽안진섬을 섬멸할 차례군. 현청천뢰기는 담당하는 수사들이 나와 하나씩 받아가지!”

축 씨 청년이 수사들을 훑으며 말했다. 몇몇이 그의 시선을 받고 나와 작은 깃발을 가져갔는데 그중에는 류 노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조 수사와 순 수사가 바깥에 남아 경계를 맡고 나머지는 우리를 따라 들어가지!”

축 씨 청년이 노인 한 명과 중년인을 지목하고 부인과 같이 빛줄기로 변해 산봉우리 쪽으로 날아갔다. 이에 두 수사는 쓴웃음을 주고받았고 다른 이들은 주저 없이 날아올랐다.

축 씨 청년과 그 부인을 선두로 일행은 산 중턱의 천연 동굴로 진입했다.

*     *     *

그곳은 음산하고 축축했다. 곳곳에 종유석과 웅덩이가 보였고 이름 모를 푸른 이끼가 한 척 가까이 자라 미끌미끌했다. 구불구불하고 복잡한 길은 끝없이 지하로 이어졌다.

천연 동굴치고 넓은 편이라 모두가 땅에서 떠오른 상태로 날아갈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동 속도가 훨씬 느렸을 것이다.

한립은 주위를 살피며 동굴 벽에서 나타나는 독충들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붉은 실이 튕겨나가 독충을 재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소 선자는 신중한 얼굴로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보호막을 두르고 있었는데 간혹 그녀에게 날아드는 독충은 얼음 덩어리가 되어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다른 수사들도 다양한 방법을 활용해 가까이 다가오는 독충을 상대했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누구도 독충에는 물리고 싶어하지 않았다.

만황세계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생명체가 너무 많아 보기에 평범해 보여도 무서운 곤충들이 많았다. 일행은 매우 빠르게 이동했고 독충을 죽이기 위해 쏘아 보낸 기운 만이 통로를 가득 채웠다.

통로 곳곳에는 인족 수사들이 즐겨 사용하는 월광석과 비슷한 암석들이 박혀 있어 그다지 어둡지 않았다. 덕분에 수사들은 편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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