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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773화 (530/2,000)

773화. 천혼령(千魂鈴)

*

“시작!”

금갑 사내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한립과 응 수사가 동시에 움직였다.

한립이 소매를 털자 72개의 작은 검들이 물고기 떼처럼 쏟아져 나와 반짝이는 금빛 연꽃으로 변해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그리고 동시에 입을 벌려 작은 솥을 분출하자 보물은 영기의 빛을 크게 뿜으며 한 장 크기로 커져 웅웅 진동했다. 허천정이었다.

옹 수사 역시 수결을 맺어 몸 안에서 남색 빛을 방출했다. 처음에는 쌀알만 하던 남색 빛이 미친 듯이 불어나더니 그를 둘러쌌다. 이에 사내가 한 손을 뻗어 허공을 쥐자 눈부신 은빛이 번뜩였다.

그리고 그의 손에 은빛 찬란한 수레바퀴가 들려 있었는데 표면에 층층 주술문자가 새겨진 것이 언뜻 봐도 평범한 물건은 아니었다.

은색 바퀴를 허공에 던지자 데구루루 구르며 은빛을 뿜었고 폭발적으로 커져갔다.

잠시 후에는 놀랍게도 3, 4장 크기의 태양 같은 모습으로 옹 수사의 머리 위에 떠올랐다. 그러나 준비를 마친 그는 한립을 쳐다보고 움찔했다.

72개의 금색 비검들은 그렇다 치고 계속해서 울어대는 거대 솥을 보자 가슴이 서늘해졌기 때문이었다.

겉으로는 정확한 신통을 알 수 없었지만 솥, 등불, 거울 등 특수한 형태의 보물은 대체로 특수한 능력을 지니기 마련이었다.

특히 허천정이 발산하는 영기의 압력은 다른 보물을 압도해 옹 수사도 자연히 경계심이 높아졌다.

잠시 후 옹 수사가 먼저 움직였다.

그가 수결을 맺자 주변의 남색 빛이 수축하더니 뜻밖에도 모래알처럼 변해 치솟았다. 모래 알갱이들은 흐릿하게 흔들리며 금세 배로 불어났고 별안간 두터운 모래 구름으로 변해 빛의 장막 절반을 막아 버렸다.

같은 시각, 거대 은색 바퀴도 모래구름 속으로 숨어들었다.

“흐압!”

기합 소리와 함께 모래 구름이 진한 남색으로 기이하게 반짝이며 한립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모래 알갱이들이 마찰하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한립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고 도처의 금빛 연꽃은 빙글 돌아 기세등등하게 솟구쳤다. 연꽃 그림자가 금빛을 크게 뿜으며 떨어져 내리는 남색 모래구름과 비등한 영기의 압력을 뿜어냈다.

그러자 모래 구름과 금색 연꽃이 닿는 순간 꽃잎이 부르르 떨며 폭발적으로 커졌다. 한 송이 한 송이가 한 장 크기로 불어나 급속도로 허공을 돌자 꽃잎이 칼날처럼 모래 구름으로 파고들었다.

카카카캉!

모래알갱이가 사방으로 튀고 폭음이 이어졌다. 72개의 금빛 연꽃들이 거대한 산처럼 떨어지던 남색 모래를 막은 것이다.

그것을 본 옹 수사의 눈에 의혹이 스쳤으나 피식 웃으며 법결을 북돋았다. 그러자 모래 구름 속에서 은빛이 반짝이며 거대한 바퀴가 빠져나와 금빛 연꽃 하나와 충돌했다.

상대를 절단할 기세의 바퀴를 보며 옹 수사가 교활한 미소를 지었다. 단금륜(斷金輪)은 만황세계에서 구한 려금사(黎金沙)를 제련한 것이라 극히 날카로웠다.

바퀴 형태의 보물은 보통 절단 신통을 지니고 있어 비도나 비검 보다 더욱 매서웠다. 또한 이것은 수많은 비검류 보물을 잘라버린 전력이 있었다.

그러니 금색 비검도 단번에 잘려나갈 것이라 의심치 않았다.

채채챙!

연달아 금속성의 폭음이 터지고 금빛과 은빛이 놀라운 기세로 교전했다. 단시간 내에 우열을 가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때 옹 수사의 표정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금빛 연꽃이 갑자기 은색 바퀴를 감싸 안은 것이다.

웅!

이어 안에서 애달픈 진동소리가 들리더니 은색 바퀴가 산산조각으로 쪼개지며 연꽃 안에서 사라졌다.

옹 수사가 반응하기도 전에 한립이 앞에 있는 거대 솥을 가리키자 솥뚜껑이 날아가고 진동 소리가 커지며 무수히 많은 실들이 안에서 쏟아져 나왔다.

푸른 실들은 바람처럼 금빛 연꽃 그림자를 지나 하늘을 뒤덮은 남색 모래를 휘감아 솥 안으로 되돌아갔다.

전광석화 같은 공격에 당황한 옹 수사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남색 모래 일부가 솥에 빨려 들어가 의식 연계가 끊긴 후였다.

“영보!”

응 수사가 놀라 소리를 높였다. 남색 모래는 금단륜과 달리 그가 직접 배양하며 제련한 보물이었다. 일반적인 보물로는 이런 짓을 할 수 없었다.

만일 남색 모래를 전부 빼앗긴다면 100년간 들인 공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것이다. 그는 고민하지 않고 곧바로 입을 벌려 피를 뿜었다.

집게손가락으로 피를 찍어 허공에 유려한 필체로 주술문자를 남긴 그는 다른 손바닥으로 주술문자를 쳐냈다.

푹!

그러자 주술문자가 그대로 튀어나가 사라졌다가 한립 앞에 나타나 거대한 악귀 머리로 변해 달려들었다.

옹 수사의 속셈은 일단 한립이 법술을 펼치지 못하게 해 솥의 공격을 멈추고 남색 모래구름을 회수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립은 아랑곳하지 않고 허천정으로 남색 모래를 모으다가 곧바로 입을 벌려 금색 뇌전을 분출했다.

콰쾅!

가느다란 금빛 뇌전이 날뛰며 사정없이 악귀 머리를 찌르자 악귀 머리는 스산한 비명을 남기고 흩어졌다. 이름 모를 악귀 머리 따위가 고마계 시조도 함부로 하지 못 하는 벽사신뢰에 당해 일격에 사라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을 본 옹 수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더니 곧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얼굴색이 나빠졌다.

이때 허천정의 푸른 기운은 허공의 남색 모래구름을 반절쯤 흡수하고 있었다.

옹 수사는 서늘한 눈빛으로 그것을 지켜보다가 두 손으로 기괴한 수결을 맺고 입으로는 염불을 외며 신중한 얼굴로 정면을 가리켰다.

푸른 기운과 금색 연꽃의 공격에 요동치던 모래알들이 갑자기 멈추더니 빙글빙글 돌며 빛을 내뿜었다. 빛이 사라지자 모래알들은 순식간에 바위처럼 커져 엄청난 기세로 떨어져 내렸다.

그러자 금색 연꽃들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회전하는 속도가 줄어들었다. 게다가 허천정의 푸른 기운도 더 이상 바위로 변한 모래알들을 끌어당기지 못했다.

상황이 급변해 한립이 상대를 살피니 옹 수사의 온몸에서 영기의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코와 입에서 하얀빛이 반짝이는 것이 분명 진원(眞元)의 힘을 끌어다 쓰는 모양새였다.

한립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가 자신의 정수리를 쓰다듬자 회색 기운이 퍼지며 허공을 훑었다.

그러자 태산처럼 묵직하던 남색 바위가 가볍게 몸을 떨더니 원래의 모래알로 돌아갔고 회색 기운이 휘몰아친 자리에는 모래구름이 싹 사라져버렸다.

“헛!”

옹 수사가 얼굴이 파랗게 질려 수결을 풀었고, 빛의 장막 밖에서 무심하게 전투를 주시하던 금갑 수사도 놀란 얼굴을 했다.

“대체 이게 뭐기에 내 남정사(藍晶沙)를 거둬간 것입니까.”

옹 수사가 한립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그걸 말해줄 것 같습니까?”

한립은 가볍게 웃으며 여유롭게 답했다. 한립은 상대가 이러는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에게 연허기 사부만 없었다면 벌써 폭풍우처럼 공격을 쏟아부어 숨 쉴 틈도 주지 않았을 것이다.

한립은 자신의 실력에 꽤 자신이 있는데다 원자신광, 서령천화, 대경검진 등을 펼칠 수 있었기에 화신 후기 수사도 두렵지 않았다.

그때 옹 수사의 표정이 시시각각 달라졌다. 한립의 실력이 그의 상상을 초월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 대결은 꼭 이겨야 했다.

그가 이를 악물고 사나운 기세로 두 손을 뒤집자 손바닥 만한 노란 동패(銅牌)가 나타났다. 그리고 다른 손에는 은색 부적이 나타났는데 은과문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한립은 남색 눈동자를 일렁이며 한 손으로 검결을 맺었다. 머리 위로 맴돌던 금색 연꽃들이 동시에 몸을 떨며 한 곳으로 응집했다.

순식간에 72개의 연꽃이 직경 열 장을 넘는 초대형 금색 연꽃으로 변해 맑게 울며 날아갔다. 그리고 방출했던 회색 기운을 불러들어 회색 보호막을 펼쳐 자신을 보호했다.

그때 옹 수사가 두 손을 펼치자 동패가 울리며 하얀빛이 터져 나와 그가 사라지고 상반신을 드러낸 키가 두 장은 되는 거한이 나타났다.

맨 주먹의 거한은 피부가 청록색 수정처럼 반짝였고, 두 눈에는 영기의 빛이 흘러넘쳤다. 놀랍게도 그는 인간형 꼭두각시였다.

파칙.

은색 부적은 은색 안개로 변해 응결하더니 검은 늑대의 형상을 갖추었다. 검은 늑대의 음산한 청록색 눈이 한립을 응시했다.

두 가지 보물을 발동하고도 옹 수사는 멈추지 않고 한 손으로 뒤통수를 쳐 남색 기운을 불러냈다. 남색 원영은 두 손으로 거무튀튀한 작은 방울을 쥐고 숙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천혼령(千魂鈴)! 명 노괴가 노망이 들지 않고서야 저리 중한 보물을 문하의 제자에게 내주었단 말인가.”

밖에서 지켜보던 금갑 수사가 꼭두각시와 검은 늑대의 등장에도 아랑곳 않다가 원영이 두 손에 쥔 방울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선배님! 잠시 사부님께 빌려온 것인데 규정에 어긋나지는 않겠지요.”

“영지 쟁탈전에 그런 제약은 없다. 하지만 천혼령 같은 패도적인 보물을 강제로 부리면 승리한다고 해도 원기가 크게 상할 것이야. 겨우 영지 하나를 위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가?”

금갑 수사가 눈을 부릅뜨고 경고했다.

“당부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이미 마음을 정했습니다.”

그가 말을 하는 동안에도 초대형 금빛 연꽃이 닥쳐오고 있었기에 그는 주저할 틈도 없이 검은 방울을 던져야 했다. 이와 동시에 청록색 꼭두각시가 위로 솟구치더니 한립을 향해 펄쩍펄쩍 뛰어갔다.

허공에서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온몸에 주술문자가 반짝이며 키가 커져 원래보다 배는 커져 있었다. 검은 늑대는 몸이 흐릿해지더니 소리 없이 검은 안개로 변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댕!

검은 방울은 떠오르자마자 맑은 종소리를 울렸다. 귓속으로 종소리가 파고드는 순간 한립은 의식이 울리며 벼락이라도 맞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 재빨리 대연결을 운용했다. 그러자 청량한 기운이 머릿속을 선회했고 얼굴빛이 하얗게 변했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영보라 그런가? 과연 평범한 보물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구나.’

놀람이 가시자 화가 치민 한립이 사납게 반격했다. 한 손으로 수결을 맺으며 한립이 머릿속 의식을 응결해 상대를 향해 거세게 날렸다.

천혼령의 섭혼(攝魂) 공격을 발동한 옹 수사가 한립이 잠시 비틀거리다 멀쩡해진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섭혼 공격이 천혼령의 가장 강력한 신통은 아니지만 동급 수사를 상대하기에는 특효였고 대부분의 수사들은 막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가 이를 악물고 법력을 아낌없이 쏟아 내려는데 알 수 없는 고통이 의식을 찢고 들어왔다. 날카로운 송곳으로 누군가 머릿속을 헤집고 있는 듯했다.

양신자(涼神刺)에 당한 그는 한립 만큼 강대한 의식을 지니고 있지 않았기에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웅크리고 머리를 감쌌다. 원영도 일순간 체내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천혼령을 부릴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 순간 한립의 눈빛이 서늘해지더니 그를 향해 달려오는 꼭두각시는 쳐다보지도 않고 멀리 허공의 거대 연꽃을 가리켰다. 그러자 연꽃이 빙글빙글 돌며 흉흉한 기세로 검은 방울을 빨아들였다.

금빛 연꽃이 순조롭게 천혼령을 감싸고 있을 때 키가 6, 7장 정도로 커진 청록색 꼭두각시가 한립에게 주먹을 날렸다.

굉음이 울렸으나 꼭두각시의 주먹은 허천정이 변한 거대한 솥에 막혔다. 그런데 주먹에 맞은 솥이 웅웅 울어대며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꼭두각시의 괴력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회전하던 거대 연꽃 속에서도 귀곡성이 울리고 한 장 크기의 새까만 방울이 나타났다. 꽃잎이 날카롭게 갈라대는데도 방울은 아무런 손상을 입지 않았다.

이에 금색 꽃잎도 회전하는 속도가 줄어들었다. 놀란 한립이 서둘러 법술로 보물을 북돋으려는데 등 뒤에서 검은빛이 반짝였다.

그리고 검은 늑대가 유령처럼 조용히 나타나 달려들었다. 짐승의 날카로운 발톱이 보호막이 없는 것처럼 안으로 파고들었다.

원자신광이 강력한 신통이기는 해도 오행(五行)의 기운과 관계없는 공격에는 무력했다. 그 모습을 보고 거대 늑대의 눈이 번뜩였고 기습에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순간 금빛 주먹이 괴이하게 나타나 사정없이 짐승의 머리를 갈겼다.

쿵! 쿵!

연달아 주먹을 맞은 거대 늑대는 그대로 뭉개져 일어나지 못했다. 늑대가 비명을 지르며 엄청난 힘에 튕겨 나갈 때, 한립은 어느새 금으로 둘러싼 듯 반짝이는 몸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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