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9화. 비승수사(飛昇修士)와 천연성(天淵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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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각은 10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각 층마다 입구가 하나씩 있었고, 맨 아래에는 서른 장 높이의 대문이 있었다.
대문에는 비령전이라는 글자가 적힌 은색 편액이 걸려 있었다. 거한은 한립을 데리고 날아 이곳 4층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작은 대청이 있었고 사방에 예닐곱 개의 회랑이 다른 방향으로 이어져 있었다. 마침 복색이 다양한 수사들이 삼삼오오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훑어보니 그들 모두 그와 똑같은 화신 초기 수사들이었다. 한립과 벽안 거한이 같이 들어가자 즉시 그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오, 탁 현질 아닌가? 이분이 새로 온 동료인가?”
백발에 푸르스름한 얼굴을 지닌 노인이 웃으며 한마디 했다.
“류 선배님이셨군요. 이분은 천위 대인께서 친히 바깥에서 데려오신 분으로 아직 본 성의 수사는 아닙니다.”
벽안 거한은 비령전에 들어서자마자 이전의 엄숙한 표정은 사라지고 더없이 예의 바른 표정을 지었다. 조금 의아한 일이었다.
“바깥에서 온 수사라면 설마 비령대에서 온 수사란 말인가?”
“어느 하계에서 비승한 것인가?”
“흠? 화신 초기 수사가 어찌. 초대 비승자(飛昇者)도 최소한 화신 후기의 수행이지 않았나?”
화신 초기 수사들이 한마디씩 하며 이상한 눈빛으로 한립을 훑었다. 그러나 한립은 조용히 미소 지으며 그들에게 포권을 해보였지만 속으로는 무척 동요했다.
‘이들도 설마 하계에서 온 비승자란 말인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허나 영계 본토 수사라면 어찌 이곳에 있단 말인가.’
벽안 거한은 수사들의 물음에 모호하게 몇 마디하고는 한립을 데리고 회랑 중 한 곳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방이 여러 개 딸린 거처로 안내했다.
방이 여러 개 이어져 있고 바깥으로 통하는 문은 하나라 마치 소형 동굴 같은 느낌이었다. 수련을 위한 밀실과 단약 제조실, 그리고 제련을 위한 연기실도 갖춰져 있었다.
그가 머무는 방은 주인이 금제 영패를 사용해야 드나들 수 있는 금제로 봉인된 방이었다.
한립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벽안 거한이 그것을 보고 몇 가지 금기 사항을 알려준 후, 금제 영패를 남기고 다른 임무가 있다며 바로 떠났다. 이에 상대를 붙들고 천연성의 상황을 들어보려 했던 그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지금 그는 응접실 나무 의자에 기대앉아 금제 영패를 만지작거리며 뇌겁이 닥친 이후 일어난 일들에 대해 생각하는 중이었다.
원래 그의 계획대로라면 소천겁을 치르고 영기가 농염하면서도 구석진 곳을 찾아 몰래 수련이나 하고 있어야 했다. 일단 연허기에 이르러 영생에 가까워지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런데 비승 수사들은 이계의 기운을 지니고 있어 무시무시한 소천겁을 치러야 한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가 온갖 방법을 다 써서 첫 번째 뇌겁에 살아남았다고 해도 두 번째에는 그러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큰 고민 없이 두 금갑 수사들을 따라 천연성까지 온 것이다.
그런데 이곳에 와보니 모든 것이 보통의 성과는 너무 달랐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자연히 마음이 불안했다. 그가 유일하게 알아낸 것은 천연성에 그처럼 하계에서 비승한 수사들이 꽤 많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뭔가 불안했다. 밖에 나가 천연성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또 그와 같은 비승 수사들은 어떻게 생활하는지 물어보아야 하나 궁금했다.
그가 고민하는 사이 돌연 금제가 걸린 문밖에서 한 늙은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사 안에 계십니까? 노부 류하도라 하는데 잠시 이야기나 나눌까 하여 찾아왔습니다.”
그 소리를 들자 한립은 웃음이 절로 났다. 그가 나서지 않아도 누군가 자신과 친분을 쌓고 싶은 듯했다.
“류 수사께서 찾아주셨으니 기꺼이 그래야지요. 한 모의 영광입니다.”
한립이 대답하며 영패를 대문 방향으로 비추자 은색 기운이 뿜어져 나가며 대문이 열렸다. 이에 문밖에 서 있던 백발노인은 대청을 지나 들어왔다.
“한 씨 성을 쓰셨군요. 무턱대고 찾아와 귀찮은 것은 아닌지 걱정했습니다.”
노인은 미소 지으며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다.
“하하, 그럴 리가요. 류 형께서 찾아 주지 않으셨으면 제가 찾아갔을 겁니다.”
그는 희색이 만연한 얼굴로 손님을 맞이했다. 그렇게 둘은 오랜 벗을 만난 듯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탁 현질의 말을 들으니 천위 대인께서 직접 성 밖에서 데리고 오셨다고요. 그럼 하계에서 막 비승한 수사시겠습니다. 혹시 어느 하계에서 오셨습니까?”
한담을 나누던 류 노인이 화제를 돌렸다.
“어떤 하계라 하시면……. 사실 영계에서 하계를 어찌 부르는지 몰라 대답하기가 어렵군요. 이렇게 하시지요, 일단 이곳 상황을 파악한 후에 수사에게 답을 드리겠습니다.”
한립이 눈을 빛내며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는 가볍게 출신 성분을 드러낼 처지가 아니었다. 인계에 있을 때부터 영계의 거물들과 연관된 일이 많았던 탓이다.
천란수의 본체는 물론이고, 은월이 말하던 천규랑왕도 그가 어찌할 수 있는 상대들이 아니었다.
“이런, 노부가 정신이 없었습니다. 수사께선 막 영계에서 오셨으니 모든 것이 낯설겠군요. 그런데 수사 같은 초대(初代) 비승수사들이 다들 잠재력이 어마어마했다는 것을 아십니까? 우리 같은 비승수사들의 후예나 영계 본토 수사들보다 연허기에 이를 가능성이 높아 장로님들의 중시를 받곤 했지요. 아마 수사도 별다른 시험 없이 청명위로 임명될 것입니다.”
노인은 허허 웃음을 터트렸다.
“초대 비승수사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비밀도 아니니 당연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사실 본 성에서 조금만 지내다 보면 곧 알게 될 것입니다.”
류 노인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초대 비승자는 한 형처럼 하계에서 본 계로 넘어온 화신기 수사를 뜻합니다. 이계의 기운이 남아있어 300백 넘게 매년 멸진단을 하나씩 복용해야 깨끗이 지워낼 수 있지요. 그리고 초대 비승자의 직계 후손 역시 몇 대에 걸쳐 약간의 이계의 기운을 지닙니다. 그래서 원영기에 이르면 똑같이 두 가지 색의 뇌겁을 맞게 되지요. 저처럼 초대 비승수사의 2대 후손인 경우 원영기가 되자마자 바로 천연성으로 와 멸진단으로 이계의 기운을 눌러야지 안 그랬다가는 바로 죽은 목숨입니다.
이계의 기운이 말끔히 사라지면 천연성을 떠날 수 있는데 초대 수사로 부터 대략 5대 이후가 되어야 이계의 기운을 갖지 않는 완전한 본토 수사가 됩니다.”
“그런 것이군요. 그런데 어째서 화신기 수사인 류 형이 아직도 이곳에 남아 계시는지요? 이미 이계의 기운은 씻어 내셨을 텐데요.”
한립이 맑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한 형, 핵심을 짚을 줄 아십니다. 저희 같은 화신기 수사들은 이미 이계의 기운을 씻어 냈지요. 하지만 제가 알기로 스스로 원해서 천연성을 떠나는 이들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초대 비승자와 우리 같은 비승자 후예들도 그렇고요. 심지어 삼경칠지에서 모집한 본토 수사들도 결코 천연성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지요.”
“오, 흥미롭습니다. 이유를 알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한립이 정말 궁금해 미소를 머금고 물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천연성에서는 수련 속도가 다른 곳의 두 배 이상입니다. 게다가 우리 천연성은 삼경칠지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뿐만 아니라 구할 수 없는 물건도 보유하고 있지요. 이쯤 되면 한 형께서도 이해하셨겠지요.”
노인이 의미심장하게 눈짓했다.
“설마, 이곳이 영기가 농후한 수련의 성지란 이야기십니까!”
한립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수련성지라면 본 성에 몇 곳이 있기는 합니다. 심지어 삼황의 몇몇 주성(主城)들에도 뒤지지 않지요.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본 성이 삼경칠지에서 밀려드는 풍부한 재료를 보유하고 있는데다 인족과 요족 양 종족이 만황세계로 갈 수 있는 유일한 입구가 있다는 점입니다.
만황세계를 드나드는 고계 수사라면 반드시 본 성을 지나야 하니, 그들이 만황세계에서 갖고 돌아온 수 많은 진귀한 재료들이 바로 이곳에서 거래된다는 것이지요.
심지어 하룻밤 사이에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영약도 존재합니다. 물론 가격이 너무 높아 한숨만 나오지만요.”
여기까지 말하고 노인이 잠시 숨을 고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이것 외에도 수사들이 이곳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 중요한 이유가 또 있습니다. 우리 천연성 수사들은 10년마다 장로회 장로 중 한 분이 하시는 천지도법(天地道法) 강연을 들을 수 있습니다. 직접 궁금한 점을 물을 수도 있고요. 이런 장로들은 전부 합체기(合體期) 수사이니 다른 곳에서는 평생 마주칠 기회도 없는 분들이죠. 그러니 본 성에 들어온 수사들이 나가려고 하겠습니까?”
“이렇게 좋은 조건이라니…… 하지만 본 성이 많은 고계 수사들을 머물게 하는 데도 특수한 이유가 있을 테지요?”
한립은 속으로 크게 기뻐하다가 미간을 좁히며 궁금한 점을 드러냈다.
“본 성의 수사들 중 절반은 고계 요족 수사들입니다. 그 외에 많은 요수와 연체사들도 있고요. 이런 존재들 중 절반은 본성에서 길러낸 것이고 나머지는 삼경과 칠지에서 조달됩니다. 거기다 장로회의 합체기 수사 열댓 분까지 생각하면 정말 기함할 전력이지요!
본 성의 막대한 전력은 당연히 만황세계의 외부 종족들과 몇몇 진령을 상대하기 위해서입니다. 선조들이 펼쳐 놓은 초대형 선가 진법이 너무 현묘해서 인족과 요족을 침략한 외부 종족들이 본 성의 유일한 입구로 몰려들었지요.
만일 이만한 역량이 모여 있지 않았다면 우리는 벌써 외부종족의 손에 멸망했을 것입니다. 듣기로는 일단 전쟁이 벌어지면 본 성에 모인 이들 대부분이 죽어나가는 일도 흔하다고 하더군요.”
“대부분이 죽어나간다고요?”
그 말을 들은 한립의 안색이 미묘해졌다.
“너무 놀라시거나 걱정할 일은 아닙니다. 이종족의 침입은 길게는 십여만 년 짧게는 6, 7만 년의 간격을 두고 이루어졌거든요. 이렇게 오랜 시간을 두고 한 번씩 침략하는데 굳이 걱정할 것도 없지요! 운이 나빠 외부 종족에 침략당한다면 목숨 걸고 싸우면 될 일입니다.
전투를 앞두고 천연성에서 달아나는 수비병은 누구든 양 종족의 추살을 받아 제거됩니다. 성에서 이익을 누렸으면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천연성이 마지막으로 이종족의 침략을 받은 것이 3만 년밖에 되지 않았으니 1, 2만 년 내로는 크게 근심할 일은 아니지요.”
“그랬군요. 그렇다면 제가 천연성에 온 것도 화가 아니라 복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한립은 턱을 쓸어내리며 생각에 잠겼다.
“당연하지요. 초대 비승수사는 연허기에 이를 가능성이 높아 장로회의 중시를 받기에 쉽게 방치되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무슨 이유인지 최근 몇 년간 비령대가 받아들이는 비승수사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고요. 이야기를 들으니 심지어 몇몇 장로분들은 분신(分神)을 하계로 파견해 원인을 조사하기도 한다더군요. 물론 성공한 사례는 듣지 못했지만요. 한 형은 막 하계에서 왔으니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하셨습니까?”
“아니요, 제가 있던 인계는 모든 것이 정상이었습니다.”
노인의 물음에 한립은 퍼뜩 고마(古魔)의 일을 떠올렸으나 태연하게 대답했다.
“안타깝습니다. 한 형께서 무언가 알고 계셨다면 큰 보상을 받았을 텐데요. 최근 몇 년간 비승한 수사들도 똑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몇 년 전에 요족에서 정보가 들어 왔다 하니 아마 장로회도 한 형에게 이 일을 묻지는 않으실 겁니다.”
“류 형께서 말씀하신 청명위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조금 전 만나 뵌 푸른 갑옷을 입은 수사들을 지칭하는 것입니까?”
“맞습니다. 청명전갑(靑冥戰甲)을 입은 수사들이 바로 청명위입니다. 청명위는 우리 천연성에서도 중계의 존재라서, 저 같은 이도 열 명의 흑철위(黑鐵衛)를 통솔할 수 있지요.
청명위는 반드시 화신기 수사가 임명되지만 화신기 수사라 해서 반드시 청명위는 아닙니다. 그 차이는 아시겠지요.”
“이해할 것 같습니다. 전투에 능하지 않은 몇몇 화신기 수사들은 다른 직책을 맡는 것이로군요.”
“우리 천연성 근위병들의 직무는 두 가지로 구분 됩니다. 첫 번째는 일정 간격으로 교대하며 당직 임무를 맡아 수행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게 지냅니다. 그러나 이런 근위병에게는 할당되는 영석이 많지 않아 빈곤하게 살지요. 대신 평소에는 위험한 일이 없습니다.
두 번째 직무는 전문적으로 장로회에서 하달되는 특수한 임무를 수행하는 겁니다. 임무를 하나만 완수해도 영석 뿐만 아니라 단약이나 보물 등의 진귀한 보상을 받기도 하지요. 그 대신 훨씬 위험한 일을 합니다. 대부분이 만황세계나 이종족과 관련된 임무니까요. 그러나 이런 임무를 하나 마치면 거의 수십 년에서 혹은 백 년까지 안심하고 수련에 임할 수 있으니 고려해볼만 합니다. 물론 두 가지 직무 다 고정된 것이 아니라 언제든 원하면 바꿀 수도 있고요.”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한립은 겉으로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감사인사를 했다. 푸르스름한 얼굴의 노인이 허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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