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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781화 (538/2,000)
  • 781화. 천뢰가 만들어낸 나무

    *

    호기심에 물건을 살피던 한립이 의식으로 그것들을 훑었다.

    나뭇가지는 나무 속성의 영기는 희박했지만 오히려 강렬한 벼락 속성의 영력이 충만해 꼭 뇌전을 응결해 놓은 나무 같았다. 보기만 해도 예전의 천뢰죽이 연상되는 물건이었다.

    핏빛 수정석은 피비린내가 나는 것이 어떤 짐승의 내단 같았는데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잠시 나뭇가지에 관심을 보이던 한립은 곧 조용히 자리를 옮겨 다른 노점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한기를 내뿜는 검은 광석을 앞에 깔아둔 요족이 앉아 있었다.

    이런 식으로 한립은 천천히 걸어가며 하나씩 노점을 살폈고 간혹 흥미가 일면 걸음을 멈추고 상세히 관찰을 했다.

    그는 시종일관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노점의 주인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빠르게 노점들을 돌아본 한립은 조금 실망했다.

    다들 진귀한 물건을 내놓고 있었지만 마음을 끄는 것은 없었다. 몇 가지는 만황에서 유래한 것으로 아주 희귀했지만 특수한 용도가 정해진 물건이었다.

    한립이 이제 태현전을 나설까 고민하는 찰나 누군가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한립이 순간 뒤를 돌아보자 검은 기운이 어른거리며 걸음을 멈추었다. 마치 한립의 너무 빠른 반응에 의아해한 듯했다.

    검은 기운으로 둘러싸인 호리호리한 체형의 요족이 한립을 위아래로 훑었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마음에 차는 물건을 구하지 못하셨나요?”

    “예, 그렇습니다. 수사께서는 어째서 이런 것을 묻는 것입니까.”

    “태현전에 처음 오셨군요. 정말 좋은 물건은 이곳에 드러내놓지 않고 각자 비밀리에 거래한답니다.”

    요족 여인이 차분히 설명했다.

    “어째서 그런 것입니까? 공개적으로 거래하면 서로 거래 상대를 구하기 쉬울 텐데요.”

    “정말 몰라서 그러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너무 귀한 물건을 대놓고 거래하면 아무리 차광패(遮光佩)와 미운번(彌雲幡)으로 가렸어도 다른 이들의 이목이 집중되기 마련이지요. 게다가 그런 물건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남들이 모르게 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래서 거래를 할 것입니까 말 것입니까?”

    요족 여인이 조금 성가셨는지 어투가 약간 냉랭해졌다.

    “제가 원하는 물건을 지니고만 계시다면 거래할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수사께서는 어째서 저를 찾으신 겁니까?”

    한립이 제안에 응하며 반문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모든 노점을 돌며 자세히 살핀다는 것은 천연성에 온 지 얼마 안 된 인물이라는 뜻이지요. 그리고 수행이 제한되었어도 자세히 살피면 수사가 화신기 수행을 지녔다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거래하기 적당하다 생각했고, 사실 수사 말고도 이미 여러 사람에게 거래할 마음이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이제 됐으면 갖고 있는 물건 중 요족 수사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말해보시지요. 저는 제 것 외에도 다른 요족 수사들의 부탁을 받은 것도 여럿 지니고 있으니 거래할 만할 것입니다.”

    요족 수사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 말에 한립은 입 꼬리를 끌어올리며 미소 지었다.

    “적당한 물건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수사께서 먼저 어떤 물건이 있는지 귀띔해 주시는 것이 어떨지요?”

    “흥, 저는 영약이나 재료, 인족의 보물, 고보 등 없는 게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요족 여인도 냉소했다.

    “완성품은 됐고 제가 필요한 것은 재료입니다. 수사의 수중에 진섬수의 피가 있다면 거래하고 싶습니다.”

    “진섬수의 피라, 원하는 것이 까다로운 분이군요. 그것은 우리 요족에게도 쓸모가 큰 물건이라 아무도 태현전에서 거래하지 않습니다만.”

    요족 여인이 움찔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이런 것은 어떻습니까. 5천 년 이상 된 황금초(黃金草)…….”

    한립은 여인의 조소에도 개의치 않고 단약을 제조하는데 부족한 다른 재료들을 하나둘 읊어나갔다.

    그러나 요족 여인은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얼굴이 구겨졌고, 한립이 말을 마치자마자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여기서 그런 것들을 거래할 생각은 접는 것이 나을 겁니다. 수행을 높여주는 단약의 주재료는 대부분 만황세계에서나 구할 수 있는 것들이에요. 우리 요족도 똑같이 없어서 못 구하는 것들이라고요. 있다고 해도 인족과 거래하겠습니까?”

    “성급히 거절하실 일은 아닙니다. 저는 이런 영초들의 씨앗이나 혹은 묘목도 고가로 매입할 생각이니까요.”

    한립은 크게 실망하지 않고 여유롭게 덧붙였다.

    “……그렇다면 구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지금은 없어요.”

    “수사께서 구할 수만 있다면 다시 와서 거래할 수도 있습니다.”

    “음, 저도 시도는 해보겠다는 거예요. 만황세계에서 나는 영초는 종자나 숙성이 덜 된 것도 희귀하니까요. 그런데 수사께서는 어떤 물건으로 거래하실 거죠? 영석으로 교환하려는 거라면 됐어요. 고계 영석도 부족함이 없어서요.”

    요족 여인이 오만한 어투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한립은 무표정하게 입술만 달싹거렸다.

    “뭐라고요? 정말 만년 영초를 지니고 있는 건가요?”

    “제게 필요한 것들만 구해주신다면 그런 수준의 영물로 거래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게 있다면 어째서 단약을 제련하지 않고 저와 거래하려는 하죠?”

    기뻐하던 여인이 의심스럽다는 듯 물어왔다.

    “그건 제 사정이니 대답해 드릴 수 없습니다. 거래하고 싶다면 제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모아오시면 됩니다. 이것은 계약금 같은 거라고 여겨 주시지요.”

    한립이 손으로 저물탁을 스쳐 반 척 길이의 목갑을 꺼내 던져주었다. 검은 기운 속 요족 여인이 복잡한 표정으로 목갑을 받아들고는 살짝 뚜껑을 열어 그 틈으로 의식을 넣어 살폈다.

    “아! 이걸 정말 계약금으로 걸겠다는 말씀인가요? 제가 이걸 들고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요.”

    “겨우 3천 년 영약에 불과합니다. 첫째, 수사의 수행에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을 거라 믿고 있습니다. 둘째, 이건 제가 수사와 진심으로 거래할 마음이 있다는 성의 표시입니다. 제가 찾는 물건만 구해주시면 약속한 영약을 내드릴 수 있다는 증거이고요.”

    “알겠어요. 하지만 당신이 찾는 것들을 단시간 내에 구하리란 보장은 없어요. 몇 년 만 시간을 주시면 두세 가지 정도는 구해드리겠습니다.”

    여인도 사양하지 않고 목함을 거둔 다음 자신 있게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좋은 소식 기다리지요.”

    한립은 내심 기꺼워하며 포권을 했다. 그에게 몇천 년 영초는 별것도 아니었으니 상대의 신뢰를 얻기 위해 내주어도 상관없었다. 게다가 만년 영초를 얻기 위해서라면 상대는 최선을 다해 거래 물품을 찾으려 노력할 것이다.

    요족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 곳을 떠났다.

    한립이 눈을 가늘게 뜨고 여인의 뒷모습을 보다가 역시 몸을 돌려 걸어갔다. 이대로 대청을 떠나는가 싶던 그는 첫 번째에 있는 노점을 지나며 멈칫 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시선이 녹색 나뭇가지에 닿은 것이다.

    “이 물건의 내력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한립은 질문을 하며 한 손으로 녹색 나뭇가지를 빨아들여 만져보았다.

    “내력 말입니까? 말라 죽은 영목에 벼락이 내려쳤고 그 후에 싹이 나는 것을 제가 직접 보았습니다. 그것의 가지인데 구체적인 용도야 저도 모르지요.”

    “천뢰가 만들어낸 나무라! 흥미롭군요.”

    한립은 계속해서 나뭇가지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허허, 신기한 일이기는 하지요. 솔직히 말하면 이게 함유한 벼락의 힘이 너무 세서 체내에 넣고 연화시키거나 재료로 쓰기에는 힘들 겁니다. 그래서 요족 수사들이 혹시 관심을 보일까 가져와 봤지요. 그런데 이게 마음에 드신 모양입니다?”

    노인이 그를 보며 씨익 웃었다.

    “아, 그건 상관없습니다. 저도 뇌전의 힘을 다루는 터라 그냥 호기심이 든 것이니까요. 그래서 어떤 물건과 거래를 원하십니까?”

    한립이 뇌목(雷木)을 갖고 놀며 차분히 말했다. 그러자 하얀 기운 속 노인이 멈칫하며 그를 훑었다.

    “이 뇌목의 용도는 모르지만 그래도 천뢰가 만들어낸 영목이니 상당한 가치가 있겠지요! 노부가 최근 건원단을 제련하려 하는데 종류에 상관없이 5천 년 된 영초가 필요합니다. 수사가 아무 거나 한 뿌리만 내어주신다면 영목과 교환하지요. 아니면 최상급 영석이나 비슷한 가치의 물건으로 거래 하겠습니다.”

    “수사께서는 제가 영초를 지닌 것을 어찌 아셨습니까?”

    상대의 탁한 목소리를 들은 한립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너무 놀랄 것 없습니다. 보잘 것 없는 재주지만 노부가 후각이 다른 사람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방금 그 요족 여인과 거래하며 내준 목갑에서 새어나온 냄새를 맡고 혹시나 한 것이지요. 그게 아마도 3천 년 정도 자란 영초였지요? 그런 것을 내줄 정도면 5천 년 이상의 영초를 지니고 있을 가능성도 클 테니까요.”

    노인의 말에 한립이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듣기로 불문에는 수사의 오감을 발달시키는 강력한 신통이 전해진다고 했다. 전설 속의 타심통(他心通), 천리안(千裏眼), 순풍이(順風耳) 등 같은 것 말이다.

    아마 그의 명청령안도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 것들과 궤를 같이할 것이다. 속으로 상대의 말에 진위를 따져보던 한립이 표정을 풀고 담담히 말했다.

    “그러셨군요. 수사께서 필요하신 영초가 마침 제게 하나 있기는 합니다. 쓸 만한지 확인해 보시지요.”

    한립은 굳이 흥정할 생각 없이 한 손을 뒤집어 목함을 꺼내 던졌다. 노인은 상대가 단번에 거래에 응할 줄 몰랐는지 잠시 놀라다가 희색을 드러내며 목함을 받았다.

    그는 아주 잠깐 목함을 열어 힐끗 보고는 바로 닫아버렸다.

    “아주 좋습니다. 딱 노부가 필요한 5천 년 된 영초입니다.”

    한립은 노인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고 곧 그 앞에 있던 나뭇가지가 흐릿해지며 사라졌다. 한립은 포권을 한 후 말없이 몸을 돌려 걸어갔다.

    ‘여우같은 늙은이 앞에서는 말은 적을수록 좋겠지.’

    태현전을 나온 한립은 시장의 다른 골목도 돌아보았지만 그의 눈에 들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몇 시진 후에 그는 청석 거탑으로 돌아갔다.

    소대가 머무는 전당 안 밀실에 들어온 한립은 석문에 법결을 던져 금제를 발동했다. 그러고도 안심이 안 되는지 각양각색의 빛을 쏘아 보냈고 그 빛은 밀실 네 귀퉁이로 종적을 감췄다.

    수결을 맺어 하얀 기운의 빛의 장막이 돌벽 위에 피어올라 투시에 대비했다. 그제야 한립은 마음 놓고 방석에 앉아 한 손을 털어 반 척 길이의 뇌목을 꺼냈다.

    손가락 굵기의 비취색 나뭇가지의 표면에는 소용돌이 같은 미세한 문양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 그는 그것을 눈으로 보려하기 보다는 손끝으로 가지를 매만지며 눈을 감았다.

    나무껍질 안 뇌전은 실로 흉포해서 이런 형태로 응결되어 있는 것이 신기했다.

    한립은 남색빛으로 나뭇가지에 천천히 영력을 주입하려 했다. 그러나 영력이 들어가자마자 나뭇가지가 가볍게 진동했고 반탄력에 의해 영력이 튕겨나갔다.

    그의 손이 점점 더 진한 푸른빛으로 물들어갔다. 그러자 나뭇가지가 진동하며 희미한 하얀 빛이 떠올랐는데 푸른빛이 흔들리는 것이 두 힘이 서로 밀어내는 것처럼 보였다.

    웅!

    시간이 흐르자 두 빛이 미약하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미간을 좁힌 한립이 손을 거두어 푸른빛을 흩어 버렸다.

    계속 대량의 영력을 흘려보내면 강제로 주입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면 나뭇가지도 폭발해 훼손될 것이다. 경험이 풍부한 그가 그런 난폭한 방법으로 분석할 리 없었다.

    쾅! 콰쾅!

    나뭇가지가 놓인 그의 손바닥에서 연달아 천둥소리가 울렸고 금색 뇌전의 실이 떠올라 나뭇가지를 순식간에 감쌌다. 금빛 뇌전이 계속 튕겼지만 나뭇가지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러나 한립은 조금도 낙담하지 않았다.

    “이렇게 쉽게 용도를 알아낼 수 있으면 그 노인이 이렇게 팔아치우지도 않았겠지.”

    휙! 하고 나뭇가지를 허공에 던진 그가 손끝을 튕겼다. 그러자 금빛 한 줄기가 번뜩이고 날아가 나뭇가지의 중간을 갈랐다.

    츠츳!

    벼락 소리와 함께 하얀 뇌전이 번뜩이며 나뭇가지가 가볍게 두 동강이 나서 떨어졌다. 한립이 한 손을 뻗어 그것들을 끌어들였다.

    힐끗 보니 단면이 은백색이었는데 명청령안의 눈으로 살펴보자 은백색 표면에는 놀랍게도 무수히 많은 가느다란 뇌전이 규칙적으로 엮여 괴상한 문양을 이루고 있었다.

    너무 세밀하고 복잡해 명청령안이 아니었다면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별안간 잘린 단면에 은색 뇌전이 번뜩이고 비취색으로 덮이며 두 개의 독립된 가지가 되었다.

    이에 한립은 조금 놀랐다. 그도 뇌전을 통제하고 응결해 형태를 만들어내는 것은 전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가느다랗게 만들어 조직을 구성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뭇가지를 이룬 뇌전은 벽사신뢰로 만든 뇌전그물이나 뇌전구슬 보다 훨씬 고명한 수준이었다. 이렇게 만들려면 뇌전을 조종하는 의식이 얼마나 고강해야할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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