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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808화 (565/2,000)

808화. 몽라(夢羅)

*

몇 시진 후, 하늘 어딘가에서 푸른 빛줄기가 나타나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상공을 배회했다. 빛이 가시고 나타난 이는 한립이었다.

“한 형께서도 무사하셨군요. 영족이 매복하고 있었는데도 살아남다니 그것만으로도 운이 좋았습니다.”

농동이 미소를 머금고 인사했다.

“다른 분들도 별 탈 없는 것을 보니 다행입니다.”

한립이 다른 수사들을 훑으며 잔잔하게 웃었다.

“한 형까지 도착했으니 반나절 정도 쉬었다가 바로 출발하죠. 영족들이 더 귀찮게 굴 수도 있으니까요.”

“소 선자의 말씀대로입니다. 이곳에서 오래 머물 수는 없지요.”

농동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립과 엽영은 이견이 없었다.

반나절 후, 네 사람은 둔술을 펼쳐 은밀히 어딘가로 향했다.

만여 리를 날아가자 점점 바람이 심해졌고 앞으로 나아갈수록 더욱 맹렬해져 모래 바람 속에서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사방이 노란 모래 먼지와 떠도는 돌조각들로 가득 차 숨을 쉬기도 어려웠다.

영기로 보호막을 두르고 날아가니 망정이지 평범한 사람들은 돌풍 속의 돌에 맞아서도 벌써 죽었을 것이다.

바람을 뚫고 천여 리를 더 날아가는데 앞에서 나아가던 농동이 갑자기 멈추었다. 이어 나머지 사람들의 귓가에 전음이 들려왔다.

“도착했습니다. 앞쪽이 일선천입니다. 상부에서 우리에게 소모성 정풍주(定風珠) 두 알씩을 내려주지 않았다면 이곳을 지나지 못했겠죠. 정풍주가 있으니 무사히 왕복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안에 풍교(風蛟) 무리가 서식하니 다들 조심해야 합니다. 물론 넓은 일선천에서 우연히 그것들과 조우할 가능성은 희박하니까요.”

“그것 외에도 다들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 됩니다. 영족이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 매복하고 있었던 것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립니다. 이 안에도 함정이 있을지 모르니 만일의 상황에 알아서 대비해야 합니다.”

소홍이 숙연한 얼굴로 덧붙였다.

한립은 두 사람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남색빛이 일렁이는 눈으로 모래바람을 뚫고 먼 곳을 응시했다.

그런데 백여 리 밖에서 기상천외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높이는 하늘을 찌를 듯 했고 위쪽은 검고 아래쪽은 누런데 중간에 또 곧고 하얀 무언가가 양쪽으로 끝도 없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서둘러 출발한 일행은 얼마 후 한립이 본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허공이 있어야할 하늘에는 검은 안개가 가득했고 아래쪽은 노란 모래 돌풍이 휘몰아쳤다. 둘이 마주 하는 부분에는 백 장 높이의 하얀 빛을 방출하는 거대한 개울이 존재해 검은 안개와 노란 돌풍을 갈라놓았다.

검은 안개도 노란 돌풍도 하얀 개울로 밀려들어 마치 끝 모를 심연으로 향하는 듯했다.

“이게 바로 일선천이군요! 재미있네요.”

엽영이 그것을 보고 입 꼬리를 끌어올렸다.

“갑시다. 지금이 모래 폭풍이 가장 약할 때라 다행이지 며칠만 지나도 입구를 찾아 들어가기가 훨씬 어려워질 겁니다.”

농동이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그가 손바닥을 뒤집자 주먹 크기의 푸른 구슬이 나타났다. 손가락으로 굴려 훨씬 작게 만든 구슬을 입안에 넣은 것이다.

한립 등 다른 이들도 분분히 구슬을 꺼내 복용했다.

그러자 네 사람의 몸에 괴이한 광채가 감돌았고 주위에 몰아치던 광풍도 이 광채에 닿으면 녹는 것처럼 사라졌다. 천연성 고위층이 출발 전에 지급한 정풍주를 복용한 결과였다.

그들은 주저 없이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는 곳까지 가까이 다가갔다. 그 후로는 따로 무언가를 할 필요가 없었다. 무형의 기운이 그들을 끌어당겨 거대한 도랑 속으로 빨아 들였기 때문이다.

한립은 빨려 들어가는 순간 흡인력이 사라지며 몸이 편안하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하얀 바람의 칼날과 귓가를 찢을 듯한 소리에 얼마나 강력한 돌풍이 불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정풍주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면 법보 등을 이용해 몸을 보호해야 했고 그러면 법력 손실을 감내해야 했을 것이다.

한립은 주위를 살피고는 의식을 몸 밖으로 꺼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명청령안으로도 백여 장 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다른 이들은 더 멀리 떨어져 있는지 위치를 찾을 수 없었다.

한립은 미간을 좁히더니 푸른 빛 줄기로 변해 돌풍 속으로 날아갔다.

*     *     *

며칠 후 일선천 입구에 갑자기 영기의 빛이 반짝이고 두 개의 빛줄기가 나타났다.

빛이 가시고 나타난 이들은 금색 장포를 걸친 중년 수사들이었다. 비슷한 복색에 머리에 보라색 띠를 맨 그들은 안광이 형형했다.

둘 중 하나는 비정상적으로 얼굴이 창백했고 다른 하나는 장포 중 절반이 뜯겨나가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둘은 거대한 균열을 살피다 입술을 달싹이며 전음을 주고받고는 둔광으로 뛰어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붉은 그림자가 모래 폭풍 속에서 날아들었다. 붉은 그림자는 일선천을 보고 머뭇거리다 분노에 찬 고함을 지르더니 뒤돌아 날아갔다.

이제 일선천 주변에는 돌풍만이 남아 있을 뿐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     *     *

몇 개월 후, 홀로 푸른 산 정상의 바위에 앉은 한립이 어딘가를 응시했다. 작은 산에서 수십 리 떨어진 곳에 방대한 숲이 시작되고 있었다.

숲은 괴이하게도 나무든 풀이든 녹음 속에 새까만 문양을 새기고 있었다. 그래서 멀리서 보면 검푸른 녹색으로 보이기도 했다.

바로 한립 등이 임무를 수행해야 할 목적지이자 목족 세력과 가장 가까운 경계지대인 흑엽삼림이었다. 한참동안 살펴보던 한립이 시선을 거두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일선천은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아무 일도 없이 통과할 수 있었다. 오히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 예상 밖이랄까?

답답한 일은 다른 세 명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그가 출구에서 며칠을 기다려도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고민하던 그는 과감히 기다리는 것을 포기하고 혼자서라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이동했다.

오는 동안 사소한 일들은 있었지만 전부 깔끔하게 처리하고 우연히 마주친 저계 목족을 몇 죽이면서 이곳에 이르렀다. 오는 동안 농동과 소홍이 임무의 세세한 정보를 이미 공유했기에 혼자서도 성공할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인.요 양족에서 목족에 파견한 인물들은 오랜 세월이 흘러 이제 꽤 높은 신분이라고 들었다. 이번 임무는 흑엽삼림의 심처에 진입해 목족에 파견된 인물에게서 상세한 정보를 전해 받고 목족을 은밀히 살펴 동태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간단한 임무처럼 보였지만 만황세계를 지나 임무지에 도착하는 것도, 흑엽삼림에서 목족들의 이목을 피해 첩자와 접선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인족과 목족은 교류가 거의 없어 흑엽삼림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가 많지 않았다. 그렇기에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목족의 정보를 취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한립은 이곳에서 보름 넘게 기다렸지만 일행 중 다른 이들은 만날 수 없었고, 임무의 기일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더 이상은 기다리고 있을 수 없었다. 오랜 심사숙고 끝에 그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벌써 세 개의 달과 네 개의 태양이 떠 있었다. 머지않아 밤이 오고 하늘이 검게 물들 것이다.

들은 바에 따르면 목족은 천성적으로 오감이 떨어져 평소 소통을 하거나 적을 상대할 때는 영력에 많이 의존한다고 했다. 그래서 임무를 배당한 고계 수사들은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흑엽삼림에 잠입하기를 권했다.

점점 늘어나는 달과 멀리 보이는 수풀을 보며 한립은 결정을 내렸다. 다른 이들이 제 시간에 오든 오지 못하든 멸진단은 반드시 손에 넣어야 했다. 혼자서라도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마음을 굳힌 한립은 바위 위에서 두 눈을 감았다.

몇 시진 후, 하늘이 완전히 새까맣게 변하고 밤이 드리웠다. 거대한 검은 요수가 엎드리고 있는 것처럼 밤의 흑엽삼림은 고요하기만 했다. 한립이 수결을 맺어 신형을 모호하게 만든 다음 환영처럼 바위 위에서 사라졌다.

은닉술을 사용해 천천히 흑엽삼림 쪽으로 다가간 것이다. 수십 리를 앞두고 한립은 속도를 최대로 늦추었기에 반 시진이 지나서야 수풀의 가장자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끝도 없는 흑엽삼림의 규모를 생각하니 곳곳에 목족 인물들이 지키고 있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아무런 대비도 없이 진입할 생각은 아니었다.

보통 목족들의 세력 범위에는 몽라(夢羅)라는 영목이 심어져 있기 때문이다.

듣기로 몽라는 목족 고유의 수호 영목으로 일정 범위와 일정 수량의 다른 수목들을 통제하고 몇 가지 불가사의한 신통을 펼친다고 했다. 물론 한 그루의 몽라가 얼마나 넓은 범위와 얼마나 많은 수량의 수목들을 통제할 수 있는지는 다 달랐다.

흑엽삼림에 있는 몽라 나무의 경우 천연성에서 이미 감시 범위를 확인했다.

변방에 위치한 흑엽삼림의 경우 규모가 넓다보니 이곳의 몽라도 굉장히 광범위한 범위를 통제했다. 그러나 상반되게 통제 가능한 수목의 수량은 많지 않았고 대략적으로 화신의 경지를 넘어선 이들만 감지해낼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이족이 대놓고 들어와 활동하면 몽라에게 걸리지 않아도 목족 인물들의 눈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한립은 기운을 완전히 갈무리하고 환영처럼 변해 수풀 속을 번뜩이며 이동했다.

강인한 육체를 지녔기에 질풍구변과 라연보를 마음껏 펼쳐 귀신처럼 나무 틈 사이를 지나다녔다. 모호한 푸른빛이 나타났다 사라지고를 반복했고 별안간 백여 리를 이동해 숲 깊숙한 곳에 들어섰다.

한립은 귓가에 들려오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침묵했다.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3일 후 약속한 장소에 도착할 수 있을 테고 정보만 받아와도 임무를 거의 성공한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때 푸른 그림자가 다시 번뜩이며 커다란 나무 뒤로 사라졌다.

쿵! 쿵! 쿵! 쿵!

거의 동시에 앞쪽에서 묵직한 걸음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 거대한 물체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소리 같았다. 거목 위의 무성한 이파리 속에 숨은 한립은 꼼짝도 하지 않고 아래를 주시했다.

잠시 후, 열 장 크기의 거대 원숭이 모양과 녹색 괴수 두 마리가 각각 거대한 구리 작살을 들고 쿵쿵 거리며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괴수들은 언뜻 보면 원숭이처럼 보였지만 눈이 세 개에 긴 초록색 털을 갖고 있었다. 괴수들은 연신 세 개의 눈을 굴리며 주위를 경계했다.

한립은 괴수들이 나무 아래를 지나가길 기다렸다가 조용히 거목에서 내려왔다. 괴수들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 의혹이 어려 있었다.

방금 지나간 괴수들은 흑염삼림을 순찰하는 것 같은데 목족은 아니었다. 행동거지를 보아 지능이 발달한 것 같았다.

‘설마 정체 모를 또 다른 이종족?’

고심하던 그가 고개를 저었다. 그가 알기로 목족은 배타적인 성격이 강해 다른 이종족이 자신들의 구역에서 활개를 치게 놔두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목족이 훈련시킨 전투용 요수란 말인가?’

소위 전수(戰獸)라 불리는 전투용 요수들은 영수와 별 다를 바 없었다. 인족과 요족이 다양한 비술을 이용해 요수를 길들이는 것처럼 다른 이종족들도 약물이나 다른 훈련 방식을 빌려 고대 짐승을 길들였다.

각 종족에 따라 훈련과 통제 방식은 물론 기르는 요수의 종류도 크게 차이가 났다. 그렇다고 모든 종류의 고대 짐승을 전부 길들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일전에 만난 뱀 머리가 둘 달린 괴수도 영족 특유의 전수로 아마 그들만이 길들이는 방법을 알 것이다. 다만 목족은 전수를 보유하고 있다는 얘기를 못 들었으니 최근에 전수를 길들이는데 성공했는지도 모른다.

한립은 고민하다 결국에는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어차피 지척에 있는 그를 발견하지 못할 정도라면 겉보기에만 흉악하지 별로 위협적이지 않을 것이다. 한립은 생각을 정리하고 신형을 번뜩이며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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