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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768화 (525/2,000)

768화. 청명위(靑冥衛)

*

한립은 무언가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에 미간을 좁혔다.

황금 선박은 보기에는 느긋하게 오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화살처럼 빨라서 순식간에 그 앞에 도착했다.

“하계에서 비승한 수사겠지? 이상하구나. 화신 초기 수사가 어찌 영계로 올라온 것인지……. 뭐, 그건 상관없고 이곳에서 우리를 만나다니 운이 좋구나. 함께 가자꾸나.”

얼굴이 하얀 수사가 먼저 입을 열어 친절하지도 냉담하지도 않은 말투로 말했다.

“선배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디로 가자는 것인지요.”

한립은 상대가 단번에 자신이 하계에서 온 것을 알아보자 깜짝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고 물었다.

“무슨 말이냐고? 너는 비승하는 동안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비령대(飛靈臺)에 나타나지도 천연성에서 복무하지도 않았다면, 비승할 때 공간폭풍을 만났거나 공간균열을 통해 올라온 자일 테지.”

하얀 얼굴의 수사가 입꼬리를 꿈틀하며 답했다.

“비령대……?”

한립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 자연히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우리 영계에는 하계가 수천 개가 있고 각각의 하계를 관리하는 비령대가 있네. 보통 영계로 비승하는 수사들은 즉시 천연성으로 소집되지. 수사처럼 도중에 변고가 생겨 다른 곳에 떨어지는 일이 드물기는 하지만 없지는 않네. 이런 경우 대부분이 멸진단을 복용하지 못해 첫 번째 뇌겁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어나가지! 우리가 처리할 일이 있어 이곳을 지나다 우연히 수사를 발견했으니 운이 좋다고 할 수 있네.”

나이가 많은 수사가 웃으며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멸진단을 복용하지 않으면 하계에서 지녔던 이계의 기운을 씻어낼 수 없어 300년에 한 번인 소천겁이 두 가지 색의 뇌겁으로 찾아온다네. 제아무리 대단한 신통을 지녔어도 결코 살아남을 수 없지! 이번에는 우리의 도움으로 천겁을 흩어버렸으니 다음번 천겁은 앞당겨져 백 년 후에 다시 강림할 걸세. 매년 멸진단 한 알만 복용하면 체내의 기운을 영계의 것과 같아지게 만들 수 있고 두 가지 색의 뇌겁도 더는 나타나지 않을 걸세. 그러니 우리와 같이 천연성에 가면 매년 멸진단 한 알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야. 아마 다음번 뇌겁은 이 번보다 강력할걸세.”

“그럼 선배님 말씀은 천연성에서 평생 머물러야 한다는 뜻입니까?”

“물론 아니네. 멸진단을 300년만 복용하면 하계의 기운을 완전히 씻어낼 수 있지. 그때 자유롭게 천연성을 떠나면 된다네.”

하얀 얼굴의 수사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천연성이 비승 수사들을 모아 그냥 멸진단을 내주는 것은 아닐 텐데요. 저희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립은 빙빙 돌리지 않고 가장 궁금한 것을 물었다.

“과연 총명하구만. 멸진단은 비승 수사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지만 재료가 진귀해 많은 것들이 만황세계에 가서나 구할 수 있다네. 이것을 받으려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겠지.

허나 자세한 이야기는 천연성으로 가서 하세! 일단 배에 오르시게. 물론 거절한다면 우리도 강요할 생각은 없으나 이후 어찌 될지는 수사가 가장 잘 알겠지.”

나이가 있는 수사는 턱수염을 쓸어내리며 미소 지었다. 이에 한립은 속으로 깊이 생각하다 황금 선박과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홀연히 배에 올랐다.

금색 갑옷을 입은 수사들은 당연하다는 듯 미소를 머금었다. 두 가지 색깔의 뇌겁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았다면 선택은 하나뿐이었다.

게다가 한립은 아직 화신 초기였으니 천겁을 버티고 살아남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황금 선박에 오른 한립은 주변을 살피다 배 가운데에 소형 진법이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가 진법을 보고 있는데 금갑(金甲) 수사들이 먼저 그 위에 서서 한립을 불렀다.

잠시 주저하던 그가 진법 안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금갑 수사들이 법결을 던졌고 발밑의 진법이 발동되며 두꺼운 보호막으로 세 사람을 감쌌다.

이어 나이가 많은 수사가 손바닥을 뒤집자 금빛 찬란한 원반이 나타났고 그 위에 은과문 글자가 보였다.

그가 다른 손으로 원반을 내리쳤다. 그러자 원반에서 금빛이 번지며 은과문이 화려한 빛을 내뿜었다.

이와 동시에 황금색 선박이 몸을 떨었고 아래쪽에서 우윳빛 기운이 나타나 하얀 진법으로 변했다.

웅!

진법의 빛이 번뜩이며 황금 선박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뒤이어 진법마저 산산이 갈라져 흩어졌다.

“…….”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화 노인과 결단기 수사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금갑 수사 두 명이 나타난 후로는 말은커녕 숨소리도 크게 내지 못했다.

그들은 황금 선박이 사라진 후에야 한숨을 돌리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운이 좋았다는 표정이었다.

“어르신, 천연위가 소문처럼 그렇게 무섭지 않은가 봅니다. 떠도는 이야기는 사실과 다른 경우가 허다하니까요.”

노란 장포 청년이 머뭇거리다 말했다.

“그건 자네가 몰라서 하는 말이네. 삼경칠지 중에 유일하게 삼황과 칠요왕의 관할이 아닌 곳이 바로 천연성이야. 금색 갑옷을 입은 천연위는 더더욱 천연성의 고계 수사들로 각 지역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권리를 지니지. 거기다 광명정대하게 인족과 요족에 위협이 될 존재들을 죽일 수 있어 삼황의 존재들도 함부로 하지 못하네. 만일 외부 종족들과 전쟁이라도 벌어지면 삼황칠요도 천연성 장로들의 안배를 따르게 되어 있으니 말이야.”

화 노인이 잠시 주저하다 알고 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저는 전혀 몰랐습니다. 그저 사부님께서 천연위에게 절대 거슬려서는 안 된다고 당부해 그런 줄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래 전에 천연위가 한 달 사이에 100개의 수도 가문을 멸한 선례가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요. 구체적인 이유는 아무도 모르고 삼황 등도 모른 척했고요.”

“바로 그 말일세. 천연성에 관해서는 나도 아는 것이 많지 않아. 허나 그곳의 수사들은 인족과 요족 지역에는 잘 나타나지 않고 전문적으로 외부 종족과의 전투에 참여한다더군. 이곳에 나타나는 이들은 금색 갑옷을 입은 천연위들 뿐이고 말이야.”

노인이 미간을 좁혔다.

그때 한립이 탄 황금 선박은 이름 모를 성의 밀실에 설치된 전송진에서 나타났다.

금갑 수사 하나가 선박에서 뛰어내려 전송진의 반짝이는 영석들을 교환하고는 다시 돌아와 법결을 날려 진법을 발동했다.

‘잠깐.’

한립은 그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반짝이는 수정석들이 전부 고계 영석이었던 것이다. 그가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황금 선박은 다시 하얀빛에 파묻혀 전송되었다.

이번에 그가 나타난 곳은 지하 동굴로 황금 선박 아래에 비슷한 전송 진법이 설치되어 있었다.

금갑 수사는 똑같이 영석을 갈아주고 황금 선박은 그곳에서 사라졌다.

한립의 주시 하에 황금 선박은 스물 대여섯 번이나 넘게 전송되었다. 예전에 그가 난성해로 갈 때도 중계 영석이면 충분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고계 영석을 이용할 정도면 얼마나 멀리 가는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츠츳.

황금 선박은 또 전송되어 다른 곳의 전송진 위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천연성이라는 곳에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송진이 제단처럼 높고 평평한 곳에 설치되어 있었고 열 장 높이의 제단 아래에 검은 갑옷을 입은 수사들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검은 갑옷을 입은 수사들은 금색 갑옷에 비해 훨씬 빈약해 보였지만 표면에 은색 문자가 새겨져 있다는 점에서는 똑같았다.

그곳에는 높은 제단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었는데 황금 선박이 나타나자 흑갑 수사들이 경계심을 드러내다 금갑 수사들을 보고 안심하며 신형을 날려 올라왔다.

그중 청록색 눈을 지닌 거한이 다가가 금갑 수사들에게 공손히 예를 올렸다.

“천위 대인을 뵙습니다.”

한립은 그 자를 훑고 눈썹을 끌어 올렸다.

놀랍게도 그들은 모두 원영기 수사들로 그중 한 명은 원영 후기를 대성했고, 중기 한 명에 초기 두 명으로 이뤄져 있었다.

“일어나거라. 이쪽은 새로 온 비승 수사다. 너희 소대에 청명위(靑冥衛)가 한 명 비는 것으로 아는데 너희의 대장이 될지도 모르니 비령전(飛靈殿)으로 안내해 하루 쉬게 하거라. 우리는 장로회에 임무를 완수했다고 보고를 올려야 하니 나중에 다시 보겠다.”

연배가 있는 금갑 수사가 차분히 분부를 내렸다.

“예!”

거한도 한립이 화신기 수사라는 것을 알아보았기에 놀라는 기색 없이 한립을 향해서도 살짝 허리를 굽히며 대답했다.

“너는 일단 저들을 따라가 하루 쉬고, 이후의 일은 내일 다시 이야기 하자꾸나.”

하얀 얼굴의 수사가 한립을 향해 말하자 한립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셋은 제단에서 내려와 전당 밖으로 나섰다.

네 명의 흑갑 수사들 중 벽안의 거한만이 그들을 따라오고 나머지 셋은 여전히 제단 아래를 지키고 있었다.

‘보아하니 황금 선박이 이곳에서도 꽤나 중요한 물건이로구나. 원영기 수사가 넷이나 붙어 이곳을 지키다니.’

문을 나서자 나타난 것은 폭이 네다섯 장은 되는 거대한 길이었다. 통로 양쪽은 청회색 석벽으로 막혀 있었고 일정 거리마다 은과문 주술이 새겨져 있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반원형으로 된 통로는 아래쪽으로 점점 내려가게 되어 있었는데 두 명의 금갑 수사들은 위쪽으로 향했고 흑갑 거한은 한립을 데리고 아래로 내려갔다.

통로를 걸어가자 수백 장마다 한립이 나섰던 전당의 문과 똑같은 문이 나타났다. 어떤 것은 굳게 닫혀 있었고, 또 어떤 것은 활짝 열려 있었다.

열려 있는 문 안쪽으로는 전당의 내부가 훤히 보였다.

대부분 제단, 전송진 그리고 황금 선박이 있었고 몇 명의 원영기 수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닫혀 있는 문은 한립이 의식으로 슬쩍 살피려 해보았지만 전혀 알아낼 수 없었다.

가는 동안 여러 수사들을 지나쳤는데 대부분 흑갑의 원영기 수사들이었고, 서너 명쯤은 화신기 수사였는데 푸른 갑옷을 입고 있는 걸로 보아 청명위일 것이다.

그들은 낯선 한립을 보고 호기심이 이는 듯 쳐다보았지만 다가와 말을 거는 이는 없었다. 다들 어디론가 가는 것이 훈련이 잘된 병사들 같았다.

그 모습에 한립은 인상을 찌푸렸다.

*     *     *

한참을 걸은 후에야 눈앞이 밝아지며 천 장은 되어 보이는 거대한 대청이 나타났다.

대청 안에는 백 명 가량의 갑옷 입은 병사들이 이리저리 바삐 오가고 있었다.

대청의 곳곳에 한립이 들어온 곳과 똑같은 통로가 열댓 개나 있었다. 한립의 얼굴에도 놀란 기색이 스쳤으나 무심코 고개를 들고는 더욱 깜짝 놀랐다.

대청의 천장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뜻밖에도 그곳은 속이 비어 있는 거대한 탑처럼 고리 형태의 원통형 건물이었다. 그가 빠져나왔던 곳도 이 거대한 탑 안에 있는 공간에 불과했다.

이렇게 거대한 석탑은 처음 보는 것이라 한립은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겨우 평정을 회복할 수 있었다.

앞에서 길을 안내하던 거한은 한립이 놀라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재촉하지 않았다.

그는 한립이 고개를 내리자 그를 데리고 대청의 출구 중 하나로 걸어갔다.

대청의 또 다른 출입구에 도착했을 때 한립은 가슴이 철렁했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구름 속으로 빼곡하게 치솟은 푸른 탑들이 100 개는 넘어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거대한 탑의 아래에는 누각 형태의 건물들이 셀 수도 없이 인접해 서있었다.

큰 것은 천 장 높이에, 작은 것은 백여 장 높이로 각각의 건축물들이 평범한 건물들보다 몇 배는 거대했다.

그러니 이런 광경을 보고 어찌 어안이 벙벙해지지 않겠는가.

그때 대청을 나선 병사들이 둔광을 날리며 다른 탑들 아래의 건물로 날아가 버렸다. 벽안 거한도 그들과 간단히 인사하고는 한립을 데리고 머지않은 전각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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