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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782화 (539/2,000)

782화. 악객(惡客)

*

두 개의 나뭇가지를 보며 한립은 생각에 잠겼다.

돌연 그가 눈을 빛내더니 한 손가락으로 그중 하나를 베어냈다. 금빛이 번뜩이며 하얀 뇌전 속에서 가지가 또다시 둘로 갈라졌다.

이번에는 미리 준비한 대로 의식을 조종해 그중 하나를 눈앞에 두고 은백색 단면을 관찰했다. 한립은 명청령안의 눈으로 절단면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주시했다.

똑같은 은백색이었지만 뇌전 가닥이 만들어낸 문양은 처음과는 완전히 달랐다. 잠시 후 나뭇가지의 절단면이 비취색으로 뒤덮였다.

한립은 천천히 눈을 감고 무언가를 반복해서 헤아려보았다.

그는 연달아 손가락을 튕겨 잘라낸 나뭇가지를 또다시 잘라냈다. 그리고 새로운 뇌전 문양이 나올 때마다 자세히 살펴보고는 또다시 다음 가지를 잘라냈다.

순식간에 나뭇조각 절반이 무수히 많은 조각으로 갈라져 땅에 흩날렸다.

‘이건!’

그 모습을 보고 무언가 깨달은 그는 이번에는 온전한 나머지 반쪽을 향해 미세한 검빛을 내뿜었다. 그러자 은빛이 반짝이며 나뭇가지가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 자세히 살펴보니 검기의 분출이 이어지자 뇌목 절반이 얇은 종이처럼 잘려나갔다.

그런데도 뇌목의 잔해는 안정적인 형태를 유지했고 뇌전의 힘은 바깥으로 터져 나오지 않았다.

한립은 한 손을 들어 하얀 옥간을 들었다. 그리고 조금 전 단면에서 보았던 것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기록했다.

잠시 후 한립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기억력이 좋다 해도 단번에 이렇게 복잡하고 세밀한 문양을 전부 기억해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뇌전 문양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뇌전 문양을 보는 순간 그것이 뇌목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립은 그 자리에서 목석처럼 움직이지 않고 하루를 꼬박 보냈다.

콰과광! 쿠르릉 꽈광!

그러다 갑자기 눈썹을 꿈틀하더니 열 손가락을 튕겼다. 금빛 뇌전이 줄줄이 튕겨나가 쪼개졌고 수많은 뇌전의 실로 변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한립은 주술을 읊으며 열 손가락을 쉼 없이 움직여 허공을 찍어댔다. 그리고 뇌전의 실들이 움찔하며 응결해 허공에서 쾌속으로 도안을 만들어냈다. 희미했지만 한립이 기억했던 뇌전 문양 중 하나와 똑같은 모양이었다.

뇌전 모양이 완성될 무렵 금실로 짠 것 같은 특수한 물체가 부북! 하며 터져나갔다. 그리고 폭죽이 터지듯 조그만 폭음을 내며 사라졌다.

그러나 한립은 실망스럽기 보다는 흥분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의 생각이 맞았기 때문이다. 조금 전 금색 뇌전 모양이 형태를 잡으려 하자 금색 천에서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안타까운 것은 자세히 알아보기도 전에 뇌전 실의 조합에 미세한 착오가 생겼다는 것이다.

쿠르릉 콰광!

그가 호흡을 고르며 두 손을 합장해 굵은 금색 뇌전을 다시 튕겨냈다. 그러자 굵은 뇌전은 수많은 금색 뇌전의 실로 변했고 빽빽하게 떠오른 실의 수량은 이전보다 더 많아졌다.

한립의 의식에 따라 뇌전 실들은 잘린 뇌목 단면에 나타난 문양모양으로 짜여갔다. 그러나 미세한 조종이 어려워 연달아 실패했고 그때마다 완성을 앞둔 금색 천은 터져나갔다.

7번의 시도 끝에 금빛 찬란한 손수건이 허공에 떠서 꼼짝하지 않았다. 손바닥 만한 크기의 천 조각은 그 중간에 뇌전 문양이 있어 신비롭게 반짝였다.

가만히 그것을 보던 한립이 눈을 반짝이며 손수건을 불러들였다. 손수건은 굉장히 부드러워서 진짜 비단실로 만든 것보다 더욱 매끄러웠다. 한립이 금색 손수건을 문지르며 살펴보다가 갑자기 그것을 허공에 던져 법결을 쏘아 보냈다.

꽈광!

손수건이 금빛으로 변해 그의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았고 나지막한 벼락 소리가 울려 펴졌다. 그리고 천이 갈라지며 금빛 속에서 허상처럼 뇌전 문양이 떠올랐다.

투명한 뇌전 문양에서 거대한 영기의 압력이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뿜어져 나왔다. 바로 조금 전 느꼈던 신비한 힘이었다.

‘이럴 수가!’

한립은 허공에 만들어진 금색 문양을 보고 더없이 흥분했다. 아직 법결로 뇌전 문양을 격발하지도 않았는데 함유한 영기의 강대함이 손수건 자체가 갖고 있는 벽사신뢰의 10배 이상이었다.

만일 이 힘을 공격으로 돌린다면 석실을 보호하고 있는 금제도 견디지 못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그가 허공의 뇌전 문양을 향해 손짓했다.

꽈광!

금빛 문양이 빛을 번뜩이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 그의 손으로 내려왔다. 이후 한립은 다시 금빛 뇌전을 분출해 두 번째 뇌전 문양을 응결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연달아 실패했지만 곧 또 다른 뇌전 문양을 얻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손수건이 아니라 금빛 찬란한 둥근 구슬이었고 표면에 뇌전 문양이 희미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한립은 손을 뻗어 구슬을 쥐고 두 가지 문양의 차이점을 면밀히 살폈다. 그리고 잠시 후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입에서 은색 화염 한 덩이를 뱉었다. 그리고 수결을 맺자 화염이 맑게 울며 펑! 하고 터져 무수히 많은 은색 꽃잎처럼 나풀거렸다.

한립이 주술을 읊어 의식으로 휘감자 은색 불똥들이 가느다란 불 실로 변했다.

쾅!

그런데 가는 실로 무언가 만들어 보려는데 겨우 절반 가량 진행되고는 폭발해 다시 은색 화염 덩어리로 돌아갔다.

은색 불덩이는 불새로 변해 한립의 몸 안으로 다시 날아들어 사라졌다.

그는 다시 본연의 법력을 응결해 푸른 영기의 실을 만들어 같은 일을 반복했다. 그 결과 서령천화와 마찬가지로 술법이 중간에 이르자 스스로 흩어져 버렸다.

이에 한립은 더 이상 시도하지 않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분명 두 가지의 신비한 힘이 같은 곳에서 출발했는데 확연히 달랐다.

손수건의 뇌전의 힘은 안정되고 정순했지만 구슬 속 뇌전의 힘은 난동을 부리기 일보 직전의 불안정한 상태였다.

한립이 두 가지 뇌전 문양을 두고 한참을 고심하다 점차 입 꼬리가 올라갔다. 그의 추측대로라면 이 뇌전 문양들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기묘한 주술 문자로 각각의 문양이 독자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은과문 같은 선가(仙家)의 문자와 비슷한 존재일지도 몰랐다. 한립은 뇌전 문양이 만든 물건들을 옥함에 담고 금제 부적을 몇 장이나 붙인 후에 옥간과 같이 저물탁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남은 시간에는 의식을 거둬들인 후 눈을 감고 휴식에 들어갔다.

*     *     *

사흘째 아침.

한립은 밀실의 금제를 풀고 석문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의식을 전당 전체에 퍼트려 훑었는데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슬쩍 기울인 한립은 미간이 좁아졌으나 걸음을 늦추지 않고 대청으로 향했다. 통로를 빠져 나오기도 전에 사내가 정신없이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허 선자, 내기에서 졌으면 결과가 어떻든 승복해야 할 게 아닌가. 제자의 구혼을 받아들여야겠지?”

그의 웃음소리는 쇠를 긁는 소리처럼 매우 듣기 싫었다. 한립은 차분히 통로를 나서 대청 안의 상황을 살폈다.

안에는 네 명이 서로 대치하듯 마주 서 있었는데, 그중 한쪽에 서 있는 수사는 얼굴이 창백해진 허 선자와 벽안 거한 탁충이었고 그들과 대치하고 있는 자들은 검은 장포를 입은 사내들이었다.

한 명은 가늘고 긴 얼굴에 세모꼴 눈 모양의 청명갑을 입은 노인이었고, 다른 한 명은 왜소한 체격에 얼굴 전체에 마맛자국이 있는 중년 난쟁이였다.

지금 큰 소리로 웃어대는 자는 바로 세모꼴 눈을 지닌 노인이었다.

“한 선배님!”

한립이 대청에 나타나자 벽안 거한이 반갑게 다가와 예를 취했다. 허 여인도 그를 보곤 얼굴에 희색이 스쳤다.

“당신이 새로 온 한 수사시군요!”

노인의 웃음소리가 뚝 끊기고 뜻밖이라는 듯 한립을 훑었다. 그와 동시에 한립도 의식으로 노인이 화신 중기 수사라는 것을 알아차렸기에 눈썹을 꿈틀했다.

“두 분은 누구신데 이곳에서 소란을 피우시는 것입니까.”

‘나보다 수행도 낮은 녀석이 감히!’

한립의 목소리가 냉랭하자 세모꼴 눈을 지닌 노인은 화가 났다. 그러나 한립이 비승수사라는 것을 떠올리고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노부 27소대 대장 황포라 합니다. 귀 전을 찾은 것은 허 선자와 잠시 나눌 말이 있어서이니 수사는 나서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저와 무슨 할 말이 있으시다는 것입니까? 이 일은 본래 선배님의 제자와 저 사이의 일입니다. 갑자기 이리 찾아오신 것은 후배를 힘으로 압박하는 것이 아닌지요.”

“허 선자, 내 제자와의 약조를 지키지 않을 셈인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는 없었던 것으로 아는데. 수사도 능력이 된다면 마음껏 도움을 구하게. 약조를 지키지 않겠다면 허 씨 가문에도 화가 미칠 것이야.”

세모꼴 눈의 노인이 독사처럼 여인을 노려봤다.

“제 일은 허 씨 가문과 무관합니다. 선배님, 무고한 이들을 끌어들이지 마시지요.”

“어찌 연관이 없다는 게지. 당초 자네와 내 제자가 내기를 할 때 허 씨 일족이 증인을 선 것으로 아는데. 수사가 이제와 약조를 어기겠다면 당연히 증인들을 찾아가 따져볼 생각이네.”

노인의 말에 허 선자는 얼굴이 창백해져 시선을 한립에게 돌렸다. 말은 안했지만 사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곁에서 지켜보던 벽안 거한은 그저 유감스럽다는 얼굴이었다.

“무슨 약조입니까?”

한립이 코를 긁적이며 차분히 물었다.

솔직히 말해 허 여인이 빙백선자의 후예만 아니었어도 묻지 않았을 것이다. 이 상황에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은 이 일에 관여하겠다는 뜻이었다.

그가 나서자 노인의 안색이 약간 달라졌다.

“제가 허 선자께 구혼했었습니다. 허 선자는 빙정검의 기묘한 한기를 자신했는지 제 본명법보가 빙정검에 맞고도 얼음 덩어리로 변하지 않는다면 구혼을 받아들이기로 약조했지요. 그런데 제가 해내자 약조를 지키지 않고 이곳으로 숨어버린 것입니다.”

왜소한 사내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말했다.

“정말 그런 것인가?”

한립이 이번에는 허 여인에게 물었다.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본명법보에 무슨 수작을 부리지 않고서는 겨우 원영기 초기 수사가 어찌 제 일격을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허 선자는 내키지 않는 기색으로 답하면서도 노여워했다. 노인은 별 말 하지 않았지만 세모난 눈에 득의양양한 기색이 느껴졌다.

“원인이 어찌 되었든 빙정검이 제 녹파인(綠波刃)을 얼리지 못한 것은 명명백백한 사실입니다. 이건 선자께서도 인정하실 겁니다.”

왜소한 사내가 실실 웃어대자 허 선자는 서릿발 같은 눈빛으로 쏘아보며 입을 다물었다.

“그런 일이 있었는가? 허나 나도 허 선자의 빙정검이 자네의 법보를 얼리지 못했다는 것을 믿지 못 하겠군. 그럼 내 앞에서 다시 해보게! 황 수사, 이 일이 사실이라면 저도 관여치 않겠습니다. 허나 그게 아니라면 제자를 데리고 이곳에서 나가주십시오. 이곳은 56대 전당이지 27대가 있을 곳이 아니니 말입니다.”

한립의 눈초리가 매서워졌고 분위기가 급격히 싸늘해졌다.

“선배님, 그것이…….”

“그렇게 합시다. 다만 한 수사는 자신이 한 말은 꼭 지켰으면 좋겠습니다.”

허 선자가 놀라 무어라 말하려는데 노인이 흔쾌히 제안을 수락했다. 그도 한립의 신분이 꺼려져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원한을 사고 싶지 않았다.

왜소한 사내가 즉시 입에서 녹색 비도를 분출하곤 비릿하게 조소했다. 비도는 영기의 빛이 눈을 찌를 듯해서 한눈에 보기에도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한립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남색빛이 일렁이는 눈으로 비도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녹파인이란 비도는 비교적 약한 힘과 강대한 힘이 공존하며 두 가지 완전히 다른 영기의 힘을 품고 있었다.

‘과연 수작을 부려놨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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