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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804화 (561/2,000)

804화. 작은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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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립은 한참동안 나무토막을 만지작거리다 회수하고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이 비행 마차 역시 농동이 내놓은 것이었다. 편안하고 은닉술에 능하기는 영운주에 비해 못했지만 속도는 오히려 빨랐다.

어차피 강력한 상고 짐승들에게 영운주의 은닉술이 통하지 않는다면 아예 이동 속도를 높이는 것이 나을 수 있었다. 그 밖의 사소한 문제는 마차의 빠른 속도로 지나쳐 버리면 그만이었다.

한립이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에도 마차는 허공에서 희미한 푸른 그림자로 변해 빠른 속도로 전진했다. 마차를 조종하는 농동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각자 구석에 자리를 잡고 말없이 앉아 있었다.

한립은 자기도 모르게 근처에 앉아 있는 하얀 장포를 입은 엽영에게 닿아 눈을 가늘게 떴다. 만일 일행 중 가장 꺼려지고 속을 알 수 없는 이를 꼽으라면 바로 엽영일 것이다.

보기에는 어려보이고 솔직 담백한 화법을 사용했지만 대연결을 극성으로 익힌 한립이 엽영에게서 알 수 없는 압박감을 느꼈다. 소위 농 가의 자제라는 농동보다 더욱 신비로운 인물이었다.

한립이 내심 이런 생각을 하는데 눈을 감고 있던 소녀가 갑자기 눈을 떠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가 흠칫 놀라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소녀가 입 꼬리를 올리며 싱긋 미소 지었다.

그 순간 소녀의 눈빛에 흥미로운 기색이 감돈 것은 알지 못한 채 한립은 민망한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돌렸다.

이어진 보름간의 여정은 극히 순조로웠고 뜻밖에도 큰 어려움은 없었다. 이에 농동과 소홍 등은 한시름을 놓았고 앞으로도 이런 순탄한 여정만이 남아있기를 기원했다.

다시 며칠이 지나 주변의 풍광이 달라졌다. 누런 모래가 가득하고 뜨거운 바람이 몰아치는 사막지대에 이른 것이다.

“벌써 남간대사막(南艮大沙漠)에 이른 것입니까?”

“예, 남간대사막입니다. 그리고 목족으로 향하는 가장 쉬운 길이지요.”

이 수사가 놀라 입을 열자 농동이 신중한 목소리로 답했다.

“오래 전부터 이곳에 대해 들어왔습니다. 듣던 대로 이곳을 피해갈 방법은 없는 가요? 목족과 영족이 수시로 출몰해 너무 위험한 곳입니다.”

소홍이 주변을 돌아보며 미간을 좁혔다.

“소 선자, 이곳 환경이 열악해서 그렇지 다른 두 길보다 훨씬 안전합니다. 사막을 빙 돌아가는 것은 더 더욱 불가능한 일이고요. 한쪽에는 유명한 태수산맥(太獸山脈)이 있는 데 그 안에는 고계 고수들이 득실득실 합니다. 연허기 수사라도 들어가면 절반 이상은 살아 돌아오지 못하지요. 다른 쪽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교연대협곡(蛟淵大峽谷)입니다. 연허급 이상의 흉포한 교룡들이 백 마리 이상 살고 있고 합체기의 교왕도 수십 마리는 된다고 하더군요. 그 이하의 교룡들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라 합니다. 우리 양 종족은 물론이고 이족도 쉽게 그것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못하지요. 그러니 화신기 수사 몇 명이 그런 곳에 가봐야 살아오기나 하겠습니까?

게다가 남간대사막과 태수산맥 그리고 교연대협곡의 지대가 굉장히 넓어 그곳을 모두 피해 가려면 장장 1년은 걸릴 것입니다.

대규모 전쟁을 앞둔 마당에 천연성에서 그리 시간을 끌며 임무를 수행하게 둘 것 같습니까.”

농동이 쓴웃음을 지으며 설명했다.

“그렇군요. 그런데 제가 듣기로는 이 사막을 건너는 것이 큰 시련일 거라고 하던데요?”

갑자기 엽영이 끼어들었다.

“저도 출발 전에 족내 장배에게 그런 당부를 들었습니다.”

이 수사도 대사막을 앞두고 조심스러워졌다.

“그럼 이후에는 마차에서 내려 이동해야겠습니다. 너무 눈에 띄니까요. 은닉술을 펼쳐 가다보면 한 달 정도면 사막을 통과할 수 있을 겁니다.”

“수사의 말씀대로 하죠.”

농동의 말에 소홍도 이 수사와 시선을 교환하고는 동의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이곳에서 마차를 타고 가는 것은 너무 눈에 띄니까요.”

한립 역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엽영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얼굴이었다.

모두의 합의하에 다들 마차에서 빠져나왔고 농동은 법기를 거두었다. 그리고 은닉술을 펼쳐 조심스럽게 사막에 진입했다.

사막 깊은 곳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한립은 이상한 것을 느꼈다.

온도가 너무 높아서 그가 이전에 보았던 다른 사막들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저공비행을 하고 있으면 땅에서 뿜어지는 고온에 마치 거대 화산 지대를 건너는 기분이었다.

한립은 고개를 들어 작렬하는 일곱 개의 태양을 보다가 다시 고개를 숙이고 한 손으로 얼음송곳을 날려 보냈다. 그러나 얼음송곳은 땅에 닿기도 전에 하얀 증기로 변해 흩어졌다.

그것을 본 한립이 작게 탄식했다.

“한 수사께서는 모르시나 봐요. 이 곳 남간대사막은 원래 거대한 화산의 분출구였어요!”

옆에서 하얀빛이 번뜩이며 엽영이 나타나 방실거리며 말했다.

“그렇습니까? 저는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오래 전 바람과 흙, 두 개의 속성을 지닌 천봉(天鳳)과 이곳 화산 아래 살고 있던 진령급의 화악(火鰐)이 한 달 여를 싸운 탓에 화산 분출구가 완전히 매몰되고 대사막으로 지형이 바뀌었다고 해요.”

소녀는 이 일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사막이 괴이하다 싶었더니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진령급 존재의 신통은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죠. 우리 인족 수사들은 대승(大乘)의 경지에나 올라야 일반적인 진령급 존재와 싸워볼 만 할 거예요. 천봉처럼 진령급 존재들 중에서도 강자를 만나면 우러러 봐야하는 것은 마찬가지겠지만요. 만일 진령의 실력을 지니게 된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엽영이 작게 웃으며 이렇게 말하고는 앞으로 날아갔다. 한립은 소녀의 뒷모습을 보며 의아한 기색을 보였지만 금방 그런 기색을 지우고 묵묵히 앞으로 나아갔다.

십여 일 후에도 수사들은 여전히 저공비행을 하며 사막을 건너고 있었다. 아무리 화신기 수사라고 해도 이런 고온에서 쉬지 않고 장시간 날아가다 보니 조금 피곤할 수밖에 없었다.

“반나절만 더 가서 적당한 곳을 찾아 쉬도록 하시죠.”

수사들을 지켜보던 농동이 고개를 돌려 일행을 향해 말했다.

“네, 확실히 휴식이 필요한 것 같아요. 법력도 회복해야하고요.”

소홍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약간의 피곤함이 묻어났다.

“허, 저게 무엇입니까?”

그때 갑자기 이 수사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립도 무의식중에 그쪽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육안으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썹을 끌어올린 그가 강대한 의식을 퍼트려 훑다가 표정이 괴이하게 변했다. 의식을 이용해 탐색한 다른 일행들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곳에 작은 성이 있다니, 그 것도 우리 인족의 성입니다. 제가 제대로 본 것이 맞습니까?”

한립의 목소리가 얼떨떨했다.

의식으로 훑자 그들과 수십 리 떨어진 곳에 꽤 넓은 녹지가 펼쳐져 있었고 그 중간에 작은 성이 보였다. 게다가 그 안에 적잖은 인족의 범인들과 수사들이 살고 있는 듯했다.

“이족들이 출몰하는 이렇게 외진 곳에 어찌 인족이 거주하겠습니까? 무언가 이상합니다.”

소홍이 눈살을 찌푸리며 의혹을 드러냈다. 농동이 그 말을 듣고 눈썹을 끌어올렸지만 별 말 없이 그냥 입을 다물었다.

“제 화신(化身)을 이용해 살펴보게 하지요.”

이 수사가 녹지 방향을 보며 제안했다.

이어 이 수사가 자신의 뒤통수를 만지자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그림자는 한 척 크기의 작은 매로 변해 새까만 깃털을 휘날리며 성 쪽으로 날아갔다.

이 수사는 그대로 눈을 감고 의식으로 연계된 작은 매를 주시했다. 만일을 대비하는 듯했다.

소홍과 농동이 시선을 교환했지만 그들도 확인하고 지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는지 이 수사를 말리지 않았다. 고개를 들고 성 방향을 주시하던 한립도 의아해 했고, 엽영도 흥미롭다는 얼굴이었다.

작은 매는 속도가 극히 빨라 성까지 왕복하는데 일다경이 걸리지 않았다. 매가 홀연히 청년의 뒤통수로 사라지자 이 수사가 눈을 떴다.

“성 안에 정말 인족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거기다 적잖은 수의 고계 수사들이 머물러서 화신기 수사들만 해도 예닐곱 명은 되는군요. 연허기 이상은 바깥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만…….”

이 수사가 확신에 차서 말했다. 그 말에 다들 표정이 달라졌다.

“성의 정체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원래 계획대로 움직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괜한 일에 말려들기 십상이니까요.”

한립이 차분히 입을 열었다.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만일 사막에 무언가 큰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아무것도 파악하지 못하고 지나다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합니까? 자세히 정황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농동이 고개를 저었다.

농동의 말에 한립은 눈을 빛냈지만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소홍과 이 수사는 시선을 교환했지만 일리가 있다고 여겼는지 굳이 반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엽영이 예쁘장한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이런 곳에 갑자기 다른 수사들이 모여 있다는 게 이상하지 않나요? 그러지 말고 한 형의 말씀대로 우리는 갈 길을 가는 것이 좋겠어요. 괜히 성가신 일이 생기기 전에요.”

“이상하니까 어찌 된 일인지 파악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성 안에 들어가지 말고 주변만 살펴보도록 하지요. 이 형께서 조금 전 연허기 수사는 보지 못하였다고 했으니 이변이 있더라도 크게 걱정할 까닭이 있습니까?

며칠만 더 가면 일선천(一線天)에 진입합니다. 가뜩이나 극도로 위험한 곳인데 예상치 못 한 변수가 생기면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만사에 주의를 기울여야지요!”

농동이 안색이 달라져 고개를 저었다.

“농 형의 말씀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하지요. 저쪽 수사들을 자극하지 말고 일단 조금 멀리서 관찰하는 것입니다. 문제가 없다면 다시 움직여도 늦지 않을 테니까요.”

소홍이 절충안을 제시했다.

“그게 좋겠습니다.”

농동도 여인의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한립은 턱을 매만졌고 엽영은 그저 빙긋 웃었을 뿐 둘 다 아무 말이 없었다.

이렇게 일행은 방향을 틀어 은신술을 펼치며 소리 없이 작은 성 방향으로 접근했다. 평소보다 느린 속도였지만 전부 화신기 수사였기에 수 십 리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이제 육안으로도 멀리 녹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상당한 면적의 녹지는 사면으로는 작은 관목들이 심어져 있었고 중간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호수 옆으로 하얀 석벽이 둘러싼 작은 성이 세워져 있었는데 일행이 날아드는 방향으로 열댓 장 너비의 거대한 성문이 보였다.

성문 앞에는 축기기 수행을 지닌 수사들이 노란 장포를 입고 서 있었다. 또한 호수 주변에는 법력이 없는 범인들이 돌아다녔고 그들은 허리를 굽혀 무언가를 심거나 했다.

한립 일행은 둔광을 멈추고 의식으로 작은 성을 은밀히 훑었다.

“맞네요! 전부 인족입니다. 범인도 수사도 문제가 없어 보여요. 성 안에는 화신기 수사가 일고여덟 정도 있지만 연허기 수사들은 보이지 않네요. 물론 기운을 숨기고 있을 가능성도 생각해야겠지요.”

소홍이 비술로 자세히 성 안을 살피고 신중하게 결론을 내렸다.

“별다른 점은 없어 보이는군요. 다른 수사 분들은 이상한 점을 찾으셨습니까?”

농동이 한참 작은 성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성 주변에 금제의 파동도 느껴지지 않고 진법을 펼쳐 둔 것 같지도 않습니다. 다들 알아차리셨겠지만 다른 지역과 달리 훨씬 온도가 낮은 편이고요.”

이 수사도 관찰을 마치고 말했다.

“이상한 일입니다. 이런 곳에 녹지가 펼쳐져 있다는 것이…….”

“그리 번잡스럽게 따져 무엇 하겠나! 성에 들어와 잠시 쉬어들 가게.”

소홍이 무어라 말하려는데 갑자기 낯선 목소리가 일행의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놀란 일행들은 곧바로 신형을 번뜩이며 흩어져 수십 장 밖에서 조심스럽게 고공을 올려다보았다.

언제부터인지 하늘에서 보라색 장포를 입은 노년 도사가 자비로운 얼굴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그가 연허 중기라는 것이었다. 상대가 인족 수사만 아니었다면 한립 일행은 벌써 달아났을 것이다.

농동이 놀라 도사를 쳐다보며 희미하게 실망스런 기색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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