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800화 (557/2,000)

800화. 뇌전

*

먹구름 사이로 회색 비늘이 가득한 몸뚱이가 언뜻언뜻 보이기는 했지만 본체가 정확히 어떤 모양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멀리서 보면 검은 그림자가 원형을 이루고 있고 거대한 육체와 방대한 기운이 전설 속의 진령급 존재와 유사했다.

그때 멀리서 이상한 울음소리가 하늘을 쩌렁쩌렁 울리고 무수히 많은 뇌전이 동시에 폭발하듯 굉음이 이어졌다.

“휴, 진령이 아니라 고수(古獸)인 뇌구(雷龜)네요. 저 거북은 만황고수 중 몸집이 가장 큰 족속 중 하나라고 알고 있어요. 보통 고공에 떠서 뇌전을 흡수할 뿐 다른 생명체를 먼저 공격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요. 물론 일단 뇌구의 성질을 건드리면 상대하기 벅차겠지만요. 합체기 수사는 되어야 정면대결을 할 수 있을 거예요.”

괴상한 울음소리를 들은 후 엽영이 한결 편해진 얼굴로 한숨을 쉬며 설명했다.

‘‘뇌구요? 천뢰 속에서 탄생했다는 전설 속의 고대 짐승 아닙니까. 충분한 뇌전만 흡수하면 신형이 무한대로 커진다는 기이한 짐승이지요. 듣기로는 현무경의 성(城)을 이고 다니는 ‘참령(驂靈)’이라는 거대 거북도 뇌구의 일종이라는 이야기도 있다고 합니다. 앞에 있는 것도 크기가 작지는 않지만 그것에 비하면 한참 멀었군요.”

소홍도 진령이 아니라는 말에 마음을 놓고 신기하다는 듯 혀를 찼다.

“참령이 정말 뇌구인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전방의 뇌구가 그에 비해 작다고 해도 괜히 심기를 건드릴 필요는 없겠지요. 피해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농동이 웃으며 말했다.

“맞습니다. 어떻게 보면 기이한 인연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뇌구는 보통 지하 깊은 곳에 잠복해 있어 지면 위로 올라오는 일이 극히 드문 짐승이지요. 보통은……. 이런, 뇌구가 하늘에 있다는 것은 주변에 뇌전의 폭격이 몰아칠 거란 뜻입니다. 농 형, 어서 선박을 이 구역에서 물려야 합니다.”

문득 뇌구가 고공에 떠있는 이유를 떠올린 소홍이 소리쳤다.

“뇌전 폭격!”

그 말을 들은 다른 이들도 안색도 급변했다. 먼저 농동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가 뱃머리에서 나타나 영패 형태의 법기를 들어올렸다.

그가 손바닥 사이에 영패를 끼자 주위의 하얀 구름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옥으로 만든 선박이 드러났다.

모습을 드러낸 영운주는 방향을 홱 틀어 하늘을 갈랐는데 이전 속도보다 두 배는 빨라져 있었다.

그러나 선박이 날아가기도 전에 멀리 검은 그림자가 있는 곳에서 남색 찬란한 기운이 나타났다.

남색 기운은 무언가에 자극이라도 받은 듯 갑자기 사방으로 퍼져나갔는데 그 속도가 매우 빨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곧 선박에 탄 이들도 육안으로 남색 실이 쿠르릉 콰광하는 소리를 내며 악귀의 발톱처럼 달려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뇌구가 나타나면 반드시 뇌전 폭격이 들이닥친다는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다들 어서 힘을 보태 주세요!”

농동은 남색 빛이 쾌속으로 다가오자 헛바람을 들이키며 소리쳤다. 사실 그가 말하지 않아도 다른 이들도 푸른빛이 날아드는 것을 보고 있었기에 다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수사와 소홍은 곧바로 수결을 맺어 눈부신 영기의 빛을 뿜어 발밑의 선박에 주입했고, 한립과 엽영도 거의 동시에 비슷한 행동을 취했다.

곧 다섯 줄기의 강력한 영기가 영운주에 주입되었다.

후우우웅!

옥으로 만든 선박이 부르르 몸을 떨었고 주변의 풍경이 모호해졌다. 선박이 하얀 빛줄기로 변해 극히 빠른 속도로 허상을 남기며 이동한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남색 실선의 속도를 초월하지는 못해 여전히 뒤쫓기고 있었다. 그들은 소문으로만 듣던 뇌전 폭격의 무서움을 실감했다.

다섯 화신기 수사가 힘을 합쳤으니 망정이지 평범한 화신기 수사 홀로 뇌전 폭격을 맞이했다면 어찌 되었을지 알 수 없었다.

물론 그들은 평범한 화신기 수사가 아니었기에 각자 속도를 급증시키는 비술이나 둔술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대부분 후유증이 남기 마련이라 원기가 크게 상하거나 정혈을 토해내야 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살얼음판인 만황 세계에서 무턱대고 감행하기는 위험한 일이었다.

다행히 한립 일행은 이번에 온 힘을 다해 협력했고 영운주는 무사히 수만 리를 주파했다.

그제야 남색 실이 보이지 않았고 뒤따르던 천둥소리도 사라졌다. 수사들은 한시름을 놓고 분분히 영력을 거두기 시작했다.

“위험했습니다. 소 선자께서 빠르게 반응한 덕에 무사했지 조금만 늦었어도 뇌전 폭격에 휘말릴 뻔했어요. 그랬으면 전부 무사히 탈출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농동이 차분한 표정을 되찾고 소홍에게 웃으며 인사했다.

“운이 좋았습니다. 뇌구의 명성은 자자하지만 그 습성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요. 저도 종족 장배 중에 홀로 뇌구를 해치워보신 분이 있어 알게 된 사실입니다. 뇌구는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데 어딘가에 뇌전 폭격이 시작되면 그것에 감응해 뇌전을 흡수하기 위해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체가 된 뇌구는 몸속에 두 개의 구슬을 품고 있다고 하더군요. 하나는 뇌전을 끌어들이고 다른 하나는 뇌전을 피하게 해주는 신묘한 신통이 있답니다. 뇌영근을 지닌 수사가 이 구슬을 지니면 손쉽게 뇌전의 힘을 부릴 수 있지요.

당시 종족의 장배께서는 아직 유년기였던 뇌구를 잡아 구슬을 얻지는 못했으나 그 등딱지만 해도 엄청난 뇌전의 힘을 품고 있어 뇌전 속성 보물을 제련하기에 최상의 재료였습니다. 아마 수행이 높은 수사들이 뇌구를 만난다면 두려워하기 보다는 굉장히 좋아했겠지요.”

“홀로 뇌구를 격살한 선배님이시라면 분명 장로 중에 한 분이시겠습니다. 우리 같은 화신기 수사들에게는 꿈같은 이야기지요. 이번에 무사히 살아남은 것은 운이 좋았습니다.”

이 수사는 아직도 뇌전 폭격에 쫓기던 긴장감이 남아 있는지 고개를 저었다.

“맞는 말씀입니다. 뇌구의 온몸이 귀한 재료이긴 하지만 합체기 이상의 수사가 아니고서는 함부로 건들 수 없겠지요. 게다가 뇌전 폭격이 끝나는 대로 지하 깊숙이 숨어 버리면 찾을 수도 없고요. 갑시다. 앞으로는 순조롭게 일이 풀렸으면 좋겠습니다.”

농동이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만황세계의 심처에 들어온 지 10일 만에 벌써 강력한 뇌구를 마주친 것에 마음에 무거워진 것이다.

다른 이들도 더는 얘기할 마음이 없는지 몇 마디를 더 하고는 각자의 밀실로 흩어졌다. 그러나 시종일관 한 마디도 없던 한립은 여전히 자리에 남아 있었다.

그는 다른 이들이 사라진 후에도 뇌전 폭격이 일어나는 방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휴.’

한참 후, 그가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쉬고 다시 선박의 위로 올라 가부좌를 틀었다.

*     *     *

한립 일행이 영운주를 타고 뇌전 폭격 구역을 벗어난 지 얼마 후 먹구름 사이에서 뇌구의 몸이 가라앉았다.

거대한 산처럼 보이는 몸은 두말할 것도 없고 짙은 회색의 등딱지는 금속성의 광택을 내며 매끄럽게 번들거렸다.

가장 특이한 것은 네 다리만 보일 뿐 머리와 꼬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마 전부 등딱지 속에 숨겨 놓고 내놓지 않는 듯했다.

콰광! 콰콰콰! 쿠르르 콰콰광! 콰직!

뇌전 폭격이 만개해 하늘이 남색 뇌전으로 뒤덮였다. 장대비가 쏟아지듯 무수히 많은 뇌전이 내리꽂혔고 작은 것은 한 척에서 긴 것은 열댓 장까지 되는 뇌전의 기세에 땅은 정말 폭격당한 것처럼 난장판이 되어갔다.

뇌구의 거대한 육체도 이렇게 많은 뇌전에는 버티지 못할 것 같았지만 남색 뇌전들은 거북의 몸에 닿자마자 눈 녹듯이 사라졌다.

더욱 불가사의한 것은 거북의 몸에서 하얀 광채가 나 뇌전을 끌어당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렇게 되니 뇌전 폭격 중 절반은 전부 뇌구를 향해 집중되었다.

뇌구는 사지를 천천히 늘어트리고 뇌전 속에서 상쾌하다는 듯 허우적거렸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거북이 사지를 움츠리며 등껍질 안으로 숨어 버렸다.

허공에 파동이 일며 온몸에서 광채를 발산하는 거대한 뼈다귀 새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 뼈다귀 새는 크기가 열댓 장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기세가 뇌구에 못지않았고 그 머리 위로 두 명의 인영이 올라타고 있었다.

한 명은 거구에 전신에서 검은 빛을 반짝이는 자였고, 다른 한 명은 평범한 체격이었는데 녹색 구름으로 가려져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좋습니다 좋아! 오자마자 이렇게 좋은 사냥감을 발견할 줄이야. 안 그래도 십수마(十首魔)를 제련하는데 재료가 부족하던 참이었는데 뇌구의 것을 쓰면 그럭저럭 되겠어요.”

그 중 하나가 뇌구를 보며 즐겁게 중얼거렸다.

“천묘 형, 이런 것은 발견한 사람 몫이 있는 법입니다. 십수마를 만드는 데는 어차피 골격밖에 필요하지 않으니 가져가시고, 뇌구를 잡는 것을 도울 테니 체내의 뇌주 두 개는 제가 챙기겠습니다.”

또 다른 인영이 웃으며 말했다.

“흥, 현무 형께서 계산이 빠르십니다. 솔직히 뇌구 부속 중에 가장 귀한 것이 그 뇌주 두 알인데 말 몇 마디로 그것을 챙겨가려 하십니까?”

녹색 기운 속의 인영이 콧방귀를 뀌었다.

“하하, 뇌주가 신묘하기는 하나 솔직히 우리 둘에게는 큰 쓸모는 없지 않습니까? 그저 달리 쓸 데가 있어 얻어가려는 것뿐입니다. 그럼, 기린 진령의 팔뼈와 뇌주 두 개를 거래하는 것은 어떠십니까?”

“아아, 깜빡할 뻔 했습니다. 현무 형의 참령도 뇌구였지요. 뇌주를 가져다 먹여 수명을 연장하게 할 작정이시군요.”

“알아주시니 다행입니다. 참령의 수명이 늘면 우리 인족 전체의 복 아니겠습니까. 진령의 절반 정도 되는 힘을 발휘하니 정말 멸족을 걱정해야할 대전쟁이 벌어지면 큰 전력이 되어줄 것입니다. 이제 제 뜻대로 해주시겠습니까?”

“현무 형께서 그렇게까지 말하시니 그렇게 하지요! 그러나 빨리 움직여야 합니다. 보물을 수집하러 나선 길이 아니라 중요한 임무가 있으니까요. 서둘러 이족들이 마련한 거점을 제거해야 합니다.”

녹색 기운 속 인영이 마지못해 제안을 수락했다.

“허허, 저희 둘이 힘을 합치고 천묘 형의 꼭두각시까지 합세하면 겨우 성체 뇌구 한 마리 잡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겠습니까.”

거구 인영이 광소하며 먼저 신형을 움직여 뇌전 속으로 달려들었다. 잠시 후, 뇌전 폭격 속에서 경천동지 할 굉음과 뇌구의 울부짖음이 울려 퍼졌다.

뼈다귀 봉황을 밟고 선 인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치 일행의 급한 성미에 어쩔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그가 수결을 맺자 발밑의 뼈다귀 봉황이 즉시 팽창해 백여 장 크기로 커졌고 뇌전 폭격 속으로 날아들었다. 푸른 뇌전 속에서 들려오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분노에서 점점 두려움으로 바뀌어갔다.

*     *     *

한편, 한립 일행은 영운주를 타고 쉼 없이 이동하는 중이었다. 영운주는 속도도 빠르고 환술도 고명한 편인데도 빈번하게 위험과 마주쳤다.

갑자기 새빨간 바람이 밀려들어 자세히 보니 무수히 많은 작은 곤충 떼였다. 그들이 대경실색해 바람처럼 달아나지 않았으면 옥으로 만든 영운주는 흔적도 없이 갉아 먹혔을 것 이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중에 공간 파동이 생기더니 백 장 길이에 머리가 둘 달린 괴상한 새가 나타나기도 했다. 전신이 황금색에 굉장한 영기를 뿜어대는 것이 거의 뇌구와 맞먹는 존재였다.

그 새는 영운주를 발견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에 비해 작은 선박 따위는 관심이 없었던 것인지 날개를 몇 번 펄럭이며 사라졌다. 한립 일행은 크게 안심했지만 쓴웃음이 날 수 밖에 없었다.

만황세계 심처의 무서움을 알게 된 이들은 공법을 수련하지 못하고 밀실 안에서도 항상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 역시 그 후로도 몇 차례 갑작스런 위험상황이 발생했다.

그러나 드디어 그들의 운도 다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날은 새하얀 눈썹의 이 수사가 번을 서고 있었다.

밀실에 앉아 부적에 관한 연구를 하던 한립은 경고성 휘파람 소리를 들었고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려했다. 그런데 그가 나가기도 전에 거대한 선박이 크게 흔들리며 비틀거렸다.

이어 굉음이 연달아 들리고 주변의 옥벽이 진동하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한립은 어두워진 얼굴로 소매를 휘둘러 금빛 한 줄기를 내뿜었다. 밀실 천장에 구멍을 뚫은 것이다.

그는 신형을 번뜩이며 푸른 빛줄기로 변해 영운주 상공으로 치솟았다.

그때 다른 빛줄기들도 재빨리 튀어 나오고 있었다. 농동과 다른 이들도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알고 탈출한 것이다.

그들이 떠나는 순간 쾅! 하는 거대한 폭음과 함께 옥으로 만든 선박이 완전히 터져나갔고 광풍이 일행들을 향해 몰아쳤다.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