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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810화 (567/2,000)
  • 810화. 여섯 개의 팔

    *

    옥간이 훼손된 순간 한립 등 세 사람도 놀라 얼어붙었다. 동시에 나머지 고목들이 녹색빛을 머금으며 녹아내리더니 초록빛깔의 인영으로 변해갔다.

    “이게 여기에 숨겨져 있을 줄이야. 너희가 길을 안내하지 않았다면 찾기 어려울 뻔했어. 이제 본 족은 후환을 걱정할 일이 없어졌다.”

    커다란 인영이 그들을 훑으며 탁한 목소리를 냈는데 뜻밖에도 인족의 말이었다. 피부가 청록색으로 옅은 보랏빛을 띠는 것을 제외하면 인간과 흡사했다. 나무가 변한 인영들은 전부 목족이었는데 호리호리한 체형의 두 명은 여인이었다.

    한립이 더욱 놀란 것은 목족들의 비단 장포 허리에 대부분 귤색 요대(腰帶)가 매어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거기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커다란 목족의 요대는 귤색 가운데 은색 실이 한 줄기 들어가 있었다.

    목족의 등급에 관한 사실을 떠올리며 한립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은계(銀階), 당신은 은계 목령이군요!”

    커다란 목족의 요대를 확인한 소홍의 얼굴에 파문이 일었다.

    “나는 은계 하위영사(下位靈師) 목서다.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돌아갈 생각은 말거라. 목족구역에서 객으로 한동안 머무는 것도 나쁘진 않을 테니.”

    커다란 목족이 무표정하게 대답하고 한 손을 휘둘렀다. 그의 뒤에선 귤색 요대를 맨 목족들이 동시에 허리를 굽혀 두 손을 땅에 가져다댔다. 그러자 녹색빛이 불가사의한 속도로 언덕을 뒤덮었다.

    땅에 착지해 있던 한립과 엽영은 즉시 허공에 몸을 띄웠고 크르릉 하는 굉음이 들리며 한립이 설치한 환술 금제가 산산이 흩어졌고 이어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녹색빛이 뒤덮은 곳의 수목들이 전부 커다란 털보 짐승으로 변해 각양각색의 병장기를 들고 서 있었다. 털 색깔이 다양했고 몇몇은 요풍을 휘날리며 허공에 떠오르기도 했다.

    대충 살펴도 족히 수천 마리는 될 법한 짐승들이 언덕 주위를 포위하고 있었다.

    농동과 소홍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한립도 쓴웃음을 지었지만 엽영만이 가라앉은 눈빛으로 목서를 응시하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본 족이 거의 천 년간 연구해 만들어낸 목원수(木猿獸)다. 만일 너희가 옥간의 내용을 보았다면 이것도 적혀 있었겠지. 허나 지금은…….”

    목서의 얼굴은 무표정했으나 말투로 미뤄보아 그들을 비웃고 있는 듯 했다.

    “쳐요!”

    급작스레 낯선 목소리가 허공에서 울리고 엽영이 돌연 입을 벌려 새빨간 핏빛을 분출했다. 그것은 핏빛 실들로 갈라져 은계 목령(木靈)을 포함한 목족들을 향해 쇄도했다.

    엽영의 공격에 목족들은 깜짝 놀라 녹색빛을 뿌리며 나무 방패를 꺼내들었고 입을 벌려 안개를 뿜어 핏빛 실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핏빛 실은 무엇이 응결한 것인지 그림자처럼 그들의 방패를 파고들어 목족들을 명중시켰다. 결국 목족들은 전신에 붉은 빛이 번지며 붉은 그물에 갇히고 말았다.

    비슷한 시각 한립의 검기에 두 동강 났던 고목의 잔해가 놀랍게도 각각 금빛 그림자로 갈라져 은계 목령 목서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이에 목서는 코웃음을 치며 손을 뻗었다.

    은색 빛줄기 두 개가 날아가 금빛 그림자들을 공격했다.

    펑! 쿠쿵!

    은색 빛줄기에 금빛 그림자가 폭발했다. 그러나 무수히 많은 금빛 알갱이가 방출돼 목서를 가두려 들었다.

    “이익!”

    목서 주변으로 금빛 부적의 진법이 떠올라 그를 옭아맸다. 그러자 상대의 보랏빛 눈이 수축하며 눈부신 은빛을 번뜩이자 무수히 많은 은빛들이 사방으로 날아가며 터졌다.

    쾅! 쿠콰쾅!

    은빛과 금빛 부적이 치열하게 교전했고 금빛 부적은 무슨 괴이한 신통을 지니고 있는지 놀랍게도 은계 목령의 일격을 막아내고 부적 일부가 흩어졌을 뿐이었다.

    그것을 본 목서는 분노하며 곧바로 다시 합장을 했는데 양손에 모인 은빛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해 보였다.

    그러나 은계 목령과 다른 고계 목령들이 전부 갇힌 것을 보고 수사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의아한 상황이었지만 이곳에서 살해당할 수는 없으니 이 같은 상황에 반색하며 숨겨둔 한 수를 써 도처로 튀어나갔다.

    특히 소홍은 수결을 맺은 뒤 빙글 빙글 회전하며 아름다운 불 봉황으로 변신하더니 검은 화염이 넘쳐흐르는 몸으로 목원수 무리를 그대로 뚫고 날아갔다. 그러자 목원수는 물론 그들이 들고 있던 병장기들까지 검은 화염에 닿자마자 재가 되어 흩날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봉황은 백여 장을 벗어나 있었다.

    농동 역시 오색(五色) 단약을 먹고 주술을 외우자 날개 달린 갑옷이 그를 뒤덮었다. 날개를 펄럭이자 전갑 표면에 오조(五爪) 금룡의 형상이 맺혔다. 용은 하늘을 찌를 듯 길게 울부짖고 그대로 농동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이어 농동은 금빛을 발산하며 열댓 장 길이의 금빛 빛줄기로 변해 날아갔다. 금빛은 흐릿하게나마 용의 형상을 하고 있었고 그것을 막아선 목원수들은 비처럼 피를 흩날리며 죽어나갔다.

    이들의 경천동지할 움직임과 달리 한립은 아주 조용히 움직였다.

    꽈광.

    낮은 천둥소리가 울리며 그의 등 뒤로 청백색의 날개가 나타났고, 그가 토해낸 핏물이 대량의 핏빛 안개로 변해 그의 주위를 감쌌다. 핏빛 안개는 단번에 수축해 잔영을 남기며 사라졌다.

    핏빛이 연이어 번뜩이자 그는 빽빽하게 선 목원수 무리를 통과해 그 끝에 이르러 있었고, 다시 한 번 핏빛 안개가 번뜩이자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졌다.

    한립이 혈영둔을 펼쳐 검은 봉황이나 농동이 변한 금빛 보다 배는 빠르게 움직인 것이다. 그것을 본 농동과 소홍은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엽영은 한 손에 붉은 기운이 도는 칼날을 들고 목원수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방향을 향해 어떤 수결도 맺지 않고 휘둘렀다.

    그러자 인근의 천지원기가 진동했고 백여 장 크기의 새빨간 도광(刀光)이 유유히 모습을 드러냈다. 도광이 떨어지자 그 아래의 목원수들은 깜짝 놀라 허겁지겁 달아났다.

    그러나 이상한 일은 목원수들이 움찔하는 순간 이미 온 몸이 타올라 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엽영의 앞이 탁 트이며 통로가 뚫렸다.

    거대한 도광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괴이하게 소실되었다. 바로 그때 옥간이 숨겨져 있던 고목 뿌리에서 주먹 크기의 녹색 불새가 튀어나와 엽영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소녀가 기뻐하며 숨을 들이마신 순간 그녀 역시 그 자리에서 사라져 통로의 중간에서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다시 사라진 엽영은 통로의 끝에 도착해 있었다.

    그녀는 곧바로 하얀 빛줄기로 변해 하늘을 갈랐고 몇 호흡 만에 하늘 저편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엽영의 괴이한 둔술이 한립의 혈영둔 못지않았다.

    이때 금빛 부적에 갇힌 목서의 양 손에서 은빛이 폭발했다. 이번 공격은 이전 보다 훨씬 강력해서 일격에 금색 부적 대부분이 흩날려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남은 부분이 목서의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목서의 눈에서 분노가 느껴졌다. 그가 고개를 들어 날카로운 소리를 방출했다.

    삐이이이익!

    그러자 주변에 떠있던 목원수들이 즉시 몇 무리로 나뉘어 각각 한립과 농동, 소홍의 뒤를 쫓았다.

    삐이익!

    삐이이익!

    목서의 소리에 화답하듯 흑엽삼림의 다른 쪽에서 연달아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한립은 혈영둔을 발동한지 얼마 되지 않아 괴수들을 따돌릴 수 있었지만 그의 안색은 더없이 창백했다. 최근 연달아 두 번이나 혈영둔을 쓰는 바람에 원기를 상한 것이다.

    그러나 추격해올 은계 목령의 존재를 생각하면 조금도 주저할 수 없었다. 은계 목령은 인족의 합체기 수사와 맞먹었다. 아무리 상대가 은계 하위의 존재라도 직접 교전하면 승산이 없었다.

    이번에 누군가 몰래 도움을 주어 비술로 은계 목령을 잡아 두지 않았다면 그들은 달아날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금색 부적도 오래 버티지 못할 테니 언제 은계 목령이 다시 쫓아올지도 모른다.

    그러니 조금도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비록 혈영둔은 거두었지만 푸른 빛줄기 속의 풍뢰시는 한시도 쉬지 않고 펄럭였다. 열댓 번을 펄럭인 후에는 연허기 수사와도 맞먹을 만한 속도를 내었다. 그런데도 한립은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미친 듯이 날아갔다.

    쉬쉬쉭!

    아래쪽에서 파공음이 들려왔다. 소리만 들어도 엄청난 속도로 무언가 접근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한립은 얼굴을 굳히며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러자 세 개의 푸른빛이 그를 몇 척 거리에서 스쳐지나갔다. 멈추지 않았다면 그의 몸을 꿰뚫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 줄기 푸른빛은 다시 허공을 선회해 한립에게로 돌아왔다. 그들은 목족으로 변해 푸른 나무창을 들고 한립을 노려보았다.

    한립의 시선이 그들의 요대로 향했다. 희미한 노란색인 것을 확인한 그는 그들이 인족 원영기 수사와 비슷한 실력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내심 안심했다.

    한립은 다른 보물은 꺼내지 않고 다시 풍뢰시를 움직여 청백색의 뇌전으로 변해 움직였다. 뇌전이 얼마나 빠른지 번뜩하는 순간 가운데 있는 목령 앞에 이를 수 있었다.

    그의 빠른 움직임에도 목령은 무표정한 얼굴로 눈을 번뜩였고, 뜻밖에도 두려움 없이 한립을 향해 목창을 휘둘렀다. 목창이 몸에 닿기 전 날카로운 푸른빛으로 변해 폭발했다.

    한립을 벌집으로 만들어 놓을 생각인 듯했다. 그 모습에 한립이 눈빛이 서늘하게 변하더니 두 손을 모으자 금빛이 방출되며 투명한 금빛 비늘이 온 몸을 뒤덮기 시작했다.

    채채채챙! 채챙!

    푸른빛은 그의 몸에 닿아 금속성의 마찰음을 내며 튕겨 나갔을 뿐 어떤 흔적도 남기지 못했다. 또한 한립은 한 손을 괴이하게 틀어 그를 향해 오는 창끝을 맨 손으로 쥐었다. 눈앞의 목령이 사력을 당해 창을 다시 회수하려 했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쩔 수 없이 목령은 서둘러 목창을 포기하고 뒤쪽으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한립의 팔 하나가 부풀어 올라 목령의 가슴을 꿰뚫었다.

    푹.

    무언가 뚫리는 소리가 들리고 목령의 몸을 통과한 한립의 다섯 손가락이 희미한 노란색의 수정을 쥔 채 튀어나왔다.

    다른 목령들이 그것을 보고 기괴한 소리를 내며 노란 기운을 분출하면서 목창을 휘둘러댔다. 한립은 냉소하며 두 손을 회수하려 팔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꿰뚫은 목령의 신체와 목령이 들고 있던 목창에서 녹색빛이 크게 번지며 그를 강하게 끌어당긴 것이다. 아무리 힘을 주고 두 팔을 흔들어 봐도 꼼짝할 수 없었다.

    그 사이 노란 기운과 무수히 많은 창의 허상들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한립은 의혹이 어린 얼굴로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금빛이 번쩍이며 옆구리에서 금빛 팔 네 개가 나타나 움직였다.

    한 팔은 노란 기운을 주먹으로 쳐냈고, 다른 팔은 허공을 갈라 수많은 손바닥 허상을 만들어내 목창에서 튀어나온 푸른빛들을 막았다.

    남은 두 팔이 열 손가락을 튕겨 금색 검기들이 두 목령들을 향해 날아갔다. 목령들이 놀라 푸른 나무 갑옷을 불러내고 한 손으로 노란 나무 방패를 들어 검기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검기들은 한립이 체내에서 배양해온 청죽봉운검이었다.

    스슥! 스걱!

    목령들의 방어구는 물론 그들의 몸까지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났다. 그러나 이에 그치지 않고 한립은 계속해서 두 손을 튕겨냈다. 빽빽하게 튀어나간 검기들이 목령들의 잔해를 뒤덮더니 곧이어 핏물이 터져 나왔다.

    뒤처리를 마친 한립은 강한 흡인력에 꼼짝 못하던 팔을 빼냈다. 그러자 이번에는 두 팔에 금빛이 물결처럼 일었다. 그의 두 팔을 붙들고 있던 목령의 육체와 푸른 목창이 금빛에 닿아 부서져 나갔고 결국에는 나무가루로 변해 흩날렸다.

    자유를 되찾은 한립이 금빛을 거두자 모호하게 보이던 네 개의 금색 팔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겨우 원영급 존재들을 상대하기 위해 범성진마공 제2부를 활용하다니 낭비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아직 공법을 깊이 익히지 못해 진정한 위력을 내기에는 무리였다. 연허기에 이르러 범성진마공 3부를 수련할 수 있다면 공법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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