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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790화 (547/2,000)
  • 790화. 옥골인마(玉骨人魔)

    *

    금 수사가 눈을 가늘게 뜨고 한립을 살피며 제안했다.

    “허허, 듣자니 한 수사께서는 실력이 출중하여 전도가 유망하시다고 들었는데, 어찌 그런 양패구상의 하책을 쓰려 하십니까. 허나 저희도 결정권자는 아니니 한 형께서 제시할 조건이 있으시다면 사문 어르신들이 돌아온 후에 직접 고하심이 어떨지요?”

    “두 분은 제가 감히 그러지 못할 거라 여기시는군요. 그것도 좋겠습니다. 어디, 두 분 선배님의 풍모가 어떤지 직접 뵐 수 있겠군요.”

    한립은 담담히 답하고 신형이 흐릿해져 공간 구석에서 홀연히 나타났다. 아예 가부좌를 하고 자리 잡은 그는 정말 연허기 수사들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릴 요량인 듯했다.

    옹 수사와 금 수사는 그런 한립의 행동이 예상 밖이었던지 입술을 달싹이며 전음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결론을 낼 수 없자 그들도 다른 구석으로 이동해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들의 계획은 간단했다. 한립을 제압할 수 없다면 상대가 당장 빛의 문으로 뛰어들지 않는 한 기다렸다가 사문 어른들이 돌아오면 처리하도록 맡길 생각이었다.

    이렇게 신비한 공간에 고요함이 찾아왔고 셋은 눈을 감고 있었지만 빛의 문을 바라보며 의문을 드러냈다.

    옹 수사와 금 수사는 몰랐지만 이 때 한립은 속으로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전음부를 남겨 놓았다는 말은 당연히 허튼 소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원래는 상대가 정말 보물을 찾고 있다면 태일화청부를 사용해 기회를 노릴 생각이었다. 만일 무리의 수행이 너무 높으면 조용히 감시나 하다 돌아오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괴이한 빛에 휩싸여 정체 모를 공간에 들어온 데다 부적의 효과까지 사라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전면전이 답이다.

    어쩔 수 없이 한립은 상대를 움츠러들게 할 방법을 생각해 옹 수사와 금 수사가 함부로 나설 수 없게 협박했다.

    물론 저 둘을 어쩌지 못할까봐 한 행동은 아니었다. 한 명은 화신 중기, 다른 한 명은 화신 후기라지만 역천의 신통을 품은 한립의 상대는 아니었다. 아마 8할의 확률로 그 둘을 이 자리에 묻어 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죽이는 것은 간단해도 빛의 문 안으로 들어갔다는 연허기 수사들과 엄청난 원수를 지고 말 것이다.

    자신의 영지에 함부로 침입한 이들에게 호감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쓸데없이 강적의 비위를 상하게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옹 수사와 금 수사를 쉽게 죽일 수 있다고 치더라도 이 신비한 공간에서 제때 탈출하지 못하면 연허기 수사 둘과 밀폐된 공간에서 마주쳐 낭패를 당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일단 시간을 벌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한립은 눈을 감고 있었지만 강대한 의식을 퍼트려 사방팔방을 물샐틈없이 감시했다. 그의 이런 행동을 두 수사라고 모를 리 없었지만 아무런 방해도 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들은 한립을 비웃고 있었다.

    한립은 의식 줄기가 사방의 일곱 빛깔 기운에 닿을 때마다 순식간에 빨려 들어간다는 것을 감지했다. 심지어 흡인력이 얼마나 강한지 그의 본체 의식까지 휘청거릴 정도였다.

    크게 놀란 한립은 대연결을 급히 운용해 흡인력을 떨쳤고 눈을 뜨고 주위의 일곱 빛깔 기운을 살폈다.

    그 모습을 보고 고소하다는 듯 미소 짓고 있는 옹 수사와 금 수사의 모습도 자연히 눈에 들어왔다. 보아하니 이 공간의 장벽이 괴이하다는 것을 저 둘은 미리 알고 있는 듯했다.

    순간 열이 받았지만 한립은 태연한 척했다.

    공간 영보를 복제해 만든 적혼번은 공간접점에서 공간폭풍에 휘말려 망가졌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런 이상한 공간을 찢고 나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텐데 아쉬웠다.

    물론 적혼번 외에 파멸법목도 공간을 찢는데 큰 효과가 있었지만 이 공간 자체가 특수해서 확실히 성공할지는 알 수 없었다.

    한립은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다 마음을 정했다. 의식으로 꿰뚫어 볼 수 없다면 명청령안으로 출구를 찾을 생각이었다.

    그는 영력을 두 눈에 불어 넣었다…….

    하룻밤이 꼬박 지난 후 공간 구석의 한립은 다시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겼다. 이전의 탐색으로 출구를 찾지 못한 듯했다.

    그리고 일곱 빛덩이 속의 빛의 문은 여전히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이에 옹 수사와 금 수사는 빛의 문을 노려보고 있었다. 표정이 썩 좋지 않은 것이 수시로 한립에게 경계의 눈빛을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렇게 오랫동안 돌아오시지 못 하는 것을 보면 두 분 선배님들께 무슨 변고라도 생긴 것은 아니겠지요?”

    “안심하셔도 됩니다. 저희 사존께 무슨 일이 있었다면 우리가 바로 알았을 테니까요. 겨우 이틀째인데 좀이 쑤시기라도 하는 것입니까?”

    옹 씨 사내는 한립의 말에 내심 섬뜩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받아쳤다.

    “무사하시다면 다행입니다. 이틀 정도야 저에게는…….”

    우웅!

    한립이 웃으며 말을 맺기 전에 돌연 일곱 개의 우윳빛 빛덩이들이 공명하기 시작했다. 엄청난 영기의 압력을 발산하며 빛을 뿜어낸 것이다.

    그 모습에 두 수사뿐만 아니라 한립도 눈을 번쩍 뜨고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웅웅 울어대던 일곱 개의 빛덩이는 빙글빙글 돌면서 크기를 키웠고 순식간에 수레바퀴만큼 커져 늘었다 줄었다하며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그 주위로 공간에 파문이 일었고 가운데 빛의 문이 파문에 휩싸였다. 그 빛의 문은 무형의 압력을 받은 것처럼 일그러져 모호해졌다.

    “뭔가 잘못 됐어.”

    금 수사가 그것을 보고 안색이 급변해 튕기듯 일어났고, 옹 수사도 무척 놀란 듯했다. 한립의 안색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이제 허공의 빛덩이 뿐만 아니라 지면과 사방의 장벽도 부들부들 몸을 떨며 일곱 빛깔이 흩어져 용해되고 있었다. 이는 분명 공간이 붕괴하며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목숨이 위험해지자 한립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으로 뒤통수를 스쳐 회색 기운을 불러냈다. 그리고 손바닥을 뒤집어 금빛 구슬을 세 개나 불러냈다. 응결한지 얼마 안 된 뇌문 구슬이었다.

    옹 수사와 금 수사도 역시 몇 개의 보물을 꺼냈지만 공간 이상을 보고 안전하게 달아날 자신이 없는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한립은 두 사람의 생사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기에 길게 호흡을 들이마시며 파멸법목과 원자신광 그리고 뇌문 구슬의 힘을 빌려 공간을 뚫고 나갈 준비에 들어갔다.

    쿠콰쾅!

    바로 그때 빛의 문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놀란 한립은 순간적으로 동작을 멈추었다. 이어 빛의 문에서 일곱 빛깔 기운이 번뜩이더니 안에서 눈을 찌를 듯한 녹색 빛과 금빛이 튀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허공을 선회해 멈춰선 두 줄기 둔광은 빛이 가시자 각각 비취색 작은 교룡과 한 척 크기의 금색 소인으로 변했다.

    비취교룡은 머리에 난 두 개의 뿔 중 하나가 부러지고 비늘도 몇 개가 빠져 있었다. 금색 소인도 머리를 산발하고 금색 장포가 크게 뜯겨나가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두 연허기 수사는 무언가에 된통 당한 듯했다.

    “어서 가자! 이곳은 천보상인이 입적한 곳이 아니라 옥골인마(玉骨人魔)를 봉인해 놓은 곳이었다. 우리가 상고 수사의 금제를 촉발해 그 마물이 봉인에서 벗어났어. 이 공간은 곧 무너져 내릴 것이야. 너, 너는 누구냐?”

    금색 소인이 뒤늦게 한립을 발견하고 놀라 소리쳤다.

    “조부님 저 자는 한 수사로…….”

    금 수사가 둘을 보고 반가워하며 자세히 설명하려 했다.

    “이 영지의 주인!”

    그러나 비취교룡은 한 씨 성을 지녔다는 것만으로 바로 한립의 정체를 파악하고 살기를 드러냈다.

    “명 형, 무슨 생각인 겝니까? 지금 달아나기도 급급한데 그럴 시간이 어디 있다고! 아무리 우리가 화신의 몸이라도 이곳에서 죽게 된다면 큰 피해를 입을 겁니다. 게다가 저 자가 비승수사라는 것을 잊으신 것입니까? 나는 그 미친 작자들의 신경을 건드릴 마음이 없습니다.”

    금색 소인도 한립의 정체에 놀라긴 했지만 급히 비취교룡에서 전음을 보내 말렸다.

    “맞는 말입니다. 일단 힘을 합쳐 이곳을 빠져 나갑시다. 우리가 직접 어찌하지만 않는다면 조무귀나 다른 자들이 찾아와도 두려울 것이 없어요. 일단 공간이 무너져 내리면 저 녀석이나 옥골인마 모두 이곳에서 명을 다할 것입니다. 우리가 화신의 몸인 것이 안타깝습니다. 본신이었다면 어찌 저런 마물을 두려워했겠습니까! 어서 나갑시다.”

    비취 교룡이 움찔하며 즉시 살심을 거두고 결정을 내렸다.

    “내 말이 그 말입니다. 공간이 더는 버티지 못할 것 같으니 어서요!”

    금색 소인은 그제야 안심했다. 도겁을 위한 분혼이 이곳에서 어이없이 죽어나가는 것을 볼 수는 없었다.

    그는 바로 수결을 맺으며 주술을 외웠고 동시에 등 뒤의 목검이 진동하며 한 장 크기의 거대한 빛의 검으로 변했다.

    크와앙!

    비취 교룡은 용울음 소리를 내며 몸을 꿈틀거렸다. 그러자 허공에 바람이 일고 번개가 치며 십여 장 크기의 거대 녹색 교룡으로 변하더니 머리 위의 녹색 뿔에서 엄청난 기운이 실린 뇌전이 번뜩였다.

    비록 그들 사이에 오간 내용은 듣지 못했지만 한립은 그들의 행동에 흠칫 놀랐다.

    주위의 공간 장벽은 허물어지기 시작했고 진동하며 왜곡되는 것이 언제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녹색 교룡이 몸을 움직이자 머리부터 꼬리까지 꿈틀하며 푸른 빛기둥이 입에서 분출되었다. 교룡의 하나 남은 뿔에서 보라색 뇌전이 빛기둥에 합류해 하나가 되었고 흉흉한 기세로 공간 장벽과 충돌했다.

    동시에 금색 소인은 한 손으로 뒤통수를 만졌고 금빛 빛기둥이 하늘 높이 치솟아 머리 위에 뜬 거검에 흡수되었다.

    빛의 검은 진동했고 몸집이 더욱 커져 태양처럼 밝은 백금색의 빛을 내뿜었다. 소인은 빛기둥을 방출하고는 반 척의 키가 절반으로 줄었지만 몸의 변화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두 손으로 수결을 맺었다.

    거검이 금색 빛줄기로 변해 교룡이 쏘아 보낸 빛기둥과 같은 곳을 노리고 날아가다 중간에서 충돌했다.

    쿠쿠쿵!

    푸른빛과 금빛이 폭발하며 엉켜들었다. 신기하게도 그들의 기운은 몇 장 크기의 거대한 빛구슬로 뭉쳐져 표면에 보라색 뇌전이 번뜩였다.

    빛구슬은 두 사람의 조종을 받아 서서히 공간 장벽으로 스며들었고 그 무서운 기세에 기이한 장벽도 갈라지기 시작했다.

    교룡과 금색 소인이 희색을 드러냈다.

    비취 교룡은 옹 수사를 불러 순식간에 원형의 작은 모습으로 돌아가더니 제자를 데리고 거대한 빛구슬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는 날아가는 와중에도 한립을 돌아보고 서늘한 시선을 보냈다. 그때 한립은 제 자리에 멍하니 서서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교룡은 그가 이미 죽은 목숨이라 생각했고 맑은 용울음 소리를 내고 빛구슬 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한립이 이름을 타 달아날까 경계한 것이다.

    빛구슬은 교룡과 소인의 진원(眞元)의 힘을 융합한 것이라 둘 중 누군가 친히 데리고 나가주지 않으면 통과할 수 없었다.

    금색 소인은 교룡이 먼저 나가는 것을 보고 즉시 금색 기운으로 변해 금 수사를 휘감은 다음 나가려 했다. 그런데 빛구슬 옆에서 작게 천둥소리가 울리고 공간파동과 함께 등에 날개달린 인영이 나타났다.

    그 인영이 어깨를 털자 회색 기운이 금빛 기운을 휘감았다. 소인은 아무런 대비 없이 갑작스런 흡인력에 휘말렸고 곧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달아날 방법이 있다면 저도 같이 데려가 주시지요.”

    목소리의 주인은 한립이었다. 금색 소인이 놀라 한립이 서 있던 자리를 보니 그곳에도 분명 한립이 서 있었다.

    그 ‘한립’은 소인의 시선을 받고 피식 웃더니 비취색 부적으로 변해 흩어졌다. 그것은 뜻밖에도 한립이 줄곧 몸에서 배양하던 화령부(化靈符)였다.

    연허기 수사 두 명이 알아서 공간 장벽을 깨주겠다고 나서는 것을 본 그는 화령부를 사용해 대역을 만들어 놓고 풍뢰시로 조심스레 이동해 빛구슬 인근까지 잠입해 있었다.

    수백 년 넘게 배양한 화령부로 비취 교룡과 금색 소인의 눈을 속인 것이다. 그 덕에 한립은 원자신광을 고약처럼 금색 소인의 둔광에 들러붙게 할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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