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802화 (559/2,000)

802화. 도발

*

일이 틀어지면 지룡과를 취하려고 남은 마지막 사람이 연허기 괴물의 협공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극히 위험하지만 또 순조롭게 일이 풀려 성공하면 그대로 달아나 버릴 가능성도 있었다.

“다른 분들이 괜찮으시다면, 제가 마지막에 남도록 하겠습니다.”

돌연 한립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한 수사께서요? 아직 화신 중기의 수행으로 너무 위험한 일이 아닐지요.”

“맞습니다. 한 형의 수행으로는 무리입니다.”

농동이 눈꼬리를 끌어올리며 반대 의견을 내자 이 수사도 한립을 훑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가 수행이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허나 영보급의 최상급 순간이동 보물을 지니고 있고 특수한 공법을 익혀 목숨을 보전할 자신이 있습니다.”

한립은 그들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고 빙긋 웃어 보였다.

“오, 그리 자신 있다면 수사께 맡겨도 상관은 없습니다. 그럼 한 형께서는 어찌 저희들에게 영과를 들고 달아나지 않을 거란 확신을 주시겠습니까?”

농동이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건 모르겠군요. 제가 남는 것이 염려되신다면 다른 분이 남으셔도 됩니다. 저는 상관없으니까요.”

한립은 미소 지으며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태도를 취했다. 그 말에 다들 멍해졌다. 솔직히 영과는 얻고 싶지만 연허급 괴물 두 마리 사이에서 지룡과를 훔쳐내는 일은 호랑이 아가리에서 살코기를 빼앗아 오는 짓과 다름없었다.

“제가 한 형께 금제를 걸어도 될까요?”

엽영이 먼저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그럼 저도 이의 없을 것 같네요.”

엽영이 먼저 자신의 의견을 밝히자 한립을 살피던 소홍도 찬성의 뜻을 내비쳤다. 그리고 곧 농동과 이 수사가 시선을 마주치며 한립을 쳐다보았다.

“제 몸에 금제라? 가능합니다. 다만 그렇게 하시겠다면 저도 나머지 수사들에게 금제를 걸어 둬야겠습니다.”

금제란 말에 한립의 표정이 미묘하게 달라져 냉소했다.

“그랬다가 만일 수사께서 보물도 얻지 못하고 무슨 일을 당하면 우리 모두 낭패 아닙니까?”

이 수사가 미간을 좁히며 불쾌한 티를 냈다.

“그게 바로 제가 원하는 것입니다만?”

한립도 봐주지 않고 냉담히 응수했다. 이전에 빙봉과 상호 금제를 걸었다가 스스로 원영을 폐하는 지경에 이르렀던 기억이 아직까지 생생한데 다시 그런 우를 범할 리 없었다.

그의 말에 일행 전부가 쓴웃음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요? 차라리 수사께서 담보가 될 만한 물건에 표식을 심어 행적을 추적할 수 있게 해주시면 저희도 걱정을 덜 수 있지 않을까요?”

엽영이 새까만 눈을 깜빡이다 또 다른 대안을 제시했다.

“본명 법보를 맡기고 행적을 추적할 수 있는 표식을 심는 것. 그건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건 저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심는 것이 좋겠군요. 은신술을 펼친 후에도 서로 위치를 파악할 수 있을 테니까요. 게다가 만일 농 형의 은교괴뢰들이 차질 없이 일을 해낸다면 어차피 제가 나설 필요도 없는 일 아닙니까.”

한립이 침음하다 한결 풀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상호간에 표식을 심자고? 농동과 소홍은 마음이 동하는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지만 한립은 화신 중기로 일행 중 가장 수행이 낮으니 정말 달아날 수 있을 거라 여기지는 않았다.

상의를 마친 수사들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일단 한립은 입을 벌려 수 촌 길이의 금빛 네 개를 방출했다. 금빛 찬란한 작은 검으로 변한 금빛들이 일행들에게 날아갔다.

다른 이들이 주저 없이 비술을 걸거나 부적을 붙여 그의 본명 법보를 구속한 다음 각자의 저물탁에 넣어 두었다.

이후 네 명은 다양한 색깔의 빛을 번뜩이며 한립의 몸을 가리켰다.

파앗.

한립은 빛의 점들이 정순한 영력이라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그것들을 몸에 받아들였다. 이후 그도 다른 이들에게 술법을 펼쳐 네 개의 푸른 점들을 주입해 놓았다.

이렇게 서로 약간은 안심할 수 있게 되었다. 상의를 마친 그들은 흩어져 날아갔다. 한립 역시 푸른 빛 줄기로 수천 리를 날아간 후에야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허공에 뜬 그는 도처를 주시하며 가볍게 눈을 감고 의식을 퍼트렸다. 아무도 자신을 감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눈을 뜨고는 수결을 맺었다.

꽈광!

등 뒤로 작게 천둥소리가 울리고 청백색의 날개가 나타났다. 이어 손바닥을 뒤집자 보라색 부적 ‘태일화청부’가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연허급 괴물의 코앞에서 보물을 훔쳐 내려면 조금이라도 방심해선 안 되었다.

부적을 몸에 붙이자 보랏빛과 은색 주술 문자가 반짝였고 한립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허공에서 사라진 그는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올 때처럼 빠른 속도는 아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 자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전히 거대한 도마뱀과 천목 거인은 제자리에서 대치중이었다.

다른 수사들 역시 이미 육안으로 보이지 않았고 의식으로 법결을 일으켜 표식을 탐지하니 주변에 퍼져 있었다. 두 명은 거대 도마뱀 위에, 나머지 둘은 천목 거인 뒤편에 위치했다.

모두 심상치 않은 은신술을 사용하는지 표식을 남겨 놓지 않았다면 한립도 의식으로는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게다가 농동이 말하던 은교괴뢰들은 아예 종적을 알 수 없었다.

공명부라는 부적이 정말 신묘한 능력을 지니고 있거나 아니면 아직 방출하지 않은 것이 틀림없었다. 한립은 재빨리 주변 인물들의 동태를 파악한 후 눈도 깜빡이지 않고 아래쪽을 주시했다.

모든 것이 평화롭게 보였지만 폭풍 전의 고요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장장 한 식경이 지났지만 아직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립은 겉으로는 무표정했지만 점점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자 긴장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거대 도마뱀이 거대한 앞발 하나를 잠시 들어 올렸다가 바로 내려놓았다.

그 순간, 거대한 앞발 아래 흙속에서 은빛이 번뜩였고 예리한 은색 실 뭉치가 분출되어 천목 거인 쪽으로 쇄도했다. 마치 거대 도마뱀이 공격한 것 같은 모양새였다.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있던 거인은 흠칫 놀라더니 분노에 찬 괴성을 질렀다. 거인의 몸 앞에 검은빛이 번뜩이는가 싶더니 한 손으로 은색 실 뭉치들을 내리쳐 없애버렸다.

그와 동시에 천목 거인 아래쪽에서 무언가가 튀어나갔다. 사발 굵기의 은색 빛기둥이 허공에서 분출되어 극히 빠른 속도로 도마뱀의 머리를 노린 것이다.

그러자 도마뱀이 짙은 눈을 뒤집어 머리의 붉은 뿔에서 빛을 번뜩이며 새빨간 불기둥을 분출했다.

굉음이 울리고 빛기둥들이 부딪쳐 사라졌다.

크와악!

드디어 거대 도마뱀은 머리를 쳐들고 경천동지할 괴성을 지르며 일어났다. 그리고 입 안 가득 날카로운 이빨을 번뜩이며 천목 거인을 노려보았다.

그 모습에 거인이 흉악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어깨에 걸쳐둔 검은 방망이를 손에 쥐었다. 눈들이 깜빡이자 온 몸이 안광으로 번뜩였다.

이렇게 많은 눈이 동시에 활기를 찾아 움직이니 모골이 송연해지는 섬뜩한 광경이었다. 한립은 허공에 떠서 그것을 보고 희색을 표했다.

‘두 괴물이 싸우기 시작하면 그 다음은 쉬워진다.’

펑!

도마뱀이 입을 벌려 붉은 그림자를 분출했고 다음 순간 거대한 발아래 땅에서 은색빛이 폭발했다. 붉은 그림자가 되돌아간 다음 구멍이 뚫린 땅에는 이상한 생김새의 무언가가 엎어져 있었다.

한립이 흠칫 놀라 살피니 교룡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한 은색 꼭두각시였다. 꼭두각시는 도마뱀의 혀에 단 번에 치명상을 입고 몸의 절반이 폭발해 나뒹굴고 있었다.

보아하니 꼭두각시가 움직인 순간 도마뱀이 그 행적을 눈치 채고 있었던 것이다.

천목 거인 역시 비록 지능은 높지 않았지만 그것을 보고 우뚝 멈춰 섰다. 그러나 반대로 전신의 눈알들은 정신없이 움직였고 무수히 많은 검은 실들을 눈에서 분출했다.

다시 한 번 폭음이 들리자 이번에는 거인 아래에 숨어 있던 꼭두각시가 검은 실에 꿰여 끌려 나왔다. 검은 실의 정체는 알 수 없었지만 거대한 꼭두각시가 순식간에 조각조각 떨어졌다.

이 광경에 한립은 헛바람을 들이키며 눈을 굴렸다. 이번 일의 위험성이 그의 예상을 넘어서고 있었다. 하지만 지룡과는 연허급 영약의 원천이었으니 아무리 위험해도 한 번은 도전해 볼만했다.

그는 영약의 종자만 손에 넣으면 무한정 재배할 수 있었으니 더욱 좋은 기회였다. 결론을 내린 한립이 마음을 가라앉혔다.

거인은 경고하듯 콧김을 뿜으며 주먹으로 자신의 어깨를 두들겼고, 거대 도마뱀은 무표정하게 흥분한 거인을 힐끗 보더니 천천히 다시 엎드리고 있었다.

거대한 두 생물들이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간 것이다. 하지만 한립은 여전히 아래쪽을 쳐다보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꼭두각시로 서로를 도발하는 방법이 통하지 않았으니 미리 약속한 대로 이제 나머지 사람들이 거인과 거대 도마뱀의 주의를 끌어 그에게 시간을 벌어줄 차례였다.

잠시 후 거대 도마뱀 머리 위에서 듣기 좋은 비파 소리가 울리며 노란 음파 고리가 연달아 나타났고, 동시에 하얀 빛이 번뜩이며 두 개의 백금색 손도끼가 나타나 거대한 교룡처럼 쇄도했다.

도마뱀 위의 고공에서 엽영과 농동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엽영은 한 손으로 영보의 모조품인 비파를 탔고, 농동은 의식을 집중해 두 개의 보물을 조종했다.

크왁!

거대 도마뱀은 방대한 육체와 달리 움직임이 기민해 공격을 당한 순간 소리치며 일어나 붉은 뿔에서 빛을 번뜩였다. 새빨간 기운이 좌르륵 흘러나와 노란 음파 고리와 두 줄기 하얀빛을 막아섰다.

이어 도마뱀의 등에서 녹색 빛이 반짝이자 뿌드득 하며 한 척 길이의 단단한 털들이 자라나 날아갔다. 그리고 거대한 꼬리로 땅을 후려치자 꼬리가 그대로 잔영을 남기며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다음 순간 스무 장 길이의 거대한 꼬리는 부지불식간에 엽영과 농동의 옆에서 나타나 그들을 후려치려 했다.

변이 고수답게 공격을 받자 폭풍우처럼 반격을 해댄 것이다. 상대하기 쉽지 않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엽영이나 농동이 화들짝 놀랄만한 상황이었다.

다행인 것은 그들도 억지로 버틸 생각이 없다는 점이었다. 소녀는 금색 부적을 꺼냈고 즉시 금빛에 휩싸여 귀신처럼 사라졌다가 서른 장 밖에서 괴이하게 나타났다.

농동도 입에서 괴성을 지르자 전신에 노란 전갑이 나타났다. 금속성의 비늘로 만들어진 갑옷은 그의 머리 까지 전신을 물샐틈없이 보호했고 등 뒤로는 거대한 황동 날개까지 달려 있었다.

날개를 펄럭이자 그는 연달아 잔영을 남기며 물러났고 멀리서 보니 무수히 많은 인영이 빽빽하게 하늘을 메운 것처럼 보였다.

빼곡하게 날아들던 녹색 털이나 거대한 꼬리도 그들의 괴이한 둔술에 허공만을 갈랐다. 그러나 도마뱀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았다. 녹색 털들이 지능이 있는 것처럼 그들을 쫓았을 뿐 아니라 거대한 꼬리도 반투명하게 변해 바람처럼 그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거대한 도마뱀은 두 사람을 상대하면서도 여전히 천목 거인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상대가 그 틈에 영과를 들고 달아날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힐끗 상대편을 본 거대 도마뱀은 안심했다.

알고 보니 거인에게도 두 명의 인영이 나타나 그의 시선을 끌고 있었던 것이다. 한 인영이 양손을 부딪쳤다 펴니 검은 불구슬들이 벌떼처럼 날아갔다. 또 다른 인영이 허공을 쥐자 검고 윤기가 나는 거대 손톱이 나타나 거인의 머리를 노렸다.

콰콰쾅!

거인은 반응 속도가 느린지 불구슬들은 몸으로, 거대 손톱은 머리로 그대로 떨어져 내렸다. 소홍과 이 수사는 크게 기뻐했지만 그 다음 벌어진 일에 둘 다 웃음이 싹 가셨다.

흐아아악!

검은 화염 속에서 거인이 분노에 찬 고함을 질렀고 전신의 은백색 눈알들이 움직이며 무형의 힘을 일으킨 것이다. 주변의 검은 화염은 눈알들에 전부 흡수되었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 수사가 만들어낸 거대 손톱은 거인에게 조금도 상처를 입히지 못 했고 거인 역시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 한 손으로 대충 얼굴을 쓸어 없애버렸다.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