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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809화 (566/2,000)

809화. 흑엽삼림

*

하루가 지나고 숲 속의 거목 아래에서 한립은 어두운 얼굴로 8마리의 털보 괴수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전에 보았던 거대 원숭이와 달리 몸집이 절반밖에 되지 않았지만 온 몸의 털이 새빨간 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또 손에는 구리 작살 대신 새까만 낭아봉(狼牙棒)을 들고 있었다. 8마리 괴수가 전부 이를 드러내고 한립을 흉흉하게 노려보았다. 그러나 한립은 입 꼬리를 실룩였다.

털이 긴 괴수들은 예민하지 않은 줄 알았는데 어찐 일인지 그를 발견하고 포위한 것이다. 8마리 괴수의 이마 위에 반짝이는 세 번째 눈을 보니 뭔가 알 것 같았다. 이전에 본 녹색 털 괴수는 이마의 세 번째 눈을 감고 있었다.

그때 8마리의 붉은 괴수들이 낮게 으르렁거리며 폴짝 뛰어올라 낭아봉을 휘둘렀다. 못이 빼곡하게 박힌 새까만 곤봉들은 영기의 빛을 머금고 바람처럼 한립의 머리를 노렸다.

한립은 눈썹을 끌어올리며 피하지 않고 한쪽 소매를 털었다. 그러자 8개의 금색 검이 날아올라 금실로 변해 튀어나가 괴수들을 한 바퀴 돌았다.

서걱!

머리 8개가 풀이 베어나가듯 순식간에 잘려나갔다. 여덟 줄기의 금실이 다시 검의 원형을 찾았을 때는 풀숲에 여덟 구의 시체에서 흐른 피가 흥건했다. 한립이 다른 쪽 소매를 털자 여덟 개의 붉은 불덩이가 괴수들의 시체로 날아갔다.

퍼퍼펑!

괴수들의 시체가 불길 속에서 재로 사라졌다. 그후 한립은 무표정하게 신형을 움직여 다시 수풀 속으로 종적을 감추었다.

한립은 몰랐지만 그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근 거목에 돌연 녹색 빛 두 개가 반짝였다. 놀랍게도 거목이 직경 한 척의 두 개의 녹색눈을 뜨고 한립이 사라진 방향을 응시했다.

*     *     *

그곳에서 수만 리 떨어진 수풀 속.

나무들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녹색 눈알을 굴리고 있는 거목이 백여 장 정도의 공터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보라색 장포를 걸친 사내와 검은 치마를 입은 여인은 농동과 소홍이었다.

둘은 입술을 달싹이며 전음을 주고받았는데 주변에 열댓 구의 붉은색과 녹색 털보 괴물들이 쓰러져 있었다.

“농 형, 괴수들이 위력은 강하지 않지만 은닉술을 꿰뚫어보는 실력은 대단합니다. 제 환하번(幻霞幡)은 동급 수사들도 잘 알아채지 못하는 데요.”

소홍이 미간을 좁히며 전음을 보냈다.

“아마 이마의 제3의 눈과 관련된 신통이겠지요. 눈이 많은 요수들은 보통 특수한 신통을 지닌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앞으로 더욱 조심해야겠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출발하죠! 반드시 엽영보다 먼저 도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았다가는 그 물건이 그녀의 손에 들어갈 수 있어요.”

“당신이나 엽영이나 이번 임무에 다른 목적이 있는 줄은 생각지도 못 했습니다. 우리 농 씨 가문에는 계륵인 물건이지만 아까울 따름이에요. 소 선자께서는 저와의 약속을 잊지 마십시오. 물건은 선자께서 사람은 제가 챙기는 것입니다.”

농동이 묘한 미소를 짓다가 음산히 당부했다.

“흥, 아무리 천봉의 피가 중요하다고 해도 종족 전체의 대사를 그르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는 알고 있으니 염려 붙들어 매시지요.”

“하하, 알겠습니다. 출발하시죠!”

농동이 웃으며 전음을 마치고 둘은 수풀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또 다른 곳에서는 굉장히 빠른 속도의 하얀 그림자가 수풀을 질주하고 있었다. 어찌나 빠른지 상상을 초월하는 움직임이었다.

*     *     *

흑엽삼림의 비밀스런 장소.

예닐곱 장 높이의 은색 나무 아래에 거무튀튀한 인영 몇 개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들 중 하나가 돌연 눈을 번쩍 뜨더니 녹색 눈동자에서 금빛이 사방으로 번졌고 입으로 기이한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자 주변의 인영들이 동시에 눈을 떴고 그 중 키가 큰 인영이 위엄이 가득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무언가를 묻는 듯했다.

키가 큰 인영이 이야기를 다 듣고 명을 내리자 나머지가 전부 몸을 일으켜 은색 나무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키 큰 인영이 고함을 치며 한 손으로 나무를 가리키자 동시에 녹색 실이 뻗어 나가 은색 나무속으로 흡수되었다.

그러자 은색 나무가 몸을 부르르 떨며 나무 기둥에 은색 눈이 여러 개 생겨나 은색 빛기둥을 방출했고 각각의 인영들을 향해 떨어졌다.

다음 순간,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졌다.

빛기둥을 맞은 인영들의 신형이 모호해지더니 그 자리에서 사라진 것이다.

한립은 누군가 이미 자신의 행적을 파악했다는 사실도 모르고 여전히 수풀 속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후의 여정은 이상하게 순조로워 가끔 홀로 돌아다니는 긴 털 괴수를 만나는 것을 제외하면 목족을 한 명도 보지 못했다.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의심스런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흑염삼림이 이렇게 광활한 데 반드시 목족과 마주쳐야 한다는 법도 없었다. 게다가 이번 임무는 멸진단과 관련이 있고 이미 흑엽삼림 깊숙이 들어왔기 때문에 이제 와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이렇게 그는 불안한 마음을 품고도 쉼 없이 발을 놀렸다.

이틀 후, 한립은 아주 가느다란 나뭇가지 위에 서있었다. 그의 몸은 마치 바람을 타고 펄럭이는 듯 가벼웠고 시선은 백여 장 높이의 머지않은 작은 언덕을 바라보았다.

언덕에는 얼마나 오랫동안 자라왔는지 모를 고목 몇 그루를 제외하면 다른 초목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립은 언덕을 한참동안 관찰하다 한 손을 뒤집어 거무튀튀한 삼각형의 진법 법기를 꺼냈다.

진법 법기의 중심에는 우윳빛의 점이 반짝이고 있었다. 고개를 숙여 그것을 확인한 그는 한 손으로 수결을 맺어 진법 법기를 향해 푸른빛을 쏘아 보냈다.

동시에 진법 법기에서 검은빛이 반짝였고 우윳빛 점이 날아올라 미세한 하얀 실들로 갈라졌다. 실들은 언덕 위의 고목 한 그루를 가리키고 있었다.

한립이 눈을 번뜩였다.

그 고목은 이미 절반은 말라 비틀어져 있었는데 높이가 서른 장이 넘었지만 윗부분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검게 그을렸고 아래쪽은 노란빛을 띠며 뿌리 부근에는 미세하게 초록빛을 머금었다.

한립이 갑자기 눈을 감고 천천히 의식을 방출해 인근을 살살이 수색했다. 잠시 후 눈을 뜬 그는 마음을 놓았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고 어떤 이상한 점도 찾아낼 수 없었다.

‘흠.’

그러나 한립은 바로 행동에 들어가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뜨곤 생각에 잠겼다. 곧 그가 소매를 펄럭여 은빛 구슬을 쥐고 입으로는 주먹 크기의 은색 불새를 분출했다.

불새는 그의 몸을 한 바퀴 돌며 한 척 길이로 불어난 후 한립이 들고 있는 은색 구슬을 삼켜버렸다. 그리고는 신형을 번뜩이며 땅 속으로 종적을 감추었다.

이번에는 한립이 저물탁을 스쳐 푸른 진법 법기 한 벌을 꺼내 전방에 뿌렸다.

파앗.

일고여덟 개의 녹색 빛이 튀어나가 언덕 주위로 사라졌다.

한립은 수결을 맺으며 주술을 읊었다. 동시에 녹색 영기의 빛이 언덕 주변에 떠올랐다. 하지만 그의 법결을 맞고 흔들거리던 빛은 모습을 감추었다.

그제야 한립이 한숨을 쉬고 나뭇가지에서 뛰어내려 언덕으로 향했다. 녹색 빛이 번쩍이자 그의 모습도 사라졌다.

멀리서 보면 언덕은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지만 실제로는 모든 것이 환상에 불과했다. 한립은 언덕에 올라 이미 말라비틀어진 고목 앞에 서 있었다. 그는 나무를 보면서 머릿 속으로 오는 길에 농동과 소홍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인요족 첩자와 직접 만나 기록으로 남기기 어려운 정보를 듣는 것이 우선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정보를 어딘가에 남겨두기로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임무는 더욱 간단해진다. 정보가 담긴 물건을 찾아 떠나면 되니까.’

이런 생각을 하며 한립은 손가락을 들어 허공을 갈랐다. 푸른 검기가 눈앞의 말라비틀어진 고목을 수직으로 갈라냈다. 그러자 갈라진 나무 기둥 사이로 우윳빛 옥간이 보였다.

한립은 반가운 얼굴로 허공을 쥐었고 옥간이 스스로 떠올라 그를 향해 날아왔다.

펑!

바로 그때 금빛 빛줄기가 한립이 만들어 놓은 환술 금제를 뚫고 옥간을 향해 날아들었다.

“…….”

한립은 안색이 달라져 다른 손에서 푸른빛을 번뜩였다. 그때 푸른 거대 손이 허공에 나타나 금색 빛줄기를 잡아챘다.

“하하!”

익숙한 웃음소리가 들리고 금색 빛줄기는 거대 손에 붙들리자마자 환영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한립을 향해 날아오던 옥간은 갑자기 허공에서 나타난 하얀 그림자의 수중에 떨어졌다.

“엽 수사!”

한립은 순식간에 하얀 그림자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바로 엽영이라는 하얀 장포 소녀였다.

“한 형, 오는 동안 아무 일도 없으셨나봅니다. 이렇게 빨리 이곳에 도착한 것을 보니 말이에요.”

소녀는 옥간을 쥔 채 반짝이는 눈빛으로 한립을 보았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설마 엽 선자께서는 오는 동안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저는 일선천 출구와 흑엽삼림 근처에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아무도 나타나지 않아 홀로 움직인 것입니다.”

한립이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저와 다른 수사들은 일선천에서 풍교 무리를 마주쳤지 뭐예요! 그래서 어쩔 수없이 흩어져 달아났고 그 것들을 피해 경로를 이탈하다 보니 다른 사소한 문제들이 생겨 늦었습니다.”

한립은 그녀의 말에 무언가 숨겨진 사실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입을 열려 했다. 하지만 그가 입을 떼기도 전에 허공에 두 개의 빛줄기가 날아들었다. 빛이 가시고 나타난 것은 바로 농동과 소홍이었다.

“당신은!”

“과연 앞서 가고 있으셨습니다.”

둘 다 놀란 어투였다. 소홍은 한립이 멀쩡한 것을 보고 의아해하는 눈치였고 농동은 엽영의 존재에 희색을 감추지 못했다.

“농 형과 소 수사셨군요! 두 분께서 저보다 한 걸음 늦으셨습니다.”

엽영은 두 수사를 보며 담담히 중얼거렸다.

“물건은, 엽 소저께서 손에 넣으신 겁니까?”

농동이 엽영의 손에 들린 옥간을 보고 웃는 듯 마는 듯한 미묘한 얼굴로 물었다. 그 말에 소홍의 표정도 달라졌다.

“네, 제가 방금 손에 넣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가장 먼저 이곳에 도착하신 것은 한 수사지만요.”

“한 형, 이곳에 저 옥간밖에 없었습니까?”

잠시 침묵하던 소홍이 돌연 한립을 보았다. 한립은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반응에 소홍은 말이 없었고 농동도 엽영을 주시하며 입을 다물었다. 엽영 만이 미소를 머금은 채 옥간을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일순 적막해진 언덕 위에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폭풍전야의 징조였다.

“엽 수사, 옥간을 제가 먼저 봐도 될까요? 이곳에 파견된 목족 첩자 중에 저희 흑봉족 사람이 있습니다. 본 족에게 무언가 전할 말이 쓰여 있는지 궁금하군요.”

갑자기 소홍이 안색을 풀고 엽영에게 살갑게 말을 걸었다.

“안 되겠는데요. 목족의 첩자 중에 공교롭게도 저희 엽 가의 분도 계셔서요. 제가 먼저 내용을 확인한 후에 소 수사께 보여드리면 어떻겠습니까?”

엽영이 입 꼬리를 끌어올리며 빙그레 웃었다. 그러자 소홍의 안색이 확 달라져 눈빛이 무거워졌다.

“챙겨야할 물건을 챙겼으니 어서 움직입시다. 이곳은 오래 머물 곳이 못되니까요.”

“제 생각도 같습니다.”

농동의 권유에 엽영도 곧바로 동의했다. 소홍은 입술을 달싹였지만 무어라 말을 하지는 않았고 한립도 별 다른 이견은 없었다.

소녀가 웃으며 손에 든 옥간을 챙기려는데 갑자기 옆의 고목에서 소리 없이 은빛이 튀어나와 엽영을 기습했다. 엽영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코웃음을 친 다음 신형이 모호해져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쉐액!

다음 순간 열댓 장 밖에서 그녀의 신형이 완전히 나타나기도 전에 발밑에서 또 다른 은색 빛이 날아들었다.

“…….”

그러나 이번엔 처음 기습과 달리 파공음이 들렸다.

보일 듯 말듯 투명한 빛의 실이 지척에서 날아들어 그녀가 든 옥간을 노렸다. 놀란 엽영이 재빨리 팔을 움츠렸지만 피하기에는 늦고 말았다.

펑!

옥간이 폭발해 조각조각 나 버린 것이다. 소녀는 분노하며 맨손으로 투명한 빛의 실을 잡아채 끌어당겼다.

훽.

그러자 투명한 것처럼 매우 흐릿한 거대 곤충이 허공에서 끌려왔다. 서너 척 크기의 누에를 닮은 곤충은 등 뒤의 날개를 파닥거리며 벗어나려 했지만 투명한 실이 곤충의 입에 연결되어 있어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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