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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774화 (531/2,000)

774화. 연체사의 육체

*

튕겨나간 검은 늑대를 본 한립의 얼굴에 서릿발 같은 기세가 감돌았다. 그의 신형이 모호해지더니 연달아 잔영을 남기며 쇄도해 순식간에 검은 늑대의 머리 위에서 나타났다.

법력을 회복한 한립은 놀랍게도 허공에서 라연보를 펼칠 수 있게 되었다. 풍뢰시보다 빠르지 않았고 질풍구변의 움직임에도 못 미쳤지만, 그의 강력한 육체로 좁은 곳을 다닐 수 있는 라연보의 위력은 신묘하기 그지없었다.

검은 늑대는 한립이 머리 위에 나타난 것을 보고 본능적으로 입에서 검은빛 구슬을 뿜어 지척에 있는 그를 노렸다.

그러나 한립의 금빛 손바닥이 파리를 때려잡듯 검은빛 구슬을 쳐내고, 눈에 법력을 불어넣자 눈동자 깊숙한 곳에서 남색빛이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이어 그가 갑자기 사라지더니 거대 늑대의 허리에서 나타났다. 금빛 손으로 빠르게 머리와 뒷다리를 움켜쥐자 늑대는 꼼짝도 못했다.

“흡!”

한립의 엄청난 힘에 혼백이 응결해 만들어진 마물이 아니라 무쇠로 만들어진 요수라도 갈가리 찢어질 판이었다. 그 순간, 거대 늑대의 머리가 한립의 손에 강제로 뜯겨나갔다.

그때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났다.

머리가 찢겨진 거대 늑대의 몸이 검은빛을 뿜어내며 안개로 흩어져 사라진 것이다.

머리는 금색 손에 잡혀있으면서도 이를 드러내며 살아 움직였다. 이에 한립이 냉소하며 다른 손으로 허공을 쥐자 은색 화염덩이가 나타나 은색 불새로 변했다.

은색 불새는 맑게 지저귀며 곧바로 검은 늑대 머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펑!

아우우-

겁에 질린 늑대 울음소리와 함께 은색 화염이 순식간에 검은 머리를 감싸 안개로 흩어버렸다. 은색 화염은 안개마저 깨끗이 먹어치운 후 다시 불새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새가 입을 벌려 은색 부적을 내뱉었고 한립이 번개처럼 그것을 잡아챘다. 옹 수사가 발동했던 부적이었다.

부적은 상당히 암담해져 있었는데 위력의 대부분을 잃은 듯했다. 그리고 불새는 입에서 은색 화염을 뿜어대며 신이 난 모습으로 한립의 머리 위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한립의 신형이 모호해지며 열댓 장 밖의 청록색 꼭두각시 위에서 나타났다. 꼭두각시는 허천정에 막혀 미친 듯이 주먹질을 해대고 있었다. 그러자 솥이 매번 한 장씩 줄어들었다.

하지만 고마 시조 분신의 일격도 막아냈던 허천정이었다. 공격당하면 즉시 영기의 빛을 번뜩이며 원래대로 되돌아가곤 했다.

한립은 영계의 괴뢰술은 몰랐지만 대연신군의 대연보경(大衍寶經)에 적힌 내용은 인계에서 제일 가는 비술이었다.

청록색 꼭두각시가 굉장히 강해 보였지만 명청령안으로 살펴보니 바로 약점을 찾을 수 있었다. 은색 부적을 품은 한립은 경쾌하게 거대 꼭두각시에게로 쇄도했다.

그의 몸에서 폭죽 터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며 꼭두각시의 옆구리를 겨냥해 주먹이 날아갔다.

후웅!

금빛 주먹이 닿기도 전에 권풍을 휘날리며 허공에 하얀 궤적을 남겼다. 마치 공간이 찢어지는 듯했다.

쾅!

경천동지할 굉음이 울리며 꼭두각시의 강인한 몸에 몇 촌 깊이의 주먹 자국이 남았다. 동시에 몸이 붕 떠올라 그대로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쾅쾅쾅쾅쾅!

한립은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고 같은 자리에 폭우처럼 주먹을 쏟아부었다. 그러자 눈 깜짝할 사이에 펑! 하고 꼭두각시의 늑골이 부서져 검은 구멍이 뚫렸다.

한립은 주먹질을 멈추고 두 손을 마주쳐 한 줄기 뇌전을 뿜었다. 연달아 폭음이 울리고 꼭두각시는 청록색 빛을 뿜으며 한 자 크기로 수축해 쓰러졌다.

한립이 검은 늑대의 기습에 반격해 늑대와 꼭두각시를 물리친 것은 정말 짧은 순간이었다. 그제야 양신자의 충격에서 벗어난 옹 수사는 한립이 금빛 찬란한 몸으로 꼭두각시에게 최후의 일격을 날리는 모습을 보았다.

“금강결을 대성한 최상급 연체사!”

그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소리쳤다. 빛의 장막 밖 금 수사도 말은 안 했지만 꽤나 놀랐을 것이다.

“옹 수사, 더 싸울 필요가 있을까요?”

한립의 차분한 말투에 옹 수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당신이 법술과 연체술을 모두 익혔다 해도 이길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내 100년의 수행을 포기 하더라도 천혼령의 진정한 위력을 보여주고 말겠소!”

옹 수사가 분노해 금색 연꽃에 둘러싸인 검은 방울을 보며 소리쳤다. 사내가 줄줄 주술을 읊자 머리 위로 푸른 기운이 번뜩이며 다시 원영이 나타났다.

원영은 신중한 얼굴로 한 손으로 수결을 맺으며 허공을 향해 나머지 손을 펼쳤다. 그러자 남색 빛기둥이 검은 방울로 뻗어져 나갔고 동시에 오묘한 주술 소리가 울려 퍼졌다.

검은 그림자가 몸을 떨자 그 속에서 검은빛이 빠져나와 진정한 천혼령 본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에 방울은 빙글빙글 돌며 남색 빛 덩이들을 흡수했고, 옹 수사는 그 틈에 멀리서 손을 튕겼다.

댕!

그러자 종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빛의 장막 내부가 극심하게 떨리며 아무런 조짐도 없이 가느다란 검은 균열이 허공에 나타났다.

옹 수사의 원영은 검은 균열이 나타나자 검은 방울을 향해 연달아 손가락을 튕겼다. 종소리가 울릴 때마다 그의 안색은 더욱 창백해졌고 검은 균열은 커져갔다.

검은 균열 안에는 새까만 기운이 가득했고 삭풍이 불어대 내부를 뚜렷하게 볼 수 없었다. 잠시 후 반원형으로 벌어진 검은 균열 안에서 기이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키득키득.

그 소리에 한립은 전신에 금빛을 북돋으며 원자신광의 기세를 절반가량 키웠다.

그때 괴이한 일이 일어났다.

급작스럽게 한립 주위로 검은 실들이 잇달아 흩날리더니 그의 주위를 빙빙 맴돌았다. 그런데 다가와 공격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움찔한 한립이 어떤 비술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검은 실들이 응결해 빛의 진법을 형성하며 그를 가두었다.

‘불길해.’

놀란 한립이 회색 기운을 보내려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검은 진법이 빛을 머금자 한립은 하늘과 땅이 거꾸러지는 느낌을 받으며 금빛 연꽃과 함께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잠시 후 한립은 어슴푸레한 공간에 비틀거리며 나타났다. 사방은 검은 그림자로 가득했고 귀곡성이 귀를 울렸다. 놀랍게도 검은 균열 속으로 빨려들어 온 것이다.

처음에는 놀랐던 한립이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냉소했다.

같은 시각, 옹 수사의 원영은 균열 밖에서 법술로 검은 방울에 힘을 북돋고 있었다. 방울 소리와 함께 검은 균열의 입구가 서서히 닫혀 마지막에는 열댓 장 길이의 검은 선으로 변했다.

이에 원영도 번뜩이며 옹 수사의 몸으로 돌아갔다. 옹 수사는 두 눈을 번뜩이며 교활하게 미소 지었다.

검은 균열은 천혼령이 만들어낸 공간으로 천혼(千魂)이라고도 불렸지만 사실은 그 안의 혼백들은 못 해도 8천은 되었다. 게다가 모든 혼백들은 흉악한 요수들로 특수하게 제련한 것이라 살아 있을 때보다 훨씬 사나웠다.

심지어 천혼령 속의 주혼(主魂)은 생전에 화신 중기였던 천지영수였다. 사부도 기연을 얻어 겨우 영수의 혼백을 영보의 주혼으로 제련할 수 있었다고 했다.

주혼은 다른 혼백들과 같이 있으면 신통이 배가 되었고 천혼령 공간 자체가 특수해 혼백이 아닌 수사들에겐 법력에 제약이 있었다. 화신 후기 수사라 해도 일단 갇히면 대부분 죽어나가는 곳이었다.

장막 밖의 금갑 수사는 검은 선을 지켜보며 눈을 빛냈지만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옹 수사는 이제 아예 허공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음혼(陰魂)들의 공간에서 뜯어 먹히고 있을 한립의 모습을 기대하며 기다렸다.

일다경이 지나자 허공의 검은 방울이 갑자기 부르르 몸을 떨기 시작했다. 괴이한 소리가 울리고 검은빛이 반짝였다 어두워졌다를 반복하며 이상한 현상을 보였다.

옹 수사가 비록 영보와 의식 연계가 돼 있지 않았지만 그것을 보고 어찌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모르겠는가!

검은 방울이 구슬프게 울더니 주변에 퍼트려 놓은 검은 그림자가 검은 기운으로 변하며 방울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주혼이 사라지다니.”

옹 수사는 이제야 어찌된 일인지 깨달았다. 이때 허공에서 검은 빛이 반짝이며 주먹 크기의 구멍이 뚫리더니 푸른 빛줄기가 구멍을 통해 빠져나왔다.

퍼뜩 무언가를 감지한 옹 수사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푸른빛 속 인영은 벌써 사라져 잔영을 남기며 옹 수사의 뒤에서 나타났다. 기합 소리가 옹 수사의 두 귀를 쩌렁쩌렁 울렸고 사나운 바람과 함께 금빛 주먹이 그를 향해 다가왔다.

“헛!”

그 순간 옹 수사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일고여덟 개의 환영으로 갈라져 사방팔방으로 튀어나갔다.

“흥, 어딜 도망가려고!”

푸른빛 속에서 나타난 것은 그가 가둔 한립이었다. 그는 코웃음을 치며 동시에 일고여덟 개의 환영을 만들어 정확히 옹 수사의 환영 조각들을 주먹으로 때렸다.

옹 수사의 진짜 육체만이 은색 방패를 꺼내 금빛 주먹을 막았고 나머지는 전부 흩어졌다.

쾅!

은색 방패는 아주 잠깐 버티는가 싶더니 산산조각이 나서 깨져버렸다. 그러자 금색 주먹이 곧바로 사내의 등을 강타했다.

주먹과 등이 닿으려는 순간, 사내의 몸에 홀연히 푸른 갑옷이 나타나 주먹과 부딪혔다.

쩡!

굉음이 울리고 금빛과 푸른빛이 교전했다. 곧 금색 주먹은 갑옷을 파고들었고 옹 수사는 비명을 지르며 튕겨 나갔다.

‘흠!’

그러나 주먹의 위력을 잘 아는 한립은 흠칫 놀랐다. 아마 푸른 갑옷이 주먹의 위력을 대부분 흘려버린 듯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번 일격에 옹 수사는 중상을 입고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천혼령의 공간에 빨려 들어간 순간 한립은 이미 상대에게 살의를 느꼈다. 그건 더 이상 봐주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주먹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자 한립의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옹 수사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한립이 허공을 베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갑자기 한 자 길이의 금빛 장검이 그의 손에 들렸고 옹 수사를 가르려 했다.

바로 그 순간 옹 수사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만하시오! 내가 졌소!”

한립은 분명히 그 말을 들었지만 멈추지 않고 입꼬리를 올리며 장검을 휘둘렀다. 금빛이 피어오른 검의 날이 사정없이 쇄도했다.

청죽봉운검의 예리함이라면 청명갑(靑冥甲)을 입은 몸이라도 두 동강 낼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기 때문이다. 그때, 갑자기 파동이 일어나며 노란 기운이 번개처럼 옹 수사를 말아 사라졌다.

한립의 금색 검은 허공을 가르고 말았다.

한립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는데 스무 장 밖의 허공에서 두 인영이 노란빛을 뿜으며 나타났다.

금갑 수사와 옹 수사였다.

금갑 수사는 무표정한 얼굴이었고, 옹 수사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앞쪽 가슴에 피가 흥건해서 한립을 노려보고 있었다.

청명갑이 한립의 일격을 대부분 흩어지게 했지만 그래도 상당한 내상을 입었다. 뒤쪽 갑옷에 남은 주먹 자국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한립은 다시 평온한 모습으로 장검을 흩어버리고는 금갑 수사에게 예를 올렸다.

“나서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선배님! 그만 손을 거두지 못하고 옹 수사에게 부상을 입힐 뻔 했습니다.”

그는 정색을 하고 뻔뻔스럽게 말 했다.

“익!”

그 소리에 옹 수사는 열이 뻗쳐 피를 토할 것처럼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고 금 수사는 눈빛이 묘했지만 담담히 답했다.

“전투 중에는 흔히 있는 일이니 별일 아니다. 이번 영지 쟁탈전은 옹 수사가 패배를 선언해 한 수사가 승리했다. 이후 영지는 한 수사에게 귀속된다. 이의 없겠지!”

한립은 미소 지었고 당연히 반박하지 않았다. 옹 수사의 얼굴에는 못마땅한 기색이 가득했지만 입만 달싹이고 아무 소리도 하지 못했다.

둘 다 말이 없자 고개를 끄덕인 금 수사가 한립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자네의 청명패(靑冥佩)를 내놓게!”

그 말에 한립은 주저 없이 손바닥을 뒤집어 푸른 옥패를 상대에게 던졌다. 금갑 수사는 옥패를 불러들여 엄지손톱만 한 비취색 수정으로 옥패를 두드렸다.

그러자 비취색 수정이 옥패로 흡수돼 사라졌다.

“영지 표식을 청명패에 주입했으니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 백 년에 한 번 있는 영지 쟁탈전에는 참여할 수 없다. 이제 둘 다 이곳을 떠나도 좋다. 다음 대결이 곧 시작된다.”

금갑 수사가 옥패를 한립에게 던져주며 손을 저었다. 그가 주위를 둘러보자 사방을 막고 있던 하얀 빛이 언제부터인지 벌어져 출구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금갑 수사의 말에 한립은 먼저 포권을 하고 푸른 빛줄기로 변해 빠져나갔고 몇 번 번뜩이다 시야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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