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3화. 지룡과를 나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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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한 신통의 거인을 두고 소홍과 이 수사 모두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러나 그들의 공격 목적은 상대를 공격해 시선을 끄는 것이었다.
거인은 눈알들이 검은 화염을 전부 흡수하자 시선을 허공의 두 사람에게 집중했다. 기이한 검은 빛이 반짝이며 검은 빛의 실이 빼곡하게 날아갔다.
소홍과 이 수사는 조금 전 검은 실의 무서운 신통을 보았기에 안색이 달라지며 재빨리 움직였다. 한 명은 무언가를 던져 그것이 푸른 베틀 북으로 변하자 그 안으로 몸을 날려 사라졌고, 다른 한 명은 허공에서 전신이 자흑색인 거대한 매로 변해 사라졌다. 그들은 겨우 순간이동을 해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농동과 소홍 등 네 명이 거대 도마뱀과 거인 위를 맴돌며 그들을 공격하고 피하기를 반복하자 폭음이 연이어 이어졌다. 그러나 거대 도마뱀과 거인은 그들을 성가시게 여기기는 했지만 그 자리를 떠나지는 않았다.
그러지 않았다면 네 사람이 아무리 뛰어난 둔술을 이용해 주위를 맴돌고 있어도 연허급 괴물들의 공격에 오래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네 사람은 공격을 가하다 위급한 순간에는 순간이동을 해 거리를 벌려 자리를 피했다.
네 명의 수사들이 끈덕지게 달라붙자 괴물들도 점점 열을 받았다. 덕분에 거대 도마뱀과 거인의 주의력이 차츰 영과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한립은 조용히 아래쪽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연허급 괴물들에게 들키지 않고 움직이려면 태일화청부를 써야했다.
부적을 사용한 상태로도 한립은 만전을 기하기 위해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지룡과와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가 영과를 채취하는 순간, 아무리 대단한 은닉술을 펼쳐도 거대 도마뱀과 거인이 즉시 그를 발견할 것이다. 그럼 남은 일은 알아서 목숨을 부지하는 것 뿐이다.
그가 영과의 지척에서 움직임을 멈추자 은은하고 맑은 향기가 풍겼고 껍질 아래 아주 작은 용 모양의 씨앗이 들어있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한립은 급히 과실을 따지 않고 저물탁을 건드려 몇 가지 물건을 꺼냈다. 양손을 뻗어 은빛 찬란한 구슬들을 동시에 양쪽의 거대한 생물들에게 날려 보낸 것이다.
이어 전광석화처럼 한 손으로 허공을 쥐자 탐스럽게 열려있던 지룡과 송이가 사라졌다.
크와아아앙!
흐아악!
경천동지할 괴성이 울리고 붉은 그림자와 검은 실들이 거의 동시에 믿기지 않는 속도로 날아들어 한립의 몸을 꿰뚫었다.
하지만 그것은 한립의 잔영일 뿐, 그의 본체는 이미 순간이동을 한 뒤였다.
콰콰쾅! 쿠르릉 꽈광!
연달아 굉음이 들려왔다. 은색 뇌전 덩이들이 양측에서 나타나 사발 굵기의 뇌전들을 뿜어댔고 주변에 돌풍이 일고 천둥소리가 이어졌다.
마치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 같았다.
은색 구슬들은 한립이 직접 제련한 뇌문 구슬이었다.
그가 한 번에 네 개나 던진 뇌문 구슬은 각각이 연허기 수사의 전력이 담긴 한 방과 맞먹는 힘을 지녔으니 일대가 뇌전으로 뒤덮여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아주 현명한 결정이었다.
뇌문 구슬로 잠시 거대 도마뱀과 거인을 정신 못 차리게 하지 않았으면 순간이동 해 달아나더라도 그들의 추격을 쉽게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영과를 도둑맞은 거인과 거대 도마뱀은 화를 참지 못하고 날뛰었지만 여전히 뇌문 구슬의 위력에 붙들려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뇌문 구슬의 위력을 본 농동과 소홍 등도 깜짝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들은 곧 희색을 표하며 둔술을 펼쳐 그곳을 벗어났다.
이제 거대한 풀 주변에는 뇌전과 거대한 짐승의 울부짖음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한립은 풍뢰시를 극성으로 펼쳐 미친 듯이 깜빡이며 하늘 저편으로 사라졌다.
확실하게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혈도 한 움큼 토해내 혈영둔 비술을 펼치기까지 했다. 그러자 뇌전을 벗어난 거대 도마뱀과 거인은 공격하던 수사들이 모두 사라진 것을 보고 분노에 찬 괴성을 터트렸다.
* * *
몇 시진 후, 수만 리 밖 석산의 꼭대기.
나지막한 천둥소리가 울리고 한립이 청백색 뇌전에 휩싸여 허공에서 나타났다. 한립은 뒤쪽을 슬쩍 돌아보고는 미소 지었다. 위험하기는 했지만 결국 영과를 손에 넣은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의식을 퍼트려 석산 주변을 살살이 수색한 후에야 정상에 내려섰다. 그는 일단 옥병을 꺼낸 다음 그 안에서 새빨간 단약 두 개를 꺼내 삼켰다. 급한 마음에 혈영둔을 쓰기는 했지만 위험 지대를 벗어났으니 일단 단약으로 원기를 보충하기 위해서였다.
단약이 목을 타고 넘어가자 맑은 기운이 그의 경맥을 타고 돌았다.
한립은 조금 편안해진 얼굴로 다시 한 손을 움직여 얼음처럼 투명한 옥갑을 꺼냈다. 천천히 옥갑을 여니 그 안에 보라색 과실들이 보였는데 하나하나가 주먹만큼 커다랗고 아주 신선해 보였다.
눈앞까지 옥함을 들어 올려 영과를 살피던 그가 돌연 두 손가락으로 그 중 하나를 집어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한참 후 한립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해, 이건 지룡과야!’
연허급 영약이면서 씨를 남겨 여러 번 반복해서 재배할 수 있는 지룡과는 한립에게 더없이 유용한 보물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굳이 가장 위험한 역을 자처하며 이 일에 나섰겠는가!
지룡과를 손에 넣자 그의 입 꼬리는 내려올 줄 몰랐다.
이제 등운교(騰雲膠)라는 기물만 구하면 다른 보조 영약과 함께 연허기 수사들도 탐을 내는 등용단을 제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자 한립은 기분이 더욱 좋아졌다.
그때 그가 고개를 들어 하늘 어딘가를 보고는 평정을 되찾았다.
잠시 후 파공음이 들리며 하얀 빛 줄기가 날아들었다. 한립의 머리 위에서 멈춘 빛줄기는 바로 농동이었다. 그의 시선은 한립이 들고 있는 영과에 고정되어 떠날 줄을 몰랐다.
“허허, 과연 한 수사의 둔술이 대단합니다. 영과를 무사히 들고 이곳까지 빠져나오다니요. 지룡과가 맞는지 제가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농동이 말을 할 때마다 입가의 핏빛 반점이 같이 움직였다. 그는 신형을 번뜩이며 정상에 내려서 한립에게 다가섰다.
“급할 것 있습니까? 다른 수사들이 도착하면 찬찬히 살피시지요.”
한립이 담담히 웃으며 말하자 손에 들고 있던 옥갑이 영기의 빛을 번뜩이며 사라졌다.
“아…… 맞는 말씀입니다. 제가 너무 마음이 앞섰군요.”
농동은 일순 눈빛이 달라졌지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순식간에 원래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미소를 머금고 물러나 한립과 열댓 장 떨어진 바위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한립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뒷짐을 진 채 다른 이들이 돌아오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일다경이 지날 무렵, 이 수사와 소홍이 함께 도착했고 한립이 영과를 취하는데 성공했다는 소식에 크게 기뻐했다. 그러나 모두 모이기 전에는 역시 흥분을 억누르며 조용히 기다려야했다.
다시 일각이 지났지만 마지막 한 명이 보이지 않았다. 수사들은 불길한 생각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런데 그때 하늘 저편에서 금색 빛줄기가 날아와 모두가 모인 석산 위에서 멈추었다.
“죄송해요, 오래 기다리셨죠? 오는 길에 우연히 만년된 벽령목(碧靈木)을 발견했지 뭐예요. 겨우 뿌리까지 뽑아 왔어요.”
하얀 장포를 입은 소녀가 싱긋 웃으며 내려왔다.
“만년 벽령목이요? 나무 속성 보물을 제련하기에는 최상의 재료 아닙니까. 수사께서 이번 여정에 행운이 따르나 봅니다.”
소홍이 조금 뜻밖이라는 듯 말했다.
“헤헤, 행운은요. 지룡과에 비하면 벽령목이야 별 것 아니지요. 한 형, 영과는 손에 넣으셨나요?”
엽영이 가볍게 웃어넘기며 시선을 한립에게 돌렸다.
“손에 넣었습니다. 모두 모여 일단 확인하시지요.”
한립은 고개를 끄덕이고 한 손으로 저물탁을 스쳐 옥갑을 꺼내 열어보였다. 그러자 은은한 향기가 퍼졌고 다들 옥갑 안에 탐스럽게 담긴 과실을 보며 진위를 판단하기 시작했다.
“맞을 겁니다. 지룡과예요.”
소홍이 희색이 만연한 얼굴로 가장 먼저 판단을 내렸다. 잠시 후 다른 이들도 의식을 회수하고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건을 확인했으니 이제 나눌 차례겠지요. 그러나 지룡과가 여섯 개이니 한 사람당 하나씩 나누어 가져도 한 알이 남습니다.”
한립은 옥갑을 훑으며 차분히 입을 열었다. 그 말에 다른 이들이 내심 미간을 좁혔다.
“여섯 번째 영과는 확실히 어떻게 나눠가져야 할지 모르겠군요. 일단 그것은 놔두고 나머지라도 한 알씩 나눠가지시지요.”
이 수사가 마음이 급한지 이렇게 말했다.
“이 형의 말씀이 제 뜻과 같네요! 한 수사, 일단 각자의 몫을 나눈 다음에 천천히 이야기 하는 게 어떨까요.”
소홍도 낮게 웃으며 동의했고, 농동과 엽영도 이의가 없었다. 그 모습에 한립이 담담히 미소 지었다. 그는 먼저 소홍 앞으로 가 두 손가락으로 살짝 지룡과를 집어 여인에게 내밀었다.
소홍은 크게 기뻐하며 목함을 꺼내 받으려 했지만 어쩐 일인지 한립이 영과를 내주지 않았고 미소만 지었다.
‘아!’
잠시 멈칫하던 여인이 그제야 무언가를 떠올렸다. 그녀는 바로 소매를 펄럭여 금색 검을 꺼내 부적을 뜯어 한립에게 던져주었다.
바로 그의 본명 법보인 청죽봉운검이었다. 한립은 검을 회수하고 영과를 여인의 목함 안에 떨구었다. 소홍이 기분 좋게 수중의 영과를 확인 하는 동안 한립은 이 수사 앞으로 이동했다.
이 수사 역시 조금 전 상황을 보았기에 한립이 눈치를 주기 전에 미리 검의 금제를 풀고 넘겨주었다. 이렇게 하나씩 나눠주다 보니 금방 한립의 수중에도 지룡과가 두 알밖에 남지 않았다.
그는 하나를 잘 챙겨 넣은 다음, 옥함을 모두가 서 있는 중간에 던져두고 물러났다. 솔직히 그는 종자로 쓸 것 하나면 충분했다. 그리고 더 가져봐야 크게 좋을 것도 없었다.
지룡과를 지니고 있던 한립이 욕심 내지 않고 분별 있게 나오자 나머지 수사들의 눈빛이 한결 온화해졌다.
“흠, 남은 하나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괜찮으시다면 경매는 어떻습니까? 영석을 가장 많이 제시하는 사람이 지룡과를 가져가고 영석은 나머지 사람들이 똑같이 나누어 갖는 것입니다.”
농동이 헛기침을 하며 건의했다.
“흥, 너무 머리를 굴리시는 것 아닙니까? 농 가의 막대한 재산을 누가 모른답니까. 우리가 지닌 것을 전부 털어도 영석으로는 수사를 이길 수 없을 텐데요.”
이 수사가 특유의 코웃음을 치며 새하얀 눈썹을 좁혔다.
“그럼 다른 방안이 있으십니까?”
“영석이 안 된다면 물물 교환밖에 없지요. 단약이든 재료든 모두가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충분한 수량의 것을 지룡과의 가치만큼 내놓는 사람이 가져가는 것입니다. 제 방안은 어떠십니까?”
소홍이 흘러내린 머리를 뒤로 넘기며 미소 지었다. 이 수사도 그 말에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고 엽영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하다 동의의 눈빛을 보냈다.
“소 선자의 의견이 일리가 있으니 그렇게 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농동은 비록 크게 내키지는 않았지만 다들 그렇게 하자고 하니 예의상 미소를 지의며 동의했다.
마지막 영과는 뜻밖에도 엽영의 손에 떨어졌다. 그녀는 지니고 있던 진귀한 재료들을 수북하게 꺼내 비슷비슷한 네 개의 묶음으로 나누어 일행들에게 원하는 것을 가져가게 했다.
그녀가 이렇게 대범하게 나오자 농동과 소홍도 어쩔 수 없이 마지막 지룡과를 내주고 말았다. 그 중 한립은 만년 벽령목이 든 묶음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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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진 후, 열댓 장 크기의 푸른 마차가 석산 고공에 나타나 푸른 빛 줄기로 변해 날아갔다.
몇 호흡 만에 마차는 수백 장 밖에서 나타났고 그 뒤로 몇 번인가 더 번뜩이더니 아예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한립은 마차의 가장 뒤쪽에 앉아 한 손에 녹색 원목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한 척 길이의 나무토막은 표면이 수정처럼 반짝였고 잘린 단면에 은색 영기의 실이 살랑거렸다.
‘벽령목을 키우려면 꽤 걸리겠지만 앞으로 쓸모가 있을지 모르니까.’
이 목재는 투명해서 없는 것처럼 보이고 물과 불로도 처리하기 어려워 진법을 각인하기에는 최상의 재료 중 하나였다.
게다가 만 년이나 되다 보니 오행의 힘에 약간이나마 저항하는 신통까지 지니고 있었다.
보통 이런 목재는 대형 법기를 만들 때 사용했는데 선박이나 베틀 북, 마차 같은 사람을 태울 수 있는 법기를 만들기에 아주 적합하다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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