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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767화 (524/2,000)
  • 767화. 두 가지 색깔의 벼락

    *

    머리 위의 거대 솥도 은색 벼락을 흡수하는데 한계에 이르렀는지 푸른 실도 줄어들고 벼락을 흡수하는 속도도 떨어졌다.

    그 틈에 대량의 은색 벼락이 아래쪽 금빛 뇌전 그물로 떨어졌다. 안 그래도 간신히 버티던 뇌전 그물이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지켜보던 결단기 수사들이 서로 시선을 교환했고 노란 장포 청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절대 평범한 소천겁이 아닙니다. 화신기를 대성한 수사의 천겁도 이럴 수는 없어요.”

    “그렇지, 이런 천겁을 어디선가 들어본 것도 같은데…….”

    화 노인이 천겁의 어마어마한 위력에 무언가 생각이 날듯 말듯 했다.

    “어르신, 정말이십니까?”

    노란 장포 청년이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언젠가 한 번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네. 너무 오래 전이라 생각이 잘 나지 않지만 말이야.”

    노인이 곰곰이 생각하며 답했다. 노인은 수도자가 아니었기에 나이를 먹으면서 이전의 기억들은 흐려지기 마련이었다.

    결단기 수사들은 궁금해서 마음이 급했지만 화 노인은 실력이 원영기 수사에 버금가는 최상급 연체사였기에 함부로 재촉하지 못했다.

    “엇! 저 선배님이 이제는 버티지 못할 것 같습니다.”

    결단기 수사 하나가 갑자기 소리를 높였다. 그 소리에 다른 이들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고 고민하고 있던 화 노인도 재빨리 고개를 쳐들었다.

    이제 벼락이 형태를 바꿔 사람 머리통만 한 뇌전 구슬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웅웅

    뇌전 구슬은 이전의 벼락보다 훨씬 강한지 거대한 솥이 드디어 버티지 못하고 울어대기 시작했다.

    솥은 더 이상 푸른 실을 내뿜지 못하고 주먹만 하게 줄어들어 푸른 빛 속의 인영에게 돌아갔다. 상당히 손상된 모양이었다.

    아직도 푸른빛 속 인영의 손에서는 금빛 뇌전이 용솟음치고 있었지만 뇌전 그물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거대한 그물이 드디어 뇌전 구슬의 폭격에 찢겨나가기 시작했다.

    지켜보는 이들이 겁을 치르는 수사가 죽겠구나하고 생각했을 때 인영이 자신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그러자 대량의 회색 기운이 머리 위로 치솟았고 입에서 거무튀튀한 한 척 크기의 산이 빠져나왔다. 회색 기운은 지척에 이른 뇌전 구슬을 휘감았고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졌다.

    어떤 색의 뇌전 구슬이든 회색 기운에 걸려들면 전부 그 자리에 멈춰서 빙글빙글 돌았다. 마치 무형의 기운이 그것들을 떠받치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뇌전 구슬은 사라지지 않고 쌓여갔다.

    회색 기운은 서른 장 가까이 퍼졌으나 어느새 두 가지 색깔의 뇌전 구슬이 가득해 더는 받아들일 수 없어 보였다.

    바로 그때 인영이 수결을 맺었고 작은 산이 열댓 장 크기로 커졌다. 인영은 한 손을 들어 산을 가리키며 난해한 주술을 읊어댔다.

    그러자 산봉우리 표면에 빛이 흐른 후 회색빛의 고리가 꼭대기에서 퍼져나가 허공에 쌓인 뇌전 구슬들을 휩쓸었다.

    처음에는 미세하게 진동할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점점 회색 기운이 출렁이며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뇌전 구슬은 두 종류의 힘을 받으며 불안정해졌고 회색 기운의 왜곡이 극심해지자 금색과 은색의 뇌전 구슬들이 너울거리며 한곳으로 뭉쳐 터져나갔다.

    꽝! 꽈광!

    은색과 금색 빛덩이가 폭발하자 무수히 많은 뇌전을 뿜어냈다. 이에 회색 고리가 진동하며 뇌전들을 거무튀튀한 산봉우리로 모았다.

    이후 가느다란 뇌전들은 전부 산봉우리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이 같은 일이 한동안 반복되었다.

    계속해서 회색 기운은 떨어지는 뇌전 구슬을 모으고 회색 올가미가 퍼져나가 은색과 금색 뇌전 구슬을 터트려 산봉우리로 흡수시켰다.

    ‘끝이 없어!’

    멀리서 보면 아주 쉽게 뇌전 구슬을 처리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아주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원자신광의 불가사의한 신통으로 버티고 있었지만 원자산에 단번에 이렇게 많은 천뢰를 모으려면 법력의 손실이 엄청났다.

    푸른빛 속의 인영은 당연히 산속에서 백 년간 들어앉아 있던 한립이었다. 그동안 금강결을 대성하고 흩어버렸던 원영을 다시 응결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원영 응결을 성공한 바로 그날 영계의 천겁이 들이닥쳤다. 한립은 당황했지만 할 수 있는 방법은 전부 다 쓰고 있었다.

    연달아 쏟아지는 열댓 번의 뇌전 구슬로 인해 법력을 거의 소모했는데도 하늘의 뇌겁은 전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한립의 안색이 조금 창백해졌다. 그의 신통은 다양했지만 천겁이 닥치니 쓸 만한 것이 몇 개 되지 않았다.

    서령천화가 변한 불새만 해도 천겁이 시작되자 새로 응결한 원영의 체내에 숨어버려 부릴 수가 없었고, 오자동심마나 제혼도 천겁에 주눅 들어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천겁을 막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팔령척과 육정천갑부 등은 진작 공간 접점에서 망가졌다. 이제 남은 대책은 두세 가지밖에 되지 않았는데 전부 절체절명의 순간에나 사용할 만한 방법들이었다.

    지금 상황으로 보아 최후의 수단을 써야 할 때였다.

    ‘그런데 영계의 소천겁이 이렇게 무지막지할 수가! 다들 이런 일을 겪는다면 나머지 화신기 수사들은 대체 어떻게 겁을 치른 것이지.’

    그는 모두 이처럼 엄청난 위력의 천겁을 치른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천겁을 치르는 비결이 있다면 또 모를까!

    그는 지난날 소천겁에 대해 자세히 알아두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그러나 한립은 지금 일어나는 일이 일반적인 소천겁과 다르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역천의 신통을 지니고 허천정과 원자산 등의 최상급 보물을 지닌 그가 아니었다면 다른 수사들은 첫 번째 벼락이 내리칠 때 재로 변해 사라졌을 것이다.

    깊게 심호흡을 하니 한립의 몸에 핏빛이 어렸고 무언가가 몸에서 나오려 했다. 바로 그때, 몇 리 떨어진 곳에서 공간 파동이 일었다.

    파앗.

    영기의 빛이 크게 번지고 우윳빛 진법이 허공에 떠오른 것이다. 열댓 장 크기의 진법이 빛을 머금었고 주술들이 나부끼며 반짝였다.

    ‘또 뭐야?’

    놀란 그가 핏빛을 거두고 원자신광으로 뇌전 구슬을 막으며 냉랭히 그 쪽을 바라보았다. 천겁을 치르는 중요한 시점에 갑자기 이상한 일이 일어났으니 경계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빛으로 만들어진 진법이 어딘가 익숙했다. 마치 어디선가 많이 보았던 모양 같았다.

    의식으로 진법을 훑어보던 한립의 가슴이 갑자기 서늘해졌다. 우윳빛 진법이 한동안 진동하다 불가사의하게도 그 중심에서 금으로 만든 선박이 나타났다.

    황금으로 만들어진 선박에는 은색 문자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한립이 문자를 보고 일순 안색이 변했다.

    ‘은과문!’

    선계의 문자였다.

    거대한 빛의 진법은 허공에 펼친 전송진 같았다. 보면 볼수록 기함할 일이었다.

    황금 선박 중심에 반원형으로 노란 보호막이 쳐져 있었는데 그게 어찌나 두껍고 단단한지 강력한 의식으로도 전혀 안을 볼 수가 없었다.

    황금 선박이 나타나자 아래쪽 전송진이 부서져 내리며 선박 중심에 있던 노란 보호막도 사라졌다. 그리고 안에서 금색 갑옷을 입은 수사 두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이가 오륙십은 되어 보이는 턱수염을 기른 사내와 서른 살로 보이는 하얀 얼굴의 사내였다.

    두 수사의 금색 갑옷에도 은과문이 새겨져 있었는데 주술이 나풀거리며 그 주위를 맴돌았기에 한 눈에 봐도 진귀한 보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의식으로 상대의 수행을 확인한 후, 한립의 머리 위에 있던 원자신광이 흔들렸다. 그 모습을 보고 너무 놀라 공법이 흐트러질 뻔한 것이다.

    그들은 둘 다 연허기 수사였는데 그중 하나는 연허 중기였다. 저런 존재들이 어찌 우연히 이곳에 나타나 하필 천겁을 치르는 자신을 찾아냈는지 궁금했다.

    ‘설마 나를 노리고.’

    상대를 쳐다보는 한립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노란 장포 수사도 갑자기 나타난 금색 배와 갑옷을 입은 수사들을 보고 있었다.

    결단기 수사들은 보고도 무슨 일이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화 노인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안색이 달라 져소리쳤다.

    “금정주(金庭舟)와 천연위(天淵衛)!”

    “처, 천연위요! 천연성의 선배님들이란 말입니까?”

    노란 장포 수사가 안색이 창백하게 변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반문했다.

    “틀림없어. 이제야 생각났군! 저건 분명 소천겁이지만, 희귀하게도 하계에서 올라온 수사가 멸진단(滅塵丹)으로 몸을 씻어내지 않았을 때 겪게 되는 치명적인 두 가지 색의 뇌겁이네. 천연위가 기이한 천겁을 감지하고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이곳까지 온 것이겠지. 그런데 이상한 것은 어째서 천연위가 이 주변을 지나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야.”

    화 노인이 황금 선박을 주시하며 아연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미 천연위라는 말에 머릿속이 멍해진 결단기 수사들이 그 답을 알리 만무했다.

    모든 것이 화 노인의 말대로 진행 되었다.

    연허기 수사들은 즉시 한립과 그 위로 떨어지는 뇌전 구슬을 살피다 상대가 아직도 잘 버티고 있는 모습에 놀란 기색이 스쳤다.

    그러다 그중 하나가 바로 손을 들어 초록색 부적을 쏘아 보내자 천둥 소리가 울리며 키가 열장에 전신이 보라색 뇌전으로 뒤덮인 거대인간이 나타났다.

    헐벗은 상체에 팔짱을 낀 거대인간은 얼굴은 모호했지만 희미하게 기골이 장대한 사내처럼 보였다.

    이번에는 또 다른 수사가 푸른색과 금색 부적을 던지자 쿠르릉 하는 소리를 내며 한 장 크기의 푸른 송곳과 금색 망치로 변했다.

    두 보물이 각각 푸른 뇌전과 금색 뇌전으로 감싸인 채 영기를 내뿜는 것을 보니 대단한 보물인 듯했다.

    첫 번째 수사가 신중한 얼굴로 연달아 법력을 쏘아 보냈고 스스로 허공의 거대인간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빛으로 만들어진 푸른 송곳과 금색 망치를 쥐었다.

    그때 또 다른 수사는 맑은 목소리로 주술을 외며 거대인간 안으로 들어간 수사를 보조하는 술법을 시행했다.

    거대인간이 우렁차게 소리를 지르며 푸른 송곳을 한립이 있는 곳을 향해 조준하더니 금색 망치로 송곳을 호되게 내리쳤다.

    쾅!

    거대인간의 몸에서 보라색 뇌전이 번뜩였고, 금색 망치와 푸른 망치에서도 각각 뇌광이 번뜩였다. 송곳 끝에서 보라색, 푸른색, 금색이 섞인 뇌전이 터져 나온 것이다.

    처음에는 아주 가느다란 뇌전이 별안간 수 장 너비에 백 장 길이로 커져 삼색의 진룡(眞龍)이 허공에서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거대한 뇌전은 순식간에 사라졌다가 한립의 머리 위에서 다시 나타났다.

    츠츳 꽈과광!

    ‘…….’

    뇌전이 소리를 내며 삼색으로 번뜩이니 그 바로 아래 있던 한립은 가슴이 쿵하며 내려앉아 순간 호흡마저 가빠졌다. 그러나 곧 정상으로 돌아왔다.

    거대한 뇌전이 몸을 비틀어 먹구름 속으로 날아갔기 때문이다. 폭음이 연달아 들리고 먹구름 속에서 빛이 번쩍번쩍하자 떨어져 내리던 뇌전 구슬도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이제 한립도 두 사내가 그가 천겁을 치르는 것을 돕기 위해 나섰다는 것을 알아챘다. 의외의 상황이었지만 이런 좋은 일을 마다할 리가 없었다.

    그는 더 이상 고민할 것도 없이 신형을 아래로 이동했다. 천겁이 떨어져 내리는 구름과 멀어질 수 있도록 이동한 것이다.

    그의 예상은 정확했다.

    그가 막 거리를 벌렸을 때 먹구름 속에서 거대한 뇌룡이 나타났고 온 몸이 갈가리 찢기며 무수히 많은 삼색 뇌전을 튕겨냈다.

    천둥소리가 귀청을 때릴 듯 요란하게 울리다 점차 줄어들더니 먹구름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먹구름 사이로 태양이 조금씩 비치기 시작했다.

    소천겁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소천겁이 끝났지만 한립은 기뻐하기 보다는 원자신광과 원자산을 회수하고 담담히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멀리서 황금 선박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는데 그 위에 탄 갑옷 입은 수사들의 얼굴이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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