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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792화 (549/2,000)
  • 792화. 백맥연보결(百脈煉寶決)

    *

    뜻밖의 보물을 얻은 한립은 뛸 듯이 기뻤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연구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한립은 즉시 뼈다귀 손에 부적을 여러 장 붙여 옥함에 담아 두고는 즉시 거처로 돌아갔다.

    그가 거처로 돌아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공간폭풍이 있던 자리에서 빛의 진법이 나타나 금빛 찬란한 금정주(金庭舟)가 전송되었다. 배 위에는 금색 갑옷을 입은 천위 두 명이 서 있었다.

    짙은 눈썹에 수염을 기른 중년 사내와 미모가 빼어난 여인이었다.

    “건곤반(乾坤盤)에 표시된 위치입니다. 공간파동이 느껴졌지만 범위가 협소한 것이 가끔 나타나는 간헐적인 폭발 같기도 합니다.”

    여인이 도처를 살피며 말했다.

    “음, 위험한 공간폭풍은 아니었던 것 같군요. 지속 시간도 짧고요. 안 그랬다면 겨우 작은 산이 하나 사라지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았을 것 입니다.”

    긴 수염의 중년인이 의식으로 주변을 조사하고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하지만 이전에는 굉장히 안정적이었던 곳에서 갑자기 폭발현상이 일어난 것이 이상합니다. 어째서 공간폭풍이 나타난 것일까요? 이곳에 머무는 수사가 누구입니까?”

    여인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초소형 공간파동은 본래 예측하기 어려우니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건곤반이 아무리 현묘해도 모든 것을 예측할 수는 없으니까요. 게다가 이곳은 막 화신기에 이른 수사에게 배정된 곳입니다. 아마 청명위겠지요.”

    중년 사내는 수염을 쓸어내리며 평온히 대답했다.

    “이령반이 이족의 기운을 감지하지도 않네요. 이족의 침입은 아닌 듯합니다. 그 청명위를 불러다 심문할까요?”

    “뭐, 그럴 것 있겠습니까. 이족 침입도 아니고 초소형 공간폭풍도 이미 사라졌으니까요. 문제는 여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한시라도 빨리 대형 공간폭풍이 나타날 것이라 미리 예측한 곳으로 가야합니다.”

    “마 형의 말씀이 맞습니다. 제가 괜히 시간을 끌 뻔 했네요. 가시죠.”

    여인은 잠시 주저했지만 곧 웃으며 동의했다. 중년수사도 여인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먼저 노란 빛줄기로 변해 금정주로 돌아갔다. 여인도 사방을 살피다 그 뒤를 따랐다.

    잠시 후 다시 빛의 진법이 나타나 빛을 밝히며 금정주를 전송하고 사라졌다.

    동부에 있던 한립은 이런 일이 발생한 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이렇게 빨리 연허기급 천위가 둘이나 파견되어 조사했다는 것과 그를 불러다 심문하는 과정을 생략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는 거처로 돌아오자마자 진법의 운용을 멈추고 만롱주의 감시를 중단시켰다. 혹시 수행이 높은 수사의 눈에 될까 염려됐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밀실로 들어가 뼈다귀 손을 살피기 시작했다.

    뼈다귀 손 자체도 특이해서 특수한 방식으로 제련되어 있었지만 한립은 그런 것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는 즉시 입을 벌려 금빛 검을 불러냈다.

    검은 몸을 부르르 떨며 가느다란 금실로 변해 뼈다귀 손을 재빠르게 한 바퀴 돌더니 갑자기 뼈다귀 손 엄지를 두 동강냈다. 그러자 한 촌 길이의 옥패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안에서 빠져나왔다.

    한립은 예측하고 있었기에 무형의 금제가 사방에서 발동해 옥패를 달아나지 못하게 구속했다. 우윳빛 옥패를 끌어당긴 그는 명청령안을 이용해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구불구불 작게 쓰인 은색 문자는 처음 보는 제련술이었다. 이전에 배운 제련 상식을 대부분 뒤집어엎는 혁신적인 방법이었기에 자기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은과문은 평범한 고대 문자와는 달라서 다른 금궐옥서의 잔본을 연구하지 않았다면 아마 감도 잡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밀실 안에서 삼일밤낮을 지새운 덕에 한립은 대략적인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연기술에 대한 자세한 설명 외에 백맥연보결(百脈煉寶決)라는 신통이 가장 중요했다.

    이 신통은 사람의 경맥, 피와 살 그리고 골격을 기초로 몸의 각 부분을 각기 다른 법보로 제련할 수 있는 불가사의한 비술이었다.

    만일 앞부분에 연기술을 보지 못하고 백맥연보결의 내용을 들었다면 터무니없는 소리로 치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부분을 읽다 보니 문득 깨우치는 바가 있어 이 비술도 상당히 신뢰가 갔다.

    그가 들고 있는 삐다귀 손이 바로 그 증거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람의 뼈가 공간폭풍을 뚫고 달아날 리가 없었다.

    금궐옥서에 따르면 이 비술은 몸 전체를 한 번에 보물로 제련할 수도 있고 아니면 각 부위를 따로 따로 천천히 제련할 수도 있었다. 어떤 방식을 택하든 결국은 온 몸을 제련해서 불문의 금강불괴(金剛不壞)와 같은 경지에 이르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 비술을 대성하면 법력이 어떻든 간에 육체의 힘만으로 경천동지할 신통을 부리고 불멸체에 가까워질 것이다.

    비록 금궐옥서의 설명은 간략했지만 그 행간의 내용을 파악하고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과장해 설명하지 않아도 얼마나 대단한 비술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몸을 보물로 제련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육체 조건이 전제되어야 했다. 금강결을 대성한 강인한 육체의 소유자인 한립도 간신히 제련을 시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금궐옥서에서 말하는 막대한 신통을 쓰려면 몸을 더욱 강화해야했다.

    그러지 못하면 육체가 제련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붕괴할 것이 뻔했다.

    한립은 옥패를 쥐고 한참을 생각했다.

    “다른 공법을 찾아 반드시 법체쌍수의 길을 택해야겠구나.”

    백맥연보결을 손에 넣었으니 다른 길에 미련을 둘 필요가 없었다. 이 전에는 어떤 공법을 택해야 할까 고민이 되었지만 이제는 인족과 요족이 공동으로 개정한 법체쌍수 공법을 택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시 금궐옥서인 옥패에 부적을 붙여 저물탁에 넣은 그는 이번에는 은은한 붉은 색의 옥간을 꺼냈다. 오래 전 만호자의 탁천마공(托天魔功) 구결을 복제해둔 옥간이었다.

    “세 부분으로 특수하게 나뉘어있으니 앞으로는 범성진마공(梵聖眞魔功)이라 불러야겠다.”

    한립은 옥간을 보며 중얼거리다 그것을 이마에 붙이고 두 눈을 감았다. 천연성 석탑에서도 이 마공을 익혀보려 했으나 충분한 단약의 보조 없이 큰 효과를 보기는 어려웠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밀실에서 보냈고 가끔 시간을 내 영초들을 확인하고는 옥청단 제련에 들어갔다.

    화신급 영단답게 엄청난 수량의 영초를 사용했는데도 겨우 두세 병 밖에는 제련하지 못했다.

    하지만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제련 횟수가 늘어날수록 제련술에 익숙해질 테고 나중에는 성공률이 더욱 높아질 것이다. 물론 탁천마공을 수련하는 틈틈이 백맥연보결을 연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동안 아무도 시비를 거는 자가 없는 것으로 보아 이해관계가 충돌하지만 않으면 명 노마나 금 노괴 쪽은 굳이 그를 귀찮게 하지 않을 듯했다. 한립으로서는 반가운 일이었다.

    반년이 지나기 며칠 전, 푸른 빛줄기가 아름다운 독무 속에서 튀어 나와 천연성 방향으로 날아갔다. 다시 3개월 간 순찰 임무를 마쳐야 동부로 돌아와 수련을 계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3개월 후, 그는 멀쩡한 모습으로 귀환했다.

    그리고 곧장 밀실로 들어가 폐관 수련을 했고 그 후로 반년이 지나서야 다시 거처를 나섰다. 이렇게 시간은 강물처럼 흘러 60년이나 지나갔다.

    수사들에게는 별 것 아닌 시간이었지만 영계에서는 불길한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각 종족의 고위층들은 빈번하게 회합을 가졌고 소식에 민감한 자들은 벌써 폭풍 전야의 위험을 감지해 대비에 들어갔다.

    특히 이종족과 가까이 있는 천연성에는 그 변화가 더욱 확실히 느껴졌다.

    이날 부려습지 상공을 일련의 무리가 저공비행하며 날아가고 있었다. 10명의 수사는 전부 새까만 전갑을 입었는데 가장 가운데 위치한 짧은 수염을 지닌 노인만이 고풍스런 푸른 전갑을 걸쳤다.

    그가 바로 소대를 지위하는 화신급 청명위라는 표시였다.

    10명의 흑철위 뿐만 아니라 청명위 노인마저 긴장한 기색으로 사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마치 당장이라도 무엇이 튀어나올까 경계하는 얼굴들이었다.

    웅!

    아무 말 없이 전진하고 있는데 흑철위 중 한 명의 진법 원반이 진동했다. 비록 작은 소리였지만 일행이 전부 안색이 달라져 그를 쳐다보았다.

    “또 이족이 출현했습니다. 이건 잦아도 너무 잦아요. 대체 무슨 꿍꿍인지 간자들이 줄줄이 죽어나가는 데도 계속 밀어 넣고 있으니까요. 그 때문에 지난번 순찰 때 우리 부대원이 두 명이나 죽어나갔지 뭡니까.”

    흉흉한 인상의 거한은 이령반에 뜬 경고 표시를 보고 분통을 터트렸다.

    “흥, 그 정도면 다행이지요. 제4부대는 반년 전에 희귀한 허동족(虛洞族)을 마주쳐 대장을 포함해 대부분이 죽어나가지 않았습니까.”

    또 다른 부대원인 중년 여인이 냉랭히 말했다.

    “이령반이 경고하니 이대로 조사하지 않고 돌아가면 중벌을 받게 된다. 대부분 이족들이 첩자를 심어 놓은 것이고 주력 부대가 아니니 모두 조심해서 첩자를 제거한다.”

    푸른 전갑의 노인이 어수선한 분위기를 정리하며 명을 내렸다. 청명위의 명령에 흑철위는 불만이 있어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노인의 명을 받은 부대는 몇 개의 무리로 갈라져 이령반의 경고를 따라 추적에 들어갔다.

    그들은 방향을 틀어 수십 리를 날아가니 넓은 돌무지가 나타났다. 평범해 보였지만 보라색 기포가 주변 습지를 둘러싸고 있었다.

    “여기인 듯하다. 달아나게 두지 말거라.”

    노인은 이령반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분부했다. 동시에 열 명의 흑철위가 대답 없이 보물로 몸을 보호하고 의식으로 주변을 수색했다.

    일다경이 지나 노인을 포함한 대원들 모두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렇게 가까운데 의식으로 탐색할 수 없다니! 일일이 흩어져 찾아야 할 것 같구나. 진 수사!”

    호흡을 고른 노인이 고개를 돌려 눈이 아주 작은 중년인을 불렀다.

    “대장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습니다.”

    중년인은 기민하게 대답하고는 저물탁에서 새까만 구슬 모양의 물체를 방출했다. 구슬이 떠오르자 중년인이 무엇을 뿌리듯 손을 튕기며 주술을 외웠다.

    츠츠츳!

    물체 표면에 남색 뇌전이 튕기고 크기가 불어나자 쇠로 만들어진 단단한 벌들로 변했다. 주먹 크기의 거무튀튀한 벌들이 날개를 파닥이며 웽웽 거렸다.

    다른 대원들은 저공에 떠서 움직이지 않았고 눈이 작은 중년인은 그 자리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수결을 맺었다.

    웽!

    백여 마리의 벌들이 일제히 땅으로 내려가 뿔뿔이 흩어졌다. 순찰을 도는 이들은 다른 수사들의 충고를 듣고 쉽게 땅에 내려서지 않았다. 땅에서 다양한 형태로 숨어 있는 이종족들과 마주치면 일이 무척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꼭두각시들을 풀어 수색하는 것도 방법이었다.

    쇠로 만든 벌들이 흩어지고 얼마 되지 않아 수사들의 이령반이 급격히 진동했고 굉장히 날카로운 소리를 방출했다. 몇몇 이령반은 눈부신 영기의 빛을 방출하기도 했다.

    “제길, 이종족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미 백 장 내로 다가왔고 계속 가까워집니다.”

    흉흉한 인상의 거한이 다급하게 외쳤다. 그러나 문제는 아무리 백여 장 내를 살펴봐도 텅텅 비어 접근하는 물체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각자 술법을 펼쳐 상대의 은닉술을 파훼한다. 이대로 접근하게 두면 안 돼!”

    노인이 쩌렁쩌렁하게 소리치고는 한 손을 뒤집어 구리거울을 꺼냈다. 그것을 머리 위로 던지자 달처럼 훤하게 빛났고 사발만한 푸른 빛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빛줄기는 사방팔방을 비추었지만 여전히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다른 수사들도 깃발이며 다양한 형태의 보물을 꺼내 탐색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들이 차고 있는 이령반은 더욱 극심하게 진동하며 날카로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미 적이 지척에 접근했다는 뜻이었다.

    모두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몰랐고 노인의 얼굴도 창백해졌다. 이종족 첩자들은 달아나지 않고 거꾸로 그들을 죽일 마음을 먹는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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