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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815화 (572/2,000)

815화. 흑봉 압도

*

원자신광의 회색 기운이 거칠 것 없이 밀려들자 여인은 내심 경악하고 있었다. 한립의 신통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를 악문 소홍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온 몸에서 열댓 장 높이의 검은 화염을 하늘 높이 뿜어댔다.

화륵!

화염 속에서 한 장 크기의 검은 봉황이 홀연히 나타나 맑게 울부짖더니 날개를 활짝 폈다. 그런데 갑자기 허공에 틈이 벌어지더니 검은 봉황이 그 안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 덕에 빼곡하게 날아들던 검빛과 도처에서 몰아치던 오색 한염도 허공을 덮치고 말았다.

“공간신통!”

한립은 냉소하며 미간 사이에서 검은 빛을 번뜩였다. 그러자 세 번째 요목(妖目)이 등장한 것이다. 세 번째 눈이 번쩍 뜨이더니 검은 실이 뻗어 나와 사라졌다.

한립은 등 뒤의 날개를 펄럭여 사라졌다가 서른 장 밖의 허공에서 청백색의 뇌전을 번뜩이며 다시 나타났다.

쿠르릉 퍼퍽!

그와 동시에 몇 장 아래의 허공에서는 공간 파동이 일며 검은 봉황이 튕겨 나왔다. 봉황은 만면에 당황한 기색이 가득했다.

“파멸법목(破滅法目)!”

봉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소리를 높였다. 검은 봉황이 제대로 몸을 가누기도 전에 모골이 송연해지는 서늘한 코웃음 소리가 들리며 그녀의 머리가 울렸다.

검은 봉황은 몸을 부르르 떨며 비틀거리다 추락할 뻔했다. 이때 한립이 입에서 작은 솥을 분출했다.

웅!

청명한 소리와 함께 솥이 진동하며 뚜껑이 열렸고 그 틈으로 푸른 실 뭉치가 뿜어져 나왔다. 검은 봉황은 상황이 묘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했지만 날개가 천근만근 무거워져서 펄럭여 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푸른 실에 꽁꽁 묶이고 말았다.

이에 한립이 전광석화처럼 움직여 검은 봉황의 지척으로 이동해 한쪽 소매를 털었다. 그러자 먹처럼 새까만 거대 손이 소매 사이로 나타나 검은 봉황의 목을 틀어쥐었다.

그때 검은 봉황은 한립의 실신자 공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상태였기에 푸른 실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며 검은 화염을 불사르고 있는 중이었다. 푸른 실들은 강력한 검은 화염 속에서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그것을 본 한립의 두 눈에 남색빛이 일렁였고 돌연 새까만 검은 손과 그의 두 뺨에 금색 비늘이 나타나더니 검은 봉황의 목을 엄청난 괴력으로 눌렀다.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던 검은 봉황은 순간 눈앞이 깜깜해졌고 기절하기 직전이었다.

“흐압!”

이어 한립이 고함을 치자 주변 대기가 공명했고 그가 등 뒤의 날개를 펄럭이며 검은 봉황을 쥔 채로 땅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그의 엄청난 괴력에 검은 봉황은 반항할 여력도 없었다.

쿠콰콰쾅!

땅이 쪼개지는 듯 엄청난 굉음이 울리고 열댓 장 너비의 거대한 구덩이가 생겨났다. 푸른빛이 번뜩이고 한립이 구덩이 위 상공에 나타났지만 검은 봉황은 구덩이 중앙에 엎어진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

비록 요족의 몸을 지녔지만 이렇게 엄청난 충격에 의식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흠.’

검은 봉황을 내려다보던 한립은 뜻밖에도 검기를 쏘아 보내 그녀의 숨통을 끊지 않고 한 손으로 허공을 쥐었다. 그러자 검은 봉황의 몸에서 하얀 빛이 번뜩이고 팔찌 형태의 저장 법기인 저물탁이 그의 손으로 빨려 들어왔다.

다른 손을 튕기자 여러 장의 부적이 검은 봉황의 체내로 날아 들어갔고 손바닥을 허공에 대자 새까만 작은 산이 구덩이 위에 나타나 서서히 하강했다.

쿠르릉.

검은 산은 검은 봉황이 움직이지 못하게 단단히 눌렀다. 원자신산(元磁神山)으로 눌러 놓으면 자력으로는 달아나지 못 할 것이다.

그가 소홍의 목숨을 살려둔 것은 여인이라서 봐준 것이 아니라, 칠대 요족과 같은 거대한 세력과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고 싶지 않아서였다.

“저런!”

다른 곳에서 전투 중이던 누군가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립이 고개를 돌리자 상대의 놀란 눈과 마주쳤다. 검은 두루마리를 조종해 싸우고 있던 농 가의 중년 수사였다.

그의 놀란 목소리에 다른 농 가 수사도 보라색 독무 속에서 이쪽을 바라보았다.

한립은 멀쩡하게 허공에 떠있었고 검은 산봉우리에 소홍이 깔려 있었다. 미약하게나마 기운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놀라운 일이었다.

농 가 수사는 잠시 놀란 듯 했지만 콧방귀를 뀌더니 한 손으로 허리춤을 스쳐 무언가를 꺼내 한립에게 던졌다. 그러자 핏빛 주머니 속에서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한립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 모습을 본 엽초가 크게 기뻐하며 입을 벌려 번개처럼 푸른빛을 뿜어내 핏빛을 맞추었다.

펑!

키하학!

핏빛이 몸을 떨며 거대한 악귀 머리로 변해 원래의 목표도 잊고 흉포하게 여인에게로 방향을 틀었다. 한립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천둥소리와 함께 청백색 뇌전으로 변해 사라졌다.

연달아 몇 번을 번뜩여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 그는 거대 혈검(血劍) 인근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혈정마가검은 여전히 진동하며 기이한 핏빛이 하얀 장막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한립을 발견한 또 다른 농 가 수가가 눈살을 찌푸렸고 한 손을 들어 허공을 때렸다.

휘잉!

거대 손이 나타나 한립을 잡아채려 했다. 하지만 한립은 눈을 가늘게 떴을 뿐 어떤 보물도 방출하지 않고 온 몸에서 금빛을 뿌리며 양 주먹을 날렸다.

한립의 두 주먹은 뻗어나가기 직전 각각 흑백의 신비로운 영기의 빛을 머금었다. 강화된 육신만의 힘으로 연허기 수사의 비술로 응결된 거대 손을 막으려 생각한 것이다.

이에 농 가 수사는 희색을 드러내며 법결을 발동해 거침없이 거대 손에 영력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태산처럼 떨어져 내리던 거대 손이 놀랍게도 멈춰 섰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도자기가 깨지듯 맑은 소리를 내며 산산이 부서져 영기의 빛으로 흩어졌다.

한립의 두 주먹은 금빛을 반짝이며 하늘 높이 치솟아 있었지만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다. 냉소하던 농 가 수사의 안색이 미미하게 달라졌다.

그러나 한립은 지체 없이 소매를 털어 두 개의 은색 구슬을 쏘아 보냈고, 구슬은 빙글빙글 돌며 하얀 빛의 장막을 향해 날아갔다.

은색 빛덩이 속에서 희미하게 천둥소리가 들렸다. 바로 미리 제련해 놓은 뇌문 구슬들이었다.

뇌문 구슬들이 막 하얀 빛의 장막에 부딪히려는데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파문이 일더니 새까만 악귀의 팔뚝이 나타났다. 은색 구슬은 악귀의 팔뚝을 맞고 폭발했다.

쿠쾅! 쿠콰콰쾅!

두 번의 굉음과 무수히 많은 은색 뇌전이 번뜩이며 순식간에 방원 스무 장을 휩쓸었다. 하얀 빛의 장막은 뇌문 구슬에 직접적으로 당한 것이 아님에도 극심하게 흔들리며 언제라도 뜯겨져 나갈 듯 위태로워 보였다.

한립이 눈을 가늘게 뜨고 뇌전의 힘이 가시기 전에 연달아 손가락을 튕겼다.

슈슈슈슉!

동시에 파공음이 일고 금색 검기들이 빼곡하게 날아가 하얀 빛의 장막을 갈랐다. 안 그래도 불안하던 빛의 장막은 날카로운 공격에 그대로 찢겨나가려 했다.

키히힉! 케헥!

그런데 뇌전의 광채 속에서 기이한 울부짖음이 들리고 열댓 개의 검은 그림자들이 검기를 향해 날아들었다. 돌연 그림자에 부딪힌 검기들은 금빛이 암담해지며 결국엔 불이 꺼지듯 사라져버렸다.

은색 뇌전이 사라지자 열댓 장 크기의 거대 악귀가 모습을 드러냈다. 악귀는 머리에 뿔이 두 개 솟아 있었고 길고 두꺼운 강철 팔뚝을 갖고 있었다.

한립은 모습을 드러낸 악귀의 얼굴을 보자 가슴이 서늘해졌다.

악귀의 얼굴에 눈코입이 없이 평평했던 것이다. 또 거대한 몸뚱이는 구멍이 수백 수천 개가 뚫려있어 단단한 팔을 제외하고는 온전해 보이는 구석이 없었다.

거대 악귀가 한립의 뇌문 구슬과 검기를 몸으로 막아내며 혈정마가검을 보호하는 빛의 장막을 지켰다.

키하하학!

거대 악귀가 고개를 들어 처절하게 울부짖었고 주변에 검은 음기가 몰려들어 꿀렁였다. 구멍이 숭숭 뚫렸던 육체가 검은 기운을 받아들여 스스로 치유하고 있었다.

“어린 녀석이 기고만장 하구나. 어디, 노부가 천 년을 키워낸 무상귀왕(無相鬼王)의 맛 좀 보거라! 귀왕의 신통은 노부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적의가 담긴 목소리가 한립의 귓가에 울렸다.

‘귀왕?’

그러나 한립은 입 꼬리가 묘하게 휘어지며 미소를 지었다.

“한 수사, 조심해야 할 것이야. 무상귀왕은 귀계(鬼界)에서도 유명한 존재로 연허급 존재와 맞먹는다네.”

이번에는 여인의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농 가 수사 두 명과 싸우고 있는 엽초였다. 한립이 신속하게 흑봉족 여인을 처리하는 것을 보고 희망이 생겼다고 여긴 것이다.

그 순간 귀왕이 한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이 없음에도 그의 위치를 감지하는 데는 문제가 없는 듯했다.

휘이이잉!

무상귀왕이 긴 팔을 들어 올리자 갑자기 광풍이 몰아치기 시작했고 새까만 음기들이 꿈틀거리며 귀곡성이 울려 퍼졌다. 무상귀왕은 음기 속에서 한립을 향해 두 팔을 털었다.

그러자 허공의 음기들이 극심하게 떨리며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로 뭉쳐져 새까만 발톱을 만들어냈다. 족히 백 장은 넘을 듯한 검은 발톱이 한립을 향해 서서히 다가왔다.

한립은 거대한 압력에 금제에 걸린 듯 꼼짝할 수 없었다. 평범한 수사였다면 그대로 죽는 순간까지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립은 코웃음을 치더니 한 손으로 영수환(靈獸環)을 문질렀다.

슉!

검은 빛이 날아가 허공을 선회한 다음 한립 앞에 떨어졌다. 윤기 나는 새까만 털을 지닌 작은 원숭이였다.

작은 원숭이는 눈을 데구루루 굴리며 전방을 보고는 콧구멍을 벌름거리다 두 주먹으로 가슴을 마구 두드렸다. 그러자 검은 빛이 제혼의 전신을 뒤덮었고 순식간에 서른 장 크기의 흉포한 원숭이 괴수로 변했다.

제혼이 악귀의 발톱을 향해 흥! 하고 코를 풀자 푸른 기운이 악귀 발톱으로 쇄도했다. 그러자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악귀 발톱은 푸른 기운에 닿은 순간 검은 구멍이 뚫렸고 이후 검은 음기의 알갱이로 갈라지며 흩어져버렸다. 멀리서 지켜보던 무상귀왕이 곧바로 한 손을 휘둘렀다.

휘휙!

다섯 줄기의 검은 빛이 거대한 칼날로 변해 제혼을 향해 들이닥쳤다. 파공음이 들린 순간 이미 다섯 칼날은 거대 원숭이의 코앞으로 다가왔다.

파앗.

검은 빛줄기들이 제혼의 몸을 통과했는데 놀랍게도 아무런 효과가 없자 무상귀왕도 흠칫 몸이 굳어졌다.

그러나 제혼은 상대가 무엇을 하듯 아랑곳 하지 않고 길게 코를 풀어 콧구멍 속에서 다시 푸른 기운을 뿜어냈다. 음기들은 푸른 기운에 휩쓸려 검푸른 색이 되어 제혼의 입 속으로 들어갔다.

제혼은 흡족한 얼굴로 시선을 돌려 귀왕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키학!

정신을 차린 무상귀왕이 분노하며 씩씩거리자 귀왕의 온 몸에 불현 듯 고색창연한 갑옷이 나타나며 푸른 화염이 그 표면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리고 두 손에는 백골로 만든 커다란 망치 두 개를 들고 있었다.

한립이 의식으로 살피니 백골 망치들은 거대한 귀물의 뼈를 제련한 것인지 각각 노란 바람과 검은 기운이 넘실댔다. 그러나 제혼은 오히려 눈을 반짝이며 다시 콧구멍에서 푸른 기운 두 줄기를 뿜어냈다.

쿠쿵! 쿵!

무상귀왕이 두 백골 망치를 휘두르자 검은 기운이 피어나 제혼의 푸른 기운과 충돌했다. 제혼의 섭혼신광(攝魂神光)이 놀랍게도 귀물의 공격에 무력화되었다.

한립의 표정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크아아악!

제혼도 신중한 얼굴을 하며 포효했다. 그러자 거대 원숭이 주변으로 음풍이 몰아치고 무수히 많은 번갯불들이 번쩍였다.

거대한 제혼의 몸이 다시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더니 털이 붉게 물들고 머리 위로 세 개의 굽은 뿔이 솟아났다.

미간 사이가 울룩불룩해지며 핏빛 요목(妖目)이 생겨났다. 얼굴은 길어졌고 송곳니가 밖으로 뻗어 나왔으며 등 뒤로 거무튀튀한 세 개의 검은 가시가 한 장이나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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