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801화 (558/2,000)
  • 801화. 지룡과(芝龍果)

    *

    화신기 수사인 그들이 겨우 폭발로 인한 광풍을 두려워할 리 없었기에 허공에 떠서 터져나가는 선박을 주시했다. 결국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영운주는 끝장나고 말았다.

    그럼에도 주위에서 아무 것도 발견할 수 없자 다들 의아한 얼굴이었다.

    “이 형, 누가 우리를 공격한 것입니까?”

    “모두 아래쪽을 보시지요!”

    소홍의 물음에 이 수사가 어두운 얼굴로 냉랭히 답했다. 그 말에 다른 이들이 서둘러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드디어 상황을 파악한 소홍 등이 낮게 탄식했고 한립은 미간을 좁혔다. 다양한 색깔의 거목들 사이에 은밀하게 숨겨진 공터가 있었는데 그 중심에 높이가 3, 40장에 이르는 거대한 풀이 자라나 있었다.

    그리고 거대한 풀 양쪽에 방대한 몸집을 지닌 물체들이 대치하고 있었다.

    하나는 5, 60장 크기의 거대한 도마뱀이었는데 머리 위에 산호처럼 생긴 새빨간 뿔이 자라나 있었다.

    그리고 마주 선 만황 거인은 흉악한 생김새에 노란 머리를 휘날리며 새까만 나무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또 거인의 몸과 사지에 크기가 제각각인 무수히 많은 은백색의 눈알이 달려 있어 음산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한립은 놀라 의식으로 그들 사이에 있는 거대한 풀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저건!’

    날카로운 이파리들이 보랏빛의 포도알처럼 생긴 과실을 보호하고 있었다.

    과실은 주먹만 했고 둥근 껍질 안에 투명한 과즙이 가득 들어 있었다. 의식으로 과실 내부를 훑으니 작은 용 모양의 씨앗이 들어 있었다.

    초소형 용들은 생명이 있는 것처럼 정순한 영기를 발산해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지룡과(芝龍果)!”

    한립이 과실의 정체를 떠올림과 동시에 엽영이 먼저 외쳤다. 농동과 소홍 그리고 이 수사 역시 과실을 알아보고 희색이 돌았다.

    “연허급 수사나 쓸 수 있다는 영약 등룡단(騰龍丹)의 주재료 아닙니까! 3만 년에 한 번 열매를 맺는데 생으로 복용해도 60년 정도의 수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지룡과를 보게 되다니! 게다가 이제 막 익은 모습을 보니 저것들을 수확할 수 있다면 엄청난 행운일 것입니다.”

    소홍이 눈을 반짝이며 중얼거렸다. 엽영과 농동도 마음이 동하는 눈치였다.

    연허급 단약을 만드는 주재료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연허기 수사들도 얻고 싶어 사족을 못 쓰는 물건이라는 뜻이었다.

    일반적인 경매에서는 구할 수도 없고 오직 연허기 수사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거래되고 있었다. 화신 후기에 쓰이는 단약 재료인 진섬의 피도 경매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낙찰되지 않았던가.

    화신기에 쓰이는 단약과 연허기에 쓰이는 단약은 겨우 한 경지 차이였지만 그 효과는 천지차이였다.

    만일 지룡과를 들고 연허기 수사를 찾는다면 그들은 반드시 기뻐하며 화신기에 쓰일 대량의 영단과 바꿔 줄 것이다.

    한립 일행이 만황세계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뇌구와 지룡과를 발견했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었다. 보통은 만황세계에 수십 년을 머물러도 한 번 만나기 힘든 기연이었다.

    “일단 아래쪽 상황을 자세히 보시지요!”

    이 수사가 차갑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거인은 만황거인 중 천목족 거인입니다. 눈알의 색깔이 은백색인 것으로 보아 아직 미성년이겠군요. 그리고 도마뱀의 경우 별 볼일 없어 보이지만 천목족 거인이 경계하는 존재이니 만만치 않겠지요. 아마 두 존재 모두 연허 초기의 실력을 지녔을 것입니다.”

    한립이 두 괴물을 살피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는 천연성에 머무는 동안 만황세계에 관련된 경전을 구입해 부지런히 익혔기에 아래쪽에서 대치중인 거인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가 말하지 않아도 소홍이나 농동 등이 모를 리 없었지만 천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한 기회를 놓치기는 아쉬웠다.

    윙〜!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와 모두의 시선을 끌었다.

    하늘 끝에서 거대한 곤충 일고여덟 마리가 다양한 광채를 내뿜으며 그들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한립은 미간을 좁혔지만 의식으로 그것들을 훑고 바로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곤충은 몸집이 두 장이나 되었지만 기운이 세지 않아 큰 위협이 되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곁의 농동도 두려워하지 않고 다가오면 죽일 생각으로 대기했다.

    그런데 기함할 일이 벌어졌다.

    거대한 누에 벌레들이 그들과 백여 장을 앞두고 거대한 도마뱀 위를 지나려는데 돌연 도마뱀의 입이 벌어지더니 무언가가 휘릭 하고 분출되었다.

    그러자 흉흉한 기세로 날아들던 거대 누에 한 마리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윙!

    누에 무리는 깜짝 놀라 그 자리를 맴돌며 분노에 차 윙윙 거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고 연달아 다음 누에가 사라졌다.

    그것을 지켜보던 농동과 소홍 등도 안색이 달라졌다. 한립은 눈을 가늘게 뜨고 눈동자 깊은 곳에서 남색 빛이 일렁였다.

    다음 누에가 사라지는 순간, 명청령안의 신통으로 드디어 진상을 파악할 수 있었다. 놀랍게도 도마뱀 입 안에서 투명한 혀가 뻗어 나와 불가사의한 속도로 거대 누에의 복부를 뚫고 입 안으로 끌어당긴 것이다.

    기다란 혀의 움직임이 얼마나 빠른 지 누에가 허공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 것이다. 순식간에 거대 누에를 전부 잡아먹은 도마뱀이 바닥에 엎드려 꼼짝도 하지 않았다.

    “변이고수(變異古獸)인가 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공격을 할 수는 없지요. 영운주도 저 짐승의 혓바닥에 훼손된 것이겠군요.”

    농동은 어떤 비술을 펼칠지 고민하다 도마뱀의 짓이란 것을 깨닫고는 한숨을 쉬었다.

    “우리도 여기 있는데 어째서 우리는 놔두고 누에들만 잡아먹은 걸까요?”

    엽영이 고개를 갸웃하며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누가 알겠습니까. 우리가 너무 작아 잡아먹기 귀찮은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거대 누에들이 원래 주식일 수도 있고요.”

    소홍이 담담히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다고 다들 지룡과를 두고 그냥 갈 생각은 아니겠지요? 저 혼자 지룡과를 보았더라도 이대로 포기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이 수사는 여전히 거대한 풀 이파리 사이의 과실들을 보며 탐욕을 감추지 않았다.

    “아래쪽의 도마뱀과 거인은 모두 연허급 실력을 지녔어요. 이 형의 담이 꽤 크시네요?”

    엽영이 실실 웃으며 이 수사를 보았다.

    “오히려 한 마리였다면 건들지 않았을 겁니다. 허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요.”

    “아, 이 형의 말씀은…….”

    엽영도 바로 그의 뜻을 알아들었다.

    “그렇습니다. 변이고수도 강하지만 성년이 되지 못한 천목거인도 만만치 않습니다. 저 둘이 싸운다면 양패구상하거나 둘 중 하나가 죽을 수도 있겠지요. 그때 우리가 나선다면 기회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언제 움직일지 알고 하는 말입니까? 대치 상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릅니다. 열흘이 될 수도 있고 보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농동이 박수치며 찬성했지만 소홍은 걱정스레 고개를 저었다.

    “하아, 그건 그렇군요. 아무래도 중대한 임무를 맡고 있는 상황에 이곳에 오래 머물 수가 없으니…….”

    농동은 가볍게 엽영을 훑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임무도 수행해야겠지만 이 정도 시간은 낼 수 있습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지룡과 아닙니까! 시간을 지체하는 것 정도는 감수해야지요.”

    이 수사는 이대로 가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듯 강경하게 말했다.

    “그렇게 고집하실 일이 아닙니다. 그들이 서로 싸우다 중상을 입는다 하더라도 목숨을 걸고 반격하면 우리 쪽도 사상자가 나올 수 있어요. 그럼 임무에 차질이 생길 것 아닙니까? 그러지 말고 괜한 일에 휘말리기 전에 이곳을 떠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농동도 지룡과가 탐이 났지만 중대한 임무가 있었기에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소홍의 말을 듣고 생각을 바꿨다.

    “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여기서 보물을 탐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 같아요! 천목족 거인이 도마뱀과 대치만 하는 것으로 보아 다른 거인의 지원을 기다리고 있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도마뱀이 먼저 공격하지 않는 것도 다른 꿍꿍이가 있을 수 있고요. 이렇게 기다리고 있다가 포위라도 당하면 큰일 아닙니까?”

    소홍은 눈썹을 좁히며 반대 의견에 힘을 실었다.

    “그런 건 모르겠고 저는 반드시 저 지룡과를 갖고 가야겠어요.”

    갑자기 엽영이 끼어들어 이 수사 편에 섰다. 그 말에 소홍과 농동은 물론 이 수사도 당황한 얼굴이었다.

    이렇게 되자 지룡과를 차지하기 위해 이곳에 남을 것인지 말 것인지 찬반이 2 대 2로 갈리고 말았다. 동시에 네 사람의 시선이 한립에게로 모여들었다.

    ‘이런.’

    한립은 내심 탄식하며 턱을 쓰다듬었다.

    “이 정도 등급의 영과를 위해 약간의 위험은 감수할 수 있다는 데는 다들 동의하실 겁니다. 그렇지만 소 선자 말씀대로 시간을 오래 끌 수는 없지요. 지원군이 오지 않아도 영과가 숙성된 상태이니 다른 강력한 존재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시간문제니까요. 반드시 3일 내로는 일을 마무리 지어야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한립이 담담하게 한 마디 했다.

    “3일이라. 가능할까요?”

    소홍이 의미심장하게 한립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엽영과 이 수사도 무어라 한 마디씩 하고 싶었지만 그들이 보기에도 3일은 무리였다.

    “저들끼리 싸우기를 기다리면 무리겠지요. 하지만 우리가 움직인다면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저들을 다른 곳으로 끌어낸다거나 아니면 도발을 한다거나 하는 것 말입니다.”

    한립이 가볍게 웃으며 생각한 바를 이야기 했다.

    “한 형의 말씀은…….”

    농동이 표정이 달라졌다.

    “확실히 그렇게 하면 속전속결로 일을 마무리 할 수 있겠어요.”

    “다른 곳으로 유인하는 건 어려워도 도발해서 서로 죽이게 하는 건 가능할 것 같은데요?”

    이 수사가 기뻐하며 말하자 엽영도 빙긋 웃으며 찬성했다.

    “큰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일이라면 저도 동의하죠.”

    소홍이 한립을 쳐다보며 생각을 바꾸었고 농동도 잠시 고민한 후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의견을 모았으니 저도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계획이 있어야 합니다.”

    “안심하십시오. 저희라고 목숨이 귀하지 않겠습니까?”

    이 수사가 자신의 뜻대로 되자 기뻐하며 웃음을 흘렸다.

    “어떤 계획이라도 있으십니까?”

    “신형을 숨긴 다음 양쪽에 접근해 기습하면 상대방에게 공격당한 것으로 생각할 겁니다.”

    농동의 물음에 이 수사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말은 쉽지만 두 존재의 의식이 얼마나 강대한지 모르는 것이 문제입니다. 만일 은신술이 발각당하면 큰 곤경에 처할 테니까요.”

    “그게 문제라면 제게 공명부(空明符) 두 장이 있어요. 전력으로 부적을 발동하면 연허 중기 이하의 수사는 쉽게 꿰뚫어 볼 수 없죠.”

    이번에는 소홍이 고개를 저으며 불안을 드러내자 엽영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은과문 영부인 공명부라면 확실히 효과가 있겠습니다. 그럼 혹시 모르니 직접 나설 것이 아니라 제 은교괴뢰(銀蛟傀儡) 두 마리를 이용하죠. 각각이 원영기 수사에 상당하는 실력을 지녔으니 부적을 붙이고 습격을 가할 수 있을 겁니다.”

    농동은 반가운 소식에 웃으며 나섰다.

    “그럼 더할 나위 없겠네요. 만일 꼭두각시들이 실패할 경우에는 둘로 나뉘어 도마뱀과 거인을 유인하는 게 좋겠어요. 둔술이 빠른 한 명이 남아 있다 기회를 보아 지룡과를 취하고요. 도마뱀과 거인이 연허기급 실력을 지녔다고 해도 우리가 마음먹고 달아나면 추격하지 못할 거예요. 물론 영과를 취하는 수사는 반드시 둔술이 무척 빨라야겠죠. 그래야 도마뱀의 혀를 피할 수 있을 테니까요.”

    소홍이 눈을 굴리며 생각하다 도발이 실패할 경우를 대비했다.

    “소 선자의 말씀이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남는 사람은 너무 위험 부담이 클 뿐만 아니라, 지룡과를 독차지해 달아날 가능성도 있으니 그것도 염두에 둬야 쓸 수 있는 방법 같은데요.”

    이 수사가 마지막 말을 하며 서늘하게 눈을 빛냈다.

    “확실히 그런 문제가 있겠네요. 그럼 마지막에 남길 원하시는 분이 계실까요? 자원하시는 분은 당연히 나머지 수사들이 안심할 수 있는 방안도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엽영이 유유히 물었다. 소녀의 말에 나머지 네 사람의 얼굴이 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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