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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786화 (543/2,000)

786화. 낙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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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목소리에 다들 깜짝 놀랐지만 곧 가격이 높아지는 것을 즐기기 시작했다. 많은 수사들이 비천옥 중 하나를 지켜보았고, 그곳에는 한립이 여유롭게 앉아 있었다.

“3천 2백만.”

여전히 나른했지만 의아하다는 기색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3천 3백만.”

“……3천 4백만.”

잠시 주저하던 나른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3천 5백만.”

이제 대청 안 수사들도 눈을 부릅떴다. 아무리 진령의 비늘이라지만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것이다. 혼돈만령방 말미에 오른 영보라 해도 이 정도 가격은 못되었다.

“3천 5백만? 흥! 적 수사, 아무래도 상대가 이렇게 많은 영석을 지니고 있을 거라 믿기지가 않습니다. 그저 소란을 피우려는 것은 아닌지 그만한 재산을 지니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나른한 목소리의 주인이 냉랭히 쏘아붙였다.

“노부, 경매가 종료된 후 직접 그리하겠습니다. 허나 그 전에는 경매를 중단할 수 없으니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적 노인도 공감하는 바였지만 담담하게 웃으며 중재했다. 신분을 알 수 없는 두 명의 수사 중 누구에게라도 함부로 밉보일 수는 없었다.

“적 형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저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저분이 3천 5백만에 달하는 담보물을 지니고 있을지 퍽 궁금하군요!”

나른한 목소리의 주인은 열이 받았는지 더는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 그러자 진법 속 숫자가 황금색으로 변한 후 하얀 장포 노인이 진령 비늘 3개를 한립의 소유로 확정했다.

이어 목함을 든 부인과 함께 소매를 휘날리며 한립이 있는 비천옥으로 날아올랐다. 노인의 신형이 석실 앞에 멈췄다.

그가 푸른 영패를 꺼내자 비천옥을 감싼 주술문자들이 몸을 떨며 노인과 수수한 복색의 여인을 안으로 받아들였다. 안에 들어간 적 노인이 하얀 기운에 가려진 한립을 훑으며 포권을 했다.

“보물을 가져왔으니 영석을 치르실 때입니다. 담보물을 제시하신다면 저와 하 수사가 적정가를 산정해 알려드리고, 수사께서 가격이 적정하지 않다 여기시면 다른 두 분을 모셔와 다시 적정가를 산정하게 됩니다.”

하얀 장포 노인은 굉장히 공손했다.

“제가 어찌 적 형과 하 수사의 안목을 믿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두 분께서 감정해 주십시오.”

한립의 시선이 중년 부인이 든 목함에 닿았다. 그는 소매를 털어 미리 준비해 둔 반 척 길이의 커다란 비단함을 꺼내며 미소 지었다.

수많은 보물을 보아왔던 하얀 장포 노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비단함을 받아 열어 보았다.

그윽한 향기가 진동했다.

노인은 비단함의 내용물을 확인하고 격동해 시선을 떼지 못했다.

“후, 만년 영초라니!”

노인이 깊게 숨을 내쉬며 한립을 묘한 시선으로 보았다. 중년 여인도 ‘만년 영초’라는 소리에 눈썹을 치켜 올리고는 가까이 다가와 비단함 안을 확인했다.

우윳빛 빛무리 속에 새하얀 영초가 담겨 있었고, 영초 표면에 주술 문자 같은 문양이 어른거렸다.

“만년 영초! 과연 만년 영초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허나 진위를 가리려면 자세히 관찰해 봐야겠지요.”

신중히 영초를 응시하던 여인이 의견을 내놓았다.

“영초의 감정은 하 수사께 믿고 맡기겠습니다.”

하얀 장포 노인이 안정을 되찾고 굉장히 겸손한 자세로 부탁했다.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고 비단함을 가져가 다른 손으로 가느다란 녹색 옥으로 된 자를 꺼냈다.

한 척 정도 되는 자에는 20가지의 고리가 나선형 문양을 이루며 새겨져 있었다. 눈을 반짝이며 그 녀가 녹색 자로 영초를 가리켰다.

그러자 옥함 속 영초가 발산하는 우윳빛 광채와 닿은 녹색 자가 공명하듯 웅웅 울어대며 나선형 문양이 연달아 빛나기 시작했다.

비취색 빛이 눈을 찔렀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열한 개!’

녹색 빛은 열한 번째 고리까지 밝히고 멈추었고 차분하던 여인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쳤다. 영초를 자세히 관찰한 그녀는 확신했다.

“만년 영초가 확실합니다. 게다가 1만 1천년 가까이 된 설교초(雪蛟草)입니다. 설교초 자체가 진귀한 영초라 다른 만년 영초에 비해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제 생각에는 얼추 영석 7백만 개 정도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영석 7백만 개요. 흠, 노부의 생각도 비슷합니다만 수사께서는 적정가라고 생각하시는지요?”

하얀 장포 노인이 곰곰이 생각해 보고 고개를 돌려 한립에게 물었다.

“이의 없습니다. 그럼 이것들을 가져가시지요. 제가 부른 값은 충분히 할 것입니다.”

한립의 손목에서 푸른빛이 반짝이고 네 개의 옥함이 더 나타났다. 하얀 장포 노인이 손짓해 옥함들을 끌어들인 다음 하나씩 열어보았다.

이번에는 아무리 진중한 성격의 노인이라고 해도 입 꼬리를 실룩이지 않을 수 없었다.

“전부 만년 영초 아닙니까!”

“왜 그러십니까. 귀 점에서 매매할 수 없는 수량은 아니겠지요.”

놀라 소리를 높이는 노인을 보고 한립이 미소 지었다.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하얀 장포 노인도 그제야 웃으며 놀란 기색을 감추었다. 중년 부인이 반신반의하며 옥함의 영초를 하나씩 엄밀히 조사했으나 전부 만년 이상 자란 만년 영초였다.

사실 만년 영초는 진령 비늘 등의 지보(至寶)만큼 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화신기 영단의 주재료와 보조 재료로 쓰임새가 다양해 고계 수사들 사이에서는 가장 수요가 높은 물건이었다.

진귀할 뿐 아니라 가장 빠르게 팔리는 상품이라 어떤 상점도 거절하지 않을 물건이었다.

“영초들은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진령 비늘 세 개가 담겨 있으니 수사께서도 꼼꼼히 살펴보시지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힐끗 그를 보던 하얀 장포 노인이 웃으며 비단함을 건넸다.

“그러겠습니다. 음, 좋군요. 물건에는 문제가 없는 듯합니다.”

한립이 비단함을 불러들여 확인하고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얀 장포 노인은 이렇게 많은 만년 영초를 내놓은 자가 궁금했을 법도 한데도 물건을 거래하자마자 술법을 펼쳐 중년 여인과 석실에서 나와 무대로 돌아갔다.

적 노인과 하 수사가 돌아오는 것을 본 수사들은 진령 비늘의 거래가 완료 되었는지 알고 싶어했다.

“모두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물건은 순조롭게 인계하였으니까요. 자, 그럼 다음 보물의 경매로 넘어 갑니다. 이번 물건은 혼돈만령방에 오른 영보로 그 가치는 진령 비늘 이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통천령보 평해과(平海戈), 시작가 2천만입니다.”

하얀 장포 노인은 한립에 관한 일을 더는 언급하지 않고 바로 다음 경매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얼굴에 붉은빛이 도는 노인이 걸어 나와 저물탁에서 남색의 짧은 과(戈)를 꺼냈다. 끝이 ‘ㄱ’자로 휘어져 있는 창이었다.

보물의 등장에 대청 안 분위기가 들썩였고 노인이 영보의 불가사의한 신통을 펼쳐 보이자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그러나 한립은 검은 비늘을 들고 신경을 집중하느라 통천령보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

짧은 과 형태의 통천령보는 3천 5백만이라는 가격에 낯선 수사에게 넘어갔다.

이제 경매의 마지막 물품이 등장 할 때였다.

“이번 물건은 인요 양족에서 이름을 날리셨던 합체기 후기 선배님의 주 수련 공법입니다. 허허, 이분의 이름을 아는 분이 많지 않겠으나 ‘대주천멸절신침(大周天滅絶神針)’이란 신통은 대부분 들어 보셨겠지요?

이종족과의 전투에서 수차례 빛을 발했던 신통이라 다양한 판본의 수련법이 유행했었고, 심지어 요족에서도 이 비술을 익히는 수사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오늘 보여드릴 것은 음양화극결(陰陽化極決)로 ‘오령진군’ 선배님이 상고 시대 때 친히 창립하신 최초의 공법 판본으로 역시 대주천멸절신침 신통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는 노부가 굳이 더 말씀드리지 않아도 다들 아실 것입니다. 이 공법이 더욱 놀라운 점은 수련을 하면 체내의 오행 속성을 임시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지요. 다만 공법을 익히는 조건이 꽤 까다롭습니다. 일단, 수련하는 이의 수행이 더도 덜도 말고 딱 원영기 혹은 화신기 정도여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오행영근을 지녀야 대성할 수 있지요. 다른 자잘한 조건들도 있지만 극복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공법은 두말할 것도 없이 완전하고 낙찰 받으시는 분은 금액을 치르기 전에 직접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미리 당부 드리자면 이 공법의 위력이 대단한 것은 사실이지만 역대로 이것을 수련했던 수사들 중 오령진군 선배님만이 합체기에 이르렀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다른 수사들은 수련법이 옳지 않았는지 아니면 자질이 떨어져서인지 대부분 화신기에 머물렀고 연허기에 진입한 수사도 손에 꼽혔지요. 아마 그들의 운이 따라주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그렇지 않고서야 오령진군 선배께서 이 공법에 의지해 합체기에 이르셨을 리 없으니까요.

좋습니다, 이제 음양화극결(陰陽化極決)의 장단점에 대해 대충 설명이 끝난 것 같군요. 관심이 가는 수사께서는 가격을 부르시면 됩니다. 최저가 2천만, 백만 단위로 올리실 수 있습니다.”

하얀 장포 노인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설명을 마쳤고 문인 차림의 중년인이 저물탁에서 목함을 하나 꺼내 안에 담긴 금빛 찬란한 옥간을 선보였다.

대주천멸절신침이 유명한 신통이었던지 비천옥에 앉은 많은 수사들이 눈을 빛내며 흥분을 드러냈다. 수련 조건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어차피 경매의 참가 조건 자체가 화신 이상이었고 오행영근을 지니는 것은 연허기에 이르는 데도 중요했기에 이 공법을 익히지 않더라도 대부분이 부족한 오행영근을 메워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 중 몇이나 오행영근을 갖출 수 있을지는 하늘만이 알 것이다.

그러나 하얀 장포 노인이 언급한 단점에 마음을 돌린 이들도 많았다. 그 중 한 명은 한립이었다. 음양화극결이 대단한 공법이라도 수련하기가 극히 어렵다면 굳이 수련할 이유가 없었다.

위력 자체로는 법체쌍수를 지향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아서였다. 또한 시작가가 2천만이라니 얼마나 오를지 상상할 수도 없었다.

‘계록이 될지도 모를 공법을 얻으려 경쟁할 이유는 없지.’

그러나 어려운 공법이라도 익힐 수 있다고 자신하는 수사들이 적지 않은 것 같았다. 2천만으로 시작한 가격이 이미 엄청난 숫자로 치솟고 있었다.

조금 지나 냉랭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4천만!”

듣기만 해도 어안이 벙벙해지는 금액이었다. 가격을 부른 이는 바로 한립과 진령 비늘을 두고 경쟁했던 나른한 목소리의 주인이었다.

너무 높은 가격에 화신기 수사뿐만 아니라 관심을 보이던 연허기 수사 몇 명도 입을 다물었다.

‘도대체 누구야?’

다들 고액을 척척 부르는 그 자의 신분을 궁금해 하고 있었다. 한립도 가격을 듣고 놀랐지만 어차피 상관없는 일이기에 깊이 신경 쓰지 않았다.

이렇게 공법이 고가에 낙찰되며 경매가 끝났다.

하얀 장포 노인이 경매 종료를 선언한 순간, 뜻밖에도 비천옥 안의 금제가 발동해 한립을 어딘가로 전송해 버렸다. 도착한 곳은 건물 내부의 통로 속이었고 영기의 빛이 반짝이며 다른 수사들도 연이어 전송되어 왔다.

다들 은색 기운에 둘러싸여 서로의 정체를 볼 수 없었다. 한립은 다른 이들은 개의치 않고 성큼성큼 태현전 대문을 걸어 나갔다. 경매도 끝났겠다, 석탑으로 돌아가지 않고 천연성 시가지를 떠나 자신의 동부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다음 번 순찰이 반년 정도 남았으니 그 전에 필요한 영초들을 키워내 옥청단을 제련해야 했다. 단약만 모자람 없이 제공된다면 한동안은 걱정 없이 수련에 매진할 수 있을 것이다.

묵기린 비늘 세 개는 일단 보류하고 규수진령단을 만들 수 있을 지 한동안 연구해볼 생각이었다. 역천의 영약은 수련 고비를 넘기는 데 꼭 필요한 것이라 아무렇게나 조급히 시도할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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