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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779화 (536/2,000)

779화. 만수인(蠻獸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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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가 옅은 초록색 괴인은 짐승 가죽으로 하반신만 겨우 가린 대머리였다. 얼굴은 사람의 형상을 지녔지만 감정이 담기지 않은 두 눈은 보는 사람의 모골을 송연하게 만들었다.

더욱 이상한 일은 팔짱을 낀 괴인의 두 다리가 거대 짐승과 연결되어 있어 마치 한 몸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만수인(蠻獸人)입니다. 어서 죽여 인수합일(人獸合一)을 못하게 막아야 해요!”

괴인의 모습을 확인한 마 수사가 독사라도 본 것처럼 놀라 소리쳤다. 이에 다른 대원들도 ‘만수인’이라는 소리에 눈을 부릅떴다. 그들은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자(尺), 도장(印), 깃발(幡)들 다양한 형태의 고보를 꺼내 형형색색의 빛을 뿜어내며 발동시켰다.

영기의 빛은 괴인과 거대 짐승을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그들은 만수인이란 이종족을 굉장히 경계하는 듯 했다.

그러나 벽안 거한 등 대원들이 답답한 것은 뜻밖에도 한립이 나서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만수인의 위장을 꿰뚫어 보고는 뒷짐을 지고 알아서 하라는 태도를 보였다.

‘왜지?’

대원들은 당황스러웠지만 아래쪽 괴인의 반격에 이유를 물을 겨를도 없었다.

크케케케.

괴인의 입에서 기괴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더니 노란 돌풍이 다시 나타나 위로 솟구쳤다. 동시에 괴수의 몸은 비취색 빛을 머금었고 몸 아래에서 수십 개의 촉수들이 자라났다.

살집이 두툼한 촉수들이 마구 움직이며 녹색 그림자로 변했고 돌풍과 함께 허공의 수사들을 공격했다. 돌풍이 몰아치자 수사들의 공격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또한 공격이 녹색 그림자에 충돌하면 튕겨나가기 바빴다.

이에 수사들은 허둥지둥 거리며 다른 것에는 신경 쓸 틈이 없었다.

한립이 지켜보는 동안 아래쪽 호수에서 작은 물고기들이 응결해 놀랍게도 두 덩이의 은색 눈으로 변했다.

그리고 고요하던 호수 표면에 파문이 생기더니 거대한 입이 칼날 같은 송곳니를 드러냈다. 호수 역시 투명한 몸을 지닌 정체불명의 괴수가 위장한 것이었다.

투명한 거대 짐승은 즉시 한립을 향해 달려들었다. 몸 자체가 투명할 뿐더러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형태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한립은 꼼짝하지 않아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투명한 거대 짐승이 한립을 몇 장 앞둔 순간, 은색 눈에 흉악한 기운이 드리웠고 한 입에 그를 물어 뜯어버릴 심산이었다.

그때 한립의 등 뒤로 은빛이 반짝이더니 원자신광이 괴이하게 나타나 무수히 많은 곧은 광선으로 뻗어나갔다.

후두두둑!

울타리를 내리치는 빗물 소리처럼 회색 광선들이 거대 짐승을 뚫고 빙글 돌아 짐승의 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한립의 신형이 모호해지면서 거대 짐승을 향해 입을 벌렸다. 그러자 그의 입에서 거무튀튀한 작은 산을 분출했다. 작은 산은 빙글빙글 돌며 팽창했고 백여 장 높이의 거대한 봉우리로 변해 거대 짐승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거대 짐승은 그제야 위험하다고 느꼈는지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물 속성 변이 괴수는 오행(五行)의 기운에 속했기에 원자신광의 속박을 풀 수 없었다. 회색 광선은 상대가 격렬히 반항할수록 더욱 억세게 옥죄어왔다.

이때 한립이 입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우웅.

거대한 산이 크게 울며 거대 짐승에게 떨어졌다.

쿠쿠쿵!

산봉우리가 거대 짐승의 절반가량을 땅에 처박고 꼼짝 못하게 내리눌렀다. 그제야 한립이 짐승을 살폈다.

크아아아!

그때 한립의 뒤에서 커다란 울음소리가 울렸다. 벽안 거한 등 다른 대원들과 교전하던 녹색 괴인이 투명 괴수가 제압당한 것을 보고 소리를 지른 것이다.

괴인은 더 이상 벽안 거한 등을 상대하지 않고 한 손으로 발아래 짐승을 내리치며 안으로 파고들어 사라졌다.

“합체하려 합니다. 어서 막아야 해요!”

벽안 거한이 녹색 괴인의 행동에 놀라 서둘러 한립에게 소리쳤다. 영 씨 소년 등도 그것을 듣고 놀라 서둘러 자신의 법보에 영력을 주입해 위력을 키웠다.

순식간에 지탱하던 힘을 잃은 노란 돌풍은 박살났지만 그 틈에 아래쪽 거대 짐승은 비취색 빛을 내뿜으며 울룩불룩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두 다리와 팔이 자라났고 몸을 일으킨 후에는 머리카락이 솟아났다. 거대 짐승이 괴인의 조종을 받아 녹색 거인으로 변한 것이다.

키가 수십 장에 전신이 어두운 녹색 비늘로 뒤덮인 거인은 청록 색 눈을 음산하게 반짝였다. 거인은 나타나자마자 머리 위의 기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어두운 자색의 빛이 흐르는 주먹이었다.

쿠쿵! 쿵!

두 번의 굉음이 울리고 열댓 개의 보물로 이뤄진 대량의 광채가 산산조각 났다. 대부분의 보물들은 처량한 소리를 내며 하늘 높이 튕겨나갔다.

그때 허 여인이 자신의 새하얀 비검을 가리켰다.

우우웅!

그러자 비검은 길게 울며 거대한 빙검으로 변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홀로 인수합일의 강적을 베어버리려 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예상과 달리 거인의 몸은 크고도 빨랐다.

거인이 빙검을 보자마자 입을 벌려 노란 빛의 음파를 내뿜자 빙검은 속수무책으로 비틀거렸다. 그리고 어두운 자색의 거대 손이 번개처럼 빙검을 잡아챘다.

거인의 얼굴에 사악한 기운이 스치며 빙검의 검신을 손에 쥐었다. 비검을 두 동강내려는 것이 분명했다.

‘안 돼!’

그것을 본 허 선자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검은 그녀의 본명법보였고 일단 두 동강이 나면 의식이 연계된 그녀도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허 선자는 재빨리 수결을 맺어 검결을 운용하며 필사적으로 비검을 회수하려 했다. 하지만 빙검이 울어대며 아무리 하얀 한기를 뿜어대도 거인의 거대한 두 손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거인이 힘을 쓰려 숨을 깊게 들이 마시는데, 지척에서 파문이 일더니 검은 빛이 거인의 가슴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그러자 거대한 거인의 몸은 검은 빛의 일격으로 몇 걸음 물러났다. 그리고 검은 빛기둥의 분출이 끝난 순간 주먹 만한 은색 불새가 같은 곳에서 날아와 거인에게 돌격했다.

용감무쌍해 보이던 거인은 은색 불새를 본 순간 동공이 수축하더니 두려움에 떨었다. 그리고 그대로 몸을 돌려 미친 듯이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거인이 막 두 걸음 떼었을 때 땅 속에서 십여 개의 붉은 실들이 솟아올라 불 밧줄로 변해 거인의 두 발을 휘감아 묶어버렸다.

기겁한 거인이 커다란 손을 휘두르며 불 밧줄을 뜯어내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은색 불새가 날아들어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번개처럼 달려들어 은색 화염으로 거인의 등짝을 불살랐기 때문이었다.

펑.

작은 폭음이 울리자 은색 화염은 거인의 몸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이제 거인은 밧줄이고 뭐고 뜯어낼 겨를도 없이 참혹한 비명을 질러댔고, 은색 화염을 날려 보내려는 듯 온 몸에서 노란 돌풍을 불러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노란 돌풍이 은색 화염과 접촉하자 밀어내기는커녕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순식간에 거대한 바위 같던 거인은 완전히 불길에 휩싸였다.

간헐적으로 들려오던 비명소리마저 차츰 잦아들고 거인의 육중한 몸이 바닥에 쿵! 하고 무릎을 꿇었지만 그마저도 은색 화염에 잡아 먹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거인이 은색 화염에 휩싸여 무(無)로 돌아가기까지, 너무 순식간이라 벽안의 거한 등은 허공에 떠서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규충 떼를 해치울 때 한립이 서령천화를 사용하는 것을 보았지만 그때는 이렇게 무서운 위력을 지녔는지 몰랐다. 그래서 만수인이 불길에 사라지는 모습에 꿈을 꾸는 듯했다.

한립의 신형이 흐릿해지며 은색 화염 위에 나타나 손짓했다. 그러자 화염은 다시 은색 불새로 변해 돌아갔고 십여 개의 불 밧줄도 붉은 실로 변해 그의 소매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저쪽의 만황 짐승을 잡아 성으로 돌아가면 이령당(異靈堂)에서 처리하게 하게.”

한립이 아직도 원자산에 깔려있는 거대 짐승을 쳐다보고는 차분히 명을 내렸다.

“예!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벽안 거한이 서둘러 대답하고 한 손을 뒤집어 우윳빛 호리병을 꺼냈다. 표면에 대량의 은과문이 새겨진 호리병은 이종족을 잠시 구류할 수 있는 일종의 이종족 전용 특수 법기였다.

어떤 능력을 지닌 이종족이든 간에 진령급만 아니면 구속할 수 있었다. 물론 이종족이 완전히 저항할 능력을 잃고 움직일 수 없을 때만 사용 가능했다.

벽안 거한은 원자산 옆에 낙하해 호리병을 투명한 짐승을 향해 내밀었다.

호리병 속에서 은색 기운이 흘러나와 거무튀튀한 산 아래를 이리 저리 날아다녔고 놀랍게도 거대한 은색 문자로 변해 거대 짐승의 몸 속으로 흡수되었다.

그러자 투명한 거대 짐승의 몸에 은색빛이 한층 떠올랐고 급격히 수축해 주먹 크기로 변했다. 그러나 그가 놀란 것은 원자산이 거대 짐승이 작아짐에 따라 같이 크기가 줄어 절대 달아날 틈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잠시 후 호리병 속에서 다시 은색 기운이 흘러나와 거대 짐승을 휘감았다. 동시에 한립이 멀리서 손가락을 뻗어 검은 산을 천천히 들어 올려주어 거대 짐승이 변한 하얀 빛덩이는 무사히 호리병 속으로 흡수되었다.

벽안 거한은 재빨리 호리병 뚜껑을 닫고는 곧장 금색 부적을 붙였다. 그제야 그는 한시름을 놓았다.

다른 대원들도 법보를 회수해 지면으로 내려온 후 한립을 다른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이제 보니 신임 대장의 실력은 그들이 헤아릴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고 평범한 화신 초기 수사의 실력을 훨씬 뛰어넘었다. 그들은 기뻐하면서도 어려워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조금 쉬었다 순찰을 계속한다.”

한립은 원자산을 회수하고 대원들에게 명령하고는 한쪽에서 가부좌를 하고 눈을 감았다. 그의 말에 다른 이들도 흩어져 소모한 법력을 회복하려 했다.

그런데 허 선자가 조용히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는 한립을 향해 걸어가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말을 걸었다.

“도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선배님이 아니셨다면 제 빙정검(氷晶劍)은 망가졌을 겁니다.”

“빙정검. 자네의 비검은 만년현옥으로 제련한 것이겠지?”

“과연 선배님이십니다. 맞습니다, 대부분이 현옥으로 이루어진 비검입니다.”

“극한의 성질을 지닌 검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얼음 속성 공법을 익혔겠구나. 그럼 이 분을…….”

한립이 눈을 반짝이다 차분히 중얼거렸다.

“말씀하시지요.”

“빙백선자라는 상고 수사인데 역시 극한의 성질을 지닌 공법을 쓰는 비승 수사이다. 혹시 알고 있는가?”

한립은 상대의 반짝이는 눈을 보며 뜻밖에도 입술을 달싹여 전음을 보냈다.

그녀를 본 순간 어딘가 눈에 익었는데 보면 볼수록 인계 소극궁 수사들이 허령전을 개방할 때 소환했던 창립조사 빙백선자의 환영과 눈매가 꼭 닮았다.

환영에 불과했지만 별처럼 빛나던 눈이 인상적인 여인이라 잊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눈앞의 여인도 얼음 속성 신통을 부리고 현옥으로 제련한 법보를 사용하는 것에 놀라 물어본 것이다.

“빙백 선자라면 저희 허 씨 가문의 선조 되십니다. 선배님께서 어찌 아시고……. 설마 선조님과 같은 하계에서!”

허 선자가 놀라며 전음으로 대답했다.

“아는 사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하계에서 약간이나마 그 분의 덕을 보았다. 그런데 허 선자의 비검은 어째서 전부 만년현옥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지? 그랬다면 지금 보다 훨씬 위력적이었을 텐데.”

그는 간략하게 설명하고 화제를 돌렸다.

“만년현옥을 만황세계의 최상급 재료들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많은 수량을 모으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이 비검도 제가 쉼 없이 사 모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고요.”

한립이 자신의 선조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란 허 선자는 그의 물음에 착실히 대답했다.

“그랬구나. 마침 내게 만년현옥이 약간 있으니 비검을 다시 제련할 만큼은 될 게다. 허 선자가 빙백선자와 인연이 있다니 은혜를 갚는 셈치고 내어주겠네.”

생각에 잠겨 있던 한립이 이렇게 말하고 한 손으로 저물탁을 스쳤다. 그는 하얀 빛을 반짝이며 나타난 옥함을 그녀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여인이 깜짝 놀라 서둘러 인사를 하고 옥함을 받아 열어보았다.

‘이런!’

옥함 속에는 주먹 크기의 하얀 수정 네 개가 우윳빛 한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비검을 다시 제련하고도 남을 뿐만 아니라 다른 현옥 법보도 제련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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