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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791화 (548/2,000)

791화. 공간 폭풍

*

“정녕 죽고 싶으냐?”

금색 소인은 자신이 조급해하는 사이 한립이 수작을 부렸다는 사실에 무척 화가 났다. 금색 기운 속의 금빛이 만 줄기로 퍼져나가 한립을 반격하려 했다.

파츳!

하지만 금빛은 회색 기운을 만나 폭발했고 극심하게 흔들리기는 했지만 곧 안정을 되찾았다. 이에 금색 소인도 가슴이 서늘해졌다.

“선배님께서 친히 와주셨다면 제가 그 막대한 법력을 막아설 수는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분신이라면 다르지요. 제 원자신광을 뿌리칠 생각 마십시오. 선배님도 이런 곳에서 오래 머물고 싶은 생각은 없지 않습니까?”

한립이 회색 기운 속에서 미소 지었다.

“감히 노부를 위협해!”

금속 소인은 대노해 다른 신통을 부리려 했다.

키에에엑!

그때 갑자기 허공에서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원자신광 속의 한립은 즉시 온 몸이 뜨거워지고 피가 거꾸로 도는 것 같았다.

물론 금강결을 대성해 피부가 최상급 법기와도 같았기에 놀란 마음을 가다듬고 수결을 맺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소인도 날카로운 소리에 안색이 달라졌다. 그가 데리고 있는 금 수사는 온 몸을 금빛으로 보호했지만 금빛 뺨에 홍조가 일며 버티지 못하고 추락하고 말았다.

“읍혈대법(泣血大法)!”

소인이 놀라 소리치곤 아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금빛 기운이 그의 손바닥에서 튀어나와 금 수사를 휘감은 다음에야 겨우 안정을 되찾았다.

허공의 왜곡된 빛의 문에서 거대한 발톱이 나타나 놀랍게도 일그러진 문을 강제로 열고 있었다. 백옥처럼 하얀 뼈다귀 발톱은 엄청난 영기의 압력을 뿜어냈고 처절한 비명소리가 계속되었다.

“보아하니 옥골상인이 곧 빠져나올 것 같습니다. 만일 먼저 나간 선배님께서 저 마물을 배척해 선배님이 이곳에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통로를 막아 버리면 그때는 저희 모두 마물의 밥이 되고 말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한립은 놀란 마음을 추스르고 냉정하게 물었다. 금색 소인도 거대한 발톱의 출현에 얼굴이 일그러져 있다가 그의 말을 듣고 침음에 잠겼다.

그가 아는 명 노마라면 시간이 지체되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작자였다. 그때 허공의 빛의 문에서 또 다른 발톱이 하나 더 나타나 좌우에서 하나씩 문을 뚫으려 했다.

기괴한 비명 소리는 멈추었지만 대신 쿠르릉 하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마물은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듯했다.

“네 녀석이 이번에 운이 좋구나. 노부가 너도 데리고 나가주마!”

금 노괴도 여간 영악한 인물이 아니라 재빨리 결론을 내리고 주저 없이 답했다. 한립은 기뻐하며 금빛을 감싼 원자신광을 약간 풀어주었다.

소인이 법력을 일으켜 금빛으로 한립이 들어 있는 회색 기운마저 포함해 거대한 빛구슬 안으로 들어갔다. 한립은 원자신광으로 몸을 감싸 소인이 다른 수작을 부리지 않는지 경계했다.

빛구슬 안으로 들어가자 주위가 밝아졌고 하늘과 땅이 뒤집힌 것 같은 어지럼증이 느껴졌다. 잠시 후 그들은 다시 석산 꼭대기에 이를 수 있었다.

인근에는 거대한 빛구슬이 둥실 떠있었는데 마치 허공에 박혀 있기라도 한 듯 절반만 보이고 나머지 절반은 보이지 않았다.

“너는!”

비취 교룡과 옹 수사가 머지않은 곳에서 기다리다 한립까지 빠져 나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한립은 곧바로 날개를 펄럭여 청백색 뇌전으로 변해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다음 순간 그는 수십 장 밖의 모처에서 나타났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척에 있던 금색 소인이 그를 붙잡아두려 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비취 교룡이 서늘한 시선으로 그 것을 지켜보다 그를 쫓으려는데 갑자기 거대한 빛구슬에서 공간 파동이 일었다. 괴이한 소리가 점점 커져갔고 허공이 종이처럼 구겨지며 뭉쳐지고 있었다.

“큰일입니다.”

“공간폭풍!”

한립을 포함은 그곳의 모든 이들이 놀라 소리를 높였다.

그들은 다른 것은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각자의 재주로 그곳을 벗어나는데 전력을 다했다. 사방팔방으로 다양한 색깔의 빛줄기가 그곳을 튀어나갔다.

아무리 대단한 둔술을 지녔어도 공간폭풍이 생긴 곳에 머무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다들 수행이 대단해 몇 번 번뜩이더니 수백 장 밖에서 나타났다.

쿵!

폭음이 들리고 그들이 서있던 공간이 뭉쳐졌다 폭발해 검은 실선으로 변하며 아래로 뻗어나갔다. 별안간 백여 장의 공간이 이런 기현상으로 뒤덮였다.

이어 바람 소리가 커지고 검은 선이 쪼개지며 그 안에서 액체처럼 하얀빛이 흘러나왔다.

쉬쉬쉬싁.

괴이한 일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하얀빛이 나타난 허공에 소용돌이가 생겨 그 주위에 있는 것을 모두 빨아들여 가루처럼 잘게 부스러뜨리기 시작했다. 소용돌이에 휩싸인 것은 무엇이든 바람처럼 사라져 종적을 감추었다.

한립은 십여 리 밖의 작은 산 정상에 서서 소용돌이를 무표정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당초 공간접점을 통과하며 공간폭풍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빙봉의 공간 신통 덕을 보았고 수많은 보물을 희생한 끝에 겨우 살아남았다.

눈앞에 만들어진 공간폭풍은 단시간 내로는 그칠 것 같지 않았다. 한립은 머리를 굴리다 돌연 빛줄기로 변해 동부로 날아갔다.

다른 방향으로 벗어났던 비취 교룡도 자연히 한립의 거동을 눈치 챘고 미간을 좁히며 옹 수사에게 무어라 물었다. 옹 수사가 난색을 표하며 구구절절 해명하기 시작했고 이야기를 들은 비취 교룡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때 금색 기운이 비취 교룡 쪽으로 방향을 틀어 날아갔고 빛이 가시자 금 수사와 금색 소인이 나타났다.

“명 형, 이대로 저 녀석을 보내줄 생각입니까? 우리가 보물을 구하려던 것을 천위에게 고하면 귀찮아질 텐데요.”

소인이 교룡의 몸을 훑으며 말했다.

“금 수사 말씀대로 그저 귀찮아질 뿐인데 굳이 직접 나설 것 있겠습니까? 영지 불법 침입 정도야 집법 천위에게 직접 걸리지 않는다면 큰 문제는 되지 않지요. 이전에는 천보상인의 명성이 워낙 높아 신중을 기했지만 어차피 보물도 없었지 않습니까. 그럼 크게 신경 쓸 것도 없습니다. 이해관계가 충돌하지 않는다면 노부 역시 비승 수사들과 척을 지고 싶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제자의 말을 들으니 조무귀와도 연이 닿아 있는 자 같던데……. 그의 신분은 별 것 아니더라도 그 사존이 바로 장로회 뇌라진인이지 않습니까. 물론 금 형이 직접 저 녀석을 처리하시겠다면 제가 도움은 드릴 수 있습니다만.”

비취 교룡은 미소는 머금었지만 어투가 냉랭하기 그지없었다.

“저도 딱히 원수진 일도 없는 후배를 굳이 처리할 마음이 없군요. 괜히 건드렸다 귀찮은 일만 늘어날 것 같기도 하고. 보물도 없는 것으로 확인 되었으니 노부는 이만 가보렵니다.”

금색 소인이 눈을 굴리다 허허 웃으며 말했다. 그는 포권을 하고 금빛 기운으로 금 수사를 휘감아 하늘 저편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공간폭풍 쪽으로는 다시 시선도 주지 않았다.

“흥, 어린 녀석에게 당해 어쩔 수 없이 데리고 나온 주제에 남의 칼을 빌려 해치려 하다니. 흙탕물은 나 혼자 뒤집어쓰라는 말인가! 머리는 잘 굴렸지만 불구대천의 원수도 아닌데 그럴 필요 없지. 제자야, 우리도 가자꾸나. 공간폭풍이 나타났으니 천연성 집법대가 조사를 나올 것이야. 이곳에서 서성이다 그들과 마주치면 정말 성가셔지니 어서 움직여야한다. 이번 일로 보물은 얻지도 못하고 원기만 상했으니 후회막심이로구나!”

비취교룡은 금색 기운이 사라진 방향을 보고 콧방귀를 뀌면서 한탄했다. 이어 그도 녹색 빛줄기로 변해 날아갔고 옹 수사도 뒤따랐다.

모여 있던 사람들은 전부 가고 없었지만 허공에서 쿠르릉 하고 울려 대는 공간폭풍의 소음은 여전했다.

그때 한립은 이미 동굴 대청으로 돌아와 은빛 장막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만롱주를 보며 연허기 수사들이 영지를 떠나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제야 안심했다.

은색 장막 위에는 크고 진한 노란 점이 계속 반짝이고 있었다. 만롱주가 공간폭풍에 감응했기 때문이었다.

한립은 명 노마 등과는 입장이 달랐다. 그들이야 가버리면 그만이지만 그는 공간폭풍을 주시해서 갑자기 비명횡사하는 일은 막아야했다.

그나마 공간접점에서의 경험으로 보아 공간이 무너져 내리며 우연히 형성된 공간폭풍의 경우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과연 은색 장막의 노란 점은 반 시진 정도 지속되다 점점 빛을 잃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각 후에는 완전히 사라졌다.

‘저건?’

한시름 놓은 그가 진법의 운용을 멈추려다가 퍼뜩 놀라 멈추었다.

노란 점이 사라진 곳에서 갑자기 회색 점 하나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전의 노란 점보다는 훨씬 작았고 빛도 약해서 거의 숨이 끊어지기 직전 같았지만 어딘가를 향해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마음이 무거워진 한립은 고민하다 직접 확인해 보기로 결정했다.

‘마물의 잔혼이 공간폭풍 속에서 탈출이라도 한 것인가? 옥골상인이 어떤 마물인지는 모르지만 연허기 수사들도 꺼릴 정도라면 얼마나 두려운 존재란 말인가. 그런 것을 곁에 두고 안심하고 살 수는 없겠지.’

빛의 장막에 표시되는 영기의 압력이 낮은 것으로 보아 중상을 입은 상태일 테니 죽이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한립은 결정을 마치고 다시 동굴을 나와 공간 폭풍이 소실된 곳으로 날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간폭풍이 일어났던 곳에 이른 그는 역시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민둥민둥하던 작은 돌산도 땅에 백여 장의 구덩이를 남기고 통째로 사라졌다.

주위를 두 바퀴나 돌면서 살펴봤지만 아무런 이상도 발견할 수 없었다. 미간을 좁힌 그는 둔광을 멈추고 허공에서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의식으로 방원 천여 리를 꼼꼼하게 뒤지기 위해서였다.

“흠.”

다시 눈을 뜬 한립의 표정이 이상했다. 그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푸른 빛줄기로 변해 어딘가로 날아갔다. 푸른 빛줄기는 겨우 3백 리를 날아가 어떤 밀림에서 멈추었고 빛이 가시고 드러난 한립의 눈은 남색으로 일렁였다.

돌연 그가 아래쪽 허공을 향해 손을 저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푸른빛의 손이 나타나 무언가를 잡아챘다.

쉬익.

푸른빛의 손길에 회색빛이 밀림에서 튀어 올라 어딘가로 날아갔다. 이에 한립은 입 꼬리를 꿈틀거리며 미리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다른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붉은 실 줄기 다섯 개가 솟아나 허공에서 사라졌다가 번뜩이며 나타나 회색빛을 꽁꽁 묶었다. 회색빛은 몸을 부풀려 벗어나려 했지만 한립이 수결을 맺자 다섯 줄기의 붉은 실에서 화염이 치솟았다.

후우우.

기괴한 소리가 들려오며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진 회색빛은 불길에 연화되어 새하얀 옥으로 된 물건으로 변했다.

눈썹을 끌어올린 한립이 그것을 보고 무표정하게 손짓했다. 그러자 화염에 휩싸인 물건이 날아왔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하얀 뼈다귀만 남은 손이었다. 그리고 뼈다귀 손 표면에는 금색 주술 문자들이 희미하게 어른거렸다.

한립은 바로 이것이 옥골상인의 뼈다귀 손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명청령안의 눈으로 그것을 꼼꼼히 살폈다.

한립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의식으로 훑어보면 뼈다귀 손은 위력적인 법보였지만 명청령안으로 보면 분명 누군가의 손이었다. 사람의 뼈로 만든 기이한 보물이란 소리였다.

조금 전에 보았던 회색빛은 보물이 스스로 만들어낸 의식이었는데 불길로 태워버렸으니 완전히 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뼈다귀 손의 엄지에 뜻밖에도 한 촌 크기의 옥패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었다.

옥패 위로 은빛을 반짝이며 아주 작게 새겨진 글자는 은과문이었다. 한립은 명청령안으로 다시금 그것을 살피고 한숨을 쉬듯 중얼거렸다.

“금궐옥서.”

그 옥패는 놀랍게도 금궐옥서 중의 한 장이었고, 그가 지닌 것과 달리 완전한 상태였다. 대충 살펴 본 바로는 연기술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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